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기자의 질문엔 성역이 없다
현진은 방금 테이크아웃한 카푸치노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뚜껑의 좁은 틈으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조심스레 들이킨 첫 모금에는 성긴 거품과 밋밋한 우유 맛이 배어 나왔다. 컵을 기울일 때마다 액체가 출렁이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태강과 함께 일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입사 이후 아침은 줄곧 그와 함께 여의도 거리를 걷는 일로 시작됐다. 샛강 너머에서 불어온 미지근한 봄바람 속에 출근길 직장인들이 뿜어내는 분주함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유 기자 입장에선 오히려 잘 됐죠. 올해 IFRS17이 시행되면서 보험 회계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수익 인식은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보험 부채는 원가에서 시가 평가로 전환됐어요.”
태강은 살을 뺀다며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그가 걸음을 늦추며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주변을 바삐 오가는 인파와 달리 그의 보폭에는 쫓김이 없었다. 현진이 컵을 쥔 채 눈을 크게 떴다.
“그전까지 현금주의였다고요? 보험사도 일반 기업처럼 발생주의로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요.”
“보험 회계는 좀 특수해요. 금융 안에서도 따로 떼어놓고 봐야 할 정도로 공부할 게 많은 영역이에요. 다만 올해부터 판이 새로 깔렸으니 지금 시작해도 다른 기자들보다 많이 늦진 않을 겁니다.”
태강의 말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현진은 내심 안도했다. 기자에 따라 정보 격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 바닥에서 출발선이 비슷하다는 말은 신입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배,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한다는 부분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태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샛강역 옆 근린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막 싹이 돋기 시작한 나뭇가지 사이로 산책하는 이들이 느릿하게 지나갔다.
“시가 평가는 부채를 계산할 때 시장 금리를 반영한 할인율을 적용한다는 뜻이에요. CFA 자격이 있으니 할인율과 현재가치 개념은 알겠죠?”
“물론입니다.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할인율이 낮으면 현재가치는 커지고 높으면 줄어드는 구조로 알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질문이라 현진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태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이내 습관처럼 미간을 좁혔다. 상대의 수준에 맞춰 가장 적절한 단어를 골라낼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럼 듀레이션은요?”
“현금흐름이 회수되는 가중평균 기간이자,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민감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진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좋아요. 그럼 설명하기 수월하겠네.”
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험사는 보통 부채 듀레이션이 자산 듀레이션보다 길어요. 자산은 길어야 30년 만기 채권이지만, 부채는 종신이나 100세 만기 상품이 수두룩하거든요. 부채 듀레이션이 더 길다는 건...”
“금리 변화에 따른 부채의 민감도가 자산보다 더 크다는 뜻이겠죠.”
태강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더 보탤 말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맞아요. 그래서 요즘처럼 금리가 오르는 국면에선 보험사 자산이 부채보다 훨씬 줄어드니까 결과적으로 자본이 감소하는...”
현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가로챘다.
“선배, 죄송한데... 부채의 금리 민감도가 더 크면 금리가 오를 때 부채가 자산보다 더 크게 줄어드니까, 결과적으로 자본은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진의 물음에 태강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매끄러운 민머리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다. 지하철 출구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두 사람 곁을 물결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렇네. 유 기자 말이 맞아요. 내가 잠깐 헷갈렸네.”
태강은 곧바로 실수를 인정했다. 체면보다 팩트를 우선시하는 태도였다. 그가 현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주 좋아요. 기자라면 이상하다고 느낄 때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그 ‘그냥’이 취재의 성패를 가르거든요. 상대가 누구든, 기자의 질문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꼭 명심해요.”
둘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국회 방향으로 뻗은 대로와 원효대교로 향하는 길이 맞물리는 교차로 위로 차량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행 신호가 바뀌자 두 사람은 다시 발을 뗐다.
“뭘 그렇게 적어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메모 앱을 켜고 바삐 손가락을 움직이는 현진을 보며 태강이 물었다. 현진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잊어버릴까 봐서요. 사무실 들어가면 방금 말씀하신 금리 추이랑 보험사 자본 변동성을 실제 데이터로 확인해 보려고요.”
태강은 현진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나를 던지면 곧장 그 너머를 짚어내는 날 선 의욕. 나쁘지 않았다.
“좋은 자세네요. 다만 앞으로 지겹도록 보게 될 테니 초반부터 너무 힘 빼진 말아요.”
두 사람은 다시 빌딩 숲으로 스며들었다. 등 뒤에서 경적 소리가 멀어졌다. 빌딩 유리창에 반사된 햇살이 태강의 머리 위에서 다시 한번 번뜩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현진은 모니터부터 켰다. 아침의 대화가 휘발되기 전 숫자로 확인해야 했다. 주요 보험사 공시 자료를 훑었다. IFRS17 전환 효과, 금리 상승기, 자본 변동성. 수치는 정직했고 논리는 명쾌했다. 확신을 얻은 현진의 손가락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지만 숫자를 해석하는 것과 그것을 기사로 옮기는 일은 별개였다. 그는 몇 번이고 문장을 고쳐 썼다. 겨우 마침표를 찍고 송고 버튼을 눌렀을 때는 이미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유 기자, 이리 와 봐요.”
파티션 너머에서 들려온 태강의 목소리에 현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기사를 보낸 지 채 10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양식이 틀렸나? 문장이 꼬였나?’ 지적받을 만한 지점들이 머릿속에 줄을 섰다.
“전체 흐름은 알겠는데, 리드문이 잘 안 읽혀요. 독자는 앞 세 줄에서 판가름 낸다고 했죠? 입구부터 막히면 누가 끝까지 보겠어요.”
“죄송합니다, 선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평소 강조하던 원칙들이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퇴고를 거듭해도 허점은 늘 같은 자리에서 불거졌다. 산책길에서 태강의 오류를 잡아내며 내심 우쭐했던 마음이 무색해졌다.
“발제는 좋았는데, 이번 야마는 엠탑손보 건전성 이슈잖아요. 그런데 리드문 뒤에 갑자기 회사 연혁이 왜 나와요?”
기사의 핵심 줄기가 빗나갔다는 지적이었다. 방대한 수치에 매몰되어 정작 가장 날카롭게 세워야 할 논점을 놓쳤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사는 철저히 두괄식이어야지. 최근 건전성이 어떻게 악화됐는지 수치부터 때려 박고 본문에서 그 이유를 풀어야죠. 타사 비교 수치도 본문에 녹였어야 하고요.”
“맞습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지적이 이어질수록 현진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혼자 기사를 쓰며 몸에 배어버린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꾸짖음 없는 태강의 담담한 말투가 부끄러움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표현도 주의해요. ‘평가된다’, ‘보인다’ 같은 말은 기자가 심판관 노릇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우리는 팩트와 전문가 의견을 전달하는 입장이지, 함부로 단정 짓는 사람이 아니에요.”
태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황당한 상황’, ‘어이 없는’ 같은 감정적인 단어도 금물입니다. 기사는 끝까지 차가워야 해요.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싸우는 거니까.”
“네, 선배. 명심하겠습니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현진은 그의 말을 한 문장씩 머릿속에 새겼다.
“그래도 2주 된 것치고는 잘하고 있어요. 금융 베이스가 탄탄하니 형식만 다듬으면 금방 올라올 겁니다. 결국 중요한 건 취재력과 논리니까.”
뜻밖의 격려에 굳어있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침의 호의적인 공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지적해주신 부분 반영해서 다시 고쳐보겠습니다.”
“아니요, 이번 건은 내가 손볼게요. 금방 끝나요.”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오자 파티션 너머로 키보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방금 나눈 대화를 곱씹으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현진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는 답답함. 피로보다 무거운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잠시 모니터를 응시하던 현진이 마우스를 고쳐 쥐었다. 화면에는 새로 갱신된 보험 기사들이 떠 있었다. 태강이 뒤를 정리하는 동안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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