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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떠있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여관 안에는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주인조차 없었다.
먼지마저 가라앉아 얼마나 사람의 유동이 없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장사를 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도 없는 걸까요?”
라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관 안을 둘러봤다.
길이 카운터로 다가가 놓여 진 작은 종을 울리자 얼마 후 안쪽 문을 열고 헤진 앞치마를 두른 십대 중반 정도의 소녀가 나타났다.
“신문은 안 봐요. 저희 가족 다 건강해서 만병통치약도 필요 없구요. 이상한 도자기 같은 것도......”
소녀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카운터로 나와서 묻지도 않은 말을 쏟아내다가 길의 얼굴을 보고 굳어버렸다.
“저기~ 비어 있는 방 있습니까~?”
길의 옆에 서서 내가 말해 봤지만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내 존재 자체를 인식 못하는 것 같은데...
매직이라도 있으면 얼굴에 낙서라도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유성이 필요하다. 아주 강력한 유성이.
“숙박을 하려 한다만.”
옆에서 알짱대는 나를 무시하며 길이 입을 열자 마법이 깬 것처럼 소녀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허둥대며 나왔던 작은 문을 열고 소리쳤다.
“어, 엄마 아빠! 소,소소 손님이야아!”
마치 강도라도 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외친 소녀의 말에 안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는 구르듯이 둥근 그림자가 문을 통해 튀어나왔다.
공처럼 둥근 체형의 두 사람이 허겁지겁 카운터 앞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아마도 저 소녀의 부모인 것 같았다.
“저, 저희 여관을 방문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아앗!”
“어, 어떤 바, 바바방을 원하시나요옷!?”
굉장히 텐션이 올라간 두 사람이 잡아먹을 듯이 몸을 내밀고 외쳤다. 순간 박력에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라뮤와 나에도 마찬가진지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길과 세라씨는 여전히 마이페이스라 무표정과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2인실과 4인실 하나씩. 그리고 식사도.”
길이 동전 몇 개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자 부부가 잽싸게 챙기고는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아직 파시온드의 통화개념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해서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부족하지는 않았나 보다.
“2인실과 4인실 모두 2층에 있습니다. 아, 하지만 4인실에는 침대가 부서져서...”
“상관없소.”
“아, 그렇다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카티아.”
둥근 아저씨의 부름에 카티아라 불린 소녀가 카운터에서 나와서 앞장섰다.
“여러분들 이쪽으로 와주세요.”
먼저 2층으로 올라가는 카티아를 따라서 우리들도 계단을 올랐다. 도중에도 카티아의 시선은 길에게 박혀서 떨어질 줄 몰랐기에 계단에서 구르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성에 있을 때도 메이드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가던 건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건 당사자가 아니라도 부담스러워질 만도 하건만 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미남들은 저런 시선에도 익숙해져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길이 이상한 건가.
어찌됐든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일이라 알 수가 없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분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카티아를 따라 올라간 2층에는 마주 본 방이 2개씩 총 4개가 있었다. 우리는 늘어선 방 두 방으로 안내 받았다.
“이쪽 방과 이쪽 방을 쓰시면 되구요. 저녁은 언제 준비해 드리면 될까요?”
“3시간 뒤에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눈에서 별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발랄하게 대답하고는 카티아는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그런 카티아를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세라씨와 나에가 2인실이고 나와 라뮤, 길이 4인실로 들어갔다. 곧 돌아올 마부를 포함해서 총 4명이다.
방 안에는 둥근 아저씨의 말대로 침대가 부서져서 그런지 텅 비어 있었다. 구석에 놓인 이불이 아니었다면 창고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그건 그렇고 꽤나 이른 시간이다.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 벌써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눕기도 좀 그랬다.
물론 지구에서는 24시간 언제든지 자고 싶을 때 잤었습니다. 백수의 특권이니까요.
여하튼 저녁을 먹기 전까진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뭘 하며 시간을 때우면 좋을까.
인류 역사상 끝없이 반복되어온 난제의 해답을 찾으려 고민하고 있자니 길이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어? 어디가?”
“주위를 둘러보러 간다.”
짧게 대답한 길이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도착하자마자 밖으로 나돌다니 역마살이라도 끼인 건가.
남자라면 자고로 묵직하게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드렉형. 저희도 산책 가지 않을래요?”
“좋아. 가자. 이 세상 끝까지라도.”
산책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참신한 발상이다. 우리 라뮤는 혹시 천재가 아닐까?
강아지처럼 올려다보며 조르는 라뮤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는 플루아를 걸어보기로 했다.
남자라면 자고로 모험심을 가져야 하는 법이니라.
여관을 나서기 전 잠시 보인 주인 부부의 모습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현대인의 소양 보고도 못 본 척을 발휘하며 지나쳐 나왔다.
저 모습이 어딘지 낯설지 않다고 느껴졌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마치 레고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저런 부모 밑에서 어떻게 카티아처럼 평범한 아이가 나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면 카티아도 저렇게 레고처럼 되어 버리는 걸까?
“어디부터 가볼까요?”
여관을 나선 라뮤가 주위를 둘러보며 내게 물었다. 꽃이 시들었다고 해도 명색이 관광지니까 뭔가 다른 볼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근처에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물어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이른 시간임에도 주위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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