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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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열매
작품등록일 :
2011.02.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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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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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드래곤 (21)

DUMMY

기대했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환청이었다. 혹시라도 하는 보잘것없는 기대가 너무 부풀어 작은 소음을 망상으로 부풀린 것에 불과했다. 그녀가 뭔가 말했다고 여겼던 것뿐, 현실은 냉혹했다. 들리는 것은 미약한 숨소리뿐이었다.

루우가 혼수상태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미치겠네.”

테실라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의 한숨이라 해도 정말로 땅이 꺼질 리는 없었고, 그렇다고 답답함이 해소되지도 않았다. 테실라는 애써 진정하려고 노력하며 원인을 처음부터 짚어갔다.

첫 살생을 마치고 돌아온 뒤, 루우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테실라는 인간세계를 본 적은 없었지만 루우의 이야기라던가, 다년간의 드래곤 생활로 보아온 각양각색의 몬스터 경험을 통해 이 세계가 전생 때 도서관의 문학 코너에 너덜너덜하게 꽂혀 있던 판타지 소설들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 세상이라 생각했다. 물론 소설과 현실이 같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중세에서 근세 사이의 유럽하고-이것도 너무 넓은 범위였지만- 꽤 닮았을 거라고 상상했다. 루우는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도 전체적인 사회상은 그의 예상과 얼추 비슷하다는 판단은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테실라는 이 세상의 인간들은 현대인보다는 죽음에 더 익숙하리라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건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아무리 죽음이 사소한 세상이라고 해도, 아무리 음모가 판치는 궁중 생활을 했다고 해도, 루우는 어지간한 현대인보다 더 온실 같은 보호 속에서 살아온 소녀이기도 했다. 게다가 루우는 그녀 자신이 죽음의 위협에 놓여 있었던 경험이 있고, 더욱이 방향은 달라도 여전히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살생을 했다는 건, 인간을 죽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PTSD가 생기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거기까지는 테실라도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루우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근거 없는 믿음의 대가는 참혹했다.

“바보짓이었어.”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믿음은 2차 대전 때의 일본 제국군이 외쳐댄 정신론 같은 멍청이의 환상일 뿐이었다. 훌쩍훌쩍 울면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루우의 말을 들으며 테실라는 얼마나 자신이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안 그래도 잘 모르는 말인데 울먹이며 말하니 더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 가지고도 얼마나 소녀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적응한 것 같았어도, 실은 소녀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했다. 소녀가 쏟아내는 말에는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다. 매일 밤 테실라의 비늘에 달라붙은 것도 생각해보면 그런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한 것이리라.

‘하다못해 테디베어조차 없는 곳이니까.’

그렇게 억지로 기운을 내서 억누르던 것은, 결국 살생이라는 행위로 인해 더는 억눌러지지 못하고, 무너진 댐에서 물이 쏟아지듯 터져 나와버린 것이다. 테실라가 해줄 수 있는 건 별거 없었다. 그저 지방을 좀 더 아낌없이 써서 몸을 따듯하게 해주고, 따듯한 물을 자주 마실 수 있게 해서 눈물로 잃어버린 수분을 보충시켜주는 것 정도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이 꼴이라.’

한동안 루우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테실라 자신도 지쳐갔다. 테실라가 없으면 금방 불안해했기에 테실라는 루우가 간신히 잠이 들고 나서야 그녀의 생활을 유지할 이런저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온종일 레어에서 소녀의 수발을 들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시간을 쪼개 사냥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만 했다.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이 했다면 과로사를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일을 했으니 육체는 그렇다 쳐도,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상황을 만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기에 테실라는 꾹꾹 참으면서 루우에게 계속 신경을 섰다.

그런 그의 행동은 골수 전통파 기사가 봤다면 레이디를 대하는 진정한 기사의 태도라고 극찬할 정도였지만 실제 내용은 보모에 가까웠다. 루우의 몸 상태가 안 좋은 데다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기에 나중에는 자장가를 불러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낮도 마찬가지였다. 온종일 드러누워 있는 루우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드래곤이 할 짓은 아니었지만, 아니 누군가 본다면 경악할 짓이었지만, 일상적인 부분을 빼면 그 상황에서 테실라가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 정도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런 일을 해서 얻은 것도 있다는 것이 비참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이야기 자체야 도서관에서 읽었던 동화나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면 됐지만, 루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했기에 모두 란데로스어로 번역해야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행동은 언어 집중연수를 한 효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드래곤의 음성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압도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장가를 불러주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덕분에 얼마 되지 않아 테실라는 상당히 인간적인 소리를 내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냐. 젠장. 젠장, 젠장.”

기껏 이제야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지만 전혀 쓸모가 없었다. 몇 주가 지나도 루우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녀는 하루하루 약해져 갔고, 온종일 자는 날이 길어지더니 어제부터는 아예 혼수상태에 빠졌다. 여태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봐도 도무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

테실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루우는 분명 죽는다.

‘뭔가 전제가 잘못됐어. 루우가 이렇게까지 된 건 분명 살생의 충격에서 시작된 건 맞아. 하지만 이렇게까지 된 건 별개가 아닐까? 내가 잘못된 전제를 세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했다. 여태까지 테실라는 루우의 상태가 정신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계속해서 대화하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녀의 마음을 잘 알 수 없는 거라도, 지친 기색인데도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를 생각해보면 분명 싫어한 건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심적으로 점차 안정되어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루우의 몸 상태는 점차 악화하였다.

‘그래, 어느 시점에서 이미 스트레스 문제가 아니었던 게 아니었던 거야. 분명 그런 거야.’

그러면서도 테실라는 그 생각을 다시 의심했다. 그는 의심의 유용성을 알고 있었다.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기본적으로 의심이 중요하다. 테실라는 그러한 의심의 유용성은 연구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문제는 인간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초조해지지 마. 주의 깊게 생각해.’

테실라는 빨리 대책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심호흡을 했다.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때는 곤란한 녀석이다.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그건 어느샌가 루우라는 인간이 드래곤 테실라에게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냉혹하게 따지자면 테실라는 루우를 포기해도 그만이었다. 애초에 이제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놀랍다고 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테실라에게 루우는 <이 세계의 인간 중 한 명>이 아닌, 좀 더 소중한 <특별한 단 한 명의 인간>이 되어있었다. 사랑이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라는 낯간지러운 따스함이 아니더라도, 분명 그건 타인보다는 가까운 상태였다. 그래서 테실라는 어떻게든 루우를 구하고 싶었다.

‘어느새 나도 꽤··· 아니, 일단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냉정하게 생각해. 처음부터 다시 짚어가. 문제는 뭐지?’

거대한 발톱으로 레어 바닥을 깔짝댄다. 조금씩 움직임이 빨라진다. 쿠욱! 돌바닥에 발톱이 박히며 돌조각이 튀었다. 쿡, 쿡, 쿡. 그래도 초조한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에서 이러고 있는 건 루우에게도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테실라는 밖으로 나갔다.

루우를 처음 만난 날처럼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밤이라 몰아치는 눈은 흰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색상이 빠지고 형태만 남은 눈길을 쏘아보며 테실라는 다시 한번 상황을 짚어나갔다.

‘목적을 확실하게 해. 그래, 지금 목적은 루우의 육체적인 회복이야. 가설은 지금 루우에게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 근거는 정신적인 안정은 이미 이루어진 거로 보인다는 것. 이것이 옳다고 가정했을 때, 육체에 문제가 생길 요인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지.’

눈이 쌓여가는 바닥을 발톱으로 득득 그어가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눈을 밀어붙이며 땅을 거칠게 갈아내던 발톱이 확 움직인다. 공간이 갑자기 나타나서였다. 작은 구덩이다. 예전에 갑옷을 파낸 자리였다. 루우를 처음 발견한 날이 떠올랐다. 테실라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래, 또 혼자로 돌아갈 수는 없지.”

테실라는 찬찬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에 문제가 생기는 육체적, 물리적인 요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상이다. 하지만 루우에게는 생채기 하나 없는 상태.

‘내부적인 무언가. 보이지 않는 요소. 체온? 추위? 하지만 일반적으로 추위 자체는 문제가 없어. 저체온증이 문제를 가져오는 거지. 이곳 환경은 문제가··· 잠깐.’

테실라는 생각의 고삐를 잡았다. 환경, 이라는 요소가 신경 쓰였다.

‘환경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일단 여기는 먹을 것부터 부실···한 상황이니까. 잠깐, 먹을 게 문제일 수도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이 이어졌다.

‘솔직히 고기와 이끼뿐이니. 하지만 열량은 충분해. 그럼 잘못된 식품? 그렇다고 보기에는 애초에 잘못된 음식이 섞일 일이 없어. 다른 고기는 영 찝찝하다 해서 고기는 오로지 순록.’

물론 테실라에겐 곰 괴물의 고기나 늑대 고기도 맛의 문제만 제외하면 식용 가능한 것이었지만 루우는 몬스터의 고기는 먹을 수 없는 거라며 거부했다. 테실라도 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몬스터든 아니든 육식동물의 고기는 그다지 사람이 먹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해서 결국 루우는 순록 고기만 먹고, 나머지는 테실라가 처리해왔다.

테실라는 몰랐지만, 사실 그건 잘한 일이었다. 지구와 달리, 육식동물 위에 또 군림하는 존재인 몬스터는 지구의 상위 먹이사슬 동물 이상으로 여러 위험 물질이 농축된 존재다. 환경 오염은 별로 없으니 수은 등의 중금속은 그렇다 쳐도, 영양 면에서도 그랬다. 지구의 북극곰만 해도 간에 비타민 A가 고농도로 농축되어 있어 인간이 먹으면 죽게 된다. 물론 살코기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그 괴물이 북극곰 이상의 먹이사슬 위치라는 고려해보면 여하튼 안 먹길 잘 한 것이다.

‘···그 외엔 이끼뿐. 장복한다고 문제가 생길 종류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순록이 아니면 문제가 되나?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럼 물? 물이야 말할 것도 없이 깨끗했어.’

무두질 작업 같은 건 사용하는 물질의 특성상 엄청나게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과학적인 위생 관념이 없던 시기에는 그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테실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폐수 처리에 나름 신경을 썼다. 정화체계처럼 필요하긴 하지만 현 상황에서 사용할 수 없는 사치스러운 것은 없었지만 어차피 둘만 살고 있으니 루우가 마실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건 약간만 신경 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식품에 독성이 있던 건 아닐 거야. 애당초 이 세계에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환경오염물질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도시라면 또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는 여기엔 그런 건 없을 거야. 그렇다면··· 잠깐.’

테실라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눈보라가 주춤하는 것 같았다.

‘없다? 없다! 그래! 먹어서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잖아! 못 먹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 없어서 문제인 경우다! 결핍증!’

테실라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왜 진작 생각이 닿지 않은 걸까.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기본적으로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큼 굶어본 적은 없었다. 뭐라 해도 그도 현대에서 살았던 것이다. 드래곤이 된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드래곤보다 사냥이 힘들긴 했어도 당연히 굶은 적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균형 잡힌 식생활이 아예 필요 없다 보니 결핍증이란 가능성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결핍, 결핍. 제기랄. 왜 생각을 못 했지? 뭐가 모자랐지? 지방이랑 단백질은 넘어가, 탄수화물? 어차피 칼로리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문제없어. 게다가 그 이끼도 먹기는 했다고. 비타민?’

테실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각기병이니 야맹증이니 가정 교과서에 나왔던 비타민 결핍증에 대한 내용들이 마구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그것들은 혼수상태와는 거리가 먼 증상이다.

‘난 의사가 아니라고. 젠장. 이 멍청이. 자꾸만 생각을 굳히지 마. 증상으로 뭐가 결핍됐는지 알 능력이 없는 건 스스로가 알잖아? 결핍이라면, 뭐가 필요한 건지 생각해.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 루우가 혼수상태야, 만약 뭔가 부족한 거라면 그건 없다면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중요한 물질이라고! 그게 뭐지? 그걸 떠올려, 중요한 것. 물도 아니고, 3대 영양소도 아니고, 비타민도 아니야.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 없으면 죽는 것. 아아아아!’

결국 테실라는 한 가지 가능성, 답일 가능성이 꽤나 높은 것을 찾았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드래곤이 울부짖는다.

“젠장, 소금!”

인간으로서 살 때 소금이 결핍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인은 너무 많은 소금을 먹는다고 소금 섭취를 줄이기를 권장 받는다. 그래서 쉽게 망각해버리곤 하지만 실제로 인간에게는 소금이 필수불가결하다.

“제기랄, 제기랄. 그래, 도축할 때 피를 다 빼버렸지. 그리고 따로 소금을 섭취할 경로는 없었어. 미치겠네. 하다못해 선짓국이라도 끓였어야 했는데. 어차피 방법을 몰- 이게 아니야! 젠장, 소금, 소금. 어떻게 구하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금이 문제인 게 맞는 것 같았다. 원래 육식동물의 경우에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때 그 동물의 피를 같이 먹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염분을 섭취할 수 있다. 그리고 초식동물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소금을 섭취한다.

그러나 루우는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들어오는 염분이 없어도 오줌이나 땀을 통해 염분은 계속해서 배출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최근 들어 심적인 부담을 겪은 것과 더불어 테실라가 의도적으로 많은 물을 마시게 한 것 때문에 가속화됐을 것이다. 그것이 계속되었으니 루우의 체내 염분량이 위험한 수치까지 떨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젠장, 소금.”

문제는 당장 소금을 공급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먼 북쪽에 있을 바다까지 갔다 올 여유는 없다. 아니, 사실 바다에서도 소금을 구하기는 꽤 힘들다. 그렇다고 암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혼수상태인 소녀에게 생고기를 먹인다는 방법도 불가능. 현재 저장된 순록 고기는 모두 피를 빼낸 것이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죽을 무두질하기 위해 이런저런 부산물을 모아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피를 따로 모아놓은 건 아니다.

“잠깐, 피?”

하지만 피는 있다.

테실라는 주의 깊게 생각했다. 과연 드래곤의 피는 인간에게 유독할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루우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피를 먹이는 것도 무작정 시도할 수는 없었다.

“피, 피··· 젠장. 괜찮을까? 안전할까? 젠장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빌어먹을, 빌어먹을. 어떡하지?”

테실라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자신보다 허약할 노인의 목소리였지만 병사는 공포를 느꼈다.

“꼬맹아, 꼬맹아. 뭘 그리 망설이는 게냐? 다 알고 있다니까. 문 열어. 큭큭큭.”

원칙대로라면 저 침입자를 죽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지금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인 것은 자신이었고, 이 경우 해야 할 일은 <네가 죽더라도 경고를 울려라>라는 것이었다. 즉,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 인간으로서 그 원칙을 따르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에게는 생명의 소중함과 동시에 뷔트라스의 정예병이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하등 도움 될 것이 없지만 수십 년간 받아온 사회화와 교육으로 포장된 세뇌는 생존 본능마저 억누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병사는 덜덜 떨면서도 고민을 했다.

“쩝, 자꾸 그러면 별수 없지.”

노인이 그렇게 말을 하자 노인이 들고 있는 지팡이의 끝에 박혀있는 수정구슬의 요사스러운 빛이 한층 강해졌다. 당장이라도 그 안에서 뿜어진 빛이 자신의 목줄기에 시원한 바람구멍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병사의 갈등은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여, 열겠습니다.”

“그래?”

순간 노인은 <필요 없어!>라고 말함으로서 그 병사에게 당황과 절망을 안겨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직후 병사가 단숨에 문을 열었기에 그 생각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문짝만으로 서민의 1년 수입은 넘을 것 같은 화려한 문이었다. 그 안으로 최고의 조각가와 목수들이 엄청난 정열을 쏟아부어 만든, 병사의 1년 수입, 아니 어쩌면 목숨값보다 비쌀 화려한 실내장식의 방이 드러났다. 아무리 까다로운 귀족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했다.

‘흠, 역시나 잘 골랐군.’

뷔트라다 알펜은 그 방의 정경만 보고도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고, 그래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철컹!

방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 통일된 디자인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다. 입은 갑옷은 딱 봐도 고급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마법사인 알펜의 눈에는 좀 더 특별한 것도 보였다.

‘어이쿠, 저거 못해도 백 년은 묵은 놈이구먼.’

알펜은 이 방을 꾸민 목수와 조각가들이 모두 모여 생애 최대의 대작을 만들어 내도 그 기사들이 입은 갑옷 한 벌도 못 살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기에 더더욱 만족할 수 있었다.

‘흠, 정말 저-엉-말 잘 골랐군. 탁월했어.’

“대담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혹시 둘 다인가?”

“홍보라고 하는 거지. 패배한 왕자.”

알펜은 비아냥거리는 라뮈에게 눌리지 않고 자신도 비아냥거렸다. 라뮈 주변에 서 있던 기사들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면갑 때문에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알펜은 그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것이라는 데 앞으로 평생 마실 포도주를 모조리 걸 자신이 있었다.

‘뭐, 그 포도주가 0병이라는 데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내기지만.’

“감히 위대한 뷔트라스의 왕족이 머무는 장소에 이따위로 쳐들어온 놈이!”

“왕자님에 대한 모욕, 용서할 수 없다!”

“도대체 병사들은 뭘 한 것인가!”

기사들의 반응으로 봐서 혼자서 한 무의미한 내기는 이기긴 한 모양이었다. 알펜은 그것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여기서 그것이란 내기 이야기가 아니라 화를 내며 달려들려는 기사들에 대한 것이다. 알펜은 기사들을 무시하고 그 뒤에 있는 왕자를 향해 웃음을 보였다.

“질문하는 놈은 그 순간에만 바보가 되지만 질문하지 않는 놈은 평생 바보가 된다고 하지. 자, 패배한 왕자. 패배한 놈은 그 순간에만 패배자가 되지만 패배해보지 못한 놈은 한순간에 훅 가버릴 수 있다고 말하면 이 변주에는 동의할 수 있냐?”

라뮈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주정뱅이.”

“아하, 관찰력은 충분하군!”

알펜은 낄낄댔다. 라뮈는 다시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손짓을 해 병사를 물렸다. 그 손짓의 의미는 명백했다.

“거참 자비로우신 왕자님이시군. 저 불쌍한 병사의 목이 떨어질 일은 없겠어.”

“위대한 소드마스터의 고마우신 가르침 덕분이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한 마법사와 한 왕자의 괴이한 언동에 왕자를 호위하던 기사들도, 죽다 살아난 병사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아무리 안면이 있다고 해도 왕자에게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없고, 그걸 허용할 왕족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라뮈가 란데로스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심적으로 많이 변했다는 것과, 알펜 역시 여러 일을 겪으며 극단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어도 결국 그 본질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간 두 사람은 선을 넘지 않은 이들이 혼란에 빠지건 말건, 선을 넘어간 자신들만의 의사소통을 주고받았다.

“그나저나 란데로스의 <고위 실종자>, 아니 <고위 용의자>일까? 뭐든 간에, 그런 고명하신 분이 이 패배자에게 무슨 용건인지?”

기사들은 그제야 알펜의 정체를 알아챘다. 알펜은 그들을 깨끗하게 무시하며 라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모습이 역력했다.

“역시! 좋아, 좋아. 그 멍청한 녀석보다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군.”

“당신 말대로 패배한 덕분에 배운 게 좀 있거든. 좋아, 당신, 재미있어. 그 동네에 넘쳐나던 멍청이들과 달리 감이 좋은 게 참 맘에 들어. 오늘은 뭔가 역사적인 것이 시작될 느낌인데. 큭큭큭.”

그러면서 라뮈는 포도주 잔을 들어올렸다. 예법에도 맞고, 왕족으로서의 자존심에도 적당한 최고급의 유리잔과 거기에 담길 자격이 충분한 최고급 포도주가 반짝였다.

“어째서 적인 나에게 왔는지 물어보면 바보라고 할 텐가?”

알펜은 고개를 저었다.

“사려 깊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식적이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지. 그런 점에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는 아니더라도 나의 적을 함께 상대할 동료로는 충분하며, 동시에 적의 적이 역시나 나의 적이라도 정말 증오스러운 놈을 족치기 위해서는 적의 적과는 일단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해두지.”

그리고 왕자는 눈을 찡긋하며 한마디를 더했다.

“그 손가락,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패션인데.”

라뮈는 폭소를 터뜨렸다.

“으, 으흐흐흐하하! 끝내주는군!”

시정잡배처럼 예의 없이 웃던 라뮈는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알펜 뷔트라다, 그러면 일단 란데로스 여기저기의 쥐구멍들에 대한 정보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떤가?”

알펜도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답했다.

“쥐새끼를 위한 고용 계약서가 우선 작성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라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스하기 짝이 없는 배려, 마음에 드는군.”


작가의말

20210701 내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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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메이크를 안하고 일단 달리는 이상, 퀼리티 저하는 각오했습니다. 덕분에 아직 일주일이 안 됐지만 한 편... 자충수라는 느낌도 듭니다만, 일단 지금까지의 분량 자체가 워낙 엉망이라...어차피 이러는 거, 속도라도 좀 더...

2. <염분이 결핍되면 단기적인 경우에는 소화액의 분비가 부족하게 되어 식욕감퇴가 일어나고, 장기적인 경우에는 전신 무력 ·권태 ·피로나 정신불안 등이 일어난다. 또 땀을 다량으로 흘려 급격히 소금을 상실하면 현기증 ·무욕 ·의식혼탁 ·탈력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뚜렷한 기능상실이 일어난다.> 라고 합니다. 사실 이미 루우는 이런 증상이 있긴 했지요.

3. 과연 드래곤의 피는 영약인가, 독약인가!

...하지만 희대의 영약이라 해도 루우는 먼치킨이 안 될거야, 될리가 없잖아. 그런데 되면 재미는 있을지도요? (먼산)

4. 맛간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데헷★ 란데로스 멸망 플래그가 자꾸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0

  • 작성자
    Lv.9 에일
    작성일
    10.04.30 00:01
    No. 31

    잘 보고 갑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고양이젤리
    작성일
    10.04.30 17:58
    No. 32

    테실라 해뜰날 오기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굳굳
    작성일
    10.04.30 23:17
    No. 33

    나도 드래곤 피를 으흐흐흐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1 호연천자
    작성일
    10.05.01 15:18
    No. 34

    드래곤피라... 하앍 용혈 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창월
    작성일
    10.05.01 17:26
    No. 35

    한두방울 먹었다고 바로 반응안하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풀잎열매
    작성일
    10.05.03 09:09
    No. 36

    옆집폐인 님// :]
    필딘 님// 감사합니다...
    소신권 님// 일반적으로 먹을 일은 없겠지만요.
    라하니스 님// 아직은 비밀...입니다.
    마티마투 님// 어지간해선 없겠지요.
    세상의아침 님// 감사합니다.
    허브 님// 덩치가 있으니 조금만해도 꽤 나오겠지요.
    삶의 정석 님// 감사합니다.
    닐니 님// 과연 어떠려나요.
    마리오네트 님// 나름 현실적으로 써본다고 해보지만 실제라면 정말로 각양각색의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겠지요.
    쿠레타노 님// 감사합니다.
    소슬꿈 님// 현대의 상식은 아니니 괜찮겠지요.
    크레니스 님// 저도 자세히는 모른답니다. 다만 순록이끼는 실존하는 이끼로서 비상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이끼에 속합니다.
    이파리 님// 어쩐지 그렇게 되었네요.
    에스카론 님// 비타민 A 같은 지용성 영양분의 함량이 문제가 되겠지요.
    검은송곳니 님// 감사합니다.
    지드 님// 자주 잊곤하는 사실이죠.
    무섭다翁 님// 감사합니다.
    키세스 님// 네, 마나 같은 배경 설정 자체는 통상의 판타지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노린 부분도 있으니까요.
    목나향 님// 구르는 게 일이지요.
    정문학 님// 한방에 파워 인플레가 되는 일은 없을겁니다.
    푸르비 님// 감사합니다.
    메이사이 님// 죄송합니다. 더 늦어질 것 같습니다.
    경태풍 님// 글쎄요...?
    칼라모기 님// 감사합니다.
    darklight 님// 감사합니다.
    레이젠 님// 나름 광기 같은 걸 표현해보려 했습니다만... 괜찮았는지요.
    北斗大槍 님// 사실 작가로서 의도는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나름 당위성을 준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보이신다면... 결국 그건 제가 제대로 전달을 못한 문제겠지요.
    디노스 님// 제 의도를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표현이 부족해서 잘 전달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L.K 님// 그렇지요...
    에일 님// 감사합니다.
    연꿈술사 님// 언젠가는 오겠지요.
    생각하고 님// 맛은 보장드릴 수 없습니다.
    호연천자 님// 무협 쪽은 잘 몰라서... 무협적으로 보면 영약으로 취급되는걸까요.
    창월 님// 한두방울로는 별 일 없겠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다다닥후
    작성일
    10.05.05 22:46
    No. 37

    테실라의 각성이 있길 바라는 마음...

    왠지 해바라기에게 직싸게 맞고 겨우겨우 오해를 풀 듯한 상황이 예상되는건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9 흑우b
    작성일
    10.05.07 21:30
    No. 38

    재밌게 보고 갑니다. 해바라기 기사랑 테실라와 한바탕 할날이 기대되네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3 카리수마
    작성일
    10.06.01 13:19
    No. 39

    염화나트륨이 고갈되면 그게 포함되는 분비물들이 서서히 줄다가....

    삼투압이 개판이 되면 신경계도 맛이 가 버리죠;;;;

    자자 체내 삼투압 유지를 위해 염분이 썩인 용액(=피)를 섭취 ㄱㄱ

    호감도가 100이 올랐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아힌Ahin
    작성일
    10.07.14 23:44
    No. 40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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