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데빌던전.
“우리들이 고대하던 데빌 던전의 초입이다!”
뒤따르던 이들을 향해 바록 자작의 연설이 이어지길 잠시, 드디어 암흑이 도사리는 크레이터 속으로 발걸음을 때어놓는다.
선발대를 자처하던 중무장한 여왕의 기마병들이 그 회오리 치는 길목에 다다르자, 끝 없는 어둠 속에서 밀려나오는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말들이 발굽을 내딛기를 망설이며 거친 두레질을 시작한다.
“워~워!”
알 수 없는 두려움에는 고삐를 틀어쥔 병사들의 다그침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
급기야 안장을 내려서며 곤두선 말갈기를 쓸어 내리고서야 진정되는 기미가 보였던 것이라, 하는 수 없이 눈가리개를 사용하는 방법을 취하고서야 불안스런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급격한 경사였기에 넘어지기라도 하는 순간엔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겠지만 낮은 지반에 형성된, 물만 들어차 있었다면 거대 호수와도 같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실제 그곳을 내려가는 이혁의 입장에선 경사자체가 완만하다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마차 두 대가 나란히 하고 달려도 양쪽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가능할 정도의 넓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공포감을 날려버린 이혁도 용기를 내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요량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난간 쪽으로 백색의 말, 산토스의 고삐를 당겨 몰았다.
병사들이 들어올린 등불들에 의해 밝혀지는 길목을 제외하곤 칠흑 같은 어둠만으로 잠식되어 있는 검은 물웅덩이가 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산토스의 말 발굽에 체여 난간들 사이로 난 틈 사이로 떨어진 돌 조각 하나가,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내려가던 선두대열 속으로 떨어진다.
병사들은 자신의 투구로 떨어지는 소음에 의문스런 시선을 들어올려봄 직 하였지만 여기저기에서 수천의 발 구름을 이지기 못하고 깨어난 과거의 유산들이 작은 폭포수와 같이 그 묵은 때를 토해내고 있는 상태였기에 이혁의 소심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그마한 투구의 충격음은 사소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빛까지 집어삼키는 어둠이군요.”
자신을 따라오던 맨탈리온의 지적에 눈길을 들어올린 아론은 내리쬐는 태양광을 상상하며 손등으로 눈꺼풀을 가리려 하였지만 그 움직임을 이어갈 이유가 사라졌단 걸 피부로 느껴야만 했다. 희뿌연 장막이 자연적인 현상들을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깊이에 따라 마법자체도 제약을 받는다고 하니, 주군의 마법사도 떨어져볼 용기를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군요.”
맨탈이온의 푸념, 또는 호기심에 아론을 호위하던 기사 발거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주군. 뒤따르는 모험가들을 보시지요. 몇몇은 저 속으로 뛰어들 기세 같습니다.”
뒤돌아선 이혁이 보기에도 던전의 초입인 크레이터의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모험가들, 유저들의 기세는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겁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듯 난간으로 달라붙어 경치를 내려다 보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길의 막바지, 깎아지는 절벽 부에선 사고를 대비해서도 통제가 필요할 것 같아 보인다.
※ ※ ※
“시청자 여러분 지금 이런 장엄한 광경이 그래픽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끝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모험심 가득한 유저들이 저 속으로 뛰어 들어 영상을 전한다면···”
행렬들 사이에서 소란스러움이 일어나고서야 끊어진 방송이 제게 되었다.
“잠시 전, GM의 경고성 발표가 있었습니다. 영상을 찍거나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다이빙하는 유저가 있을 경우 해당 ID를 영구적으로 삭제한다는 방침을 알려 왔습니다.”
“아마도 무리한 개방이다 보니 마무리작업이 미비했겠지요”
전문가의 말을 받은 소미연 앵커의 발언이었다.
※ ※ ※
초입에 들어선지 3,4 시간이 흐른 시점이 되어서 선두 열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입구가 보입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상부에서도 그 입구의 흔적이 보여야 정상이지만 어둠이 잠식한 크레이터의 내부였기에 등불을 밝히고서도 몇 미터 앞에서야 거대한 동굴의 출입구가 보였던 것이다.
“대열을 정지하라!”
앞에서부터 전달된 타푼 남작의 명령이 구호가 되어 이혁이 있던 위치까지 전달되는 것은 찰나였다.
지금까지 내려온 경사로와 동일한 넓이의 폭과 그만큼의 높이를 자랑하는 임의적으로 깎아놓은 동굴이었다. 몇몇의 기마대가 선발대로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 버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에서 들려오는 등불의 수신호에 따라 정체된 본대가 이동을 시작한다.
이혁들도 그 진한 습기로 들어찬 통로로 접어들며 긴 장대에 연결된 등들을 천장을 향해 들어올리자, 수십 개의 램프들이 저마다의 색감들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임의적으로 넓혀진 곳은 입구부분에 불과하단 걸, 고드름처럼 매달인 종유석들의 자태를 감상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 동굴의 형상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행진하는 바닥은 마차들이 다니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돌 조각들이 촘촘하게 박혀져 있었기에, 물론 여기저기 움푹 파여진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였지만 자연과 인공미의 조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물방울들이 램프의 불빛에 투과되어 고유의 색감들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간간히 흥분된 이야기 소리가 동굴내부를 가득 채우는 메아리의 울림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통로를 벗어나기 전까지 잡담을 자재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때문인지 웅덩이로 인해 덜컹거리는 마차의 소음들과 말들의 두레질, 수많은 발굽소리로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어 내던 동굴도 기다리던 빛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그렇게 좁은 통로에서 벗어날 차례가 다가오자, 넓게 확장된 시야로 인해 이혁은 그 동안 막혀있던 가슴이 트여지는 효과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사전에 자작의 설명이 있었지만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는 비가 오기 전, 흐린 풍경 속의 밝음 이란 단어의 뜻이 이해되는 순간이라 여기며 느껴지는 빛을 따라 천장을 올려다 본다.
수정들의 집합체, 밤하늘의 은하수를 감상한다는 착각 아닌 현실 속에서 이것들이 별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란 걸 토로하며 이혁은 뒤따르는 대열이 정체되지 않도록 말을 몰아 그 자리를 벗어난다.
이곳으로 들어서기 위해, 지상에서 경사로를 따라 얼마를 내려왔는지의 측정 가능한 감각은 이혁에겐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 들어선 동공의 규모는 그 전체 넓이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멀리 산맥처럼 보이는 희미한 형태가 동공의 끝부분인 암벽이란 사실을 유추할 정도였으니 당장에 전체 크기를 추정하긴 어려웠다..
주변 대지로는 지상의 것과 동일한 식물들의 군락이 형성되어있었고 마치, 접시를 얹어놓은 것 같은, 드높이 치솟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밀림지대 사이로 인위적인 가도가 만들어져 있고 그 중심부, 나뭇잎으로 가려져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한 붉은 색감이 비치는 성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성곽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나무들 사이로 숨겨진 성벽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그리고 저곳이 원정의 목표인 붉은 탑이라면 지금까지의 행보가 너무도 쉬운 것이 아닐까? 애초부터 타푼 남작에게 사유를 전해 들었던 이혁은 그렇게 생각할 유저들의 반응이 궁금할 정도였다.
몇 년 전, 여왕의 명을 받아 던전을 수색한 대원들이 가져온 희소식.
-던전 내부에 득실거려야 할 몬스터들이 사라졌다.-
물론, 안전상의 이유로 붉은 탑 주변으로만 국한된 확인작업이었지만 놀라운 사실일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근접한 상업도시의 위치로 인하여 지금의 정보는 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갈 재앙의 덩어리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았기에 여왕은 비밀리에 붉은 탑으로 병사들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외부로 소식을 전달받는 담당 또한 페임론의 백작만으로 국한시켰기에 실제 붉은 탑에 상주하던 병사들은 근 1년이 넘어가는 동안, 연락병을 제외하고서 그 누구도 던전 외부로 단 한 발자국도 나지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얼마 전부터 연락이 끊어 졌다는 타푼 남작의 푸념을 들었지만···
“이곳에서 숙영을 실시 한다! 뒤따르는 병력들에게 전달하라!”
타푼 남작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서 선두에 있던 하니발과 함께 이혁이 있는 후미로 말을 몰아 다가온다.
“아론님. 숲이 너무 우거졌으니 지금의 평야지대에 진영을 꾸리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탑으로 가보시겠습니까?”
이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남작의 저자세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이혁은 딴청을 피우고 있는 마법사를 돌아보길 잠시, 수긍하는 뜻으로 입을 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요. 그보다 모험가들을 일부 동행시켜도 되겠습니까?”
“문제될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때까지 터널을 빠져 나온 인원이 과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야지대에 울타리와 텐트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얼마 후, 여왕의 기병을 중심으로 백여기의 기마들이 붉은 탑을 향해, 숲이 우거진 가도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 속에는 GM의 관계자인 엘리스를 포함한 몇 명의 모험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열의 후미를 따르던 엘리스는 그나마 유일한 이야기 상대인 유라를 향해 남몰래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라도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패큐니아. 부끄러운 예기지만 지금까지 몬스터의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게임 관계자가 그런 걸, 유저일 뿐인 자신에게 귀속말로 물어오는 상황자체가 황당할 수 밖에 있었지만 게임의 특성상 그럴 수도 있겠단 심정으로 최대한 알아야 될 사항을 나열하였다.
“오늘 밤중이라도 퀘스트 내역이 변경될 것 같아요.”
“사실은 붉은 탑이 오래 전에 수복되었으니 지금의 병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는 내역 말이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
엘리스의 즉답에 유라는 역시나, GM에서 관여한 스토리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밝혔고 손사래를 흔들며 그것을 부정하는 엘리스의 답변이 이어진다.
“오해는 말아줄래. 지금 상황이라면 누구나 추정하는 사실이란 말이야. 붉은 탑이 존재하는 앞마당에 떡 하니 본진을 설치하고 있으니, 게임 매니아들이라면 지금 현상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할거야. 아무튼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인센티브는 별개로 하더라도 내가 한턱 쏘도록 할게.”
“아무튼 임무가 두 가지로 나뉘어 질것 같지만 자세한 건 저도 모르니, 그렇게 쳐다봐도 알려줄게 없다고요.”
“알았어. 이해한다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말해줄 수 없는 극비란 말이잖아.”
“··· ···”
※ ※ ※
“주군. 오크 하나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무리입니다. 모험가라 불리는 저들이 이번 원정에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식량만 축내는 식충이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 말입니다.”
하킴은 후미에 떨어져 자신들의 말 꽁지를 따라오는 엘리스들을 지칭하여 불만을 나열하였다.
“더군다나··· 저들이 저희 세계의 이방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말은 평소의 하킴치고는 너무도 작았기에 이혁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론의 당부가 그의 말을 끊고 하킴에게로 향한다.
“꼭 현재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야. 저들은 싸우면서 성장하는 존재들이니 자신들이 죽을지언정 짐짝들은 되지 않는다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지 않겠나.”
“주군의 뜻대로.”
더 이상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단 표정의 아론을 뒤로하고 하킴은 가도의 외곽을 경계라도 하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주군 역시도··· 이방인일 뿐인 것인가?’
습기가 머물고 있던 주변공기를 들이마신 하킴은 더욱 답답해짐을 느껴야만 했다.
- 작가의말
바쁘단 핑게로 오타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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