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 포커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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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리
그림/삽화
토마리
작품등록일 :
2026.03.30 16:50
최근연재일 :
2026.05.09 00:0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853
추천수 :
7
글자수 :
291,612

작성
26.03.3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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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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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하우스 첫 구경

DUMMY

쎄오에게서 카톡이 왔다.


'야 오늘 휴무지?'


'네.'


'심부름 좀 해줘. 편의점에서 얼음 2봉지 + 하이볼캔 4개 + 오징어 2봉 사서 올라와. 돈은 올라와서 줄게.'


'어디로요?'


'맞은편 3층.'


노청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깐 생각했다. 맞은편 3층. 쎄오가 포커를 한다는 곳이었다.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은 없었다.


'알겠어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얼음 두 봉지가 무거웠다. 알바가 아닌 날에 편의점 물건을 사는 게 이상했다. 카운터 안쪽에서 3년을 봤던 물건들을 바깥쪽에서 사는 거였다. 시점이 달랐다. 가격이 보이는 쪽에서 가격을 내는 쪽으로.


오피스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노청은 반지하를 생각했다. 반지하는 지면보다 반 층 아래였다. 오피스텔 3층은 지면보다 세 층 위였다. 반지하에서 3층까지. 3.5층 차이. 근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끼는 거리는 그보다 멀었다.


복도가 조용했다. 문이 세 개 있었다. 맨 끝 문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리도 났다. 웃음소리, 뭔가 부딪히는 소리, 말소리. 편의점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보이던 불빛이 이 문 뒤에서 나오는 거였다.


문 앞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카톡을 보냈다.


'문 앞이에요.'


3초 뒤에 문이 열렸다. 쎄오가 서 있었다.


"오 빨리 왔네."


비닐봉지를 건넸다. 쎄오가 받아 들고 안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 잠깐."


---


노청이 안으로 들어섰다.


첫 번째로 느낀 건 냄새였다. 담배 연기. 근데 역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뭔가 섞여 있었다. 나무 같은 냄새. 위스키였다. 나중에 알았다.


두 번째로 느낀 건 공간이었다. 원룸이라고 들었는데 원룸 같지 않았다. 벽을 터서 확장한 것 같았다. 바닥이 짙은 색 원목이었다. 간접 조명이 천장 가장자리를 따라 돌고 있었다. 한쪽 벽에 선반이 있었고 병들이 줄지어 있었다. 라벨이 영어였다. 발베니, 글렌피딕, 야마자키. 읽었지만 뭔지는 몰랐다.


검정 가죽 소파가 벽쪽에 있었다. 미니 냉장고. 바 테이블.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초록색 펠트가 깔린 타원형 테이블. 가장자리에 검정 쿠션이 둘려 있었다. 의자가 여덟 개. 그중 다섯 개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 중앙에 딜러 자리가 있었다. 지금은 비어 있었다. 쎄오가 딜러를 겸한다고 했었는데 심부름을 받으러 나온 거였다.


테이블 위에 칩이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검정색. 색깔별로 쌓여 있었다. 사람들이 그걸 만지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돌리는 사람도 있었고, 탁탁 소리를 내면서 쌓았다 무너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칩이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깔려 있었다. 리듬이 있었다. 탁. 탁탁. 탁. 사람마다 리듬이 달랐다.


한 남자가 칩을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세 개를 끼워서 딸깍딸깍. 무의식적으로 하는 거였다. 옆 사람은 칩 더미를 탑처럼 쌓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개씩. 열 개가 되면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무너뜨렸다. 그리고 다시 쌓았다.


노청은 소파에 앉았다. 쎄오가 얼음을 냉장고에 넣고 하이볼을 세팅하는 동안 테이블을 봤다.


---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었다. 많이.


"콜."


"레이즈."


"폴드."


짧은 단어들이 오갔다.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었다. 규칙을 몰랐지만, 뭔가 순서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하면 다음 사람이 말했다. 시계 방향. 칩을 앞으로 밀면 참여하는 거고, 카드를 덮으면 빠지는 거였다.


한 남자가 카드 두 장을 뒤집었다. 테이블 위에 이미 다섯 장이 깔려 있었다. 뒤집는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떨궜다. 다른 사람이 웃었다. 칩이 한쪽으로 밀려갔다.


이긴 거구나.


노청은 그 정도만 이해했다. 카드 조합이 뭔지, 왜 칩을 저만큼 미는지, 왜 저 타이밍에 포기하는지는 몰랐다. 근데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손이 보였다.


칩을 만지는 속도가 사람마다 달랐다. 자신 있는 사람은 느리게 만졌다. 여유가 있었다. 칩을 굴리면서 다른 사람을 봤다. 고민하는 사람은 빠르게 만졌다. 칩을 딸깍딸깍 돌리면서 카드를 봤다 보드를 봤다 다시 카드를 봤다. 한 명은 카드를 확인할 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바로 내렸다. 좋은 카드를 받은 거였다. 근데 본인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간 걸.


다른 사람도 있었다. 칩을 앞으로 밀 때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사람. 많은 돈을 거는 거였다. 떨림은 1초도 안 됐다. 밀고 나면 바로 멈췄다. 근데 미는 순간에는 떨렸다.


그걸 왜 보고 있는지는 몰랐다. 게임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보였다. 노청은 원래 그랬다. 편의점에서도 손님들의 손을 봤다. 바코드를 찍는 동안 카드를 내미는 손. 급한 사람은 카드를 던졌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눈을 안 맞췄다. 불안한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3년 동안 봤다.


포커 테이블의 손도 같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말보다 손이 먼저 보이는 사람이었다.


---


"야 편의점 애 아니야?"


고개를 돌렸다. 쭈니 제였다. 저번에 편의점에서 본 그 사람. 선글라스는 벗고 있었다. 쎄오가 "쭈니 형"이라고 불렀던.


"네. 안녕하세요."


쭈니 제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왔다. 손에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다. 하이볼이 아니라 스트레이트였다. 얼음 하나.


"심부름 온 거야?"


"네."


"포커 알아?"


"아뇨."


"배울 생각은?"


노청은 잠깐 생각했다. 배울 생각. 없었다. 게임이라면 혼자 만드는 게 있었다. 다른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다.


"아직은 없어요."


"아직은? ㅋ 그럼 언젠간 할 수도 있다는 거네."


"아,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쭈니 제가 웃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5만원짜리 한 장을 뽑았다. 노청 쪽으로 내밀었다.


"심부름 값."


"아뇨 괜찮아요. 쎄오 형이 돈 준다고."


"걔 거랑 내 거랑 달라. 받아."


노청은 잠깐 망설이다가 받았다. 5만원. 편의점 야간 알바 5시간 치였다.


"감사합니다."


"근데 진짜 게임 만들어? 혼자서?"


"네."


"대단하다. 나는 코딩 같은 거 하나도 모르거든."


쭈니 제가 소파 옆에 기대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테이블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 보여?"


노청이 테이블을 봤다. 네 명이 앉아 있었다. 쎄오가 빈자리에 앉으려 하고 있었다.


"다 다른 직업이야. 회사원, 자영업자, 대학생, 저기 안경 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지 나도 몰라. 근데 여기 앉으면 다 똑같아. 카드 두 장이랑 칩만 있으면 돼."


노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테이블을 보고 있었다. 쎄오가 앉더니 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색깔별로. 노청이 코드를 짤 때 변수를 정리하는 것과 비슷했다.


"재밌어요? 이거."


쭈니 제가 돌아봤다.


"재밌지. 돈 따면 더 재밌고, 잃으면 좀 덜 재밌고. ㅋ 근데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냐."


"그럼 왜 해요?"


"사람을 읽는 게 재밌거든."


사람을 읽는다. 노청은 그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카드를 읽는 건 알겠다. 숫자 조합이니까. 근데 사람을 읽는다는 건?


"카드가 아니라 사람을요?"


쭈니 제가 웃었다. 위스키 잔을 내려놓았다.


"카드는 52장이야. 조합이 정해져 있어. 수학으로 풀 수 있어. 근데 사람은 수학으로 안 풀리거든. 같은 카드를 들고 있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베팅해. 왜 다르게 하는지를 읽는 거야."


노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됐다. 게임 개발에서도 그랬다. 같은 보스를 만나도 플레이어마다 다르게 반응했다. 회피하는 사람, 정면으로 가는 사람, 패턴을 외우는 사람. 보스를 설계할 때 노청이 고려하는 게 그거였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그게 포커에서 중요한 거예요?"


"가장 중요해. 카드보다 중요해."


쭈니 제가 테이블 쪽을 다시 봤다. 쎄오가 딜러 자리에 앉아서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


"저기 봐. 쎄오가 카드 돌릴 때 손이 일정하지? 리듬이 있어. 좋은 딜러야. 플레이어한테 안정감을 줘."


노청은 쎄오의 손을 봤다. 맞았다. 카드를 한 장씩 돌릴 때 속도가 일정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기계처럼은 아니었다. 사람 리듬이었다.


"형은 저기 안 앉아요? 오늘."


"나는 잠깐 쉬는 중이야. 칩이 좀 빠져서 ㅋ. 멘탈 리셋하고 다시 앉을 거야."


멘탈 리셋. 노청은 그 단어를 들었다. 리셋. 자기 게임에도 있는 개념이었다.


---


15분 정도 앉아 있었다.


쎄오가 한 판을 하는 동안 노청은 소파에서 테이블을 봤다. 규칙은 여전히 몰랐다. 근데 사람들의 표정은 계속 보였다. 칩을 밀 때 자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카드를 확인하고 나서 표정이 바뀌는 사람과 안 바뀌는 사람. 포기할 때 아쉬운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전부 달랐다.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사람마다 전부 달랐다.


쎄오가 판 사이에 돌아와서 말했다.


"야 좀 더 있을래? 아니면 가?"


"저 갈게요. 코딩해야 해서."


"ㅋㅋ 알았어. 야 이거."


쎄오가 만원을 건넸다. 심부름 값.


"쭈니 형이 이미 줬는데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받아."


노청은 받지 않았다. "편의점 물건값이 이만이천원인데 그건 내일 줘도 돼요."


쎄오가 피식 웃었다. "야 진짜 꼼꼼하다."


---


오피스텔을 나왔다. 밖은 밤이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맞은편 편의점 불이 켜져 있었다. 야간 알바가 서 있는 게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오늘은 노청이 아니라 다른 알바였다. 카운터 안쪽에서 밖을 보는 거랑 밖에서 안을 보는 거랑 달랐다. 안에서 보면 세상이 유리 너머에 있었다. 밖에서 보면 편의점이 유리 안에 있었다.


반지하로 돌아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3층에서 반지하로. 아까 올라갔던 3.5층 차이를 다시 내려왔다. 문을 열었다. 어두웠다. 가로등 빛이 반만 들어오고 있었다.


모니터를 켰다. 코드를 열었다.


손이 키보드 위에 올라갔는데 잠깐 멈췄다.


칩 소리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탁탁. 탁. 사람들이 칩을 쌓았다 무너뜨리는 소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근데 리듬이 있었다. 게임에서 사운드 디자인을 할 때 노청이 찾는 게 그거였다. 리듬. 적이 죽을 때 나는 소리, 아이템을 먹을 때 나는 소리, 레벨업할 때 나는 소리. 전부 리듬이 있어야 했다.


칩 소리에도 리듬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른 리듬.


그리고 쭈니라는 사람이 한 말.


사람을 읽는 게 재밌거든.


노청은 수첩을 펼치지 않았다. 적을 건 없었다. 게임과 관계없는 내용이었으니까. 수첩에는 게임 메모만 적었다. 그게 규칙이었다. 3년 동안.


근데 머릿속에서 그 말이 안 지워졌다. 사람을 읽는다. 카드를 확인할 때 올라갔다 내려가는 입꼬리. 칩을 밀 때 떨리는 손가락. 자신 있는 사람의 느린 손과 불안한 사람의 빠른 손. 그건 읽는 거였다. 노청이 편의점에서 손님의 손을 보는 것과 같은 거였다.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

if (player.hp <= 0) {

displayMessage("RUN OVER");

```


관심은 없었다.


근데 칩 소리가 좀 오래 남아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간 남자의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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