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000만 원짜리 확신
품에 안긴 도나의 체온은 따스했다. 그녀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가슴께를 간질이는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어져 내렸다. 현진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 시선을 돌려 그물코처럼 촘촘한 천장의 격자무늬를 멍하니 쫓았다.
한동안 말없이 안겨 있던 도나가 고개를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현진을 향한 눈매가 맑게 빛났다. 애정이 듬뿍 담긴 꾸밈없는 시선이었다. 도나는 그의 턱 끝에 짧게 입을 맞춘 뒤 가만히 눈을 맞췄다.
“자기가 정말 걱정하는 게 돈이라면.”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난 돈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했으면 좋겠어. 지금이 그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거든. 아직 결혼 전이고 책임질 것도 없잖아.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즐겁게 일하며 실력을 쌓을 기회는 흔치 않아.”
현진은 눈을 감았다. 너무 정확해서 대꾸할 말이 없었다. 오전 면접장을 나온 뒤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다시금 어지럽게 밀려왔다.
태강과의 면접은 만족스러웠다. 서로 웃었고 악수도 나눴다. 하지만 도나를 만나러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들떴던 마음은 서서히 식어갔다. 면접장에서 들었던 태강의 말들이 하나둘 되살아나 무거운 짐처럼 가슴을 짓누른 탓이었다.
“이전 매체 세 곳에서의 경력, 전부 물경력으로 봐야 해요.”
그 말을 하며 태강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은행, 증권, 카드, 보험. 다룬 건 많은데... 그간 쓴 기사들을 보니 선배한테 따로 배운 적은 없죠?”
정체를 들킨 사람처럼 현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혼자 익혔습니다. 다녔던 매체들이 워낙 영세해서요.”
“기사 보면 그게 다 보여요. 그리고 이미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겁니다. 여러 출입처를 동시에 맡았다는 건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파지 못했다는 뜻이란 걸.”
덤덤한 말투였으나 그 안에 담긴 선고가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여러 매체를 전전하며 악착같이 버텨온 3년의 세월이 그 한마디에 속절없이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금융 자격증을 취득하고 팀장 직함을 달고 광고 협찬까지 끌어왔지만, 그 모든 노력이 기자로서 실력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현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태강은 멈추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창간한 지 얼마 안 돼서 우리 매체는 아직 포털 제휴가 안 돼 있어요. 기사를 써도 포털 뉴스란에 이름 한 줄 안 나올 거예요. 그런 조건에서 연봉은 신입 수준인 3000부터 시작합니다. 전 직장에서 4200을 받았던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숨이 턱 막혔다. 냉정한 평가에 이은 포털 미송출 통보였다. 언론사인지 홍보대행사인지 모호했던 이전 회사조차 포털 제휴는 되어 있었다. 기자에게 포털은 생명줄과 같았다. 바이라인이 검색되지 않는다는 건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통로가 끊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연봉 앞자리까지 깎여 나가자 체감되는 무게가 달랐다. 수년의 시간이 숫자 하나로 간단히 정리됐다. 현진은 간신히 쥐어짜듯 내뱉었다.
“... 3000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3200까지는 맞춰주시죠.”
태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3200.”
너무 쉬운 승낙에 오히려 허탈했다. 조금 더 불러볼 걸 그랬나 하는 미련이 뒤늦게 밀려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도나의 목소리가 현진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는 멎어 있던 시선을 내려 도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연봉도 깎이고, 무엇보다 포털에 이름 한 줄 안 나오는 매체인데 너무 무모한 결정을 한 건 아닐까 싶어서. 이대로 도태될까 봐 겁나기도 하고.”
도나가 부드럽게 웃었다. 곱게 휜 눈매에 온기가 서렸다.
“그래도 그 대표님, 자기가 부족한 게 뭔지 정확히 짚어줬다며. 포털에 안 나오면 좀 어때. 연봉 1000만 원 차이, 사실 아무것도 아냐. 자기가 쓴 기사가 진짜라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보게 돼 있어. 난 오히려 포털이라는 배경 없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게 더 멋질 것 같은데?”
잠시 도나와 눈을 맞추던 현진이 그녀를 조금 더 깊이 끌어안았다. 맞닿은 살결을 통해 온기가 기분 좋게 전해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묵직한 응어리가 그 온기에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현진이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실은 내려오면서 다른 곳을 더 알아볼까 고민했어. 연봉까지 깎으며 여길 가는 게 퇴보는 아닐까 겁이 났거든. 남들처럼 계속 몸값을 높이고 이름을 알려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고.”
현진은 다시 천장을 응시했다. 아까보다 시선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런데 자기 말을 들으니 확실해졌어. 진짜 퇴보는 그런 겉치레 때문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거라는걸. 지금까지 다녔던 곳들은 포털 제휴가 되어 있었는데도 그 모양이었잖아. 다신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번만큼은 정말 해보고 싶은 걸 해보려고. 이번 회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라는 확신이 들어.”
도나는 말없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을 밀어 넣어 깍지를 꼈다.
“응원할게. 난 언제나 자기 편이야. 알지?”
현진은 그녀를 다시 힘주어 끌어안았다. 도나는 저항 없이 그의 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가 느릿하게 섞였다. 맞닿은 살결을 타고 체온이 기분 좋게 올랐다. 그 온기는 현진의 가슴에 단단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흔들리던 마음이 깊은 닻을 내리며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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