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왜 이따구로 살았어요?
“초면에 미안한데 거친 질문 하나 할게요.”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앉은 사내는 손을 들어 반질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위압을 주려는 몸짓처럼 보였지만 손끝은 어딘가 어색했다. 찌푸린 눈과 달리 제스처에는 쑥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센 척하려다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느낌이었다.
사내는 자신을 이 회사의 대표라고 소개했다. 회사라고 해봐야 방 한 칸짜리 좁은 오피스였지만.
“네, 말씀하세요.”
현진은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세우고 그를 마주 보았다. 눈빛은 덤덤했다. ‘거친 질문’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잠깐이었다. 표현이 과격하다는 뜻일까, 직설적이라는 뜻일까. 긴장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사내는 현진의 이력이 담긴 서류 뭉치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왜, 이따구로 살았어요?”
순간 공기가 멎는 느낌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이따구로’라는 단어가 귀 안에서 맴돌았다. 면접 자리에서 과연 들을 말인가 싶었다.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들쭉날쭉한 이력서, 어디 하나 오래 붙잡지 못한 경력. 그런 것들일까.
“...‘이따구로’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현진은 겨우 침착함을 되찾고 되물었다.
“이력 보니까 뭐 하나 제대로 붙잡은 게 없네요. 그래서 묻는 겁니다.”
이번에는 막히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십수 개의 아르바이트. 서너 곳의 직장. 지인과 시작한 사업은 2년도 안 돼 접었다. 기자로서도 세 개의 매체를 거쳤다. 1년을 넘긴 곳은 한 곳뿐이었다. 오너의 시선으로 보면 꺼림칙한 이력일 게 분명했다. 현진 자신에게는 생존의 방식이었지만.
그는 크지 않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오랫동안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고, 그래서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끝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선 경험이 필요하다고 봤거든요. 하고 싶지 않은 일들로 하루를 보내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금방 던지고 나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돌아가는 판은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걸 찾기까지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현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사업을 정리한 뒤에는 금융권으로 진출하려고 CFA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늦은 나이였던 만큼 업계에서 최고라고 인정하는 자격증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프론트를 목표로 수십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끝내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방황이라면 방황일 겁니다. 하지만 그 끝에서 결국 기자라는 천직을 찾았습니다.”
현진은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말마디마다 확신이 실려 있었다.
짧은 침묵 후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조는 방금 전보다 누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기자로 방향을 튼 뒤에도 이미 세 곳을 그만뒀네요. 그건 왜죠?”
이번에도 답은 쉽게 나왔다.
“모두 제가 기대했던 언론사가 아니었습니다. 사양 산업이 된 인터뷰를 모아 월간 잡지로 강매하는 곳도 있었고 취재 없이 타사 기사를 받아쓰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팀장으로서 협찬과 숫자로만 평가받는 자리에도 있었고요. 전 취재원을 만들고 직접 취재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에디터나 영업 역할을 하려고 이 업계에 온 게 아닙니다.”
사내는 현진을 묵직한 시선으로 말없이 응시했다. 한참을 지켜보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자 사내의 몸집을 견디던 의자가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그럼 우리 매체는 뭐가 다르다고 봤어요? 여기도 마음에 안 들면 금방 떠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순간 현진은 ‘뉴스포트’ 채용공고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우리는 오로지 취재만 합니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그는 홀린 듯 언론사 홈페이지를 뒤졌다. 메인 화면부터 몇 개월 전 기사 목록까지 쉬지 않고 훑어 내렸다. 인터뷰를 가장한 홍보물도, 적당히 베껴 쓴 기사도 보이지 않았다. 흔한 배너 광고 하나 없이 지면은 취재의 결과물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말과 글이 어긋나지 않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실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편집도 영업도 지긋지긋했다. 현진은 정말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다르다고 봤습니다. 취재에만 전념한다고 했고, 취재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으니까요. 그 말이 실제 기사로 이어지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전 정말 취재기자가 되고 싶거든요.”
말하는 내내 현진은 사내의 눈을 똑바로 마주봤다. 오히려 속으로 되물었다. 당신이야말로 내게 정말 취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럴 능력은 되는 사람인가.
사내의 입가에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걸렸다. 현진은 그 미묘한 표정에서 단단한 자신감을 읽었다.
“좋아요. 마지막으로 묻죠. 왜 기자가 되고 싶어요?”
질문을 받는 순간 맥이 풀렸다. 마지막 질문이라곤 했지만 한 시간이 넘는 면접 내내 여러 번 반복된 질문이었다. 왜 자꾸 같은 것을 묻는 걸까. 단순한 테스트일까, 아니면 앞선 대답들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걸까.
현진은 숨을 골랐다. 이제 와서 답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듯 자신을 꾸며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전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을 배우고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 일을 거쳐 왔고 지금도 그 관심은 그대로입니다. 기자 일을 하면서 모르는 분야가 있다면 공부했고, 주저 없이 질문했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묻는 질문에는 정부든 회사든 대부분 답을 해주더군요. 기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돈을 받으면서 세상을 배우는 일, 그게 제가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입니다.”
말이 끝나자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현진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시선이 그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현진은 피하지 않고 그 시선을 받아냈다.
침묵이 길어지며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조여올 즈음, 사내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는 크지 않았으나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체구가 위압감을 풍겼다. 테이블을 돌아 현진의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가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얼굴에 번진 미소는 조금 전보다 짙어져 있었다.
“같이 일합시다.”
현진은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 곧 그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걸렸다. 현진은 사내의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네, 좋습니다.”
“전 직장을 방금 그만뒀다고 하니 그래도 휴가는 다녀와야겠죠. 2주 뒤부터 출근하는 걸로 합시다.”
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김태강입니다. 작은 매체인데 지원해줘서 고마워요. 곧 봅시다.”
“네, 2주 뒤에 뵙겠습니다. 대표님.”
“앞으로는 대표 말고 선배라고 불러요. 이전 매체들에선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 업계 관행이에요.”
“네... 선배님.”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대표를 선배라 부르는 일이 영 낯설었다.
“님도 빼요. 그냥 선배.”
그 두 글자가 묘하게 뇌리에 박혀 들었다. 비로소 진짜 기자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한 시간 반에 걸친 면접이 그렇게 끝났다. 공교롭게도 2주 뒤는 그의 생일이었다. 그 우연이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져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현진은 지방에 있는 연인에게 내려갈 채비를 했다. 이 반가운 소식을 그녀에게 직접 전하고 싶었다. 문득 그녀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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