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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론의 아이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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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라
작품등록일 :
2016.10.26 01:50
최근연재일 :
2019.12.0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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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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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모략가 (5)

DUMMY

요압의 방을 나온 지토는 일단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제이나 루리아와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예상 밖의 사람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나하리였다. 나하리가 지토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답지 않게 우물쭈물 망설이며 서성이는 나하리를 보고 지토는 제이의 말이 생각났다. ‘저 아가씨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음흉한 미소도 함께. 지토는 괜스레 어깨를 움찔했다. 나하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뻔한데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다가간다고 해서 할 이야기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볼로와의 대화를 엿들은 것을 따질 심산이었는데, 갑자기 그럴 분위기가 아니게 돼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토는 일단 나하리를 향해 걸었다. 나하리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토는 나하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하세요, 지토.”


나하리가 거의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주군...... 아니, 요압 장군님과는 말씀 잘 마치셨나요?”


“대충.”


지토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왠지 나하리와 시선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잘 됐네요. 두 분이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어요.”


“딱히 오해 같은 건 없어.”


지토가 말했다.


“요압은 군대 장관 자리가 탐나 아브넬을 죽였고, 우린 요압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우려해 아브넬을 영입하려 했고. 아브넬을 그렇게 죽이는 건 옳지 않았다는 것에 요압도 나도 둘 다 동의하고. 하지만 요압이 회의를 통해 군부 이외의 것에는 스스로 선을 그었으니까, 난 더 따지고 들어갈 맘은 없어. 루리아도 아마 그럴 거고. 요압이 약속을 잘 이행하길 바랄 뿐이지.”


“장군님께선 약속을 지키실 거예요.”


나하리가 얼른 대답했다.


“당신도 알지 않나요? 장군님의 야망은 강력한 모그리드를 재건하는 거예요. 무력을 포함한 사회 전반적 부분 모두에서. 그러기 위해선 군부가 모든 일에 나서는 옛 통치 방식이 옳지 않다고 믿고 계시니까요.”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대화가 끊겼다. 잘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딱히 정치적인 얘기나 하려고 나하리가 지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하리는 망설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성격 급한 지토가 먼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넌 무슨 일로 여기 있었어.”


“난...... 사과를 하고 싶었어요.”


여전히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나하리가 속삭이듯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건가? 지토는 어리둥절해졌다. 부끄럼을 타는 나하리는 지난 7년 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타고난 성격이 냉정하기도 했지만, 철저히 훈련된 절제력 덕에 감정의 동요가 극히 적은 사람이었다.


“이미 당신도 다 알고 있는 마당에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난...... 장군님의 명으로 당신과 마마, 그리고 아볼로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날 밤의 대화는 장군님께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중요한 문제니까.......”


“그래. 이해해.”


지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하리는 모그리드인이었지만 다른 모그리드인과 조금 달랐다. 아직도 요압을 주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에게 1차적인 충성대상은 그녀를 이 자리까지 기르고 키워준 요압이었다. 공주인 루리아조차 요압보다 우선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나하리를 봐오며 지토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나하리가 요압의 명에 따른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었다. 지토도 조금 놀랐다. 나하리가 지금 요압 외의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지토 자신인 것이다. 정작 지토 본인에겐 나하리에 대한 유감 따위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지만.


“요압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도, 요압을 위하는 네 마음도. 신경 쓰지 마. 난 이해해.”


“......그런 가요?”


나하리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뭐라 할 말이 더 있는데 더 못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지토는 슬슬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해왔다. 지토는 무슨 핑계를 대야 빨리 나하리와 헤어질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러나 지토가 묘안을 찾기 전, 나하리가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 같은 나하리의 두 눈이 애틋했다. 뭔가 결심이 서려있는 듯했다. 지토는 진짜 깜짝 놀랐다. 나하리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토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나하리의 두 눈에 알 수 없는 강한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지토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오빠?”


마치 나쁜 일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지토도 나하리도 뜨끔 하고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리아였다. 루리아가 서있었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루리아는 눈을 뜨자마자 지토가 마침내 의식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회의 중이라는 요압의 방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거기서 루리아를 기다리고 있던 광경은 단둘이 가까이 서서 미묘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던 지토와 나하리였지만.


“나하리 장군?”


루리아는 웃었다. 입도 눈도 아주 밝게 웃고 있었다. 목소리 톤도 처음 지토를 불렀을 때와 달리 아주 부드럽게 가라앉아 있었다. 루리아는 상냥하게 명령했다.


“오빠의 몸 상태를 좀 봐야할 것 같아서 그런데, 자리를 좀 비켜주시겠어요?”


“예? 예...... 마마.”


노골적인 축객령에 나하리는 선뜻 움직이진 않았지만, 공주의 명을 무시할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하리가 먼저 천천히 떠나갔다. 음. 지토는 내심 입맛을 다셨다. 난 남아야 하나? 나도 가면 안 되나?


“오빠?”


루리아가 지토에게 다가왔다. 지토는 루리아를 보았다. 루리아는 더는 밝게 웃고 있지 않았다. 미묘하게 미소를 유지하고 있긴 했는데, 왠지 화가 나 보였다. 음. 지토는 마음이 급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왜 화가 났지?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뭐라고 말해야지? 난 할 말이 없는데?


루리아와의 거리는 갈수록 좁혀졌고, 지토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지토는 생전 처음으로 전투가 아닌 모종의 이유로 등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경험했다. 루리아가 아브넬만큼이나 강대한 적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제리코 성. 3군 진영.


마침내 떠날 준비를 마친 카일은 3군 사람들과 조촐한 작별인사 중이었다. 대장인 케일럽과 부대장인 렉터 외에도 총장 고든, 그리고 타밀과 쥬리어스가 마중을 나왔다. 그 외에도 딱히 가깝게 지낸 사이도 아닌데 얼굴을 비추러 나온 3군 장교들이 좀 있었다. 카일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은 레지스탕스를 멸망시킨 불구대천지의 원수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카일에게 호감을 보이며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카일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루리아에게 축하한다고 전해줘.”


대장 싸움을 통해 지토가 아브넬을 꺾었다는 소식을 이미 접한 케일럽이 예의 미묘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모그리드의 절대자라는 아브넬이 사라졌으니 이제 내전은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네. 아직 수도로 진격 전이긴 하지만. 루리아가 나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야. 정말 10주 안에 상황을 반전시켰어.”


“아쉽네요. 아브넬이란 놈. 내가 싸워보고 싶었는데.”


렉터가 하품을 하며 궁시렁댔다. 이번 원정에선 제리코 전투 외에는 도통 재미를 못보고 있던 터라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근데 우리 지토한테 졌다는 거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놈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대체 어떻게 싸워야 지토한테 질 수가 있지? 한 팔을 안 쓰고 싸웠나? 그래도 이길 거 같은데?”


“그만큼 키론의 망나니가 강해졌다는 의미겠지.”


렉터의 혼잣말에 고든이 즉답했다. ‘섬’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고든은 ‘패’를 마스터한 아브넬을 그만큼 존경할 수밖에 없었기에 아무리 렉터라도 아브넬을 무시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일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고든의 의견에 무언의 동의를 보냈다. 카일이 직접 경험한 십이신장들은 하나 같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었다. 아브넬의 힘은 직접 본 적 없었지만, 그 괴물들 위에서도 압도적인 절대자로 군림했다고 하니 상상하기도 어려운 강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카일이 본 지토도 지난 7년 사이 엄청난 강자로 성장해있었다. 혼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수도 모그리드를 통째로 뒤집어 놓지 않았던가? 아브넬을 꺾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아브넬의 힘을 본 적이 없는 카일이었기에 이런 생각이 가능했다).


무엇이 지토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분명 루리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루리아와 그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브넬이란 모그리드의 최강자를 쓰러트려야 하니까, 그 목표를 두고 지난 7년간 지토는 달려왔을 것이다. 루리아가 키론의 집에서 지토만을 7년간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 두 사람을 서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긴 시간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서로만을 위해왔다. 그 유대감이 대체 얼마나 강할지 누구도 감히 측량하기 힘들 것이다.


카일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고 힘을 냈다. 그도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제리코성의 전투가 끝나고, 대장 싸움의 결과를 접하고도 3군 진영에 더 남아 있었던 것은 강해지기 위함이었다.


루리아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좀 더 먼 미래,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였다. 카일은 강해져야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강해져야 했다. 그에겐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있었다.


정중하게 작별을 고하고 카일은 3군 진영을 떠났다. 제리코 성 밖까지 타밀과 쥬리어스가 따라 나갔다. 세 사람은 굳이 서로에게 표현은 안 했지만, 이미 가까운 친구였다. 고든은 흐뭇해보였다. 기뻐하는 고든을 보며 케일럽이 키득였다.


“카일 너무 맘에 들어 하는 거 아냐, 고든? 타밀이랑 가깝게 지내는 정도로 그렇게 좋아할 일은 아니잖아? 저 녀석 때문에 네 아들이 키론의 아이가 못됐는데.”


“키론의 아이는 못됐지만 키론의 아이를 친구로 뒀으니 남는 장사가 아닙니까.”


고든이 대꾸했다.


“정말 훌륭하고 잠재력 넘치는 젊은이 아닙니까? 목표도 있고, 야망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건실하고, 뒷받침해주는 실력과 재능도 있고...... 개인적으로 전 좀 더 가깝게 지냈으면 합니다. 타밀 뿐만 아니라 세리아도. 타밀은 라이벌이랍시고 틱틱대지만 세리아는 대놓고 좋아하는 눈치던데.......”


“미래의 사윗감으로 점찍어 놓은 녀석이 하필 원수 자식이야?”


렉터는 대놓고 낄낄댔다.


“너도 참 어지간하다. 너 가문 걱정은 안 되냐? 후에후아의 독립을 꿈꾸는 반동분자를 집안에 끌어들였다가 괜히 날벼락 맞는다. 애초에 카일 녀석 성정에 네 딸이랑 결혼할 가능성도 없고. 그런데 그런 녀석을 옥이야 금이야 검술까지 가르쳐주고.......”


“가르쳐준다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고, 원포인트 레슨 정도였지.”


고든이 렉터의 말을 끊었다. 그래. 원포인트 레슨 정도였다. 가르쳐준 내용의 난이도는 그 정도가 아니었지만. 그런데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습득했다. 그 짧은 새에 눈에 보일 정도로 성장했다. 이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 탓일까. 카일은 분명 모그리드에 들어와서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다.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지 않나. 고든은 내심 미소 지었다. 가문? 카일을 원하는 것은 다 가문을 위해서다. 왕국 스콜헬름의 대귀족이자 쾌검의 명가. 이 타이틀로 유지만 해온 게 대체 몇 십, 몇 백 년 동안인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도 되지 않았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키론의 광견, 유노의 체내에서 말이다. 고멜라의 공방의 흑마술사들은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악령을 빙의시키면 악령이 유노의 정신을 금방 잠식해 바로 바로 광전사로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유노의 영혼이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것일까. 유노는 악령에게 먹히지 않았다. 대신 그 반작용으로 온몸이 심한 경련을 일으켰기 때문에, 고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두꺼운 쇠사슬로 몇 겹이고 전신을 칭칭 묶어두어야 했다. 이렇게까지 악령과 싸울 수 있는 인간은 흑마술에 통달한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고멜라가 와서 직접 한 번 유노의 상태를 봐줬으면 했다. 그러나 고멜라에겐 그럴 정신적 여유나 시간이 없었다. 아브넬이 패하고, 죽었다. 상아궁에 비상이 걸렸다. 언제 진격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루리아 군을 상대할 묘안을 짜느라 고멜라는 공방 따위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훗날 협상 카드로 써야할 지도 모르니 유노를 잘 관리하라는 명령만 겨우 받았을 뿐이었다.


싸움은 오래 갔다. 너무 오래 갔다. 그래서 흑마술사들은 불안했다. 악령 빙의는 대장 싸움 전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대장 싸움이 끝나고 수일이 지나도록 유노의 상태는 달라질 기미가 없었다. 여전히 거세게 경련하며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이러다 갑자기 죽어버리는 게 아닌지 염려한지도 오래였다. 다행히 유노는 죽지 않았다. 그저 계속 악령을 상대로 저항하고 있는 것뿐인 듯했다. 흑마술사들은 유노의 육체적 건강만 유지하며 하루 속히 악령이 승리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대장 싸움 종료 후 정확히 칠일 째 되는 날 오후.


이제는 유노가 경련하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흑마술사들은 그저 옹기종기 공방에 모여 유노의 상태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유노의 경련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음을 눈치 챘다. 아주 조금씩, 유노가 몸을 떠는 횟수와 그 경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당황한 흑마술사들은 혹시 유노의 몸에 드디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체크했다. 아니었다. 유노는 건강했다.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련은 줄어들고 있다. 그 말인즉슨, 드디어 악령이 싸움에 이기고 유노의 영혼을 집어삼켰다는 의미일 터.


최고의 광전사의 완성이다! 기뻐하며 흑마술사들은 의식을 준비했다. 유노에게 빙의한 악령은 직후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칠 터였지만, 그들은 악령을 완벽하게 조종할 흑마술을 알고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흑마술사들은 유노가 눈만 뜨기를 기다렸다. 정확히 말하면, 유노를 집어삼킨 악령이 눈 뜨길 기다렸다.


번쩍. 그들이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유노가 두 눈을 떴다. 기묘한 안광을 불처럼 뿜고 있는, 인간의 이성을 완벽히 상실한 광전사의 눈이었다. 흑마술사들은 빙의가 성공한 것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우히히]


유노가 웃었다. 여기서 기뻐하던 흑마술사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우히히. 웃음소리도 광전사에 걸맞긴 하다. 그러나 흑마술사들은 유노를 지배하고 있는 악령이 뭔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라 기대했다. 어쨌든 유노는 완전히 미쳐버렸지만, 그 유노를 지배하고 있는 악령까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을 제어하려 드는 흑마술사들에게 뭔가 말을 걸 줄 알았다. 소통을 시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우히히?


[우히히히히히히!!!]


유노의 광소와 함께 갑자기 유노의 전신에서부터 청록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벌써부터 실력 행사에 들어가시겠다? 당황한 흑마술사들은 급히 악령을 제어하는 흑마술을 부렸다. 이것으로 꼼짝없이 유노를 옭아매려 했다.


[우히히히히히히히!!!]


안 먹혔다.


흑마술이 안 통했다. 유노에게 조금도 흑마술이 통하지 않았다. 청록색 아우라 앞에 쇠사슬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썩은 동아줄 마냥 조각조각 끊어져 땅에 떨어졌다. 우히히히히!!! 광소를 터뜨리며 유노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 가장 앞에 있던 흑마술사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강타에 공을 날리듯 머리통을 뒤로 날려버렸다.


“어째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어째서 흑마술이 소용이 없나! 유노를 악령에게 빙의시킬 때 사용한 흑마술의 일부기 때문에 빙의를 통해 유노를 잠식한 악령은 반드시 이 흑마술의 제어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어째서?


누군가는 흑마술을 계속 발휘하려고도 해봤다. 누군가는 일단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공방을 빠져나가려고도 해봤다. 빙의 마술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른 마술로 유노를 막거나 공격해보려는 자들도 있었다. 이곳에 실력 있는 흑마술사들만 수십이었다. 유노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유노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은 전신에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모든 방어를 박살내는 두터운 청록색 아우라를 두르고 있었고, 육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공방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흑마술사들을 닥치는 대로 짓밟아 죽였다. 죽는 숫자가 늘어나고 튀는 피의 양이 늘어날수록 유노의 미칠 듯한 웃음소리도 커져갔다. 마침내 흑마술사들은 단체로 패닉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있으면 다 죽는다. 일단 빠져나가야 한다.


유노도 흑마술사들이 더는 자신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빠져나가려는 것을 보았다. 그건 유노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유노가 원하는 것은, 공방에 있는 모두가 죽을 때까지 자신과 놀아주는 것이었다.


[우히히히히!!!]


그래서 유노는 공방 바닥으로 내려와 두 손바닥으로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역장이 생성됐다. 매우 독특한 역장이었다. 일반 역장처럼 바닥만 잠식하는 게 아니었다. 역장에서부터 생성된 보이지 않은 투명한 막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반원형의 지붕이 돼 공방 전체를 덮어버렸다. 공방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던 흑마술사들은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혀 도로 안으로 튕겨져 들어왔다. 유노의 [탄성] 능력이 섞인 막이었다.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부딪히는 대로 다시 튕겨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흑마술사들은 흑마술로 그 막을 부수고 나가려고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막은 탄탄했다. 뿐만 아니라 접촉하는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빠져나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은 사방이 꽉 막힌 거대한 우리 안에 가둬져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우리 안에, 미쳐 날뛰는 야수가 한 마리.


[우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아. 죽기 직전, 흑마술사 중 누군가가 깨달았다. 악령에 빙의된 게 아니구나. 저건 악령에 빙의된 게 아니야. 그래서 우리의 마술이 안 통하는 거야. 저건 악령에 빙의된 게 아니라 그저 저놈의 광기가 순수하게 모조리 폭발해버린 모습......!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의미로는 가장 완전한 광전사 그 자체......!


[우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 광소가 생애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라니. 이보다 더 끔찍할 순 없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유노를 보며 흑마술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끝났다.


전부 죽였다. 모조리 죽였다. 이제 더는 놀아줄 장난감이 없다.


유노는 역장을 거두어들였다. 그의 입은 여전히 기묘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더 이상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싸울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노는 싸움이 고팠다. 계속 싸우고 싶었다. 힘이 떨어져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싶었다.


유노를 감싸고 있던 청록색 아우라는 타들어가는 불꽃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져 조금씩 소멸돼 가고 있었다. 잠재력을 모조리 꺼내 온몸에 두르고 있던 유노였지만, 그 아우라를 유지시키는 법은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아우라는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아우라가 다 떨어지는 때가, 유노가 날뛰는 것을 멈출 때기도 했다. 아우라가 바닥나면 힘도 같이 바닥나는 것이다.


힘은 한정돼 있었다. 한정된 힘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유노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힘이 다 떨어지기 전, 더욱 즐겁게 싸울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했다.


킁킁. 유노는 공기 중에 코를 벌름거렸다. 냄새를 맡기 위해 노력했다. 희미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언제나 유노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싸울 때가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다. 삐죽머리에 눈매가 날카로운, 어울리지 않게 큰 대검을 들고 있는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노가 찾아야 할 상대는 명확해졌다. 유노는 그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빨리 찾고 싶었다. 빨리 싸우고 싶었다.


[우히히히히히히히!!!]


유노는 있는 힘껏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냄새를 찾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그 냄새를 찾아, 유노는 광야 한복판으로 온몸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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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예언자의 비밀 (4) +5 19.07.01 119 10 19쪽
151 휴재공지입니다;; +2 19.05.21 143 7 1쪽
150 예언자의 비밀 (3) +1 19.05.13 112 9 17쪽
149 예언자의 비밀 (2) +3 19.05.07 125 7 21쪽
148 예언자의 비밀 (1) +2 19.04.29 113 9 19쪽
» 모략가 (5) +2 19.04.22 138 10 21쪽
146 모략가 (4) +2 19.04.15 149 10 24쪽
145 모략가 (3) +3 19.04.08 145 1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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