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여의도에서 건져 올린 첫 맛
“오늘 점심 선약 있어요?”
오전 11시 반을 넘길 무렵, 파티션 너머로 태강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모니터 속 기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선약이라니, 업계 신출내기에게 그런 호사가 있을 리 없었다.
“점심 미팅요? 따로 없습니다.”
“그럼 나랑 같이 갑시다.”
“오,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느 분을 뵙나요?”
“원(院) 사람들요. 아직 직접 안 만나봤죠?”
현진의 손끝이 멎었다.
“원요? 혹시 금감원 말씀이신가요?”
놀람보다는 생경함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전화를 걸어 건조한 문답만 주고받았을 뿐, ‘당국’이라 불리는 이들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해본 적은 없었다.
“맞아요.”
“네, 처음입니다.”
“그럴 것 같더라고요. 내 기자 시절엔 거기서 살다시피 했는데, 세월 참 빠르네.”
태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눈매에는 금감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기사를 쫓던 시절의 감회가 묻어났다. 이내 시계를 흘끗 확인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준비해요. 멀진 않지만 조금 일찍 가서 기다립시다. 늦는 것보단 나으니까.”
현진은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이전 매체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기업 홍보 담당자였다. 태강과 함께한 지난 2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개 태강이 현진을 소개하는 통과의례 같은 자리였다. 신입 기자에겐 홍보팀과 안면을 트는 게 급선무였고, 실제로 가장 자주 소통하는 이들도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국자’와의 식사는 결이 달랐다. 낯선 긴장감 사이로 묘한 기대가 차올랐다.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12시 무렵의 여의도는 이미 점심 인파로 출렁이고 있었다. 미팅 장소는 여의도백화점 안의 식당. 금감원 직원들이 즐겨 찾는 단골집이라고 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하자, 주인이 반쯤 개방된 룸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긴장이 실감 났다. 금융사를 감독하고 검사하는, 업계의 ‘심판’들이었다. 현진은 자신도 모르게 등을 곧게 세웠다. 물잔을 쥔 손끝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먼저 와 계셨군요. 오랜만입니다, 김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정각 12시,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중년의 여성이 앞장섰고, 조금 젊어 보이는 남성이 그 뒤를 따랐다. 현진은 태강을 따라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활기찬 태강의 목소리와 달리, 현진의 인사는 조심스러웠다.
“처음 뵙겠습니다. 뉴스포트 유현진 기자입니다.”
현진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중년 여성에게 명함을 건넸다. 상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
“새로 오셨다는 그 기자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명함에 박힌 직함이 묵직했다.
‘정현경 보험감독국 국장.’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국장님을 모시고 있는 남현국 팀장입니다.”
이어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안경 너머의 인상이 푸근해 그제야 긴장이 살짝 풀렸다. 식사를 주문하고 물잔이 채워지자 정 국장이 먼저 입을 뗐다.
“김 대표님, 매체 차리신 지 이제 1년쯤 되셨죠?”
“네, 곧 돌입니다. 국장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뭘 했다고.”
가벼운 웃음이 테이블 위로 흩어졌다. 오랜 인연이 묻어나는 익숙한 공기였다. 하지만 그 여유로운 흐름에 올라탄 건 세 사람뿐이었다. 현진은 여전히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언제 질문이 날아올지 몰라 물잔을 쥔 손에 은근한 힘을 주고 있었다.
“참, 저번에 말씀하셨던 보험사 소송 건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남 팀장이 넌지시 물었다. 태강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진행 중입니다. 변호사가 달라는 자료들 정리해서 보내주는 정도죠.”
“그때 기사가 대표랑 임원 횡령 의혹이었죠? 정작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고 회사 명의로 소송이 들어왔다면서요.”
“팩트가 아니었으면 직접 나서서 명예훼손이라도 걸었겠죠. 그런데 본인들은 회사 뒤에 숨더라고요. 제 기사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입증하겠습니까.”
태강이 픽 웃으며 말을 맺었다.
“예전 매체에 계셨으면 감히 소송 걸 생각이나 했을까요.”
“못 했겠죠. 신생 매체니까 돈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 국장과 남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진은 숨을 죽인 채 대화를 곱씹었다.
걱정보다 앞선 건 감탄이었다. 창업 직후 태강이 한 보험사 대표와 임원의 횡령 의혹을 보도했다가 10억 원대 소송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개인과 법인을 모두 겨냥한 압박에 통장까지 압류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도 태강은 웃고 있었다. 허세가 아니라 자신의 기사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사실 원 내부에서도 의혹만으로 움직이기엔 리스크가 커서 일단 지켜보고 있어요. 분위기 자체는 이미 횡령 쪽으로 기울었지만, 기사 하나만 믿고 당장 검사에 착수하기엔 당국으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으니까요.”
정 국장의 조심스러운 지지가 식탁 위에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 묵직한 공기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사가 차례로 오르며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태강은 능숙하게 국그릇을 떠 정 국장 앞에 놓으며 대화의 결을 바꿨다.
“이 집 국물이 꽤 시원합니다. 국장님 요즘 워낙 격무시라 기력 좀 보충하셔야 할 텐데. 참, 요즘도 자주 산행하세요?”
“그럼요. 지난 주말에도 겨우 시간 내서 북한산 다녀왔죠. 남편과 흙 좀 밟고 오니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더라고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정작 운동이 필요한 건 저인데 말이죠. 저도 국장님 본받아 몸 좀 움직여야겠습니다.”
식사는 여느 직장인들의 점심처럼 일상적인 대화로 채워졌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식탁 풍경이었다. 따뜻한 국물 기운에 현진의 꼿꼿했던 등도 조금씩 풀려갔다.
태강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넌지시 화제를 돌린 건, 식사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이었다.
“참, 요즘 보험 유튜버들 사이에서 광고 규정 어긴 영상들이 꽤 보이더군요. 원에서도 좀 들여다보고 계신 게 있습니까?”
툭 던진 말 같았지만 정교하게 계산된 타이밍이었다. 부드러웠던 공기의 온도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유튜브 광고요?”
정 국장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심의 없이 연락처를 남기는 영상들 말씀이시죠? 모니터링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집 관여도나 고의성까지 입증하려니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정 국장이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사이, 남 팀장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받았다.
“단순 정보 제공인지 영업인지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거든요. 광고비냐 모집수수료냐 하는 문제부터 개인정보 동의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요.”
실무자로서 느끼는 고충 섞인 하소연이었다. 설명을 듣던 태강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제재 사례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상 불법 영업이 판치는 셈이잖아요.”
태강의 목소리에 기자 특유의 날이 서자, 남 팀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현장 상황이야 대표님이 더 잘 아시겠죠. 이미 몇몇은 불러서 시정조치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배짱 영업을 하는 곳들이 있어 골칫거리인데...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어요.”
그가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은밀하게 말을 덧붙였다.
“단기납 종신 아시죠? 해지환급률만 강조해서 저축성처럼 파는 거요.”
“알죠. 보장성 보험인데 몇 년 뒤 해지하면 돈 번다는 식으로 꼬드겨서 팔고 있잖아요.”
“맞습니다. 그거야말로 불완전판매 소지가 너무 커요. 그래서 얼마 전 전수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전수조사요? 언제부터요?”
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업계를 뒤흔들 ‘대어’를 낚았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한 2주쯤 됐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보험협회 쪽 확인해 보시면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옆에 있던 정 국장이 조용히 찻잔을 들며 대화의 선을 그었다. 남 팀장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태강이 고개를 돌려 현진을 바라봤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날카롭게 맞물렸다.
“유 기자, 메모해 둬요. 단독감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현진은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 앱을 켰다.
정 국장과 남 팀장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묘한 묵인처럼 느껴졌다. 이후에도 대화는 이어졌지만 현진의 귀에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단어만이 명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단독.
뒷목이 찌릿했다. 자신의 이름 석 자가 기사 머리에 걸릴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맥박이 빨라졌다. 아득한 꿈속에서나 맴돌던 막연한 단어가, 어느덧 손에 잡힐 듯한 실체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사무실 도어벨이 짧게 울렸다. 문이 열리며 태강이 들어왔다. 검은 양복에 백팩을 멘 차림. 전형적인 직장인의 외양이었지만 결이 달랐다. 어깨엔 힘이 빠져 있었고 걸음엔 서두름이 없었다. 치열한 여의도의 아침, 그 시간대 직장인들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여유가 얼굴에 배어 있었다.
“좋은 아침! 오늘도 일찍 나왔네요.”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우렁찼다.
“오셨습니까. 집이 근처라서요.”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근처’라기엔 40분 거리였다. 지하철을 타면 10분 남짓 걸렸지만 현진은 늘 걷는 쪽을 택하곤 했다. 여의도로 향하는 길은 출근이라기보다 일종의 의식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발젯거리를 고르며 기사의 구조를 세우는 시간. 스스로 잘 가고 있는지 삶의 궤적을 점검하는 일도 때때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참, 기사 송고했습니다.”
“오, 벌써요? 생각보다 빠른데.”
태강이 머릿속으로 시간을 셈했다. 정 국장과 식사를 한 게 어제 오후였다. 채 하루도 안 돼 취재를 끝내고 기사를 넘긴 셈이었다.
“다른 곳에서 먼저 낼까 봐요. 단독인데 놓치기 아깝잖아요.”
의욕 섞인 말에 태강이 씩 웃었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양복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는 손길이 가벼웠다. 짧은 부팅음과 함께 그가 습관처럼 목을 두어 번 돌렸다.
곧 현진이 송고한 기사를 데스킹하는 타건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2주째 듣는 소리였지만, 태강의 키보드 소리는 늘 공격적이었다. 매일 아침 전장의 포문을 여는 신호탄처럼 들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한 긴장이 뒷덜미를 당겼다.
현진은 모니터에 띄운 기사를 다시 한번 훑었다. 다섯 번, 여섯 번을 고쳐 써도 어김없이 걸리는 구석이 나타났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호흡을 고르는 일은 여전히 손끝에서 겉돌며 툭툭 끊겼다.
“좋아요. 잘 썼네. 리드문이랑 표현 몇 개만 만졌어요.”
태강이 마우스를 딸깍이며 기사 전송 버튼을 눌렀다. 요란하던 타건음이 멈추자 사무실엔 정적이 감돌았다.
“고생하셨습니다!”
현진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몇 개만’이라던 말과 달리 기사는 거의 해체 후 재조립되어 있었다. 문장은 난도질당했지만 결과는 명쾌했다. 훨씬 간결해졌고, 핵심은 송곳처럼 또렷해졌다.
“이제 2주 조금 지났는데 단독이라니, 정말 잘하고 있는 거예요.”
태강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니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기사였건만 공은 온전히 현진에게 돌렸다. 물론 칭찬 뒤에는 어김없이 날카로운 지적이 따랐다.
“다만 아직도 복문이 보여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무조건 단문으로 가요. 접속사와 쉼표도 최대한 덜어내고.”
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라 차마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내 초년 시절에 데스크가 그랬어요. 단문과 단문이 부딪히면 독자의 뇌가 알아서 그 사이의 문맥을 빚어낸다고. 그러니 굳이 친절하게 연결하려 애쓰지 말고, 짧고 정확하게 던지기만 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뇌리에 박혔다. 유려한 수사보다 명확한 팩트를, 친절한 설명보다 날 선 진실을 우선하라는 준엄한 명령 같았다.
잠시 뒤, 뉴스포트 메인 화면에 굵직한 헤드라인이 걸렸다.
[단독] 금감원, 단기납종신 전수조사···“저축 컨셉 안 돼”
제목 앞에 붙은 ‘단독’ 두 글자가 유난히 선명했다. 그 아래 바이라인에 이름 석 자가 박혀 있었다.
유현진.
순간 전류가 몸을 관통했다. 기자 생활 2년 만에 처음 맛보는 진짜 단독이었다. 태강에게는 일상일지 모르나 현진에게는 비로소 벽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타사의 기사에 살이나 붙이던 무색무취의 오퍼레이터에서, 마침내 제 기사를 가진 진짜 기자가 된 기분. 참으려 해도 입술 사이로 웃음이 자꾸만 비집고 나왔다.
“제 첫 단독이네요.”
“축하해요. 앞으로 지겹도록 쓰게 될 겁니다.”
태강의 말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네, 꼭 그러고 싶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커피 마시러 갑시다.”
둘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출근길보다 공기는 한결 따뜻해져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여의도의 풍경이었으나, 현진의 눈에 비친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도나였다.
‘첫 단독 축하해!’
기사를 올리자마자 보낸 링크에 돌아온 답장이었다. 현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가벼웠던 기분이 날아갈 듯 한 번 더 고조되었다.
‘고마워.’
답장을 보내는 손끝이 경쾌했다. 발걸음은 절로 빨라졌다. 회색빛 여의도 빌딩 숲이 아까보다 한층 선명한 색채로 다가왔다. 연봉을 깎아가며 이곳을 선택한 결정이, 마침내 온전한 보상을 받는 듯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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