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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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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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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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1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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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DUMMY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깰 듯 깨지 않는 얕은 잠 속에서 언젠가 보았던 풍경이 어렴풋이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깨어서 현실의 어딘가를 보는 것도 아니고 푹 잠들어서 꿈속의 광경을 보는 것도 아닌 그저 어두컴컴한 심연의 한켠에 내던져진 듯한 애매한 상태. 현실과 꿈 사이에 낀 듯한 어정쩡한 상태에 지금 나는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살짝이라도 기울이면 단숨에 균형이 무너지겠지. 하지만 나는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채 이 상태에 머물렀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일순인 듯, 혹은 영원인 듯한 시간이 지나고 불현 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시원찮은 낯짝이군.”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건만 모습도 목소리도 희미해져 있었다. 녹이 슨 기억 속을 더듬어 흐려진 이름을 건져냈다.

“테스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자 그 존재가 머릿속에 인식되어졌다. 그 이후로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아서였을까. 내 안에 쭉 존재했었을 터인 이 녀석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치 그 부분의 기억만이 장막에 가려진 것처럼 거기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숨긴 것처럼.

어쩌면 그건 테스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숨죽인 채 마치 위장을 한 저격수처럼.

단 열흘 남짓 만에 그렇게 충격적인 커밍아웃을 한 악마를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보통.

“나는 숨지 않았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뿐.”

테스카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입으로 나오지도 않은 말에 대답했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목소리만 스산하게 맴돈다. 정말로 악마를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말했잖나. 나는 악마라고.”

“기분 나쁘니까 생각 읽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될까?”

“글쎄.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테스카는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며 모른 척 했다. 하나하나 짜증나는 녀석이다.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었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다운되어 버렸잖아. 어떻게 책임 져 줄거야 쨔샤.

“그건 그렇고 난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긴 또 왜 이렇게 컴컴해?”

전에 테스카와 이야기 했던 곳은 정신이 이상해 질 것 같을 정도로 새하얬던 넓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두웠다. 혹시 전이랑은 다른 곳인가?

“전의 그 곳도, 지금 이 곳도 모두 같은 곳이다. 어디든지 다 네놈의 마음속이지.”

“뭐야. 그럼 다 내 탓이란 거냐?”

“반은 내 탓이기도 하지.”

“...무슨 소리야?”

“너의 의지인지, 아니면 밉살스런 여신의 짓인진 모르겠지만 네 혼의 일부가 된 나를 지우려고 하는 거다. 덕분에 지금 이 꼴이다. 점점 네놈에게서 잊혀져 가니까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 거야. 뭐, 무리겠지만.”

옅은 조소를 남기며 테스카는 말을 끝냈다. 나는 테스카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했다.

그 말대로라면 만약 내가 완전히 테스카에 대해 잊는 것이 내 안에서 테스카를 몰아내는 방법이라는 말인가?

“아니, 나를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다. 그저 네놈이 죽을 때까지 가둬질 뿐이다.”

“그래도 만약 그렇게 되면...”

“평생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겠지. 네놈의 입장에선 몰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다.”

테스카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저 악마에게서 해방될 수 있다는 소리다. 다만 그걸 순순히 가르쳐 준 의도를 가늠하지 못하겠다.

“걱정하지 마라. 네놈이 날 잊으려 할 때마다 나는 몇 번이든 말을 걸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네놈이 날 찾게 되겠지.”

이를테면 도발인가.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자신감의 발로인 것이다.

확실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이제 할 말은 끝난 거냐?”

볼일이 없다면 얼른 이 칙칙한 꿈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 라뮤에게 한 번 더 메이드 복을 입어 달라고 하면 입어 주려나.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거라. 그래, 네놈에게 조금 조언이라도 해주기로 할까.”

어떻게 하면 잠에서 깰까 생각하고 있었더니 테스카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뭐가 남은 건가.

“얼마 전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었지.”

아. 그 일인가. 그러고 보니 검은 후드의 칼에 두 동강 날 순간에 명백히 이상한 일이 일어나 살아났었다. 그건 테스카가 했었던 건가. 그렇다면 손톱만큼이지만 감사할 용의가 있다.

“나에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니.”

“엥? 그럼 그건 누가 한 거냐?”

혹시 내 안에 테스카 말고도 다른 악마가 살고 있는 건가? 내가 악마 공동 주택 같은 상태라고?

“내 힘을 쓴 건 맞지만 한 건 네놈이다. 내 힘을 멋대로 끌어가서 형편없이 써대더군. 꽤나 불쾌한 경험이었다.”

말과는 달리 즐거운 듯이 큭큭대며 테스카는 말을 이었다.

“뭐, 그건 이제 와선 어찌 되든 상관없지. 이야기를 돌려서 너에게 검을 들이민 그 녀석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고 자시고 단순한 납치범...들은 아니었다. 몰래 성을 빠져 나온 나와 이자벨을 기다리고 있었던 점이라거나 처음부터 이자벨이 공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 등 수상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길이나 다른 용사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외엔 알 수가 없는 정보일 텐데 말이다.

“단순한 멍청이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칭찬해주지.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것 참 고맙구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 놈들은 성 안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정보원, 혹은 수단을 가지고 있는 무장 단체라는 거지. 그렇다면 어째서 공주를 노렸을까. 알겠나?”

공주를 납치하려 한 이유라.

“돈을 노린 납치...라기엔 위험이 너무 커. 무사히 돈을 받는다고 해도 나라를 상대로 평생 쫓기며 살아야 할 테니. 그렇다면 도대체 왜...?”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답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간단한 이야기다. 공주가 아니라 공주를 납치해서 야기될 혼란이 목적이었으니까.”

“혼란...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머진 알아서 생각해라. 이제 곧 시간이군.”

기분 탓인지 테스카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깨어나려는 전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위를 잘 둘러봐라.”

테스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마지막은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흐려졌다.

가득 찬 어둠 속에 희미한 빛이 섞이기 시작하더니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리송한 테스카의 말을 머릿속에 남긴 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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