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기사대전 준비(4)
“폴리아! 지금 저 말을 믿어요? 전부 허황된 망상이에요! 스타브? 셰이드? 게다가 스헬터까지! 오랜 세월 제국을 지탱하며 희생해온 공작가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요. 그 자의 말은 치졸한 모함에 불과합니다!”
“진정하세요, 디페니아. 저는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싶을 뿐이에요. 크란츠의 말이 거짓일 경우에는 걱정할 필요도 없겠죠.”
“그럼 잊어버리면 되겠네요. 모두 거짓이니까!”
흥분한 디페니아의 어조는 아주 단호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확고한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폴리아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면요? 스헬터를 비롯한 세 가문이 과거에 흉흉한 일을 저질렀고, 그 정보가 트레이즌 공작에게 넘어가면 어떡하죠? 분명 그 파장은 심상치 않을 거예요. 어쩌면 작위박탈까지 거론될지도 모르죠. 그런데도 디페니아는 이 일에서 눈을 돌리고 싶나요?”
“읏, 그건, ······그건 억측이에요.”
말문이 막혔던 디페니아는 어렵사리 폴리아의 말을 부정했다.
“맞아요. 전부 추측이죠.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인 것도 맞지요. 그렇다면 그 확률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겠어요?”
“······.”
“디페니아. 저는 우리 선에서 끝낼 수 있다면 그리 하고 싶어요. 최악의 경우 우리의 아버지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닥칠 불행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함께 파헤쳐 보도록 해요. 네?”
“······알았어요.”
디페니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은 해도 인정하기는 싫은 듯한 모양새였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사실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아마 신세를 많이 질 것 같네요. 호호호.”
폴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디페니아도 덩달아 피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좋아요, 이렇게 됐으니 제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겠어요. 대신 그 자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대한 처벌은 엄중하게, 받아들이겠어요?”
“물론이에요. 그때는 크란츠의 헌터자격을 박탈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프런티어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낙인까지 찍어 버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꽤나 과격한 결정이네요. 의외예요. 폴리아라면 좀 더 순하게 나갈 줄 알았는데.”
“어머, 할 때는 확실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것이 선배에게 배운 제 좌우명이랍니다.”
*
지켜보던 로베암은 슬슬 이 자리를 파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폴리아와 디페니아간의 논쟁은 이미 끝난 듯했다. 어느새 티케까지 합류해 세 명이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대화의 주제는 크란츠. 그 시점에서 로베암의 기준으로는 수다나 마찬가지였다.
로베암은 손가락을 튕겼다.
작은 소리였으나 로베암이 앉은 테이블을 메우기에는 충분한 음향이었다.
곧바로 집중되는 세 여자의 시선.
“그만 일어나. 이제 돌아가자.”
“아까 제가 일어나자고 했으면서도 어쩌다 보니 길어졌네요. 식사비도 크란츠가 내버렸고요.”
멋쩍게 웃어 보인 폴리아는 빈 의자에 놓아둔 핸드백을 챙겼다. 그리고 디페니아나 티케도 이의는 없는지 군소리 없이 각자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폴리아의 핸드백에서 전화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폴리아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이상하네요. 비서에게 급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는데, 금방 끊을게요.”
폴리아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 댔다.
“헌터길드 본부장, 호네스트입니다.”
이어지는 것은 다분히 형식적인 응답. 간단한 인사치레도 없었다.
아는 사람, 폴리아의 비서일까.
잠시 후 폴리아는 끊지 않은 상태에서 휴대폰을 내리더니 로베암에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비서의 전화예요. 지금 8층에 웬 남자들이 찾아와 선배를 찾는다고 해요. 누군지 알겠어요?”
잠시 기억을 되짚던 로베암은 머리를 잘게 흔들었다.
“기억 안 나는데.”
“잘못 찾아왔나 보네요. 내보낼게요.”
“잠깐만요. 폴리아, 로베암을 찾아왔다는 그 사람. 혹시 아치스라는 성을 쓰지 않나요?”
“확인해 볼게요.”
갑작스레 끼어든 것은 디페니아. 그 말에 로베암은 3일 전의 일이 떠올랐다.
풀핏 아치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만났던 맹해 보이는 과학자였다. 그리고 신묘하게 미래를 맞춘다는 친구를 데려오기로 약속도 했었다.
때를 맞춰 폴리아가 다시 소곤거렸다.
“네, 아치스가 맞대요. 풀네임은 풀핏 아치스. 아는 사람인가요?”
“연구소에 갔을 때 그놈의 일을 하나 해결해 줬지. 그 값을 치르러 왔나보군. 잡아 두라고 전해.”
로베암은 지체하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목적지는 헌터길드였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로베암의 입술이 남몰래 조그맣게 달싹였다.
“점술이라, 이왕이면 리스크가 적은 이능이면 좋겠는데.”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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