4화
평범한 40대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술배가 조금 있고, 간이 안 좋아서 낯빛이 어둡고, 머리가 약간 벗겨진.
요컨대 한번 봐서는 기억하기 어려울만큼 평범한 모습이었다.
“요한이.”
하지만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면 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서남 방언이 너무 심해서.
최용석이 구석에 앉아있는 요한을 보고는 허겁지겁 걸어왔다. 그리고는 인사도 생략하고 대뜸 물었다.
“아니 어쩌다가 그래븟냐?!”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모르죠.”
“좆됐네...”
그제야 최용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안 그래도 날이 날이라, 뭔 일 생기는거 아닌가 싶긴 했는디. 니가 영안이 트였네.”
“이런걸 영안이라고 해요?”
“어. 영혼을 보는 눈이니까.”
뭐 이게 중요한건 아니다. 영안이건 사륜안이건 명칭이 뭔 상관인가.
“니 귀신 보인다 했제. 뭔 귀신인데?”
귀신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최용석의 물음에 내가 어떤 것들을 봤는지 죽 설명했다.
겉모습은 모두 달랐던지라 공통점을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보는 것들이 평범한 귀신들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 귀신에 평범함이란 말을 붙이는게 맞는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와, 씨... 진짜 큰일 났는데...”
말을 마치자 최용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두운 낯빛이 도로 밝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속이 타는 듯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하필 주술사네.”
“주술사요.”
“의사도 외과 있고 뭐 있고 그러제? 영안 트인 사람들도 비슷하다. 전공이 다르다고 해야하나. 누님, 그러니까 너희 어머니는 평범한 무당이었지. 사주 봐주고, 굿 하고, 귀신 잘 달래서 돌려보내고 뭐 그런거 말이다.”
잠시 숨을 고른 최용석이 말을 이었다.
“근데 주술사는 다르다. 이쪽은 귀신을 달래는게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는 사람들이여.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만 꼬이기도 하고.”
“으음.”
“그래서 돈만 따지면 주술사들이 제일 많이 벌기는 하지.”
일당에 목숨값이 붙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주술사 숫자도 굉장히 적지 않을까.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는, 뭐 그런.
최용석이 테이블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관리국에 있는데... 관리국에서 안 찾아오디?”
“관리국이요?”
“괴이관리국. 줄여서 괴관국이나 관리국. 반응 보니까 아직 모르는갑네.”
말만 들어보면 초상현상에 관련된 일을 하는 국가조직인 모양.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저 영안 트인지 하루도 안 됐어요.”
“하긴, 그랬제.”
어느정도 예상한 사실이었다. 초상현상을 관리하는 국가 조직이 분명히 있을거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나라가 지금껏 이렇게 조용할리가 없었을테니. 당장 무당 어머니를 둔 나조차 제대로 모르지 않았던가.
그만큼 나라의 초상현상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겠지.
어쨌든 거길 괴이관리국이라고 하는구나.
“근데 주술사 노릇하는게 돈벌이가 된다면서, 굳이 공무원을 왜 하는데요?”
“여럿이서 퇴마하는게 훨씬 안전하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란건가.
“연결해주랴?”
“아뇨. 때 되면 어련히 만나겠죠.”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런 조직이 있구나 정도만 알아둘 생각.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형님 무당들 부탁도 들어주고 하시죠? 필요한 것 있으면 대신 구해다주고 그런거요.”
최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아무래도 나이 있는 어르신들은 거동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얼굴 팔리는거 싫어하시는 무당들도 많으니까.”
“괴황지랑 경면주사 좀 구해주세요.”
“부적재료네? 뭣에 쓸...”
그러자 최용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금세 본래 뜻을 알아차리고는 사색이 되었다.
“니, 니 설마 돈벌이 할라고?!”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용석이 말을 쏟아냈다.
“아니 요한이 니가 돈 벌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누님이 아무리 점을 많이 못 쳤어도 몇 억은 될 것인디? 헛생각 하지말고 공부나 하지, 뭐하러 돈벌이를 해?”
형님 입장에서야 당연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애초에 중간에서 스케줄 관리하던 사람 아닌가.
우리 어머니가 몇 번이나 점을 쳤는지도 알고, 단가가 얼마인지도 잘 알고 있을터. 얼마를 벌었는지 구체적인 액수가 떠오르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나이 서른에 몇억 가진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나? 몇억은 커녕 돈백만원 없는 사람도 쌔고 쌨는데.
최용석은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의미였다.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엄마가 천기는 받았는데 땅 기운이 없어서 부동산으로 다 날렸어요.”
“아-”
쪼옥-
호로록-
“...니 그럼 지금 얼마나 있는데.”
“지금은 3천쯤 있죠. 근데 생활비 같은 것도 필요하니까 많이는 못 씁니다.”
“괴황지든 경면주사든 꽤 비싸서 그래.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제대로 된게 아니라서, 영력을 담으려면 제대로 된걸 써야하니까.”
“예.”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애초에 제대로 된 물건을 구하려고 자리를 만든 것이기도 했고.
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일 좀 연결해주세요.”
무슨 일인지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최용석이 침을 삼키고 물었다.
“꼭 해야겠냐.”
“예.”
“죽는다. 잘못하면.”
안다.
이미 겪고 오지 않았나.
“아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모르고. 죽는것만 못한 상태가 될 수도 있는데.”
“...”
“형이 명언 들먹이는거 싫어하는데,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뭐 어쩌고 하는 말 있잖냐. 다른 곳은 몰라도 이 바닥에서는 거짓말 아냐 그거.”
매우 유명한 구절이지만, 아무데나 갖다붙여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주술사한테 죽은 주술사들도 있어. 퇴마 계속하다가 미쳐버려서.”
“주술사들만 그럴까? 네 눈에 보이는 귀신들도 원래는 사람이었다. 근데 어느 시대를 살았을지는 모르지. 조선 시대일수도 있고, 일제강점기일수도 있고, 최근일수도 있겠지. 이게 뭔 소린지 알겠냐?”
“죽어서도 못 떠나고 묶여있는거죠. 몇 년이 됐든.”
고개를 끄덕인 최용석이 턱을 문질렀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그래도 할래?”
“네.”
이미 결심한 참이다.
최용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씨, 대를 이어서 관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알았다. 일단 그 두개는 빨리 구해서 보내줄게. 가격은 물건 구하면 얼만지 알려줄테니까 기다리고.”
“감사합니다. 일도 적당한 걸로 부탁드릴게요. 제가 믿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덕분에 급한 불은 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최용석이 말했다.
“뭘 벌써 갈라고?”
“가아죠 그럼.”
“오랜만에 봤는데 밥이나 먹자. 소고기 사줄라니까.”
이건 어쩔 수 없지.
**
며칠 뒤.
왔다. 부적 재료.
택배 박스 안에 괴황지와 병에 담긴 경면주사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고, 경면주사를 붓는 백자, 빳빳한 붓도 있었다.
밑바닥에는 책도 한권 깔려있었는데, 뭔가 하고 보니 부적에 관한 서적이었다.
‘이런 것도 넣어주셨네.’
척 보기에도 새 것이 아니라 헌 것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갔다. 우선 최용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물건 잘 받았냐?]
“예. 얼마 보내드리면 될까요?”
[삼백 보내면 된다.]
“네.”
웬만한 직장인들 한달 월급 수준이다.
하지만 값을 따지지는 않았다.
돈 문제는 칼같이 한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해야 할 사이니까.
나는 주술사로서 퇴마를 하고, 최용석은 내가 필요한 물건을 구해다주고 일을 연결해주며 수수료를 받는 그런 관계.
이쪽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업보를 두려워하니 값을 부풀렸을리도 없고.
부적 책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물었다.
“근데 이런건 어디서 구하신거에요? 말씀도 안 드렸는데 이런 부분도 신경 써주시고...”
[형이 아는 분이, 네 소식 듣더니 안타깝다고 주신거여. 이 바닥에서는 워낙 유명한 분이니까 믿고 써도 될거다.]
“아, 그게 누군데요?”
[그... 있어. 유명한 어르신 한 분. 나중에 기회 되면 너 한번 데려오라고 하시드만 그때 봐.]
뭔가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느낌이었다. 구태여 더 묻지는 않았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니.
최용석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어르신이 그러는디, 처음에 보면 내용이 다 보이지 않을거라고 하드만. 대부분 백지로 보일거라던데?]
책을 촤르륵 넘겨보니, 그 말대로 거의 대부분 백지 상태로 보였다.
“그러네요. 몇 글자 안 보이네요. 왜 이런거에요?”
[어르신 말로는, 아직 자격이 안 되서 그럴거라던데? 시간 지나면 자연히 보일테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던데, 내가 뭐 주술사도 아니고 자세히는 모르것다.]
“예. 알겠습니다. 일단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룟값은 지금 입금해드릴게요.”
[그래라.]
뚝-
통화를 종료한 뒤, 돈을 송금하고 책을 펼쳤다.
부적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결계부, 제압부 그리고 응용부로 나뉜다고 한다.
결계는 술사나 일정한 영역에 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제압부는 불을 일으키거나 번개를 방출하는 것들이며, 응용부는 귀신을 감지하거나 몸에 활력을 돌게 하는 보조적 종류를 총망라하는 듯했다.
게임처럼 생각하면 탱, 딜 그리고 유틸인 모양.
세 종류의 부적을 모두 활용해야겠지만, 사실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은 제압부였다.
놈들과 붙을 작정이었으니까.
왜 굳이 잘 달래서 돌려보내나. 그냥 없애버리면 되는 것을.
3골 먹혀도 4골 넣어서 이겨먹으려는 뭐 그런 것처럼.
“이거다.”
금세 필요로 하던 종류의 부적을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몇 글자 보이지 않아서 찾기도 쉬웠다.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제압부 중에서도 화형부火刑符.
불길을 일으켜 귀신을 태우는 가장 기본적인 부적이다. 악귀는 본래 음의 존재였으니 퇴마에 있어서는 양의 기운 그 자체인 불로 태우는게 직빵이라고.
스윽-
괴황지를 잘 펼쳐두고, 경면주사를 백자 종지에 붓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빳빳한 붓을 백자에 담궈 적시고 기다린다.
“후우.”
오늘을 위해서 부지런히 기호흡을 했다. 하단전에 영력을 가득 채워두었다.
오른손에 경면주사를 먹인 붓을 쥐고, 눈을 감은 뒤 심호흡을 한다.
붓을 들고 누런 괴황지 위에 두 글자 한문을 새긴다. 거침 없이.
스윽-
슥!
글자를 적어넣으며 머릿 속으로는 상상을 한다. 이 부적을 태우거나, 던지거나, 붙이면, 악령들이 불에 타 한줌 재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그러자 정말로 하단전에 담겨있던 영력이 쭉 빠져나갔다. 내 영력이 부적에 담기고 있는 것이다.
“후우.”
붓을 놓고 눈을 뜨니, 괴황지 위에 정갈하게 화형火刑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게 이럴때 도움이 되네.
손수 만든 부적을 집어들자, 괴황지 위에 열감이 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흠.”
물론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고, 정작 위력은 어떨지 알 수 없는 노릇.
부적을 챙겨서 집 밖으로 나섰다.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시험을 해보자.
소화기를 챙겨 집 근처 텅 빈 공터로 향했다.
사람? 없고.
CCTV? 없고.
좋아.
“근데 어떻게 쓰는거냐.”
물럿거라- 언령과 비슷하게 말로 발동하면 되려나?
부적을 오른손에 쥐고 중얼거렸다.
“태워라.”
그러자 부적의 끝에서 불티가 일더니.
화륵!
콰아아아아-!
“...”
화염방사기의 것보다 거대한 불꽃이 부적에서 뿜어졌다. 곳곳에 불똥이 튀어 주변의 건물들에 옮겨붙으려 했다.
“어우, 씹!”
곧 소화기 치이익 거리는 소리가 빈 공터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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