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프런티어 동란(4)
사삭. 사삭. 사삭.
시시각각 수직으로 하강하는 무리의 움직임은 안정적이면서도 날렵했다.
벽을 짚고 있는 손발에 뭔가 장치를 한 것일까? 아니면 저런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이능을 지니고 있을까?
그러한 궁금증이 드는 것도 잠시, 그보다도 로베암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저들의 기형적인 생김새였다.
평범해 보이는 다리에 비해 지나치게 두껍고 길쭉한 팔. 어깨 부분의 근육은 매우 발달한 것으로 보이나, 그 아래로 내려올수록 급격히 홀쭉해지는 형태다.
신체 균형을 비유하자면 역삼각형 구조랄까. 직립 보행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다.
“······인간 같기도 하고, 괴수 같기도 하고,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애매하군.”
로베암이 지닌 특수한 지각 능력은 바이오에너지만을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심장 박동이나 호흡 등 다른 생물체의 내부 상태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관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구나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지각 능력은 이미 수십 배로 증폭된 상태이며, 정밀도는 상대방의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다.
그리고 그 감각은 이번에도 로베암을 실망시키지 않고 결국 해답을 찾아냈다.
저것들은 인간의 유전자와 괴수의 유전자를 결합시킨 키메라 생물이라는 것을.
그 순간 키메라와 싸워야만 했던 어릴 적의 기억이 로베암의 뇌리에서 떠올랐다.
‘형태는 다르지만, 어머니가 만들어낸 키메라와 비슷하다. 아니, 그것들보다 조금 더 강하려나.’
키메라는 괴수와의 전쟁 초기에 제국이 만들어낸 끔찍한 실험의 잔재이자, 강력한 전투 생명체.
아마도 호네스트 백작은 저것들을 상대하다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키메라의 전투 능력은 최소 부대장 괴수와 맞먹으니까.
‘그래봐야 구시대의 잡졸이지.’
어느새 근처까지 내려온 키메라를 노려보며 로베암은 전신에 금색 오라를 둘렀다.
곧바로 금색 오라를 내던지며 선제공격.
탁구공만한 크기의 금색 오라 세 개가 로베암의 손을 떠나 적에게 날아갔다.
목표는 5마리의 키메라 중 선두에서 내려오는 한 마리.
적의 방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견제 공격이었으나, 키메라는 로베암의 의도를 비웃는 것처럼 아예 건너편 벽으로 훌쩍 뛰어넘어 금색 오라를 피해 버렸다.
이어서 다시 한 번 벽을 박차고 로베암에게 뛰어드는 키메라.
로베암의 지척에 다다른 키메라는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동시에 오른쪽 어깨 상단부에서 튀어나온 여러 개의 칼날이 손끝까지 뒤덮었다.
삽시간에 드릴처럼 변한 키메라의 오른팔이 로베암을 찔렀다.
그러나 이미 로베암의 전신에는 금색 오라의 보호막이 전개되어 있는 상황.
캉, 금색 오라에 가로막힌 키메라의 오른팔이 튕겨 나갔다.
캉, 캉, 금색 오라에 달라붙은 채로 거듭되는 키메라의 공격. 그러나 금색 오라에는 자그마한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캉, 캉, 캉, 광분한 듯 마구잡이로 오른팔을 휘두르는 키메라. 결국 키메라의 오른팔을 감싼 칼날 끝부분이 부서져 버렸다.
키이키이크케케크에-----!!!!!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른 키메라.
그때, 두 마리의 키메라가 금색 오라로 만든 보호막 위로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팔을 칼날로 감싸 드릴처럼 만들더니 그 끝부분을 금색 오라의 표면에 가져다 댔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칵---!!!
키메라들의 팔이 몸통과는 별도로 회전하며 금색 오라의 표면을 긁어댔다.
머리 위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소음.
그 시끄러움에 로베암의 눈썹이 절로 찡그려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굳건하게 버텨오던 금색 오라에 미세한 흠집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아주 미세한 흠집이었지만, 금색 오라의 방어력이 뚫린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결과에 로베암은 황당해졌다.
“어? 저런 공격이 효과가 있어? ············한 지점만 계속 공격하면 파괴력이 증가하는 건가?”
뭔가 공격 방식은 조잡했지만, 위력은 결과가 보여주고 있었다.
로베암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투를 일격에 처리해왔기에 별도의 공격 방식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상황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당함이 놀라움으로 변하고, 최종적으로 도달한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금색 오라의 방어력은 완벽에 가깝다고 자부했다. 그것이 흔들리자 덩달아 자존심도 흔들렸다. 이번 일로 금색 오라의 약점을 깨달았으니 더욱 성장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놀아 주는 것은 여기까지.
마음속에서 살의가 끓어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키메라에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 것부터가 문제였다.
“킥, 킥킥킥. 추억이라니, 그런 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싸늘하게 식어 버린 로베암의 금색 눈동자가 새까매지기 시작했다.
동공은 물론 흰자위마저 까맣게 물든 두 눈동자가 가까운 곳에 있는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불어온 검은 바람이 키메라를 훑고 지나갔다.
그저 눈길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키메라의 몸이, 그대로 사그라졌다.
다음 놈도, 그 다음 놈도.
새카만 눈으로 단지 쳐다봤을 뿐인데, 세 마리의 키메라가 저항도 못하고 무력하게 지워졌다.
이것이 로베암이 개화시킨 흑색 오라의 최종 형태. ‘소멸’이었다.
그야말로 권능이라고 부를 만한 능력이지만, 오라를 무지막지하게 소모하는데다가 사용할수록 광기에 젖는 부작용도 있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
단지, 방금처럼 어쩌다가 열이 오르면 앞뒤 안 가리고 사용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또 홧김에 사용했네.’
다행히 이번에는 사용시간이 극히 짧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로베암이 ‘소멸’을 거두자, 까만 눈동자가 원래의 금색으로 돌아왔고 막 끓어오르던 마음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 귀찮다. 빠르게 정리하고 끝내자.’
키메라는 모두 다섯. 이곳 엘리베이터 통로에는 두 마리가 아직 남아 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로베암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두 마리의 키메라가 공격은커녕 도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에 쫓기듯 빨빨거리며 팔다리를 놀리는 모습이었다.
지금 도망가는 거야? 키메라가 겁먹었어?
어처구니가 없는 키메라의 행동에 로베암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놔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쫓아가서 죽이고, 단번에 최상층으로 올라간다.’
보호막으로 사용했던 금색 오라를 거둬들인 로베암은 발판인 흑색 오라를 박차고 벽을 향해 뛰어올랐다.
이어서 벽을 밟고 다시 반대편 벽으로 뛰어오르고, 그걸 다시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밟을 때마다 쾅쾅! 벽면을 부수면서 뛰어오르는 로베암. 그 속도는 가히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벅찰 정도였으니, 도망가던 키메라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았다.
그때, 키메라 한 마리가 도주를 포기했는지 칼날로 감싼 팔을 휘두르며 반격해왔다.
로베암은 바이오소드를 뽑아 키메라의 팔을 단숨에 잘라내며 그대로 지나쳐갔다. 그러고는 주먹 크기로 압축시킨 금색 오라를 키메라의 등에 내던졌다.
콰앙!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키메라.
로베암은 발밑으로 다가오는 폭발력을 발판삼아 다시금 도약했다.
목표는 당연히 마지막 남은 키메라.
로베암은 한 번의 도약으로 마지막 키메라를 따라 잡았다. 그리고 일검.
바이오소드가 키메라의 몸통을 가르고, 바이오소드에 깃들어 있던 금색 오라가 키메라를 터트렸다.
5마리의 키메라를 모두 제거했지만, 로베암은 멈추지 않았다.
벽을 밟고, 뛰어오르고, 계속해서 엘리베이터 통로를 자력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로베암은 드디어 3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간층이라면 모르겠지만, 꼭대기 층은 하나뿐이니 헷갈릴 것도 없었다. 더구나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다수의 인기척은 물론 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오라도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리드라는 놈이 지닌 오라일 것이다.
‘그럼 가볼까.’
로베암은 눈앞에 닫혀있는 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일격에 문이 박살나고, 로베암은 엘리베이터 통로를 벗어나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에는 감각에 잡혔던 대로 다수의 무장 인원은 방진을 갖추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로베암을 견제하는 것인지 먼저 움직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로베암은 느긋하게 적을 살폈다.
검고 붉은 옷, 눈알만 드러내는 복면, 이번에도 1층 대합실에서 본 놈들과 똑같은 복장이었다.
‘키메라는 없네.’
지금 가로막고 있는 놈들은 순수한 인간으로, 키메라는 아까 다섯 마리가 전부였던 모양이다.
상황을 파악한 로베암은 바이오소드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폴리아의 부탁대로 터트려 죽이는 것은 맨손이 편하다.
로베암은 금색 오라를 두 주먹에 담았다. 그리고 말없이 돌진했다.
퍼벙!
복면인의 신체가 풍선처럼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적들도 로베암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이번 화의 끝부분에 나오는 전투는 생. 략. 할게요!
다음 화에 아벤제의 최후까지 쓸 예정인데, 조금 부담되는 장면이기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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