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없는 이세계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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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푸
작품등록일 :
2016.10.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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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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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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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057. 페임론 (외출)

DUMMY

☆ ☆ ☆


이혁은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 눈을 뜨고 불현듯 일어날까 망설여지는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왼쪽 팔에서 피가 통하지 않는 현상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 침착하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보며 마음을 안정시켜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건. 온통 검은 물결 뿐이었다.


마족 하르파스가 자신의 옆자리를 선점하고는 얌전히 잠을 청하고 있다는 것.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실제로도 기억날 만한 사건은 없었기에. 덮고 있는 이불 속을 나와서 그냥 나가려다가, 추운 듯 고양이처럼 웅크린 모습의 마족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이유도 없이 이불을 덮어주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너무 간편한 복장으로 나온 것은 아닌가 란 생각을 날려버리듯. 이혁보다 더 간소한 복장으로 아침 수련에 여념이 없는 기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 어쩜 좋아!”

“~깍!”


기사들이 땀에 젖은 웃통을 벗어 버리고 기본검술동작을 연습하는 모습을. 자신들의 할 일도 잊어버린 채 구경하고 있는 어린 시녀들이 가려지지 않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펜클럽을 자처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좋을 때군.’


이혁은 마치 나이든 사람처럼 생각해 버리는 자신을 돌아보고는 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란 생각으로 웃음을 지었다.


“주군! 나오셨습니까!”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들 하던 동작을 멈추고 인사를 했다. 이혁은 간단한 답례를 하고는 주변에 놓여있는 연습용 검을 들어 그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하중에 처음에는 인상을 구기려고 하였지만 보는 눈이 많았기에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고 근력을 높이기엔 좋아 보였기에 몇 번 휘둘려보다가 알고 있는 동작을 취하였다.


이혁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일까?


검의 궤적에 빠져있던 정신이 다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강제로 주입된 지식이 자신의 것으로 탈바꿈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움직이고 싶어하는 몸과 검을 달래며 정면을 겨눈 채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자, 주변으로는 자부심 가득한 기사들의 표정이 이혁을 바라보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온 하니발이 땀수건을 건네었다.


“주군. 실력이 더 느신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도 감흥보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리자 기사들과 함께 있던 패큐니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혁과 눈이 마주치자 잠깐이지만 놀라는 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고 그녀를 돌아보던 하니발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한동안 무섭게 성장하더니 요즘은 벽을 만난 듯이 정체된 느낌입니다.”


이혁은 그녀가 기사들과 대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단순히 어린아이와 어른의 싸움. 패큐니아의 공격이 들어오면 한슨이 이것저것 지적을 하면서 이렇게 막으면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실력 차가 너무 벌어지다 보니 대련의 효과가 없습니다. 이론은 어느 정도 숙지가 되었지만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뛰어난 수준을 겪어봐야 뭔가 실마리를 풀 수···저렇게 차이가 나면 이미 의미가 없지요.”


이혁은 하니발의 푸념에 저런 인원이 자신 이외에 1명이 더 있어서 다행이란 동질감이 들었다. 물론, 그녀와의 비교가 아닌 기사들과 견주어서 느끼는 자괴감이 비슷하다는 의미였다.


어느덧 아침 훈련을 마무리하는 한슨의 구호로 모두들 연병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를 맞추어 백작영애가 패큐니아에게 다가와 수건과 마실 수 있는 음료를 건네며 늘어놓는 불평의 소리가 이혁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패큐니아언니 이거 드세요. 한슨경께선 맞춤 식 교육이란 건 모르시나 봐요.”


그러면서 마치, 시합중간의 휴식시간 코치나 매니저처럼 시녀가 가져온 작은 의자를 받아서는 거부하는 그녀를 그곳에 앉히고 손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혁은 하니발과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뒤늦게 자신을 확인한 아펠리아가 조숙하게 인사를 해왔다.


“마기코스 아펠리아가 아론님을 뵙습니다.”


아침부터 갑자기 저런 거북스러운 인사를 해왔기에 아는 척만 해주었더니. 함께 자리하던 하니발이 다소 무안한 백작영애를 대신하여 물음을 이어주었다.


“영애께서는 아침부터 어인 일이십니까?”


아펠리아는 그때서야 눈망울에 힘을 주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왕도에서 여왕님의 군대가 오면 환영파티가 있을 예정이라 여성분들은 참석하시려면 드레스가 필요 하실 거 같아서요. 그리고 백작님께서 아론님과 기사님들의 연미복은 어떻게 하실 건지 문의해 보라고도 하셨고요.”


“연회용도의 복장은 따로 있으니 백작께는 말만이라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시게. 그리고 드레스는···”


이혁들은 기존 게임에서도 입었던, 기사용 연회복장이 별도로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나타샤가 없으니 챙겨줄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고민하는 이혁의 표정을 돌아보던 아펠리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저에게 맡겨주시면 된답니다. 오늘 두 분을 잠시 빌려주시면 상점가에 솜씨 좋은 장인이 기다리고 있으니 반나절이면 드레스를 맞출 수 있을 거에요.”


이혁은 하루 일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더니,백작영애가 불안했던지 대답을 이어갔다.


“백작님은 한동안 부상자며 포로들 관련으로 바쁘시니.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저희와 같이 시내구경이라도 하시겠어요?”


마침, 소피아가 준비중인 상단도 궁금하던 참에, 뒤를 이은 하니발의 당부가 있었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맨탈리온님이 부탁했던 사항도 있으니 잘되었습니다.”


마법사가 도시에 들어오자 말자, 정보길드를 방문하였던지 밤늦게 돌아와서는 하니발에게 의뢰 결과를 확인해 달라고 하며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니. 편의를 봐줘야 하는 건 당연하였다.


“우리만 쉬는 것도 그러니. 다른 이들한테도 물어보도록 해봐.”


이혁은 하니발에게 지시를 하면서도 때때로 말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선택지가 곤란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같은또래였기에. 요즘 따라 무시하는 말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내일부터는 슈란님과 아침대련을 해보았으면 하는데 어떨까요?”


한슨과 휴식문제를 논의하던 하니발이 패큐니아의 요청에 잠시의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을 하였다.


“패큐니아 네가 배우고 있는 건. 포플란의 검술이란 걸 잊으면 안될 거야. 그만큼 자격 없이는 배울 수 없는 것이고···”


말을 하다 말고 주변을 돌아보던 하니발. 건물곳곳에서 경계를 쓰고 있는 망토로 얼굴을 가린 엘프들을 바라보고는 뭔가를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한슨보다야 대련에는 도움이 되겠군. 슈란양께도 물어보고 내일부터는 훈련에 함께하도록 해라.”

“예,그렇게 할게요.”

“하니발경. 그게 무슨 말입니까? 누가 들으면 제가 실력이 딸린다는 소리로 알겠습니다.”


유라는 어떠한 이질감도 느끼지 못하고 기분 좋게 대답을 하였지만. 이혁은 그때서야 저들, 회색엘프들이 이들에게 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지시하는 입장에서 몇몇이 가브한테만은 반말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개념은 뒤바뀐 존대란 거리감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회색엘프들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반말과 존대의 차이가 그런 의미였다니...’


지금까지 자신들을 지켜보던 백작영애는 긍정적인 답들이 나오자 벌써부터 외출준비에 바쁜 모습을 보였고 패큐니아를 끌고는 어디로 사라지려다가 뒤돌아 보며 외치는 것이다.


“아론님! 준비되는 대로 사람을 보내어 놓을게요.”


그러면서 시녀들에게 하르파스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이혁은 당연히 자신의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녀의 오해 섞인 눈빛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뒷머리에서 따가운 눈총이 사라지고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영애의 모습이 하니발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결국 기사들의 자유시간은 무의미해져 버렸다.


차라리 훈련 후 목욕과 함께 연병장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시녀들이 타 주는 차를 음미하는 것이 자유시간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곳에서 휴양림의 기분을 즐기겠다는 생각들을 말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동안, 산속에서 야영만 하다가 이런 곳에 오니 휴가를 나온 기분일 겁니다.”


하니발의 그런 말에 동조하여 다가온 한슨이 한마디 거들었다.


“훈련한다고 웃통을 벗기만 해도 주변에서 좋다고 소리를 지르니, 모두들 속으로는 좋아라 하겠지요.”


이유 없는 불만을 표하던 한슨을 위시한 하니발과 준비된 마차에 오르자. 전일, 늦은 저녁 시간대에 함께했었던 인원들이 그대로 모이게 되었고 그 모습을 둘러본 백작영애의 한마디가 빠질 수 없었던 것이다.


“어제의 모닥불 연맹이 다시 모였군요.”


마족 여인은 이혁의 옆자리 창가 쪽을 차지했고, 자연스럽게 하니발이 나머지 반대쪽에 앉았다. 그 외 이들이 백작영애를 사이에 두고 앉자, 출발을 알리는 마부의 음성이 들려왔다.


“필요하시면 차창을 두들겨 주십시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두 마리 말의 발굽소리와 바퀴의 마찰음은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고 그 주인공은 백작영애의 차지가 되었다. 저택을 나온 순간부터였을까? 마차를 지켜보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하니발이 가끔씩 창가 쪽을 주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단골 장인이 운영한다는 매장에 도착하였고 이혁은 한슨을 그곳에 남겨두고는 하니발과 함께, 사전에 알아둔 방향을 따라 정보길드로 향하였다.


※ ※ ※


“패큐니아 언니. 이거 한번 입어보세요. 요즘 수도에서 유행하는 옷감이에요.”


그러면서 유라의 앞섬에 가져다 대어보고는 한동안 감상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음···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서 또 점원이 들고 있는 다른 옷을 살펴보는 중이다. 그러길 몇 시간이 지나버렸을 정도.

하르파스는 이곳에 들어서기 전, 전시되어있던 검정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드레스를 보더니 마음에 든다며 치수를 재고는 손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정권이 없었던 유라로써는 이렇게 아펠리아의 손에 이끌려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는 대리만족을 당해야만 했다.


‘무슨 게임이 이런 심리까지 묘사를 하는 건지···’


더군다나 밤사이 오랜만에 로그아웃을 하고 또다시 게임에 접속한 유라였기에. 아무리 수면상태에서 접속하는 것이라지만 이런 정신적 노동에는 버텨낼 제간이 없었던 것이다.


“받아라.”


갑자기 날아드는 작은 병을 받아 들었다.

-체력과 정신력을 맑게 해주는 상급 포션.-


“저 수다쟁이에게 시달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주군 한테 할말도 없으니 주는 거다.”

“감사해요 하르파스님.”


말투는 그렇지만 가끔씩 이렇게 챙겨주는걸 보면서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유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셀카 중독증일지도 모르겠단 마음으로 그녀의 옆자리로 다가가 나란히 앉아있는 영상을 남겨두었다.


※ ※ ※


“주군. 괜찮을까요?”


“그것 때문에라도 이렇게 떨어진 것이니 조금 있으면 알겠지?”


이혁은 저택을 나올 때 마차를 따르던 무리가 누굴 노리는 것인지도 불분명 하였기에 인원을 나누어 알아보려고 했다. 물론, 하르파스가 있어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마족이었기에 한슨을 남겨두고 정보길드로 발길을 옮기는 중이었다.


노점상들과 각종 점포들이 나열되어 있는 상점가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대로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나치는 골목도 동일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넓은 대로를 수시로 지나가는 짐마차. 잡담하는 행인들. 그들의 흥정소리. 사소한 말다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거대한 시장의 광경을 만들었다.

마치, 전일의 전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근심거리하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이혁이었다.


“중앙 대륙에서 넘어온 따끈 따끈한 모피입니다!”

“상인양반. 그 동안 팔지도 않다가 재고 정리하는 거 알고 있으니 싸게 넘기게나. 상단행렬 들어와서 더 떨어지기 전에.”

“손님. 아직 확실하게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정보가 늦어서야 원··· 연맹에선 전일 저녁 무렵에 3할이나 할인해서 몽땅 처분했단 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저희 아마바 상단에서 오늘만 특별하게 할인가로 판매하는 대 귀족들만이 사용한다는 잔 세트입니다! 한번 보고가세요 싸게 드립니다!”


저마다 소리를 높여 물건을 팔아보려는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던 거리의 풍경이 변해버린 것은 그때였다. 대로를 막아서는 무리들. 사람들이 그들을 피하며 거리가 비워지는 것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네놈이 그 마스터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놈이렸다!”


2미터가 넘을 것 같은 장신의 키와 덩치를 가진 거구가 비아냥 거리면서 자신들을 향해 소리쳤고 하니발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혁을 바라보였다.


“주군. 저보고 하는 소리겠지요?”


그런 의문들도 그자의 동료들로 보이는 십 여명의 무리들이 주변을 둘러싸 버리며 해소되었고 뒤를 이어 구경꾼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신파극을 만들어내고 있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저자들이 그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이들이군!”

“그러게 말이야. 어떤 놈이 수천의 무리를 가르며 나가는걸 봤다고 얼토당토않게 이야길 하길래 윽박을 질렸더니. 글쎄, 자기도 들은 이야기라 잖아!”

“우리상인길드를 시기하는 빚쟁이 놈들에게, 그런 헛소문을 내고 다니니 좋아라 하고 난리가 아니라니까! 돈 없는 토박이 놈들 하는 짓이야 뻔한 거 아니겠어.”


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무리들은 마치, 홈 경기장에서 상대편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응원단을 방불케 하였다. 그런 풍경들을 눈 안에 담아두던 이혁은 3층 건물의 발코니에서 자신들을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중년의 남성이 유독 눈에 밟힌다고 느끼려는 차에 앞선 덩치의 목소리가 주변을 잠식하였다.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어디 할 것이 없어, 못 먹고 불쌍한 놈들을 선동해 여기를 시끄럽게 하냐고. 왜 말이 없어. 오줌이라도 지리고 있는 거냐?”

“하~하~하!”

그자의 말에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제 보니, 모여있는 모두가 상인길드의 사람들인가 봅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혁은 도시의 방침상, 무기를 휴대하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준 귀족으로 취급되는 기사에게 저런 모욕을 주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 정도는 들어 알고 있을 정도였다. 뭐, 따지고 보면 이혁 자신도 귀족을 사칭하고 있는 것이지만.


-눈앞에 이득에 어렴풋이 알고 있던 위험을 무시하는 본능. 싸움의 장면을 상인길드의 우두머리들도 분명히 지켜보았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것은 지나가버린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힘. 모여있는 이들 또한 소문으로만 들었던 장면을 믿기보다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이중 국적이란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해당왕국의 귀족모욕죄와 같은 관습법으로 수많은 군중들을 해하지는 못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해자들만의 상한선. 이정도 쯤이야 하는 마지노선을 만들어 마스터란 위신을 깎아내려는 수작. 하지만 그 정도란 것은 어떻게 보면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일 하니발의 신위를 보지 못한 자들이 지금의 사태를 만든 이유라고 여기는 이혁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검은 목검을 휴대한 경비병들. 아니, 재복을 장식하는 문양이 틀린 이들을 돌아보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페임론의 경비병은 도합 5백에 불과하였다. 백작의 사용인들 만으로도 천명이 넘어선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도 안 되는 수치였지만. 사설경호단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1만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은 이런 비정상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 모두가 상인길드의 수족과도 같았기에 페임론은 언제부터인가 데바트라의 영토가 아니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페임론의 총인구: 24만. 데바트라 국적 7만(29.1%) vs 이중 국적자 17만(사설경호단체 1만 2천 포함)-


이혁은 내일이면 중기병으로 이루어진 여왕의 군대가 도시로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상인길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서남부 상인연맹’의 위세가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마침, 백작과 약속한 것도 있으니 확실하게 얼굴 도장을 찍을 무대라는 생각으로 하니발을 돌아보았다.


“하니발. 죽지 않을 만큼만 해줘라.”

“주군의 뜻대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니발의 주변으로 이글거리며 뻗어 나오는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저런 것도 가능했었나?’


이혁의 의문도 잠시. 그 무형의 줄기들이 사방을 옥죄어 버리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해지더니 몇몇의 입과 코에서 가느다란 선혈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음조차도 지르지 못하는 이혁들을 둘러싸고 있던 몇 백의 구경꾼들. 서있는 자세에서 핏물을 흘리고 괴로워 하더니 붉어진 두 눈을 뒤집어 버린다.


“하니발!”


이혁은 이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란 생각에 그를 말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서야 하니발이 기운을 거두어 들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있던 수백의 무리들이 바닥으로 쓰러져 작은 떨림과 괴로운 신음을 삼키고 실신해 버린 것이다.

특히 장신의 덩치의 경우는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똥 오줌을 지린 것인지 바지가 흥건하게 젖어 들었고 건물 발코니의 사람들도 진작부터 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진 상태였다.


“오늘 처음으로 해 보는 것이라···다행이 죽은 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오물들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대로를 놀랍다는 듯이 돌아보던 하니발의 말을 들은 이혁은 가슴을 쓸어 내릴 뿐. 서로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포즈를 취하며 사람들이 누워있는 곳을 벗어나려고 빈 곳을 확인하며 발길을 옮겼다.


그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거리의 시민들. 눈빛 하나 만으로 몇 백이 넘는 이들이 피를 토하고 혼절시켜 버렸다는 마스터의 신위가 도시를 강타하였다. 그리고 이혁들이 정보길드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 사건은 길드장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 ※ ※


“대로에 모여있던 5백의 인원을 눈빛 하나로 피를 토하고 기절시켜버렸다?”

“길드 장! 그렇다니까요. 대부분 서남부 상인연맹 놈들이지만 근방에서 확인하던 저희 직원들 몇몇도 실려갔다니까요.”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뭐, 정보를 취합하는 건 저 같은 말단이 하는 건 아니니. 다른 라인하고 비교해 보면 될 것 아니오. 조만간 동내 꼬맹이들도 모두 알게 될 소식이니 정보랄 것도 없지만···”


‘그리고 그 마스터가 모시는 주군이 비밀리에 활동하는 대공전하일 가능성이 있다 이거지?’


자신의 갈색수염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 길드 장. 뒤이어 문을 열어젖히는 갑작스러운 굉음에 의도치 않게 몇 가닥의 수염을 뽑아내었다. 그렇게 신경질적인 시선을 들어 뛰어들어온 녀석을 노려본다


“그 분들이 왔습니다!”

“··· ···?”


작가의말

전쟁이 있었다는 풍경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도시의 규모가 크다고 할수도 있답니다. 따지고 보면 인구가 적다는 것이 맞겠지요(아직 본문에는 들어가지 않은 내용이지만 통상적으로 거주민 이외의 인구가 반수이상이 넘는다는 것... 외부의 상인과 관광객들)


다음 회차는 정보길드의 짧은 앞부분과 그동안 등장이 없던 상인 소피아. 정보길드에서 받았던 특정인물에 대한 묘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의 생활상이 잠깐 등장하면서 마무리 되지 않을까 예상하며 새벽이라도 그 소식을 올릴수 있으면... 올리겠지만 사람일이란게 알수가 없기에.


♣참조 사항.

-페임론 경비병: 500명.(의회 법률로 지정된 인원수)

-페임론의 총인구: 24만. 데바트라 국적 7만(29.1%) vs 이중 국적자 17만(사설경호단체 1만 2천 포함)


도착할 예정인 여왕군:

1차(지원병 개념) 2천의 중기병. 

2차 보병이 대다수인 5천의 중장병.  


♣용어 참조(중장병).

중장병(무기 사용이 능하고 완전무장. 훈련된 전문군인을 의미. 때때로 귀족이나 기사로 구성되기도 함. 봉급이 지급되는 형식)

유형: 중기병, 중보병/ 때때로 용병도 지칭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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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3. 소모라의 마도린 20.11.13 123 0 12쪽
123 122.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12 122 0 12쪽
122 121.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11 10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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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19.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09 10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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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2. 소모라의 전투 20.11.02 106 0 12쪽
112 111. 소모라 20.11.01 177 0 11쪽
111 110. 소모라 20.10.31 163 0 11쪽
110 109. 소모라 20.10.30 127 0 13쪽
109 108. 소모라 20.10.29 131 1 11쪽
108 107. 소모라 20.10.28 122 1 11쪽
107 106. 소모라 20.10.27 178 1 11쪽
106 105. 소모라 20.10.26 110 2 11쪽
105 104. 소모라 20.10.25 116 2 11쪽
104 103. 갈림길 20.10.24 128 1 12쪽
103 102. 데빌던전. 20.10.23 116 3 13쪽
102 101. 데빌던전. 20.10.22 129 3 12쪽
101 100. 데빌던전. 20.10.21 126 4 15쪽
100 099. 출발 +1 20.10.20 135 6 12쪽
99 098. 단서 +1 20.10.19 150 4 14쪽
98 097. 원정D-3 20.10.18 142 3 12쪽
97 096. 마녀의 아이. (또다른 세상) 20.10.17 120 2 13쪽
96 095. 마녀의 아이. (사고들) 20.10.16 162 0 12쪽
95 094. 마녀의 아이. (재앙의 시작) +2 20.10.15 179 3 13쪽
94 093. 마녀의 아이. 20.10.14 137 2 12쪽
93 092. 각자의 시선 (하). 20.10.13 201 4 13쪽
92 091. 각자의 시선. 20.10.12 153 3 13쪽
91 090. 각자의 시선. 20.10.11 159 3 12쪽
90 089. 모험가들의 행진 20.10.10 139 3 13쪽
89 088. 모험가들의 행진 20.10.09 176 2 11쪽
88 087. 모험가들의 행진 19.02.07 346 2 13쪽
87 086. 원정의 준비. 19.01.31 318 2 12쪽
86 085. 폭동. 18.01.11 641 3 12쪽
85 등장인물 소개(휴제이후 워밍업타임) +1 17.12.10 769 1 11쪽
84 084. 폭동 +1 17.07.08 1,151 5 16쪽
83 083. 폭동 17.07.01 703 7 11쪽
82 082. 이사하던 날(하) 17.06.24 755 9 18쪽
81 081. 이사하던 날(상) 17.06.17 931 8 14쪽
80 080. 실타래. +1 17.06.10 813 9 19쪽
79 079. 실타래. 17.06.03 814 10 14쪽
78 078. 13명의 이방인 +1 17.05.27 977 10 17쪽
77 077. 13명의 이방인 +1 17.05.20 908 8 13쪽
76 076. 페임론의 동쪽도시 17.05.13 938 8 20쪽
75 075. 페임론의 동쪽도시 17.05.06 955 10 12쪽
74 074.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7.05.05 883 10 13쪽
73 073.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 17.04.29 992 5 20쪽
72 072.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7.04.28 1,056 8 13쪽
71 071.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7.04.22 1,169 13 24쪽
70 070. 고민들 (꿈) +2 17.04.21 1,206 13 14쪽
69 069. 고민들 (너를 지켜주마) 17.04.15 1,343 16 17쪽
68 068. 고민들 (소울스톤) +2 17.04.14 1,267 15 19쪽
67 067. 모험가 (계약들) +3 17.04.08 1,440 16 17쪽
66 066. 모험가 (비밀과 공유) 17.04.07 1,154 13 17쪽
65 065. 모험가 (투기. 대화) 17.04.01 1,116 13 15쪽
64 064. 모험가 (드라마) 17.03.31 1,272 14 19쪽
63 063. 백작의 환영무도회 (하. 모험가) 17.03.25 1,159 12 15쪽
62 062. 백작의 환영무도회 (중. 발표) 17.03.24 1,242 14 15쪽
61 061. 백작의 환영무도회 (상) +2 17.03.18 1,280 14 18쪽
60 060. 페임론 (나타샤) +2 17.03.17 1,355 11 18쪽
59 059. 페임론 (여왕의 군대) 17.03.11 1,318 12 16쪽
58 058. 페임론 (정보길드의 자료) 17.03.10 1,297 12 23쪽
» 057. 페임론 (외출) 17.03.04 1,292 13 20쪽
56 056. 백작의 저택 17.03.03 1,263 16 13쪽
55 055. 백작의 저택 +2 17.02.25 1,279 13 18쪽
54 054. 백작의 저택 +2 17.02.24 1,376 15 16쪽
53 053. 치료막사 (세실리아) 17.02.18 1,388 11 19쪽
52 052. 페임론 공방전 17.02.17 1,289 15 16쪽
51 051. 페임론 공방전 (소드 마스터) 17.02.10 1,472 17 15쪽
50 050. 페임론 공방전 (팔콘 관문) 17.02.04 1,441 15 16쪽
49 049. 페임론 공방전 17.02.03 1,500 12 23쪽
48 048. 페임론 공방전 17.01.28 1,392 17 13쪽
47 047. 갈림길 (대공의 존재) 17.01.27 1,477 17 13쪽
46 046. 갈림길_<일부 지도공유> +4 17.01.21 1,456 16 17쪽
45 045. 갈림길 17.01.20 1,513 19 14쪽
44 044. 고요의 평원 (퀘스트) +6 17.01.14 1,748 19 21쪽
43 043. 고요의 평원 +3 17.01.13 1,711 17 22쪽
42 042. 영웅 출현 (시녀 되다) +5 17.01.07 1,705 19 17쪽
41 041. 영웅 출현 +2 17.01.06 1,674 20 13쪽
40 040. 영웅 출현 +2 16.12.31 1,532 19 19쪽
39 039. 모험의 시작 +1 16.12.30 1,634 15 18쪽
38 038. 모험의 시작 +1 16.12.24 2,002 16 18쪽
37 037. 영지물 (그녀들)_12/8 +3 16.12.23 1,928 24 27쪽
36 036. 영지물 (모험가들) +2 16.12.17 2,143 28 16쪽
35 035. 신경전 +3 16.12.16 1,885 24 15쪽
34 034. 돌격하라! (등장) 16.12.10 1,764 23 12쪽
33 033. 돌격하라! 16.12.09 1,855 21 24쪽
32 032. 의도된 고립 (수확) +2 16.12.04 2,031 28 21쪽
31 031. 의도된 고립 (오해) +2 16.12.03 2,082 20 19쪽
30 030. 의도된 고립 +2 16.11.27 2,021 22 20쪽
29 029. 하르파스 +2 16.11.26 2,062 2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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