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가 밥 먹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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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현진
작품등록일 :
2026.04.08 19:37
최근연재일 :
2026.05.0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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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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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첫 출근, 첫 수업, 첫 구토

DUMMY



여의도의 거리는 낮 동안 분주했다. 첫 출근 날이었다. 현진은 태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험사 홍보팀과 점심을 먹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식후 소화도 시킬 겸 여의도 골목을 걷는 동안 태강은 업계 전반과 기사 작성법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것은 교육이라기보다, 현진이 가진 기존의 상식을 깨부수는 해체 작업에 더 가까웠다.


 


“지금까지 배웠거나 익힌 방식은 다 버려요. 전부요.”


 


느릿한 걸음과는 대조적으로 태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면접 때도 말했지만, 지금 유 기자는 기사 구조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어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현진은 보폭을 맞춰 태강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기사는 리드, 메인 팩트, 본문, 부연, 크게 이 네 단계에요. 구조는 무조건 두괄식이어야 하고요.”


 


태강은 허공에 손짓하며 문단의 층위를 그렸다.


 


“리드는 기사의 얼굴이에요. 세 문장 안팎으로 핵심을 압축해야 하죠. 독자가 계속 읽을지 말지는 여기서 결정돼요.”


 


현진은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그의 말을 빠르게 받아적기 시작했다.


 


“메인 팩트는 말 그대로 핵심 사실을 제시하는 곳입니다. 리드에서 잡은 방향을 구체화하거나, 본문 전개에 앞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던져야 해요. 수치든, 통계든, 핵심 관계자의 발언이든.”


 


설명은 걸음 속도만큼이나 차근히 이어졌다.


 


“본문은 논리를 전개하는 공간입니다. 두 단락, 많아야 세 단락이면 충분해요. 길면 독자가 안 읽습니다. 친절하게 설명하려 들지 말고 과감히 덜어내요.”


 


현진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기사의 골조를 이토록 명확히 설명받는 건 처음이었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였다.


 


“부연은 마무리예요. 전문가 멘트 같은 걸로 기사에 객관성과 힘을 실어주는 거죠. 정리하면 리드 한 단락, 메인 팩트 한 단락, 본문 두 단락, 부연 한 단락. 대개 다섯 단락이면 기사 하나가 완성돼요.”


 


현진은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동안 그가 쓴 기사들은 예닐곱 단락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동안 저는 불필요한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셈이네요. 정보가 많을수록 친절하고 좋은 기사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저조차 긴 기사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창을 닫아버린 적이 많았습니다.”


 


“초보 기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예요. 취재하고 공부한 게 아까우니 이것저것 다 집어넣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건 결국 공부한 걸 자랑하고 싶어 덧붙이는 사족일 뿐입니다. 기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독자만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에요.”


 


태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차분한 시선으로 건너편 빌딩 숲을 바라보던 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기사는 장황하면 안 돼요. 복문은 피하고 무조건 단문 위주로. 추상적인 표현도 독입니다. 흔히 중학생도 이해하게 쓰라고들 하죠? 하지만 하나의 기사에 모든 걸 담을 필요는 없어요.”


 


초록불이 켜지자 태강이 다시 발을 뗐다. 현진은 그의 뒤를 따르며 방금 들은 문장들을 곱씹었다. 태강이 강조하듯 말을 보탰다.


 


“필요한 정보만 정확히 담으면 됩니다. 보험은 타겟이 분명해요. 어떤 중학생이 보험 기사를 정독하겠어요? 쉽게 쓰되, 독자가 원하는 정보만 군더더기 없이 넣으면 돼요.”


 


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가장 기초적이지만 그래서 더 귀하게 다가오는 가르침이었다.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무언가 제대로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유현진 기자의 뉴스포트 입사를 축하하며. 자, 건배!”


 


태강의 선창에 맞춰 노란 소맥 잔들이 공중에서 경쾌하게 맞부딪쳤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해물 요리 위로 웃음 섞인 잔향이 퍼졌다.


 


“건배! 대표님과 유 기자님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축하합니다, 태강 선배. 드디어 새 식구네요. 진짜 오래 기다리셨잖아요.”


 


말들이 겹치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광화문의 한 횟집, 여섯 명이 둘러앉은 테이블은 금세 열기로 달아올랐다. 태강이 업계 동료들에게 현진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태강과 제환, 재연, 다운, 그리고 현진까지 다섯 명의 기자와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홍보 담당인 대호가 모였다. 대호는 홍보맨이었지만 기자들 틈에서 오랜 벗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태강은 후배들이 돌아가며 말아준 술잔을 연거푸 비워냈다. 눈가에 실린 웃음이 그의 고양된 기분을 대변했다. 현진 역시 권하는 잔을 사양하지 않고 들이켰다. 차가운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팽팽했던 긴장을 씻어냈다. 분주했던 낮의 소음이 잦아들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보험업계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었다. 9년 차 제환이 태강의 바로 아랫줄에 섰고, 재연과 다운은 나란히 4년 차였다. 재연이 고작 석 달 먼저 입사했음에도 다운은 여전히 그를 선배라 불렀다. 매체는 달라졌어도 한 번 맺은 위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오늘부터 기사를 썼을 리는 없고. 태강 형한테 많이 배웠어?”


 


제환은 초면임에도 현진에게 거침없이 말을 놓았다.


 


“네, 선배. 기사 작성 구조랑 업계 전반의 틀을 배웠습니다.”


 


북적이는 술자리에서 타 매체 기자들과 잔을 부딪치는 경험은 현진에게 낯설었다. 초면에 반말을 섞는 상대가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경력 높은 선배라는 점에 예우를 갖췄지만, 맹목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더 이상 ‘선배’와 ‘선배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진 않았다. 태강은 기자들 사이에 ‘님’ 자를 붙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연차가 아무리 높아도 대등한 위치에서 할 말은 거침없이 내뱉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설령 현실은 다를지라도 기개만큼은 지키자는 그 원칙이 마음에 들었다.


 


다운이 옆에서 잔을 채우며 거들었다.


 


“태강 선배한테 배우면 금방 늘 거예요. 보험 쪽에서는 알아주는 고인물이니까.”


 


태강은 웃으면서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15년째 보험 한 우물만 팠다. 다른 출입처로 발령 내면 차라리 퇴사하겠다며 버텼다는 일화는 현진도 이미 들었다. 대개 2~3년 주기로 출입처를 옮기는 언론계 생리상 흔치 않은 행보였다.


 


태강은 주기적으로 출입처를 바꾸는 관행을 ‘기자가 아닌 데스크를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여러 곳을 거치며 관리자의 소양을 쌓는 길도 있겠지만, 자신처럼 한 분야를 깊게 파서 현장을 지키는 길도 있다는 논리였다. 그는 승진 가도 대신 대체 불가능한 전문직으로서 기자를 선택한 셈이었다.


 


“안 그래도 15년 가까이 보험만 파셨다고 들었습니다.”


 


“그사이 쌓은 인맥이 보통이 아닐 텐데, 유 기자가 쏙쏙 빨아먹어요.”


 


재연이 짐짓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지만, 좌중의 모두가 들릴 법한 크기였다. 테이블 위로 또 한 번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태강 형이라면 인정이지. GA부터 금융당국, 보험사 윗선까지 죄다 꿰고 있을걸. 유 기자, 진짜 복 받은 줄 알아.”


 


제환의 말에 현진은 의문이 솟았다. 그렇게 부러운 선배라면 왜 누구도 태강의 창업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안정된 조직을 등지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각자가 생각하는 기자의 길이 태강과 달랐기 때문일까. 현진은 말없이 잔을 기울이며 웃음소리 뒤편에 가려진 각자의 사정을 가늠해 보았다.


 


“유 기자님, CFA 자격증도 있다면서요?”


 


홍보맨 대호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시선이 일제히 현진에게 쏠렸다.


 


“우와, CFA요? 레벨 3까지 다 하신 거예요? 응시료랑 강의비만 해도 장난 아닐 텐데.”


 


“그거 문제부터 답안까지 전부 영어로 써야 하는 시험 맞죠?”


 


금융 담당 기자들답게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재연과 다운의 감탄이 이어지자 현진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강의비랑 응시료 합쳐서 1000만 원 좀 넘게 들었습니다. 총 3년 걸렸고요. 사업이 잘 안 돼서 시간이 좀 남았던 덕분이죠. 직장 다니면서 합격한 분들이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겸손을 섞었지만 반응은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사업도 했어요? 무슨 사업이었는데요?”


 


재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현진은 숨길 이유가 없기에 차분히 답했다.


 


“스캘퍼들을 상대로 고사양 컴퓨터를 세팅해서 팔았습니다.”


 


스캘퍼. 초단타 트레이더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넘쳐나는 유동성 속에 기회가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드웨어를 잘 아는 지인과 의기투합해 전업 투자자용 장비 공급 업체를 차렸다. 전 국민적인 주식 열풍을 타고 사업은 금세 궤도에 오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장은 냉혹했고 빠르게 변했다. 인간 스캘퍼의 영역은 AI와 알고리즘에 급격히 잠식당했다. 찰나에 수백 번의 매매를 체결하는 기계를 인간이 이길 재간은 없었다. 수요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사업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모두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현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재연이 재차 물었다.


 


“그럼 본인도 직접 트레이딩을 한 거예요?”


 


현진이 잠시 말을 멈췄다. 과거의 실패가 그 짧은 침묵 속에 녹아 있었다.


 


“선물옵션 매매를 3년 정도 했습니다.”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실패의 기억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지표 보는 거나 자본시장 돌아가는 건 빠삭하겠네요. 이거 오히려 대표님한테 복덩이가 굴러온 거 아닙니까?”


 


대호가 홍보맨 특유의 능청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가만히 듣고 있던 태강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보험업계 생리와 기사 쓰는 법만 제대로 익히면 금방 날아다니겠어.”


 


“자, 다시 건배! 우리 유 기자와 뉴스포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잔이 다시 채워졌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광화문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오후 6시에 시작된 술자리는 11시를 넘겨서야 끝이 났다. 현진은 태강이 자신을 택시에 태워 보냈던 기억만 조각처럼 남았다.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한 술기운 속으로 흩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뺨에 닿은 차가운 보도블록의 감촉이었다. 외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가방만이 옆에서 덩그러니 나뒹굴고 있었다. 오른손바닥에는 흙먼지와 뒤섞인 피가 딱딱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다행히 바지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무사했다.


 


현진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낯선 골목의 어둠이 그를 덮쳤다. 덜컥 겁이 나 무작정 걷다 보니 다행히 자취하는 빌라 근처의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고꾸라졌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무거웠고 손바닥의 통증은 화끈거렸다. 술자리의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부딪쳤다. 호기롭던 웃음소리, 부딪치던 잔들, 그리고 스스로 꺼내놓은 과거의 기억들까지.


 


‘이런 삶이 계속되는 건가.’


 


신음 같은 물음이 입 안을 맴돌았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피로와 술기운 속에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앞날이 막막해졌다. 몸은 천근만근 가라앉는데 머릿속은 제멋대로 요동치며 빙빙 돌았다. 너무 빨라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현진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기어갔다. 변기를 붙잡고 저녁 내내 밀어 넣은 것들을 전부 게워냈다. 시큼한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찌를 때마다 잦아들던 어지러움이 다시 도졌다. 그는 한참 동안 변기를 붙든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퇴사해야 하나.’


 


충동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바닥에 들러붙은 몸과 달리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고동이 느껴졌다. 이제 겨우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었다. 오늘 배운 것과 느낀 것, 그리고 마주할 하루하루. 그 모든 것이 아직 펼쳐지지 않은 책장처럼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화장실을 빠져나온 현진은 옷도 벗지 못한 채 깊은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내일 해가 뜨면 그는 다시 여의도로 향할 것이었다. 오늘과는 조금 다른 걸음걸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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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장. 유령 설계사의 정체 (2) 26.05.04 0 0 10쪽
19 19장. 유령 설계사의 정체 (1) 26.05.04 0 0 7쪽
18 18장. 설(說)과 팩트 사이, 기자의 좌표 (2) 26.04.29 0 0 11쪽
17 17장. 설(說)과 팩트 사이, 기자의 좌표 (1) 26.04.29 0 0 9쪽
16 16장. 전선의 끝에서 배운 것 26.04.26 0 0 9쪽
15 15장. 첫 통화, 전선의 서막 26.04.26 0 0 6쪽
14 14장. 유예된 판단, 해체되지 않은 폭탄 26.04.22 1 0 6쪽
13 13장. 모두의 ‘예’ 앞에서 ‘왜’를 물을 용기 26.04.22 1 0 13쪽
12 12장. 위험한 바비큐 파티 (3) 26.04.19 0 0 7쪽
11 11장. 위험한 바비큐 파티 (2) 26.04.19 0 0 7쪽
10 10장. 위험한 바비큐 파티 (1) 26.04.19 1 0 9쪽
9 9장. 헤지 없는 삶, 이번에도 풀 베팅 26.04.15 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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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장. 7분 30초, 차가움이 멈춘 시간 26.04.15 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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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장. 여의도에서 건져 올린 첫 맛 26.04.12 8 1 14쪽
4 4장. 기자의 질문엔 성역이 없다 26.04.12 18 1 9쪽
» 3장. 첫 출근, 첫 수업, 첫 구토 26.04.08 12 1 12쪽
2 2장. 1000만 원짜리 확신 26.04.08 13 1 6쪽
1 1장. 왜 이따구로 살았어요? 26.04.08 36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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