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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론의 아이들2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온실라
작품등록일 :
2016.10.26 01:50
최근연재일 :
2019.12.0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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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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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5)

DUMMY

모그리드의 동문을 향해 질주하고 있던 요압의 부대도 동문의 색이 검게 변색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달리고 있는 전사들을 이끌고 있는 요압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압은 가차 없이 명을 내렸다.


“방어 준비!”


요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온 것은 사람 머리 크기의 뾰족한 바위조각이었다. 동문과 마찬가지로 그 색이 새까맸다. 가장 앞에 있던 아비새가 그 바위를 받았다. 장창을 휘둘러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큭......!”


그렇지만 바위를 부숨과 동시에 아비새가 움찔하고 멈춰서야 했다. 그 정도의 힘이 담긴 바위였다. 요압은 거듭 명을 내렸다.


“혼자 받을 생각하지 말고 협동해라! 더 온다!”


요압이 옳았다.


첫 바위는 인사에 불과했다. 직후,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예리함을 가진 까만 바위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담긴 힘 역시 균등하게 같았다.


아비새도 움찔하게 만든 힘이었다.


티쿤이고 뭐고 잘못 받았다간 온몸이 아작난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이미 피할 수 있는 범위까지 입다의 검은 바위들이 다 덮어버린 후였다.


요압은 허리춤의 검을 빼들었다.


동시에 티쿤 부대 주위로 검은 방패병들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났다. 방패병들은 한데 모여 하늘을 가리는 것으로 큰 지붕을 만들어 티쿤 부대를 가려주었다. 그 방패 위로 바위들이 떨어지면서 어느 정도 방어는 됐다. 방패병들이 대신 충격을 흡수하고 소멸돼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바위는 막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다 막아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티쿤들이 수고해야했다. 공격의 위력이 위력인만큼 간부급들이 직접 나섰다.


“커져라 아낙!”


마라가 아낙을 소환했다. 마라는 아낙을 마치 보자기처럼 넓고 크게 펼쳐 쏟아지는 바위 일부를 모조리 집어삼켜버렸다. 아톨도 나섰다. 망치를 휘둘러 바위들을 닥치는 대로 다시 허공으로 쳐냈다. 엘리압도 큰 칼을 빼들고 바위를 쪼개며 협력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것 같았던 바위 세례가 멈췄다. 모두 다 막아냈고, 요압의 부대 가운데 사망자는커녕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요압은 멈춰선 부대에게 다시 진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아톨이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뭘 기다리고 있으십니까? 빨리 가죠! 적들도 숨을 고르고 있을 타이밍입니다. 이 정도 쏟아 부었으니 한동안은.......”


“적들이 아니고 적이야. 단 한 명의 짓이다.”


요압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석공술사 중 돌을 까맣게 물들일 수 있는 건 세상에 한 사람 뿐이다. 입다. 예상대로 동문을 지키고 있는 건 일인성 입다다. 섣불리 공격하려 들었다간 낭패를 볼 거야.”


“그러니까 지금이 기회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상대가 한 명뿐이라면 더더욱, 큰 기술을 쓰고 난 이후를 이용하는 게.......”


“큰 기술이라니.”


요압이 피식 웃었다.


“이건 그냥 경고야.”


“예?”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오면, 머리가 부서질 거라는 경고다. 우리가 다시 진격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제대로 쏟아지기 시작할 거다.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입다를 상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밀고나가는 건 자살 행위다. 성염의 깊이나 기술의 완성도에서,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티쿤이다.”


“아니...... 그럼....... 어쩝니까? 그렇다고 여기 그대로 있기만 하면......?”


“마마와 지토가 모그리드를 침투하는데 방해가 되니 그건 안 되지.”


요압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밀고 나간다. 하지만 무작정 성벽을 뚫으려고 하면 아군 피해만 커진다. 그러니.......”


이때, 요압은 잇대에게 기대 멍하니 동문을 바라보고 있던 마라를 향해 돌아섰다.


“마라님.”


“.......?”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


마라는 말없이 요압을 쏘아보았다.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요압의 부대가 멈춰 섰다.


계획을 짜고 있나 보군. 입다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요압, 그 속 시커먼 녀석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 나의 방어를 어떻게 파훼하려들까. 상황이 상황인데도 꽤 궁금했다. 정면 돌파는 무리란 것을 잘 알 텐데.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아, 요압의 부대가 움직임을 재개했다. 입다는 가만히 앉아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요압이 다시 검은 병사들을 소환했다. 조금 전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다. 족히 6천은 돼 보이는 숫자였다. 요압이 이끄는 무리는 이제 하나의 부대가 아니라 어엿한 군대였다. 호오. 입다는 눈앞의 땅이 새까만 병사들로 채워지는 장관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정도 숫자는 요압도 성염과 네스토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지 않는 이상 소환할 수 없는 숫자다. 그 요압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정보부장 하면서 서류처리나 하느라 바쁠 줄 알았는데 실력이 더 늘었는걸?”


물론 늘어봤자긴 하다.


저 정도가 전부라면, 결단코 자신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모를 요압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요압은 돌격해왔다. 검은 부대의 틈 사이로 티쿤 별동대를 숨긴 채, 전속력으로 동문을 향해 돌격해왔다. 속도도 한층 빨랐고 기세도 필사적이었다. 또 바위 세례의 희생양이 되기 전, 달리는 속도를 높여 목적지인 동문에 한층 더 빨리 도달한다는 계산이었다. 일단 정답이었다. 좋은 답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답이 없기 때문에 정답인 거지만.


양손 가득 성염을 집중하고 입다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의지에 따라 공중에 사람 머리만한 바위가 하나 둘 생성됐다. 검은 바위였다. 입다의 트레이드마크인 흑석이었다. 그의 흑석은 다른 석공술사들이 생성해낼 수 있는 바위와 달랐다. 질적으로 달랐다. 다시 말하지만, 입다의 흑석에 담긴 파괴력은 티쿤이라도 일격에 쳐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바위가 마치 소나기처럼 검은 군대 위에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요압의 군대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방어를 포기하고, 무조건 동문 가까이 붙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입다는 요압의 속셈을 눈치 챘다. 검은 군대를 총알받이로 삼아 선별한 티쿤들이 동문에 도달할 수 있게 하려는 거겠지? 정말 다행이야, 요압. 정말 다행이야. 네가 [군대] 능력의 네스토라 정말 다행이야. 저것들이 네 능력에 의한 것들이 아니라 진짜 모그리드 군대였다고 생각해봐. 난 오늘 대체 몇 명이나 죽이고 말았을까?


그런 감상에 빠질 만도 했다. 분명 출발할 때는 개미떼처럼 많았던 검은 군대가 동문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쯤은 이미 절반 이상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았다. 이는 티쿤 별동대를 지켜줄 역할을 할 병사들의 수가 크게 줄었음을 의미했다. 그래도 많이 가까워졌다. 동문에 많이 가까워지긴 했는데.......


입다는 하늘을 향해 올린 두 손을 한 번 크게 휘저었다.


그러자 동문 성벽에서 검은 돌로 이루어진 기다란 촉수 같은 것들이 돋아났다. 하나로 연결된 여러 개의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촉수였다. 돌촉수를 구성하고 있는 바위는 그 크기 하나 하나가 집채만 했는데, 그런 것들이 하나로 연결돼 만들어진 촉수의 길이는 마치 기차처럼 길었다. 수십 미터 길이의 돌덩이들. 그런 촉수가 8개에 달했다. 입다는 재차 두 손을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돌촉수도 움직였다. 빗자루 쓸 듯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돌진해오는 검은 군대를 옆에서부터 쓸어버렸다.


그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주눅 들지 않고 검은 군대는 계속 전진했다. 그들에겐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 섞여 있던 티쿤들은 달랐다. 그들로선 검은 병사들을 뒤따라 더 이상 앞으로 나서기 어려웠다. 쏟아지는 돌 세례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는데 이제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돌덩이들이 사방에서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다. 막거나 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신이 없었다.


퍼엉!


그래도 최상급 티쿤답게 아톨은 힘 대 힘으로 부딪혀 돌촉수를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망치의 폭발력으로 덮쳐온 돌촉수를 도로 날려 보냈다. 그래봤자 원래 있던 자리로 밀어낸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돌촉수는 바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연달아 돌촉수를 쳐내는 것에는 부담이 있었으므로, 아톨은 일단 뒤로 물러나 돌촉수의 범위 안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했다.


아톨의 뒤에는 밴트와 에이런도 함께였다. 기브온인 세 사람이 최선을 다해 서로를 지키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셋 중 가장 강한 아톨도 받아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날뛰는 여덟 개의 돌촉수를 뚫고 동문에 접근한다는 건 세 사람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이게 한 사람 짓이라니 말도 안 돼.”


창백한 얼굴로 에이런이 중얼거렸다. 석공술사인 그녀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석공술의 향연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상식을 까마득히 초월해버린 범주였기 때문이다.


“먼젓번 공격들도 석공술사 수십 명이 모여야 가능할까 말까한 수준이었어.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저런 돌덩이들을 하나도 아니고 여덟 개나 동시에 연계한다니 이건.......”


“불평할 시간에 집중해, 누나! 이런 괴물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


입술을 깨물며 밴트가 소리쳤다. 에이런의 심정이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많았다.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들을 최근 너무 많이 만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했다. 밴트와 에이런은 상대적 약자였다. 그런 그들이 강자들의 힘 싸움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집중 또 집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브온인들만 막힌 것이 아니었다. 동문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요압의 부대는 또 멈춰서야 했다. 용맹하게 앞으로 전진한 검은 군대는 촉수에 모조리 휩쓸리고 남은 것이 없었다. 같은 신세를 면하기 위해 티쿤들은 사력을 다해 촉수들을 피하거나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여덟 개의 촉수는 쉴 틈 없이 교차하며 동문 앞 전부를 커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를 뚫고 나아가는 것도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숴버리는 것은 어떨까?


나하리가 나섰다. 그녀는 요압을 노리고 들어오는 돌촉수의 끝의 바위를 베어버림으로써 촉수의 길이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효과가 있었던 것은 잠시였다. 오른쪽 끝에 도달한 촉수가 다시 요압 근처까지 돌아왔을 즘에는, 잘린 부위가 똑같은 흑석으로 대체돼 있었다. 입다의 석공술로 파괴된 부위도 바로 바로 재생되는 듯했다.


이래서야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동문을 뚫을 수가 없다. 뚫긴 커녕, 목숨이 아깝다면 뒤로 물러나야 할 판국이다. 언제까지고 이 거대한 돌덩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기가막힌 노릇이었다. 동문을 치기 위해 선발된 별동대는 전원 상급 이상 티쿤들로만 이루어진 특공대였다. 최고 경지에 다다른 강자들도 여럿이었고 십이신장들도 셋이나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막혔다. 막힌 정도가 아니라 패퇴 직전이었다. 살아 움직이듯 날뛰는 검은 바윗덩어리들을 공략할 묘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검은 군대 사이에서 한 사람이 용감하게 촉수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입다도 그 존재감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그래. 촉수들을 다 때려 부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 게 아닌 이상 개인 운동능력으로 돌파하는 게 유일한 수단이긴 하지. 그렇지만 그것도 불가능하긴 매한가지인데? 거칠게 움직이는 것 같이 보여도 이 여덟 개의 촉수들, 빈 공간을 내줄 정도로 허술하진 않은데.


언뜻 보기에는 촉수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들이 드문드문 생기는 것도 같았지만, 결국 촉수들이 서로 상호보완해주기 때문에 절반도 못가 피할 곳은 사라진다. 무모하게 그 틈 사이로 뛰어든 도전자는 결국 촉수들 사이에 껴 압사해 죽을 수밖에 없다. 요압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서지 않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저건 참다못한 수하 중 한 사람의 돌발행위일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입다는 무모한 도전자의 이상한 점들을 속속들이 포착할 수 있었다.


일단 도전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같이 두 발로 걷고 있긴 했지만, 사람보다 훨씬 큰 새까만 존재인데 그 얼굴이 마치 범 같았다. 저것도 요압의 [군대] 능력으로 만들어낸 존재일까?


아니었다. 기묘하 도전자는 요압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동방식이었다. 검은 존재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흡수되듯, 돌촉수에 달라붙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액체처럼 녹아내려 촉수에 달라붙는 가 싶더니, 다시 형상을 되찾아 다음 촉수로 점프해 이동한다. 그러더니 또 녹아내려 촉수에 달라붙는다. 입다는 흥미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검은 존재는 단순히 동문에만 가까이 오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촉수와 촉수 사이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위를 향하고 있었다. 성벽 위쪽으로 오고 있었다. 바로 입다에게로 오고 있었다. 입다가 앉아 있는 성벽 위를 향해 오고 있었다.


촉수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었나?


입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동문을 넘기보다 나를 먼저 노리겠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한데 요압, 저런 장난감 같은 걸로 나를 어찌할 순 없다는 걸 모르지 않잖아?


그 사이 검은 존재는 입다가 앉아 있는 성벽 위까지 도달아 착지했다. 입다가 옆을 돌아보니 확실히 사람이 아니었다. 유난히 양팔이 긴 검은 범이었는데, 그저 사람처럼 직립보행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키도 4m는 족히 돼보였다. 꽤나 위협적인 외양이었다. 입다에겐 아니었지만.


“기발하게 애써서 올려 보낸 게 고작 이런 거라면 실망인데.”


하품을 하며 입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체가 뭐냐 넌. 네스토인가? 아니면 대타인가? 물리법칙을 무시한 움직임 말고, 또 뭘 할 수 있나?”


검은 존재, 아낙은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낙은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낙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쩌억.


아낙의 거대한 몸뚱이가 돌연 둘로 갈라졌다. 그러자 알을 깨고 나오듯, 그 사이로 한 사람이 나왔다. 장창을 들고 있는 모그리드 복장의 남자였다. 체구는 곰과 같았고, 험상궂을 것 같은 얼굴의 절반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 입다는 웃었다. 아주 반가운 얼굴이었다.


“역시 너 밖에 없었나.”


천천히 창의 끝을 자신에게 겨누며 전투자세를 잡는 아비새를 보면서 입다가 중얼거렸다.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폭발적인 기운이 입다의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놀이는 끝났다. 요압은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최강의 패를 꺼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싶다면, 입다도 이제 최선을 다해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됐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투기를 발산한 사람답지 않게, 아비새는 입다를 노려만 볼 뿐 다른 움직임을 취하진 않았다. 아비새는 망설이고 있었다. 각오를 굳히고 올라온 것이었지만, 막상 입다의 얼굴을 보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입다는 요압의 친구였다. 아비새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가까운 형이었다. 존경하는 전사기도 했다. 그런 입다와 목숨을 걸고 겨루는 것이었다. 나라를 위한 것이고 민족을 위한 것이고 주인인 루리아, 또 형인 요압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비새는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입다는 그런 아비새의 속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입다는 쓰게 웃었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냐, 아비새?”


“......장군!”


“너무 자신만만한 것 아니냐? 설마 무기강화도 하지 않고 나와 겨룰 셈이냐?”


“......!”


네가 먼저 못하겠다고 한다면...... 입다가 선공을 취했다. 입다가 양손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리자 그 손바닥 위로 자갈 같은 흑석들이 생성됐다. 수백 개에 달하는 검은 돌조각들이었다. 입다는 그 돌조각들을 한데로 길게 모은 다음, 그의 허리에 둘둘 둘렀다. 중력에 영향조차 받지 않는다는 듯, 검은 돌들은 허공에 둥둥 뜬 채 입다의 주위를 맴돌았다.


입다가 아비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에 검은 돌들은 폭포수처럼 아비새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아비새는 창을 두 손으로 잡고 가볍게 움직여 쏟아져오는 돌조각들을 모조리 쳐냈다. 검은 돌들은 아비새에 의해 무력하게 튕겨져 나가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섰다. 그렇게 검은 돌들은 아비새의 전후좌우, 그리고 머리 위까지 모조리 점해버렸다.


입다가 뻗은 손을 갑자기 꽉 쥐었다.


동시에 아비새를 포위한 흑석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비새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창을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크고 빠르게 휘둘렀다. 아비새의 창과 거기에서 일어난 풍압에 휘말려 흑석들은 또다시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거냐?”


입다가 재차 두 손에서 성염을 방출했다. 이번에 생성된 흑석은 고드름처럼 뾰족하고 길었다. 입다는 그런 돌고드름을 열두 개 만들어낸 다음, 하나를 아비새에게 날렸다.


“......!”


아비새는 바로 돌고드름을 받아쳤지만, 큭! 살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날아온 흑석에 담긴 무게가 달랐다. 입다가 물었다.


“이것도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입다는 나머지 11개의 돌고드름을 한꺼번에 아비새에게 날렸다. 아비새는 침착하게 처음 네 개는 받아쳤지만, 나머지 7개는 뒤로 물러나면서 피했다. 아비새가 피하는 것을 본 입다는 말없이 오른손을 짧게 한 번 위로 올려쳤다. 그러자 아비새가 물러난 자리에서부터 입다가 던진 돌고드름보다 더욱 뾰족하고 큰 흑석이 갑자기 솟아났다. 자칫하다가는 다리 째로 꿰뚫릴 판. 깜짝 놀란 아비새는 제대로 착지도 못하고 창으로 바닥을 찍어 또 뒤로 이동하려 했다.


입다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바닥에서는 계속해서 흑석이 솟아올라왔다. 아비새가 최대한 물러서며 피하려고 했지만, 바닥에서 쉬지 않고 흑석들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어디에도 발 둘 곳이 없었다. 흑석들의 크기와 날카로움으로 볼 때, 섣불리 멈춰서는 순간 솟아 올라오는 흑석들에 양 발은 물론이고 몸통 째로 뚫려버릴 듯했다. 아비새의 이마는 어느새 땀범벅이었다. 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입다의 흑석이 성벽 위 공간을 다 점하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쿠웅!


성벽 위를 마구잡이로 덮어버렸던 흑석들이 모조리 박살났고, 그것을 해낸 날카롭고 거대한 참격이 입다를 덮쳤다. 입다는 놀라지도 않고 참격을 받을 것처럼 양 손바닥을 앞으로 폈다. 그러자 큰 비석 같은 흑석이 나타나 입다의 앞을 가렸다. 참격은 가차 없이 비석조차 두 동강으로 쪼개버렸지만, 거기에 힘을 다하고 말았다. 입다에게까지 닿지 못했다.


“그래.”


흑석들이 박살이 나면서 일어난 먼지로 인해 앞이 자욱했다. 입다는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박살이 난 검은 돌들 위에 서있는 아비새가 보였다. 아비새의 창이 보였다. 평범한 장창에 불과했던 창의 날이 바뀌어있었다. 마치 대검이 붙은 것처럼 유독 넓고 두꺼운 창날이 붙어있었다. 날의 크기가 어찌나 큰지 긴 창자루가 왜소하고 볼품없어 보일 정도였다.


“이제 좀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아비새?”


“......죄송합니다, 장군.”


이를 악물고 아비새가 대답했다. 창자루를 두 손으로 잡으며 거대한 창날의 끝을 정확히 입다를 향해 겨눴다. 자세는 처음 등장했을 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젠 투기 정도가 아니었다. 자욱한 살기가 아비새로부터 흘러나왔다.


이제 겨우, 입다를 죽일 각오가 선 것이었다.


작가의말

강하다고는 나오는데 제대로 강함을 선보인 적 없는 두 강자의 대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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