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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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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최근연재일 :
2019.12.0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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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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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1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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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DUMMY

하지만 결국 무리해서 일어섰을 뿐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건 변함없었다.

전신을 좀먹는 무력감이 다시 쓰러지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독이 아니라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피가 흘러서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예전에 손가락을 조금 깊게 베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땐 바닥에 조금 흐른 피를 본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현기증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 보다 훨씬 많은 피를 쏟고 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감흥이 없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흐려지는 시야 저편으로 검은 후드에게 들쳐 업혀진 이자벨의 모습이 보였다. 겁에 질린 두 눈엔 가득 고인 눈물이 애처롭게 넘쳐흐르고 있었다.

건방질 정도로 당당했던 낮의 모습에선 상상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마치 어렸을 적의 여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

안하무인에 당돌한 이자벨도 결국 어린애인 것이다. 여기서 이런 불손한 일을 당해선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제대로 붙어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감각이 없는 다리를 떼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흔들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마주 선 사람들에게서 지금까지 없었던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검붉은 후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놀란 기색마저 느껴졌다.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토를 하고 말았다. 썩은 기름마냥 더럽게 변색된 검은 피가 목구멍을 타고 입으로 뿜어져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그 애를 내놔 이 로리콘놈들아.”

몸은 무겁고 피는 썩어 있고 좀비라도 된 기분이다. 다 죽어가는 반송장 상태니 틀린 것도 아닌가.

또 한 걸음 움직였을 때 가장 가까이 있던 검은 후드가 칼을 빼들고 짓쳐 들어 왔다.

죽을힘을 다해 일어섰건만 결국엔 죽는 시간이 앞당겨 졌을 뿐이다. 허무하고 원통하고 꼴사납고 바보 같다.

칼날이 다가온다. 나는 아무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마지막 삶의 끈을 잡듯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나를 두 동강 낼 기세로 허공을 가르는 쇠붙이를 너무도 무른 내 손이 붙잡았다.

드디어 머리까지 맛이 간 것인가. 아니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환각인가.

어느 쪽이든 눈앞에 일어난 상황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내 손에 붙잡힌 칼이 바람에 모레가 흩날리듯 스러졌다.

흔한 히어로 영화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미지의 힘에 눈 뜬 것이 아니라면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 전자라면 지금부터 대 역전극이 펼쳐질 것이고 후자라면 얼른 잠에서 깨서 라뮤를 안고 개꿈이라며 흘려 넘겨 버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 시리얼을 먹은 것처럼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지도 않았고 꿈이 깨지도 않았다.

무리하게 손을 뻗은 탓인지 자세가 무너져 다시 바닥에 쓰러졌을 뿐이었다.

현실은 좀처럼 누군가에게 쓰여 진 소설처럼 흘러가진 않는 법이다. 그렇기에 현실은 시시하고 잔혹하다.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은데다가 그 사실을 끊임없이 내게 들이 민다.

나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기를 쓰고 버둥거려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청사독에 중독되고도 움직이는 인간은 처음입니다. 단순한 쓰레기는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검붉은 후드가 박수라도 칠 것처럼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의 머릿속에서 한 단계 평가가 오른 것 같았다. 전혀 기쁘지 않구만.

“유감이지만 점점 더 당신을 살려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죽는 걸 꼭 확인해야겠어요.”

말을 마치며 들어 올린 왼손의 소매 안쪽에는 콤팩트 사이즈의 크로스 보우가 둔탁하게 빛나는 볼트를 머금은 채 나를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꼼짝없이 머리가 꽃꽂이처럼 되어버릴 테지만 이제는 정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의식도 점점 흐려지고 몸이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잠들어 버리면 편해질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던 등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졸립고 졸려서 참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아무래도 좋아.

천천히 눈이 감긴다. 세계가 멀어지고 혼자 남은 듯한 적막만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삶을 되새김하듯 닫혔던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너무나 멀리 서 있던 검붉은 후드의 소매가 펄럭였다. 그 속에서 검은 바람이 일렁이며 쏘아졌다.

수분을 한껏 머금은 비구름처럼 무거워진 눈꺼풀이 다시 닫힌다. 이대로 편히 쉬자. 이젠 다 끝이다. 끝난 것이다.

......

......

.....

...

마지막 숨을 내뱉기 전의 변덕이었을까.

감았던 눈을 뜨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밝은 갈색의 머리와 건장하지는 않지만 우뚝 선 균형 잡힌 몸. 얼굴은 안보이지만 분명 나와는 정반대인 산뜻한 미남일 것이다.

그 미남의 손에는 무언가를 지키듯 내민 은색의 화려한 방패가 들려 있었다. 내가 저러고 있었으면 나이 값 못하는 코스플레이어처럼 보였겠지만 눈앞의 남자는 사진으로 남겨 놓고 싶을 정도로 그림이 되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되는 뒷모습이었다.

빈틈없이 자세를 잡은 채 눈만 돌려 나를 보며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귀마개라도 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탁한다...”

의미도, 어째서 이런 때 이런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른 채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했다. 이젠 정말로 자도 되는 거겠지.

의식이 멀어진다. 세상이 포근한 암흑에 휩싸였다.


작가의말

주인공의 사망으로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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