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맞은편 남자가 나를 봤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이었다. 내 헤드셋을 보고, 옆에 놓인 수첩을 보고, 다시 나를 봤다. 한 마디도 안 하는 남자를 보는 눈.
나는 그 시선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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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엔 주말 MTT — Day 2】
잔여 : 14 / 64
블라인드 : 1,000 / 2,000 (ante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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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청 — 62,400 (31.2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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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없었다. 2년째.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소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매번 설명하기 싫어서 끼는 거였다. 옆에 수첩이 놓여 있었다. 검정 가죽. 모서리가 닳아서 갈색이 드러나 있었다.
딜러 하나가 카드를 돌렸다. 손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소리는 몰랐다.
프리플롭. 내 핸드를 봤다.
【7♥ 4♦】
빨간 7. 빨간 4. 수첩 표지에 빛을 비추면 보이는 글씨와 같은 색이었다. 좋은 핸드는 아니었다. 좋은 점이 있다면 숫자가 예쁘다는 것. 47.
그 남자는 CO(컷오프) — 딜러 버튼 두 칸 앞, 후반에 공격하기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칩을 밀었다. 레이즈. 르비엔 레귤러. 이름은 모른다. 칩을 밀 때 검지와 중지 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자신이 있는 손이 아니었다.
[테이블 리딩] 레이즈 6,000. 3BB.
나는 BB(빅블라인드) — 이번 핸드에서 마지막에 행동하는 자리였다. 칩을 앞으로 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테이블에서 나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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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롭.
[K♦] [7♥] [4♠]
투페어. 빨간 7과 빨간 4가 둘 다 맞았다. 보드에 K가 있었다. K를 들고 있으면 진다.
CO가 칩을 밀었다. 베팅.
[테이블 리딩] 베팅 8,000. POT : 21,200.
[감정 게이지 : 52]
52. 중간. 자신감과 불안 사이. 이 수치만으로는 모르겠다.
칩을 밀었다.
CO가 나를 봤다. 0.5초. 다시 보드를 봤다. 다시 나를 봤다. 두 번 봤다. 한 번이면 확인이다. 두 번이면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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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
[K♦] [7♥] [4♠] [Q♣]
보드가 무거워졌다. K도 있고 Q도 있다. 내 투페어가 갈수록 약해지는 보드였다.
CO가 칩 더미를 잡았다. 큰 사이즈. 팟의 80%.
[테이블 리딩] 베팅 30,000. POT : 67,200. SPR 0.9 — 커밋 라인.
[확률 시야] 38%
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숫자는 그렇게 말했다.
근데 CO의 손이 보였다. 칩을 밀 때 왼쪽 약지가 떨렸다. 프리플롭에서는 안 떨렸다. 플롭에서도 안 떨렸다. 턴에서 떨리기 시작했다. 베팅 사이즈를 키우면서 떨리기 시작한 거였다.
[감정 게이지 : 71]
52에서 71로 올라갔다. 방향이 자신감이 아니었다. 불안 쪽이었다.
[블러프 탐지 : 78%]
숫자는 지라고 했다. 이 사람의 손은 이기라고 했다.
칩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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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K♦] [7♥] [4♠] [Q♣] [2♦]
아무것도 아닌 카드. 2.
CO가 남은 칩 전부를 라인 너머로 밀었다. 올인. 밀 때 손이 멈칫했다. 0.3초. 칩 더미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다시 잡아서 밀었다. 한 번에 안 밀었다. 진짜 강한 핸드를 들고 있는 사람은 한 번에 민다. 고민할 이유가 없으니까.
[감정 게이지 : 83]
[블러프 탐지 : 91%]
91%.
수첩을 보지 않았다. 적을 건 없었다. 이건 적는 게 아니라 보는 거였다.
남은 칩 전부를 라인 너머로 밀었다.
CO의 눈이 움직였다. 나를 봤다. 내 칩을 봤다. 다시 나를 봤다. 이번엔 세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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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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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청 (BB) — 【7♥ 4♦】 투페어
맞은편 남자 (CO) — 〈J♦ 10♦〉 하이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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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었다. J하이. 순수 블러프.
딜러가 팟 더미를 내 쪽으로 밀어줬다. 테이블 위로 진동이 전해졌다. 밀려오는 칩의 탑이 무너지는 진동. 소리 대신 느끼는 것.
저 멀리 서있는 한 사람이 나를 봤다. 시계를 가리켰다. 시간을 확인하라는 게 아니었다. '잘했다'의 손짓이었다. 우리만 아는 신호.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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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석에서 폰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화면에 채팅이 흐르고 있었다.
"방금 봤죠? 74 오프슈트로 올인 콜. 보드에 K Q 깔려 있는데. 미친 거 아닙니다 여러분. 저 사람은 카드를 안 봐요. 사람을 봐요."
'사칠 ㄷㄷ'
'ㅋㅋㅋ 또 읽었네'
'헤드셋 끼고 어떻게 저래'
'블러프캐쳐 아니냐 진짜'
"별명이 사칠이에요. 47. 항상 이상한 핸드로 이기거든요. 근데 진짜 무서운 건 — 저 사람 귀 안 들려요. 아시죠? 헤드셋이 보청기가 아니에요. 안 들리니까 그냥 끼고 있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관전석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알았다. 입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뭐라고 하는지는 몰랐다.
몰라도 됐다.
다음 핸드가 돌아오고 있었다. 딜러 하나가 카드를 섞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에서 가장 시끄러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수첩이 옆에 놓여 있었다. 표지에 빨간 글씨가 있었다. 빛에 비춰야만 보이는 글씨. 데스노트. 르비엔 조명이 비추고 있어서 지금은 보였다. 방금 뒤집은 핸드의 7♥ 4♦와 같은 색이었다.
카드가 왔다. 다음 핸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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