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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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라찌니
작품등록일 :
2013.01.1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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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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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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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마법 수업시간(15)

안녕하세요. 테트라찌니입니다.




DUMMY

이 소설은 그림 파일로도 연재됩니다. 그림 파일로 소설을 읽고 싶으신 독자 여러분께서는 하단 후기 페이지부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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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 대신 행동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 기도하는 중이었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짧지만 강력한 기도였다.

지혜는 기도를 마친 다음 의자에 푹 기댔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거북이는 그녀가 스스로 눈뜰 때까지 콜라를 마시며 기다렸다. 지금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그녀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한몫했다. 그렇게 4분이라는 짧지만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농담이지? 거짓말이지?”

지혜의 들뜬 목소리였다. 잠에서 깨어난 왕비님의 미소 속에는 동생에 대한 신뢰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흠, 거울을 가져왔다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누나 표정이 답을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정말? 아니기만 해봐.”

지혜는 핸드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들고는 이내 아쉬움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넌 오래 살 운명인가보다.”

“당연하죠. 생명선이 손등까지 올라타는 거 보여요? 전 아마 100살도 넘게 살 거예요.”

거북이는 손바닥을 내보였다. 확실히 손금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혜는 그의 손을 붙잡고는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렸다.

“불쌍해. 100살이 넘게 모태 솔로라니.”

거북이는 황급히 손을 빼내고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외로워 죽겠는데 그런 악담을 할 줄이야! 그러나 선택은 곧 후회로 바뀌고 말았다. 머리에 혹이 생긴 것만 같았다. 정말로, 아팠다.

“누나에게 대든 벌이란다.”

지혜는 기분 좋게 콜라를 마시며 승리를 자축했다.

“네 말대로 믿음이 강력이라고 치자. 그다음은? 설명해주려면 끝까지 해줘야지.”

“그러려고 했는데 누나가─.”

“어허!”

“네, 제가 잘못했어요.”

거북이는 순순히 패배를 시인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누나한테는 못 당하겠어요. 우선 믿음이 강력이라면 우주의 크기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

“우주의 크기?”

“네, 강력은 원자핵보다 작은 쿼크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믿음을 느끼면서 살죠. 먼저 이 질문부터 할게요. y축 시간이 x축 시간과 다른 점이 뭐죠?”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곳에 모였다는 거지.”

“맞아요. 그것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얘기는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하나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결과를 말하자면 후자예요. 그리고 이건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말해줘요. 바로…….”

거북이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z축 시간에서 사는 관찰자의 눈에는 우주의 크기가 겨우 쿼크 정도로 보인다는 거예요.”

충격적인 가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지혜는 말이 안 된다는 눈치였다. 그녀의 두 눈이 부엉이처럼 커졌는데, 표정은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바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상상이 안 되죠? 이 말이 옳다면 우주의 크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커야 한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거북이는 긴 한숨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강력은 우리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힘이에요. 너무 작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을 믿음으로 본다면 절대로 작지 않아요. 오히려 엄청나게 크다고 볼 수 있죠. 특히 y축 시간에서는 믿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즉 상대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어요.

우리가 강력을 작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힘이라고 보듯이, 관찰자도 강력을 우주에서 일어나는 힘이라고 볼 거라는 말이죠. 쉽게 말해 우리가 작다고 생각했던 힘이 엄청나게 큰 힘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작은 힘이라는 거예요.”

“이상한 가설이야.”

지혜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거북이는 그 속도를 더욱 높였다.

“강력은 x축에선 미시세계, y축에선 거시세계, z축에서는 다시 미시세계에서 작용하는 힘이에요. 어이없는 건 z축 시간에서 본 미시세계가 우주라는 거죠. 그런데 이상한 점은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만약 우주의 크기가 원자핵보다 작다면 강력과 약력, 중력과 전자기력의 적용 범위가 같다고도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빨리 말해.”

지혜는 다음에 나올 말이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거북이는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말문을 열었다.

“y축 시간에선 강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이 가진 힘의 크기가 모두 같단 걸 말해줘요.”

“그럼 정말로 우주의 네 가지 힘을 통합시켰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이 이론이 정답이라면요.”

거북이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어떻게, 어떻게 했어? 어떻게… 이 네 가지 힘을 통합시킬 수 있었어?”

지혜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만물의 최소단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누나는 이걸 뭐라고 생각하죠?”

“현재로서는 당연히 쿼크라고 할 수 있지.”

거북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혜가 놀라며 되물었다. 그녀는 곧장 쿼크보다 더 작은 물질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끈이론에서 주장하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떠올렸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고 또 관찰할 수도 없는 물질이었다.

“끈? 끈이론에서 말하는 끈?”

거북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끈이에요. 그리고 끈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모르겠어. 그런 게 있긴 해?”

지혜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할 뿐이었다.

“물론이에요. 바로 느낌이죠.”

“느낌?”

“네. 우리는 과학자니까 느낌 대신 끈이라는 말을 써서 설명해 줄게요.”

거북이가 잠시 목을 가다듬는 동안에 지혜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이 놀라는 날이라고. 과학하고는 상관없던 단어들이 과학과 만나고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상한 이론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거북이가 입을 열었다.

“끈은 존재해요. 모든 우주 만물의 최소 단위죠.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건 분명해요. 이건 느낌이니까요. 요점만 말하자면, 누나가 알아야 할 것은 끈의 기본 성질이에요. 누나는 끈이 뭐라고 생각하죠?”

“최소 단위로만 알고 있지. 학자들은 끈이 진동한다고 하던데, 그게 기본 아닐까?”

지혜가 대답했다.

“거의 맞았어요.”

“거의?”

“진동하는 건 맞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성질이 있죠. 그건 바로, 끈이 물질을 만든다는 거예요.”

지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북이는 그녀의 입을 계속 열게 할 작정이었다.

“끈의 제1법칙. 끈은 물질을 만든다. 네 가지 법칙 중 첫 번째 법칙이 바로 이거랍니다.”

거북이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당당하게 내민 가슴에서는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두 눈은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계속할까요?”

지혜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누나?”

“……그래, 말해줘.”

지혜는 겨우 입술을 뗄 수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세게 문질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지만, 지금은 동생의 말을 더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 같던 말이 진실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네 말대로 끈이 물질을 만든다고 치자. 어떻게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거야?”

“좋은 질문이에요.”

거북이는 기분 좋게 응수했다.

“먼저 끈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끈은 우리가 관찰한 것을 물질로 만들어줘요. 만약 누나가 원하는 현실을 관찰할 수만 있다면, 끈은 더욱 강하게 진동하다가 마침내 물질을 만들어 줄 거예요."

“원하는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죠.”

거북이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관찰은 눈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죠. 그러고 보니 큰일 났네요. 이걸 어떡하죠? 누나라면 어떡할래요? 보이지 않는 걸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거북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지혜는 화를 내려다가 픽 웃고 말았다.

“믿어야겠지. 보려고 말이야.”

거북이는 턱을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은 조금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해?”

“누나는 믿어야 볼 것 같아요, 아니면 봐야 믿을 것 같아요?”

“당연한 걸 왜 묻니? 봐야 믿지.”

“틀렸어요. 우리는 믿어야 볼 수 있어요.”

“설마, 농담이지?”

지혜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하자 거북이는 목을 가다듬더니 옛날이야기 하나를 털어놓았다.

“아주 먼 옛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콜럼버스의 함대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의 일이에요. 믿기지는 않지만, 누구도 배를 보지 못했다고 해요. 배들이 수평선 위에 떠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들의 뇌나 경험 속에 범선이라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우습죠? 결국 주술사가 배의 존재를 원주민에게 말해준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배를 볼 수 있었다지 뭐예요.”

“이상한 얘기네.”

“그렇죠?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예요. 보면 믿는 게 아니라 믿어야 본다는 사실이죠.”

“어려워.”

지혜가 투덜거렸다.

“네 말은 그냥 믿으면 다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잖아.”

그녀는 씩씩거리며 말을 더 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닫아버렸다. 대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무섭게 째려보았다.

“말이란 건 참 어려워요. 믿음이란 단어는 더 그런 것 같아요. 누나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 하지만 일단 설명을 듣고 나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관찰은 보는 거예요. 그런데 보기 위해선 믿어야 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믿으란 말은 안 할 테니까. 대신 이렇게 말할게요. 먼저 생각하세요.”

“생각?”

“네. 생각했다는 얘기는 그것을 봤다는 얘기고, 봤다는 얘기는 그것을 믿었다는 얘기가 되죠. 그리고 보는 건 관찰하는 거구요. 사실 x축 시간에서는 생각을 사용해서 물질을 만들어요. 생각은 말이나 행동으로 바뀌거든요. 이것들도 물질이거든요. 그러니까 말은 표현된 생각이고, 행동은 움직이는 말이죠. 이렇게 생각, 말, 행동을 사용해서도 원하는 현실을 선택할 수 있어요. 좀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죠.”

“도저히 못 믿겠어.”

지혜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네 말에는 오류가 있어. 난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했어. 원하는 현실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단 말야. 그런데도 되지 않았지.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누나가 생각만 했기 때문이에요.”

거북이는 손가락 두 개를 쫙 폈다.

“끈의 제2법칙. 끈은 자기 자신을 물질로 만들지 못한다.”

“자기 자신? 끈은 느낌이라고 하지 않았니? 생각도 끈이라고 할 수 있어?”

“물론 생각과 느낌은 다른 개념이에요. 하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죠. 먼저 생각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릴게요. 생각은 느낌, 즉 끈을 관찰하는 행위예요.”

거북이는 차분한 어조로 끈과 생각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끈은 우리가 관찰하는 걸 물질로 만들어줘요. 메두사처럼 보는 사람을 무조건 돌로 만드는 기능이죠. 그런데 생각은 끈을 보는 행위에요. 생각에는 관찰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끈은 자기 자신을 물질로 만들어야 해요. 메두사가 거울을 보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메두사도 여자예요. 평생 거울을 안 보고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예외를 두는 거죠. 결국, 끈의 제2법칙에 따라 끈은 자기 자신을 물질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래서 생각은 생각으로 그치고 말죠.”

거북이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생각의 기본 성질은 말이나 행동으로 바뀌는 거예요. 누나가 쓴 방법은 x축 시간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그냥 답습한 것밖에는 안 돼요. 오히려 생각만 했기 때문에 역효과가 났을걸요?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음, 누나는 원하는 현실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고 했죠?”

“응,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빌었어.”

그 말을 들은 거북이의 얼굴이 신문지를 구긴 것처럼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누나는 누나가 원하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어요.”

“왜? 어째서?”

“끈의 제2법칙 때문이죠.”

거북이는 지혜를 추궁하듯이 몰아붙였다.

“누나는 원하는 현실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없을 거예요. 만약 관찰했다면 지금 누나가 절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누나는 누나가 원하는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어요. 왜냐하면 원한다는 행위 자체가 생각이기 때문이죠. 생각은 말이나 행동만 만들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 생각하지 말고 믿으라는 얘기야? 종교인이 말하는 것처럼? 무작정 믿기만 하면 돼?”

“진정하세요, 누나.”

거북이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믿는다는 행위 역시 생각이 들어가기 쉬워서 저도 추천하지 않아요. 강조하지만, 끈은 우리가 관찰하는 것을 물질로 만들어 줘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관찰해야 할까요?”

“생각 말고 다른 게 있어?”

“제가 처음 말한 얘기 기억나요? 끈이 바로 느낌이라는 얘기. 우리는 느낌으로도 관찰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느낄 때, 끈이 우리가 느끼는 것을 대신 관찰해줘요. 반면 누나가 생각한다면, 끈은 관찰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에게 관찰당하고 말아요. 생각은 끈이 만든 손거울이니까요. 그러니 원하는 현실을 생각하지 말고 느껴야 해요. 이게 올바르게 관찰하는 방법이죠.”

“그럼 느껴야 한다는 거네?”

지혜의 안색이 조금 펴졌다.

“무작정 믿는 것은 독이나 다름없어요. 믿는다는 생각을 할 게 뻔하거든요. 원하는 현실을 느끼세요. 그게 가장 좋은 관찰 방법이니까. 아니, 유일한 관찰방법이죠.”

지혜는 이제 결론을 내려고 했다.

“그냥 느끼기만 하면 되는 거야?”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 끈의 제3법칙. 물질의 형태는 끈을 진동시킨 장소를 따른다. 쉽게 말해 원하는 현실에서 직접 끈을 관찰해야 해요.”

“원하는 현실로 어떻게 가? 말이 안 되잖아.”

“맞아요. 우린 갈 수 없죠. 하지만 불러올 순 있어요. 마치 게임 세이브 데이터를 로드하듯이 말이죠. 우리에겐 상상이라는 멋진 도구가 있거든요. 참, 누난 어떤 걸 물질로 보죠?”

“자동차, 집, 사람, 이 식탁도…… 뭐 이런 거 아냐?”

“말과 행동도 물질이에요. 또 있어요.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가 물질이에요. 결론을 말하자면, 원하는 현실을 관찰할 수만 있다면 원하는 현실 그 자체를 물질로 만들 수 있죠. 일단 물질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동해요.”

“세상에…….”

“놀랍죠? 이 법칙은 통일장 이론에 포함된 자연 현상이었어요. 누나는 과학자니까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오해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믿음이 뭐죠? 믿음은 강력이에요. 과학과 종교는 같은 힘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싸우고 있었죠.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종교와 철학은 영감이라는 도구로 과학을 도울 수 있고, 과학은 실험이라는 도구로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으니까요.”

거북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통장과 도장 하나를 식탁 위에 꺼내놓았다. 그러고는 일단 보라며 통장을 불쑥 내밀었다.

‘얘가 지금 뭐하자는 거지?’

지혜는 얼마나 들었길래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생각하면서 통장 마지막 페이지에 시선을 가져갔다.

그녀는 또다시 마네킹이 되었다.

‘대체 0이 몇 개야? 세상에…….’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통장에는 3억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했죠? 성공했다고.”

거북이는 가방에 또 손을 가져갔다. 잠시 후 그가 자동차 열쇠 하나를 꺼냈다.

“외제 차 열쇠잖아?”

“네, 신형 A7이에요.”

거북이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그동안 숨겼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간단한 비밀이었다. 로또, 그것도 1등이었다. 긴말이 필요 없었다. 지혜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거북이의 신변이 걱정돼서 꾹 참았다.

“축하해.”

지혜가 통장을 돌려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에겐 이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걸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질투와 희망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몇 초 후, 둘의 싸움은 끝이 났다. 승자는 희망이었지만 반쪽 짜리 승리였다. 절망이 보였다. 빌려달라는 액수가 거액이라서 실패할 게 뻔했다.

“저기, 거북아. 그게 말이야…….”

지혜는 실수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잘 보여야 하는데 인상을 쓰는 실수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축하해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지혜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게 말이죠.”

거북이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실은 이것들을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마법을 썼거든요. 그래서 이왕이면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 공짜로 나눠주려고 설정했는데 이렇게 누나가 나타날 줄은 몰랐어요. 아무튼 정말 다행이에요. 이 돈이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예요.”

거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혜의 손바닥 위에 통장과 도장, 자동차 키를 부드럽게 올려놓았다. 또 잃어버리지 말라며 꼭 쥐여주었다. 정말로 이렇게 했다. 아깝다는 내색조차 없었다. 무척 자연스러웠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난치지 마! 3억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바보라도 그런 짓은 안 해! 이거 다 거짓말이지? 너, 내가 돈이 없다고 놀리는 거라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운전면허 있죠?”

“으, 응. 당연히 있지. 너도 알잖아. 나 운전 잘한다는 거.”

지혜의 입이 멋대로 반응했다.

‘왜 그걸 묻는 거지? 정말일까? 그럼 정말로 좋을 텐데! 꿈이 아니라고 말해줘…….’

지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급행만 타면 우리 집까지는 금방이에요. 차도 거기에 있구요.”

“그… 래서?”

지혜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때마침 천장에 설치된 스크린이 태양을 비추고 있었다. 동생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둡기는커녕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라뇨. 타고 가라구요.”

거북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거북아…….”

지혜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자동차 열쇠가 보였다. 딱딱한 촉감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만져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정말로 열쇠가 맞다. 틀림없다. 통장과 도장은 또 어떤가. 이 돈이라면 당장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바보.”

거북이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하늘색 손수건이 그녀 대신 눈물을 흘렸다.

“누난 웃는 게 가장 예뻐요.”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지혜는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왕자님처럼 멋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나요? 누나는 외아들인 내게 친누나가 돼주겠다고 했었죠. 그리고 그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어요.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마지막 법칙을 소개할게요.”

거북이는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끈의 제4법칙. 끈은 관찰한 만큼의 힘을 가진다. 끈은 우리가 관찰한 만큼의 물질을 만들고, 관찰한 만큼의 중력장을 만들며, 관찰한 만큼의 전자기장을 만들어요. 물질이 산산이 붕괴할 때의 힘은 끈을 관찰한 만큼의 힘이구요.

기브 앤 테이크란 말 알죠? 끈의 제4법칙 때문에 우린 우리가 주는 것을 받게 되었답니다. 누나는 지금 누나가 준 것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뿐이에요. 이게 바로 누나가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원하는 현실을 선택하는 원리였어요. 난 이것을 <끈마법>이라고 부르죠.”

거북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에게 마법을 알려줄게요. 콜라 가지고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거북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혜는 그가 놓고 간 손수건으로 기쁨의 눈물을 마저 쏟아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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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천국으로 가는 길(22-1) +2 13.02.12 566 4 9쪽
25 잘못된 만남(21) +8 13.02.11 607 4 20쪽
24 잘못된 만남(20) 13.02.11 450 4 14쪽
23 잘못된 만남(19) +5 13.02.10 647 4 14쪽
22 잘못된 만남(18) +3 13.02.10 545 3 18쪽
21 인류 최초의 마법 수업시간(17) +6 13.02.08 702 8 18쪽
20 인류 최초의 마법 수업시간(16-2) +1 13.02.08 575 4 19쪽
19 인류 최초의 마법 수업시간(16-1) +2 13.02.08 577 4 10쪽
» 인류 최초의 마법 수업시간(15) +2 13.02.08 651 3 20쪽
17 11차원의 수수께끼(14) +6 13.02.08 712 4 13쪽
16 11차원의 수수께끼(13-2) +4 13.02.08 566 4 16쪽
15 11차원의 수수께끼(13-1) 13.02.08 609 2 16쪽
14 11차원의 수수께끼(12-2) +2 13.02.08 842 4 12쪽
13 11차원의 수수께끼(12-1) +2 13.02.08 763 6 12쪽
12 11차원의 수수께끼(11) +2 13.02.08 691 3 13쪽
11 시간의 비밀(10) +6 13.02.08 838 3 7쪽
10 시간의 비밀(9) +2 13.02.08 733 6 7쪽
9 시간의 비밀(8) 13.02.08 675 4 7쪽
8 시간의 비밀(7) +6 13.02.08 805 8 12쪽
7 시간의 비밀(6) +7 13.02.08 723 7 16쪽
6 시간의 비밀(5) +10 13.02.08 822 7 7쪽
5 시간의 비밀(4) +12 13.02.08 975 6 10쪽
4 시간의 비밀(3) +8 13.02.08 879 5 9쪽
3 시간의 비밀(2) +18 13.02.08 1,084 8 12쪽
2 시간의 비밀(1) +24 13.02.08 1,453 8 19쪽
1 프롤로그 +12 13.02.08 1,618 1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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