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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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정
작품등록일 :
2013.01.19 17:29
최근연재일 :
2013.01.26 22:08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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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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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수 :
41,653

작성
13.01.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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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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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화

DUMMY

소정이와 헤어지고 난 직후 주저앉았던 나는 약 10분을 그렇게 앉아있다 애써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도저히 교실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그 교실엔 내 편이 없었고 이미 1교시가 시작된 그 때 시선이 집중될 것을 생각하니 그 조차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해나가야할지, 반에는 언제 돌아가야 할지, 아니 그 모든 것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 지와 소정이가 왜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학교 뒤의 작은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학교의 담과 학교의 건물 사이에 만들어진 틈과 같은 작은 공간이기에 주로 담배를 피는 학생들이 애용하는 곳이지만 역시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틈으로 조금 들어가 회색빛 콘크리트 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파란 하늘과 그 속에 몽실몽실한 구름이 흘러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기에 여기저기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내 마음 속은 가로수가 말라 있는 풍경의 잿빛 하늘일 뿐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고 있자 다시금 눈물이 흐른다.


'눈이.. 부셔서야..'


내 눈에만 벌써 장마가 왔나 보다. 끊이지 않고 내리는 지루한 장마처럼 아무리 닦아도 눈에서는 계속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목에서도 소리가 나오려 하지만 필사적으로 아랫입술을 윗니로 깨물고 틀어막는다.


내가 슬프다는 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너무 한심했다. 고교생활의 꽃이라는 친구를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만 사귀고 그걸로 좋다며 말도 안 되는 우월감에 빠져있었다. 마치 자신이 인기인인 양.


'내가.. 한소정인양..'


지나가는 소위 찌질이들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고 소정이에게 달라붙는 아이들을 모두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찌질이는 나잖아.'


눈물은 계속 흐르고 있지만 입으로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내가 너무 웃기다.


'골계미.. 자연의 질서가 추락되었을 때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생기는 미의식..'


내 속의 질서가 추락되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이토록 우스꽝스럽다.


'미의식이라는게 뭐야.. 내가 지금 아름답다고? 이렇게나 한심한데..?'


공부를 할 때는, 문제를 풀 때는 잘만 이해했던,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개념이 점차 이해불명이 되어간다.


'이젠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아..'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하늘을 좋아하는 나는 늘 하늘을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곤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하늘로 향하여 카메라를 켰다.


찰칵


휴대폰 프레임 속에 들어가도 여전히 눈부신 하늘이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하지도 않았던 사진 이름 설정을 한다.


[하늘을 우러르니 너무나 부끄럽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보니 곧 수업종이 쳤다. 순간 정신이 확 들어 틈에서 나온다. 정말 가기 싫고 마음 같아선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교무실로 가 담임선생님을 뵙는다. 수업종이 치고 1교시에 들어오신 교과선생님께서 먼저 담임선생님에게 말을 해뒀는지 화나신 담임선생님은 나를 훈계하신다.


"강세영! 너, 공부도 열심히하고 성실해서 선생님이 좋게 봐줬더니 이게 뭐야?! 전교 1등이라고 칭찬해준 바로 다음 시간에 땡땡이를 쳐?"


"죄송...합니다.."


"...1교시 무단결석은 지워주마. 대신 한 달간 주번이다. 알겠어?"


"네..."


"가서 2교시 수업 들어."


"감사합니다.."


딱히 변명이나 해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결국 잘못한 건 나이기에. 이미 2교시가 시작되고 10분 정도 지난 시간이다. 나는 내 발이 너무나도 무거운 걸 느끼며 반으로 갔다. 최대한 조용히 뒷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일순간 반의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 조용!"


2교시의 교과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셨다.


"아, 세영이구나."


"아, 선생님 저.."


"아까 담임선생님이랑 대화하고 있는 것 봤다. 괜찮으니까 앉거라."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천천히 내 자리로 가 자리에 앉는다.


"아, 그리고 전교 1등 축하한다."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지 칭찬을 해주신 선생님이 순간 너무 미웠다. 나는 어떤 반응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내가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아시고 수업을 진행하셨다. 수업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아까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신경이 쓰였던 짝의 책상과 내 책상과의 틈. 늘, 매점에 가려고 나가기 전까지도 붙어있었던 두 책상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그 틈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여서 계속 책상과 책상사이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2교시가 끝나고 나의 짝은 종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정이 쪽으로 갔다. 많은 여자아이들이 소정이 쪽으로 몰렸다. 평소에도 여자아이들은 소정이에게 몰렸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 것 같다. 하지만 소정이는 계속해서 엎드려있을 뿐이었고 대꾸도 없었다. 나는 짝이 자리에 없는 틈을 타 신경이 쓰였던 책상과 책상의 틈을 없애려 짝의 책상을 끌어와 내 책상에 붙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3교시 교과 선생님이 반에 들어오셨다.


"자, 자리에 앉아!"


모여있던 아이들이 흩어지고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내 짝도 우리의 자리 쪽으로 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앉는 순간 어떤 위화감을 느낀 짝은 나를 확 노려보았고 거칠게 책상을 움직여 책상을 떼어놓았다.


그것이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2교시 내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나를 피하려 일부러 책상을 띄워놓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명확하게 사실에 직면하게 되니 마음이 요동쳤다. 나는 바로 짝의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딴짓을 하는 척하며 책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계속 같은 자리에 놓여있던 필통을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필통 밑 책상에 적혀있던 글을 발견했다.


[찌질이년은 꺼져라]


"...!!"


큰 소리를 낼 것만 같아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대신 입에서 나오려던건 눈에서 흘러나와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짝에게 들키지 않도록 급하게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서영이는 어딨니?"


3교시 교과선생님이셨다.


"아, 거기 있구나. 전교 1등이라며? 축하한다!"


순간 나는 책상 위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왜.. 왜 그러니? 어디 아파?!"


당황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군대는 아이들의 목소리.... 조금씩 거리를 더 두는 짝의 책상. 머리 속이 엉망진창이다.


"선생님!! 세영이 아까부터 배가 너무 아프다고 했어요. 2교시까지 참는다고 계속 앉아있었는데 안 되겠어요. 제가 양호실로 데려갈게요!"


상호의 목소리였다.


"그.. 그러니? 그래도 세영이 상태를 보니 부축해서 가야겠는데 넌 남자애고.. 키도 세영이랑 안 맞으니.. 여자애들 중 아무나 세영이 양호실에 좀 데려가 줘."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생님의 당황한 목소리.


"사.. 상호야. 어서 세영이 양호실로 좀 데려가주렴."


".... 네!"


상호의 발소리가 들린다.


"세영아, 일어날 수 있겠어?"


"..."


분명 반 전체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것이다. 너무 싫다. 일어나서 현실에 마주하기 싫다. 하지만 옆에 있는 상호에게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다. 살짝 몸을 일으킨다.


"잠깐 실례할게."


상호는 내 팔을 잡아 나를 자리에서 일으킨다. 내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려했지만 키의 차이가 심해서 잘 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쿡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창피하다.


'죽고 싶어..'


상호도 이 방법은 안 되겠다고 깨달았는지 팔을 놓는다. 그리고 내 앞으로 걸어가 몸을 낮추어 등을 내준다.


"업혀."


"... 뭐?"


"업히라고."


"자.. 잠깐. 싫어.."


"잔말말고 업혀."


너무나도 부끄럽다. 남자의 등에 업혀보는건 어렸을 때 아빠에게 업히는 것 빼곤 처음이다. 하지만 상호와 나를 뺀 38명의 눈이, 76개의 눈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나는 결국 상호에게 다가가 상호의 어깨애 내 팔을 올렸다. 상호는 내 다리를 잡고 일어섰다.


"흣..."


스타킹은 신었지만 너무나도 부끄럽다. 부끄러워 죽어버릴 것 같다. 스타킹 위로 상호의 손길이 느껴졌고 그 느낌이 내 몸을 너무 뜨겁게 만들었다.


상호는 교실을 나가 양호실로 걸어간다.


"... 무슨 일이야."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꼭 말해줘. 너 지금 이대로 놔두면 부서져 버릴 것 같아."


"...."


"니가 정말 부서져 버릴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


순간 눈에서 다시 뜨거운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상호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상호의 흰색 와이셔츠에 내 눈물이 번져나간다. 분명 물기가 전해져 차가움이 느껴질테지만 상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한다. 그렇게 양호실 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내리려 했지만 상호는 나를 내려주지 않았다.


"바깥 공기 좀 마실래?"


"....안 돼."


"왜?"


"양호실 간다고 해놓고 양호실에 안 가면 또 무단결석 된 단 말이야. 아까 담임선생님께 1교시 안 갔다고 엄청 혼났어. 또 결석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괜찮아. 양호실에 가기만 하면 되니까. 쉬는 시간 종치기 전까지만 가면 아무도 몰라."


"..."


"여름 공기가 마시고 싶어. 그러자."


나는 상호의 등에 다시 얼굴을 묻고 말했다.


"... 몰라 마음대로 해."


"그래, 나가자."


그리고 상호는 출입문 쪽으로 서서히 발을 옮겼다.


"야 눈물은 괜찮은데 콧물하고 침은 내 옷에 닦지 마라?"


"안 닦았거든?!"


나는 상호의 볼을 잡아 양쪽으로 늘였다.


"으아악 항복 항복!"


"바보! 바보!"


"아야야야야! 하하하하"


"뭐가 좋다고 웃어."


내가 볼을 잡고 마구 늘이고 있기에 상호의 발음이 막 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호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 말할 수 있는 힘은 생겼나보네. 다행이야."


나는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져 상호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내려줘."


"응?"


"내려달라고! 바보야!"


"싫은데~"


"뭐라구!?"


"이럴 때 아니면 여고생 다리 언제 만져보냐~"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변태!! 내려줘!"


"아하하하하하하"


"경찰 아저씨! 여기 치한이 있어요!!"


"그래 치한이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오늘 나랑 재미있게 놀아볼까?"


"으악, 그게 뭐야!!"


상호는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나를 내려주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떠들며 여름의 상쾌한 공기를 마셨다.


"세영아, 하늘 좀 봐."


"응?"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다.


"와아아..."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분명 같은 풍경이지만 불과 몇 시간 전과 지금의 하늘은 너무나 다르다.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안정된다. 상쾌한 여름 공기, 짙은 녹음의 나무들, 그리고 파란 하늘. 너무나 아름답다.


"고마워, 상호야.."


"응? 뭐라구?"


"됐어! 못 들었으면!!"


"뭐야 뭐야 알려줘!"


"흥이다 치한 아저씨!"


"하하하하"


상호는 끝까지 나를 내려주지 않았고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변태라던가 치한이라던가 말을 하긴 했지만 상호의 등과 손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그 온기가 나에게 전해져 내 마음 속 말라붙은 나무에게서 잎이 나게 해주었고 잿빛 하늘을 걷어내 푸르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종치기 10분 전이 되어 다시 학교로 들어가 양호실로 갔다. 양호선생님은 흔치 않은 광경을 보고 놀라며 창가 자리의 침대에 나를 눕히라고 상호에게 말했고 상호는 그제서야 나를 내려주어 침대에 눕혀주었다. 양호선생님의 질문에는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런 것일거라 둘러대고 1시간 정도만 쉬겠다고 말씀드렸다. 상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았고 나도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다보니 곧 종이 쳤다. 아이들의 쿵쾅대는 소리를 들으니 나는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서 두려움이 계속 스멀스멀 흘러나왔고 눈물은 또 차올랐다.


'.... 싫어...'


눈물을 상호에게 보이기 싫어 닦으려는 순간 내 시야가 가려졌다. 상호의 팔이 내 눈 위에 올려진 것이다. 부드러운 상호의 와이셔츠 소매는 다시 내 눈물로 젖어들어 갔다. 옆에서 상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


"하지만.. 혼자 힘들어하진 마. 언제든지 말만하면 내 팔을 내 줄테니까."


나는 그 말에 더욱 마음이 아파와서,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눈은 마르지 않는 솟는 샘처럼 변해갔다. 나는 내 눈을 덮은 상호의 팔을 두 손으로 잡고 쉬는 시간 내내 소리없이 흐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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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1.23 22:39
    No. 1

    로맨스는 정말 머리털 나고 처음 읽어봅니다.
    미스테리, 쓰릴러, 무협을 좋아해서 다른 장르는
    안봤거든여
    잘쓰시는군요...
    잘읽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튜정
    작성일
    13.01.23 23:18
    No. 2

    흐엇...
    독자님이 처음 보시는 로맨스 작이 제 작품이라니 부담이 크군요..!
    더 잘 쓰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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