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오라는 인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조용한 일이었다.
밤 열한 시부터 아침 일곱 시. 여덟 시간. 손님은 많지 않았다. 새벽 한두 시에 술 취한 사람 몇 명, 네다섯 시에 택시 기사, 여섯 시부터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사이 빈 시간에 노청은 카운터 아래에서 수첩을 펼쳤다.
코드를 직접 짤 수는 없었지만 아이디어를 적을 수는 있었다. '보스 3페이즈 패턴 간격 조정', '아이템 드랍률 재계산', '사망 메시지 폰트 변경 검토'. 손으로 쓰는 게 키보드보다 느렸지만, 느린 만큼 생각이 정리됐다.
노청에게 편의점은 나쁘지 않았다. 반복이었다. 바코드를 찍고,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물건을 정리했다. 반복이 싫은 사람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노청은 아니었다. 코드를 짜는 것도 반복이었다. 같은 함수를 수십 번 고치는 거였다. 한 줄을 바꾸면 열 줄이 깨졌다. 그걸 다시 고치면 또 다른 줄이 깨졌다. 컵라면 하나 먹고 다시 앉았다. 반복.
편의점도 그랬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했다. 손님이 오면 바코드를 찍었다. 가면 수첩을 펼쳤다. 그게 노청의 밤이었다. 3년 동안.
편의점은 천호동 먹자골목 끝자락에 있었다. 바로 맞은편에 오피스텔이 하나 있었는데, 3층에서 간헐적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새벽에도 켜져 있을 때가 많았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는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노청의 세계는 이 편의점과 반지하 4평 사이 500미터가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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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처음 온 건 목요일 새벽이었다.
자동문이 열렸다. 새벽 두 시. 키가 크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반팔에 팔목에는 시계를 차고 있었다. 겨울인데 반팔이었다. 편의점 형광등 아래서 팔뚝에 힘줄이 보였다. 운동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원래 마른 사람이 힘줄만 남은 느낌이었다.
카운터로 다가와서 말했다.
"말보로 레드 하나."
목소리가 가벼웠다. 새벽 두 시에 올 법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보통 무거웠다. 술에 절어 있거나, 피곤하거나, 짜증이 나 있거나. 이 사람은 달랐다. 낮에 카페에서 주문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노청이 뒤를 돌아 담배 선반에서 꺼내는 동안 남자가 카운터를 내려다봤다.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야 이거 뭐야."
노청이 담배를 내려놓으면서 대답했다. "아, 메모요. 게임 만드는 중이라."
"게임? 무슨 게임?"
"로그라이크요. 죽으면 다시 시작하는."
"혼자서?"
"네."
남자가 잠깐 멈췄다. 노청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미쳤다 진짜."
그게 첫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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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그 뒤로도 왔다.
담배를 사러. 이틀에 한 번은 왔다. 가끔은 매일. 항상 새벽이었다. 말보로 레드. 라이터 하나. 가끔 커피.
올 때마다 카운터를 내려다봤다. 노청이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으면 "오늘은 뭐야" 하고 물었다. 노청은 대답했다. "보스 패턴이요." "세이브 포인트 문제요." "UI 배치 고민 중이에요."
남자는 게임 개발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근데 듣는 걸 좋아했다. 이해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고개는 끄덕였다.
어느 날은 캔커피를 두 개 사서 하나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하나는 니 거." 노청이 돈을 내려고 하자 "야 1200원짜리에 돈은 무슨" 하고 나갔다. 편의점 알바한테 편의점 커피를 사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컵라면을 들고 왔다. "이거 뜨거운 물 어디야?" 편의점 한쪽 구석에 온수기가 있었다. 물을 부으면서 말했다. "야 너도 먹어. 컵라면이 밤에는 밥이지." 노청은 먹었다. 둘이서 카운터 앞에 서서 컵라면을 먹었다. 새벽 두 시에. 아무 말도 안 하고. 면을 후루룩 먹는 소리만 났다.
그게 싫지 않았다.
"그거 돈 돼?"
"아직은 안 돼요."
"언제 돼?"
"모르겠어요."
"ㅋㅋ 근데 재밌어?"
노청은 잠깐 생각했다. 재밌냐고 물은 사람이 처음이었다. 돈이 되냐, 언제 끝나냐, 왜 하냐는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판교 게임 회사 면접에서도 물어봤다. "이 게임으로 어떻게 수익을 내실 건가요?" 재밌냐고는 아무도 안 물어봤다.
"네. 재밌어요."
"그럼 됐지 뭐."
남자가 담배를 집어 들고 나갔다. 자동문이 닫혔다.
노청은 카운터 아래를 봤다.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아까 적다 만 줄이 있었다. 적었다.
그냥 적은 건데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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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안 건 일주일쯤 뒤였다.
그날은 쎄오가 평소보다 늦게 왔다. 새벽 네 시. 얼굴이 좀 피곤해 보였다. 근데 목소리는 여전히 가벼웠다.
"야 나 주태오야. 쎄오라고 불러."
"쎄오요?"
"응. 캐나다에서 부르던 이름이야. 태오를 빨리 발음하면 쎄오가 돼."
"캐나다에서 사셨어요?"
"초등학교까지. 그 다음에 한국 왔어."
그 정도였다. 왜 한국에 왔는지는 안 물었다. 물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노청은 그런 감각이 있었다. 상대가 말하고 싶은 만큼만 듣는 감각. 더 물으면 상대가 불편해진다는 걸 아는 감각. 대화를 많이 해서 아는 게 아니었다. 대화를 적게 했기 때문에 알았다.
노청도 자기 이름을 말했다. "노청이에요."
"청이?"
"노청이요."
"아 노청. 야 근데 나이가 어떻게 돼?"
"스물여섯이요."
"나 서른둘이야. 형이네."
"네."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해. 나도 야 하니까."
"네."
"야 진짜 하려고 하면 안 되지 ㅋㅋ. 근데 뭐 괜찮아."
쎄오가 담배를 꺼내면서 말했다.
"야 근데 이 수첩 진짜 매일 들고 다니는 거야?"
"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적어야 해서요. 나중에 까먹으니까."
쎄오가 카운터 위에 놓인 수첩을 들어올렸다. 앞뒤로 뒤집어보더니 표지를 톡톡 쳤다.
"이거 가죽이지? 좋은 건데."
"고등학교 때 산 거예요."
"오래됐네."
노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됐다. 속지만 네 번 갈았고 가죽은 그대로였다. 모서리가 닳아서 안쪽 갈색이 드러나 있었다. 이 수첩이 없으면 코드가 안 나왔다. 미신 같은 건데 3년 동안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핸드폰은 두 번 잃어버렸고 지갑은 한 번 잃어버렸는데 수첩은 없었다. 노청에게 수첩은 핸드폰보다 중요한 물건이었다.
쎄오가 수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카운터 뒤쪽을 둘러봤다.
"야 매직 있어? 빨간 거."
"왜요?"
"가만 있어봐."
카운터 구석에 재고 관리용 빨간 매직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쎄오가 그걸 집었다. 뚜껑을 열더니 노청의 수첩 표지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어....어!! 아! 잠깐만요 뭐 하는 거예요!"
"잠깐만."
다 쓰고 나서 수첩을 들어 보였다.
검정 가죽 위에 빨간 글씨.
데 스 노 트.
"ㅋㅋㅋ 이름 없는 수첩이 불쌍하잖아."
노청은 수첩을 받아 들었다. 빨간 매직이라 일반 조명에서는 잘 안 보였다. 빛에 비춰야만 글씨가 선명했다.
"아. 지우려면 어떻게 해요 이거."
"매직이라 안 지워져. ㅋㅋ"
"..."
"이제 데스노트야. 여기에 적히면 죽는 거야. 코드든 사람이든."
쎄오가 자기 말에 혼자 웃었다. 노청은 수첩을 들여다봤다.
남의 물건에 허락도 없이 낙서를 한 것이었다. 3년 동안 조심해서 썼던 수첩이었다. 가죽이 닳지 않게 가방에 넣을 때도 위치를 정해서 넣었다. 비가 오면 비닐에 넣었다. 속지를 갈 때도 가죽 커버를 억지로 벌리지 않았다. 조심하는 물건이었다.
거기에 빨간 매직으로 데스노트.
기분이 나쁠 법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나한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편의점 손님들은 바코드 찍으면 나갔다. 눈을 맞추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카운터 아래에 수첩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판교에서 6개월 일할 때도 그랬다. 팀 회식에서 맥주를 마시면서도 노청은 구석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노청도 걸지 않았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불편하지도 않았다.
근데 쎄오는 달랐다. 이 사람은 별 이유 없이 왔다. 담배를 사러 온 건 맞는데, 담배만 사는 게 아니었다. 수첩을 들여다보고, 뭘 적냐고 물어보고, 컵라면을 사주고, 수첩에 낙서를 했다. 별 이유 없이. 그냥.
쎄오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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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노청은 수첩을 데스노트라고 부르지 않았다. 근데 쎄오는 그렇게 불렀다.
"데스노트에 뭐 적었어 오늘?"
"보스 회피 타이밍이요."
"ㅋㅋ 보스가 죽겠네."
"죽으면 안 되는데요. 보스한테 지는 게 맞는 거라서."
"그게 무슨 게임이야."
"로그라이크요. 져도 괜찮은 게임."
쎄오가 커피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는 건지 그냥 끄덕이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음날에도 왔다.
"데스노트 안 가져왔어?"
"가져왔어요. 카운터 아래에."
"오늘은 뭐야?"
"사운드 디자인이요. 적이 죽을 때 나는 소리를 바꿀까 고민 중이에요."
"소리가 중요해?"
"중요해요. 소리가 안 맞으면 타격감이 안 나서요. 칼로 치는 건데 뚝 소리가 나면 이상하잖아요."
쎄오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포커도 그래. 칩 쌓는 소리가 들려야 기분이 좋아."
노청은 그 말을 기억해뒀다. 칩 쌓는 소리.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게 될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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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오피스텔 3층의 정체를 안 건 또 일주일쯤 뒤였다.
새벽 세 시. 오피스텔 3층에서 사람 네 명이 쏟아져 나왔다. 웃으면서. 소리가 편의점 유리를 뚫고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편의점으로 들어와서 맥주를 샀다. 캔맥주 네 개. 바코드를 찍는 동안 말했다.
"사십칠만원 날렸어 ㅋㅋㅋ."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웃었다. "야 그래도 재밌었잖아. 마지막 핸드 대박이었는데."
사십칠만원. 핸드. 그 단어들이 좀 이상했지만 노청은 그냥 바코드를 찍었다. 새벽에 오는 손님들의 대화를 일일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돈 날린 얘기를 웃으면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만 알았다.
다음날 쎄오가 담배를 사러 왔을 때 물었다.
"형 맞은편 3층에서 뭐 해요? 어제 사람들이 나오면서 사십칠만원 날렸다고 하던데."
쎄오가 피식 웃었다.
"포커."
"포커요?"
"응. 텍사스 홀덤. 알아?"
"이름만요."
"트럼프 카드로 하는 거야. 두 장 받고, 가운데 다섯 장 깔아서, 제일 좋은 조합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거."
노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은 알 것 같았다. 간단했다.
"간단하지? ㅋㅋ 근데 간단한데 미치는 거야. 한번 구경 올래?"
노청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ㅋㅋ 알았어."
쎄오가 담배를 들고 나갔다. 자동문이 닫히고 편의점이 다시 조용해졌다.
오피스텔 3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간헐적으로 사람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노청은 그쪽을 한 번 보고 다시 수첩을 펼쳤다.
관심은 없었다. 아직은.
수첩 표지의 빨간 글씨가 형광등 아래서 희미하게 보였다.
데스노트.
지워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매번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지우면 카운터가 좀 조용해질 것 같았다. "데스노트에 뭐 적었어 오늘?" 그 말이 안 들릴 것 같았다.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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