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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론의 아이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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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라
작품등록일 :
2016.10.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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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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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7)

DUMMY

그렇다면 시간을 끌지 않는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간다. 아비새는 창 자루를 두 손으로 쥐고 창날을 입다를 향해 내밀었다. 입다도 한쪽 눈썹을 꿈틀해보였다. 아비새의 이 기술을 입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상대의 방어가 뚫릴 때까지 멈추지 않고 찌르는 기술. 지금 창을 무기강화한 상태에서 이 기술을 시전하면, 파괴력은 평소의 몇 곱절이겠지만 받는 반동도 그만큼이다. 입다의 압축된 흑석을 뚫지 못하면 아비새는 죽는다.


입다는 말없이 두 돌덩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방어자세를 취했다. 아비새는 달려 나갔다. 최소한의 양팔의 움직임만으로 초당 수백 번의 무지막지한 찌르기가 입다의 두 흑석위에 작렬했다. 입다도 성염을 한층 더 끌어올려 맞섰다. 아비새의 역할은 쉬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었고, 입다의 역할은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어하는 입다보다 공격하는 아비새에게 신체적 부담이 더욱 쌓이고 있었다.


아비새는 이를 악물었다. 창 자루를 잡고 있는 두 손은 찢어질 듯 아파왔고 두 팔은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참으로 간만에 호흡이 가파르게 올라감을 느끼고 있었다. 성염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한계까지 밀리고 있었다. 어쩌면 한계 이상으로까지.


그러나 그 순간 아비새는 입다가 아닌 다른 남자를 보았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 늘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


그 포기를 모르는 놈은 기어코 아브넬 장군마저도 이기고 이제는 모그리드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가져가려 한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모그리드 출신도 아닌 녀석에게 이 땅의 최강자라는 이름을 넘겨줄 수는......!


입다도 이를 악물었다. 아비새의 공격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가 예상했던 한계점을 진즉에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새는 멈추고 있지 않았다. 더 강해졌다. 아비새는 분명 더 강해졌다. 입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쩌억.


그 증거로 영원히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입다의 두 돌덩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입다도 아비새도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비새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창을 찌르고 있었고, 입다도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체내 성염을 전부 쏟아 붓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운이 그렇게 충돌하는 동안, 두 흑석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아비새가 쓰러지기 이전, 압축된 두 흑석의 내구도가 먼저 한계에 이른 것이다.


퍼엉!!!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두 흑석이 폭발했다. 충격파에 휩싸인 아비새는 그만 뒤로 쭉 밀려나고 말았다. 아비새는 창을 바로 세우고 창 자루의 끝으로 바닥을 끌어 간신히 밀려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비새도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양 손바닥은 피투성이였다. 아비새는 고통도 못 느끼고 호흡을 고르는 데만 온 힘을 다했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비새는 정면을 똑바로 보며 입다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입다는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충격파에 전신이 휘말려 쭉 뒤로 날아가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었다. 입다의 주위는 분산된 충격파에 의해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있었다. 하아. 입다가 한숨을 쉬었다. 목구멍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입다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바닥에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던 피를 뱉어냈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했는데도 힘 싸움에 밀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비새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다는 아직 일어서기 전이었다. 승기를 잡았다. 확신한 아비새는 외쳤다.


“장군......!”


“.......”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


“슈라비와의 의리도 이 정도면 지킬 만큼 지킨 것이 아닙니까? 시므리놈을 위해 장군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놈을 위해 죽을 이유까지는 없는 것 아닙니까?”


“.......”


“그만하십시오. 이제라도......! 이대로 가면 정말 둘 중 하나는 죽어야......!”


“그래. 그리고 넌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자리를 털고 입다도 일어났다. 전투에서 밀리고 있음에도 그는 고요하고 침착했다. 그의 두 눈은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내 후배 중 나를 뛰어넘을만한 녀석이 있다면 너라고 늘 생각했지. 그렇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당황스럽긴 하군. 겸손한 척, 별 거 아닌 척 하려고 해도 나 역시 스스로의 힘에 대한 믿음이 상당했던 모양이야.”


“장군.......!”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마라, 아비새. 아직 끝난 것이 아니야. 네 말대로, 어느 하나가 죽기 전까지 이 싸움은 끝날 수 없어.”


입다가 왼손을 들었다.


아비새의 두 눈이 커졌다. 성염술사로서 입다는 기술을 쓸 때 늘 양 손을 함께 사용하거나, 오른손을 주로 먼저 뻗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본래 입다는 왼손잡이다.


그리고 그가 왼손으로 시전하는 기술은 단 하나 뿐이다.


입다의 왼손바닥으로 흑석이 생성됐다. 처음 생성됐을 때의 크기는 수박만 했다. 그러나 입다의 압축으로 인해 점점 크기가 줄어들더니, 종국에는 배구공 정도로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입다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압력을 가해 흑석을 압축해갔다. 지나치게 가해진 압력을 이기지 못한 흑석은 아비새의 창에 찔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펑! 터지더니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탁구공만한 크기의 작은 검은 돌멩이 하나가 남았다. 그 돌은 마치 흠 없는 검은 보석처럼 번쩍였다. 그 돌을 보는 순간, 아비새는 바로 창 자루를 두 손으로 다시 잡았다. 공격이 목적이 아니었다. 방어였다.


입다는 왼손으로 검은 돌멩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상체를 뒤로 젖히고 왼팔을 옆에서부터 끌고 오면서 아비새를 노리고 정직하게 돌을 던졌다.


쿠웅!!!


돌이 날아오는 건 눈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비새는 타이밍만 맞춰 반응했다. 전력을 다해 창을 앞으로 뻗어 돌을 받아내려 했다. 그러나 창끝과 돌멩이가 맞닿는 순간, 아비새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입다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비새도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쿨럭.


아비새가 기침을 했다. 입에서 붉은 피가 튀었다. 용케도 아직 창을 놓고 있지 않았지만, 온몸이 저렸다. 무기강화를 한 그의 창의 파괴력조차 가뿐히 넘어서버린 투석이었다.


이것이 입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


입다의 강점은 방어력만이 아니었다. 공격력으로도 그는 최고였다. 특히 그의 왼손 투석은 아브넬이 아닌 이상 막을 사람이 없는 비기였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아비새도 실전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입다가 이 기술을 꺼내야 하는 상황까지 가는 경우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입다는 다시 왼손을 들었다. 그의 손바닥 밑에서 커다란 검은 돌덩이가 생성됐다.


아비새는 하늘을 보았다. 입다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을 자신에게 시전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싸우는가. 그것을 아비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물러설 수 없는 것은 자신도 같다는 것이었다.


아비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다가 직접 투석하기 시작한 이상, 이제 이 싸움은 한 방 싸움이었다. 힘과 힘의 대결. 아비새 역시 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됐다. 여전히 컨트롤이 불가능한 무기강화의 힘을 빌어 말이다.


아비새는 오른손으로 창을 잡고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마치 창이 회전하기라도 하듯 돌풍 같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기운이 그의 창 전체에 모이기 시작했다. 입다의 돌덩이는 점점 작아져가는 반면, 아비새의 창은 창 전체를 휘감아버린 알 수 없는 성염에 의해 거대해져만 갔다. 입다가 탁구공만한 크기까지 줄어든 검은 돌멩이를 왼손에 쥐었을 때쯤, 아비새는 이제 창이 아니라 거대한 회오리기둥을 잡고 있는 듯했다.


입다가 일단 돌을 던지면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타이밍 맞추기가 힘들다. 아비새는 먼저 움직였다. 소용돌이치는 창끝으로 입다의 몸통을 노리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에 맞춰 입다는 왼손의 돌을 아비새를 향해 던졌다. 다시 한 번 입다의 검은 돌과 아비새의 창끝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두 강자가 사력을 다한 필살기의 충돌이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충격파의 크기는 지금까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동문 성벽의 바닥이 푹 꺼지면서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기 시작한 성벽은 기다리고만 있었다는 듯 한꺼번에 지면까지 무너져 내렸고, 이에 맞춰 동문 성벽을 지키고 있던 돌 촉수들도 힘을 잃고 전부 땅으로 추락해버렸다. 애타게 성벽 위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요압 군은 자신들도 모르게 움찔하며 무심코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리고 그 쏟아져 내리는 돌 벽과 먼지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비새의 창끝이 입다의 검은 돌멩이를 뚫었다.


방해물을 치워버린 아비새의 창은 멈춤 없이 앞으로 질주했다. 그곳에는 입다가 서있었다. 아비새는 공격을 멈출 수 없었고, 입다는 굳이 저항하지 않았다.


아비새의 창이 입다의 몸을 관통했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성벽에 가려, 누구도 그 비극적인 장면을 목도하진 못했다.






바닥이 꺼지고 성벽이 무너져 내리며 아비새와 입다도 함께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비새의 대응은 빨랐다. 남은 성염을 모두 활용해 막을 치는 것으로 스스로와 입다를 지켜냈다. 아비새는 창에 찔린 입다를 붙들고 쏟아지는 돌덩이들을 대신 받아가며 지면에 착지했다. 착지할 때의 충격까지 대신 흡수했다. 입다와의 전투에 전력을 쏟아 부은 아비새에게도 쉽지 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자신과 입다를 지켜낼 수 있었다.


입다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사실 아비새의 창에 몸이 관통된 시점에서 죽음은 확정적이었다. 즉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다는 최강의 티쿤 중 하나답게 그 정도 충격을 받고도 바로 죽지 않았다. 그리고 아비새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입다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봤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너진 동문의 잔해 위에 착지한 아비새는 들고 있던 입다를 조심스럽게 땅에 뉘였다. 입다의 몸에 꽂힌 창은 빼지 않았다. 빼봤자 피가 쏟아져 나올 구멍만 열어주는 셈이었다. 아비새는 다만 입다의 팔을 붙잡고 얼마 남지도 않은 성염을 흘려보내며 입다가 숨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입다는 꺼져가는 눈빛으로 그런 아비새를 올려다보았다. 돌먼지를 뒤집어 쓴 아비새는 전신이 잿빛이었다. 아마 자신도 마찬가지 몰골이리라.


“요압.......”


겨우 겨우 입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요압이...... 근처에 있나.......?”


“있습니다.”


아비새가 얼른 대답했다.


“전투가 끝났으니 여기로 오실 겁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장군.”


“이 마당에...... 장군은...... 무슨.......”


입다가 쓰게 웃었다. 드러난 그의 이빨은 하나 같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 예전처럼.......”


“.......형님! 입다 형님!”


피를 토하듯 아비새가 절절하게 입다를 불렀다. 형. 입다는 아비새에게 정말 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친형인 요압 다음으로 따랐던 남자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어쩌다 자신이 그렇게 존경하고 동경하던 남자를 죽이게 되는 상황까지 왔는가. 대체 어쩌다가.


아비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입다도 힘이 드는지 더는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요압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가 종료 됐으니 요압이 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친구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분명 올 것이다.


두 사람의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벅저벅. 머지않은 곳에서부터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둘은 그 주인공이 요압임을 보지 않고도 깨달았다. 요압은 부하들을 다 물리치고 홀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이런 결과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차분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냉정한 얼굴로 아비새의 뒤에 서서 죽어가고 있는 입다를 칼날 같은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런 요압을 보며 입다가 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 후회 따위는 담겨있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입다를 노려보며 요압이 말했다.


“입다. 넌 잘못된 선택을 한 거다. 아브넬 장군이 죽은 시점에서부터 이미 중과부적이었어. 넌 우리를 상대로 싸워서는 안 됐어.”


“......맞아. 안 됐지.”


“이런 결과는 슈라비도 원하지 않았을 거야. 넌 슈라비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시므리는.......”


콜록 콜록. 입다가 기침을 했고 그때마다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입다는 요압의 말을 끊었다. 이제 그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전에 분명히 해둬야 하는 게 있었다.


“......슈라비의 아들만이 아니야.”


“......?”


“......내 아들이야.”


처음으로 요압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졌다. 입다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두 눈이 커졌다. 상관하지 않고 입다가 말을 이었다.


“......내 아들이야. 그 아이는 카블라 왕족 따위가 아니야. 내 아들...... 나와 슈라비의 아들이야.”






슈라비.


그녀는 재니서리였다. 6살에 광야에 팔려와 26살이란 젊은 나이에 당당히 재니서리 중 한 명으로 선출됐다. 그녀는 강력한 티쿤이었고, 네스토였다. 또 보통 성격이 아니었다. 기도 세고 고집도 센데다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선배 재니서리들마저도 함부로 건들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슈라비가 입다는 귀여웠다. 말 그대로 콩깍지가 쓰인 것이다.


슈라비는 바로 입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입다가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넉살로 자신의 성격을 받아주자 조금씩 곁을 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도 약속한 사이가 됐다. 행복한 미래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아몬의 궁으로 차출되기 전까지는.


네스토와 네스토가 만나면 그 자녀도 네스토일 확률이 올라간다. 그렇다면 강력한 네스토일수록 그만큼 강력한 능력을 가진 네스토가 태어날 확률도 더 높지 않을까. 성염 소멸 네스토를 생산하기 위해 아몬의 궁으로 들어갈 자원자가 떨어진 상아궁에서 내놓은 방안이었다. 네스토 부대원들 정도가 아니라 여자 재니서리들이 사이에서 제비를 뽑아 선택된 일부는 무조건 아몬의 궁으로 가야한다는 명령이었다. 정혼자가 있는 슈라비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귀족 영애마저 끌려가는 판국이었으니 입다의 정혼자라는 사실 정도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제비를 뽑은 결과 슈라비가 선택됐고, 그녀는 아몬의 궁으로 가야했다. 입다는 난리를 쳤지만,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입다는 슈라비에게 함께 도망갈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슈라비가 도리어 입다를 설득했다. 도망쳐봐야 결국 잡힐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슈라비는 다시 끌려갈 것이고 입다는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아이를 낳아 성염 소멸 네스토가 아니면 다시 돌려보내준다고 들었어요.]


벌벌 떨며 슈라비가 말했다.


[성염 소멸 네스토를 낳지 못하면...... 다시 내보내 줄 테니...... 그때...... 당신이 괜찮다면.......]


입다는 슈라비를 안아주었고 언제까지고 그녀를 기다릴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렇게 슈라비는 세겜성으로 갔고 아몬의 궁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흘렀다. 10개월이 안 돼서 슈라비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아들이 성염 소멸 네스토가 아니라는 것도. 입다는 하루 빨리 슈라비가 궁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슈라비는 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시신이 돼 나왔다. 자살한 것이다.


태어난 아들이 문제였다. 너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네스토가 태어난 것이 문제였다. 이에 고무된 상아궁이 슈라비를 계속 아몬의 궁에 둘 것을 결정했고, 슈라비의 출궁을 막았다. 그들은 예외적으로 슈라비를 아몬의 정식부인 중 하나로 삼으려 했다. 이에 대한 슈라비의 반응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입다는 당장 세겜성으로 달려갔다. 무작정 달려갔다. 차고 넘치는 분노의 화살을 대체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라, 일단 세겜성으로 갔다. 아몬의 궁으로 갔다.


입다가 세겜성에 도착했을 즘에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입다는 아몬의 궁의 담을 넘어, 경계병들 중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몬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몬은 자고 있지 않았다. 대궐 같이 넓은 방안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슈라비의 죽음에 그 역시 슬퍼하는 것일까? 입다는 궁금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아몬 역시 피해자지만, 동시에 모든 일의 원흉이기도 했다. 아몬만 없으면 됐다. 아몬만 없으면 자신 같은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들 또한 없을 것이다. 아몬을 죽여야 했다.


입다 정도의 티쿤이 살기를 흘리며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아몬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초연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초연하다 못해 무관심했다. 아몬을 맞닥뜨리기 무섭게 죽일 생각이었던 입다조차, 그런 아몬의 태도에 문득 멈칫하고 말았다. 살기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인간은 입다는 처음이었다.


[어서 오시죠, 입다 장군.]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아몬은 입다를 바로 알아보았다. 입다는 움찔했다. 아몬은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아마 오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슈라비가 말했거든요. 당신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강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실제로 보니 그녀가 묘사한 것 이상이군요.]


[.......]


슈라비의 이름이 입다를 또 움찔하게 했다. 잠시 잊었던 분노가 되살아났다. 입다는 왼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검은 돌덩이가 생성돼갔다. 이런 기술을 쓸 필요조차 없는 상대였지만, 그냥 죽이는 것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머리를 터뜨려 죽여 버릴 셈이었다.


[슈라비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몬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슈라비를 언급할수록 입다의 화를 돋우기만 한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 떠들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아이만 낳으면 슈라비를 내보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하필 태어난 아이가 발목을 잡을 줄은. 듣도 보도 못한 능력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 능력에 그만 높으신 분들이 혹해버렸어요. 이 정도 능력자가 태어날 정도라면, 어쩌면 다음번에는 성염 소멸 네스토도 태어날 수 있다고 믿은 것인지.......]


입다는 천천히 왼 손바닥 밑에 생성된 돌덩이를 압축시켜갔다. 수박만하던 돌덩이의 크기가 빠르게 줄고 있었다. 아몬은 그쪽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 돌덩이에 자신의 목숨이 달렸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애초에 내 아이가 아닌데.]


[.......!]


입다가 세 번째로 움찔했다. 그는 아몬의 말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니. 무슨 말인가? 그러나 아몬은 설명 없이 계속 말했다.


[태어난 아이가 그렇게 강한 네스토인 것은 슈라비가 강력한 네스토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강하기 때문일까요? 오늘 당신을 직접 보고 든 생각인데, 아이는 당신보다는 슈라비를 더 닮은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지만요. 그래요. 외모는 슈라비를 더 닮았어요.......]


[무슨 소리야.]


[......예?]


[네 아이가 아니란 게 무슨 소리야. 내 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고!]


입다의 고함에 방 전체가 쿵 하고 흔들렸다. 아몬은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입다의 고함소리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리둥절해져 있었다. 당연히 입다가 알고 있으리라고 믿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거에 놀란 것이었다.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못 들었나요?]


[.......]


[슈라비는 궁에 들어왔을 때 이미 임신 중이었고...... 제게 부탁했어요. 이미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자신을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분명 정혼자의 아이...... 그러니까 당신의 아이라고 했는데.......]


아! 입다는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사람처럼 휘청하고 말았다.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 사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입다가 방금 친 고함으로 침입자의 존재를 경계병들이 눈치 챈 듯했다. 아몬은 당황한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마무리 짓고 일단 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입다 장군? 오늘 밤 저를 찾아온 사실이 드러나면 아무리 장군이라도 무사하기는.......]


[아이 이름.]


[예?]


[아이 이름이 뭐지? 태어난 아이의 이름. 슈라비가 지어줬나? 아니면 당신이?]


[슈라비가 지어줬습니다.]


아몬이 바로 대답했다. 그는 이 급박한 상황에 입다가 왜 갑자기 아이 이름 같은 것을 묻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시므리. 시므리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문제는 없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경계병들이 들이닥치기 전, 입다는 아몬의 방을 나왔다. 담을 넘어 아몬의 궁을 빠져나온 후, 세겜 성벽을 넘어 수도 모그리드를 향해 달려갔다. 밤이 새도록 전속력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뜨거웠다. 온몸이 불덩이가 된 것 같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할 말을 잃고 망부석처럼 서있는 요압을 향해 입다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슈라비와...... 약속했었어.......”


“.......”


“결혼해서...... 아들이 태어나면...... 시므리...... 딸이 태어나면...... 다나.......”


“.......”


“부탁이야...... 요압.......”


입다가 요압을 향해 왼 손을 뻗었다. 요압은 말없이 그 왼손을 잡았다. 입다가 말을 계속했다.


“시므리를...... 살려줘.......”


“.......”


“그 아이는...... 이 나라와 민족에...... 대죄를 지었어...... 내 잘못이야...... 슈라비의 죽음을 원망해...... 그 아이가 삐뚤어지는 것을 막지 않았어.......”


“.......”


“하지만...... 내 아들이야...... 부탁이야...... 제발...... 제발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


“제발...... 목숨만은.......”


“.......”


입다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힘이 다한 것이다. 호흡이 멈췄다. 그렇게 입다는 숨을 거뒀다.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전해들은 요압과 아비새 형제는 입다의 죽음 앞에서도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비새는 그야말로 머릿속이 텅텅 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요압은 그저 입다의 손을 잡고 가만히 서있었다. 입다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반면 그런 입다를 내려다보는 요압의 얼굴은 근심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친동생 아비새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요압은 하고 있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의 가슴을 들끓게 했다. 밝혀진 진실과 친구의 마지막 부탁이 남긴 무게에 요압은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꽉 조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날 용서해줘, 친구.”


요압이 중얼거렸다.


“자네를 오해했고, 이해하지 못했어. 자네의 아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어. 하지만 난 자네 아들을 살려둘 수 없어.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그러기에는.......”


“.......”


요압은 무릎을 구부리고 조심스럽게 입다의 왼 손을 놓아주었다. 아비새는 서글픈 눈으로 요압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어찌 해야 되는지 묻고 있는 눈빛이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요압은 입을 열었다. 다시 예의 냉철한 표정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었지만,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았다.


“입다의 시신을 잘 거두어줘라.”


“.......”


“세겜성에 있는 슈라비의 무덤 옆에 묻어줄 것이다.”


“......예. 형님.”


그것이 친구로서 요압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그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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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그의 재능은 끝이 없고 (2) +4 19.11.18 79 7 18쪽
166 그의 재능은 끝이 없고 (1) +1 19.11.11 74 4 24쪽
165 삼마 (5) +2 19.11.04 80 3 19쪽
164 삼마 (4) +3 19.10.21 92 9 24쪽
163 삼마 (3) +2 19.10.08 100 6 19쪽
162 삼마 (2) +4 19.09.30 99 7 17쪽
161 삼마 (1) +4 19.09.10 111 5 23쪽
» 친구 (7) +1 19.09.03 95 8 25쪽
159 친구 (6) +1 19.08.26 94 10 21쪽
158 친구 (5) +1 19.08.19 95 10 20쪽
157 친구 (4) +2 19.08.12 100 8 18쪽
156 친구 (3) 19.08.05 92 7 20쪽
155 친구 (2) 19.07.29 88 8 19쪽
154 친구 (1) +3 19.07.22 124 7 19쪽
153 예언자의 비밀 (5) +3 19.07.08 115 9 25쪽
152 예언자의 비밀 (4) +5 19.07.01 119 10 19쪽
151 휴재공지입니다;; +2 19.05.21 143 7 1쪽
150 예언자의 비밀 (3) +1 19.05.13 113 9 17쪽
149 예언자의 비밀 (2) +3 19.05.07 126 7 21쪽
148 예언자의 비밀 (1) +2 19.04.29 113 9 19쪽
147 모략가 (5) +2 19.04.22 139 10 21쪽
146 모략가 (4) +2 19.04.15 150 1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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