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떠나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들도 발걸음을 서둘렀다. 언제 다시 공격이 시작될 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 외에도 누군가가 있는 걸까요?”
라뮤가 불안한 듯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전 남매의 이야기를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검은 용산지 뭔지 말야? 참 웃기지도 않아.”
나에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어떤 분일까요? 만나보고 싶네요.”
“에에~? 잘도 그런 소릴 하네. 뭐하는 놈인지도 모르면서.”
“그렇지만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해주셨잖아요? 분명 멋진 분일 거예요.”
세라씨는 꿈꾸는 소녀처럼 눈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당사자가 눈앞에 있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세라씨니까 어쩌면 그건 그것대로 기뻐할 지도 모른다.
부끄러움보단 초조함과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이런 놈이라서 죄송합니다.
“라뮤도 그렇게 생각하죠?”
방긋방긋 웃으며 세라씨가 라뮤에게 이야기를 넘겼다. 갑자기 화살이 자기에게로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라뮤는 깜짝 놀라며 허둥거렸다.
“어...아우...네.”
그러더니 금방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조금 무서워요.”
“무서워요? 어째서요?”
“세라누나의 말대로 좋은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만약에... 혹시라도 만약에 나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그 땐 아주 혼쭐을 내줘야지.”
나에가 손가락 관절을 소리 나게 꺾으며 말했다. 괜히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그렇지 길?”
말없이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길은 나에의 부름에 고개만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
“지금은 그 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저쪽에서 먼저 뭔가 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두면 돼.”
“에이. 그게 뭐야 재미없게.”
“하지만 길씨... 만약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플루아의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잖아요?”
안 합니다 안 해요.
마음속으로 딴죽을 걸어봤지만 어차피 들리지 않으니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할 수 없네...
“어, 음... 괜찮지 않을까?”
“네?”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애초에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야. 오히려 그 혼란을 틈타서 일을 벌인다든가 하지 않았을까?”
남 일인 척 열심히 자기변호를 하고 있는 나는 분명 사정을 아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봤을 때 매우 추해 보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나도 사랑한다고.
...그렇지만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런 걸까요?”
“그럼 그럼. 그럴 거야 분명히.”
수치를 무릅쓰고 펼친 내 자기변호에도 라뮤는 납득하지 못한 듯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아직 부족했나?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나 있었습니다만.
불쑥 튀어나올 뻔한 말을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으며 다음 변명을 생각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의 연속이지만 사실을 말할 순 없잖아?
“...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닐까...?”
“에?”
안 되겠다... 너무 무리수였나.
라뮤도 어이가 없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런 임기응변엔 약하단 말이다.
“우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모르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건 많이 부끄러우니까요...”
먹힌 건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라뮤를 보니 아무래도 내 허접한 거짓말에 납득한 모양이었다.
안심이 되는 한 편 조금 씁쓸해 졌다. 우리 라뮤가 나중에 나쁜 어른들에게 속아서 험한 꼴을 당하게 되진 않을까?
이렇게 된 이상 평생 붙어서 지켜줄 수밖에 없겠구나.
“후훗. 부끄럼쟁이라니 왠지 조금 귀여운 걸요?”
세라씨는 뺨에 손을 대며 미소 지었다. 귀여운 동물 같은 거라도 상상하는 거겠지만 실상은 눈앞에 있는 시커먼 사내놈이올시다.
“으웩. 상상했더니 기분 나빠졌어.”
뭘 상상한 거야 쟤는...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어떤 자인지는 아무 상관없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도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나타나 방해를 한다면 제거한다. 그거면 되잖아?”
“으, 응. 그렇네. 아하하...”
왜 그런 말을 내게 하는 거냐.
별 뜻이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앞으로도 조심하도록 하자.
검은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여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도 곤란한 참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그곳에서 나는 어제 봤던 게 꿈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여관이었던 건물은 더 이상 건물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그 앞에는 주인 부부와 카티아가 혼이 빠진 것처럼 망연하게 서 있었다. 우리가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지척까지 다가가서야 주인아저씨가 우리들을 돌아보았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어제보다도 훨씬 나이를 먹은 것처럼 초췌해 보였다.
주인아저씨는 우리들을 보고는 다시 여관이 있었던 자리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계속해온 여관이었습니다... 카티아가 좀 더 커서 시집을 가게 되면 넘겨줄 예정이었고요. 그런데 이젠 끝났습니다. 없어져 버렸다고요...”
주인아저씨는 망연자실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는 건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크기 때문일까.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어쩌면 좋겠습니까요...”
주인아저씨의 말이 무겁게 가슴에 와 닿았다. 말의 무게가 있다면 깔려서 옴짝달싹 못할 정도일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입을 열어야 했다. 저들에게 필요한 말은 아니겠지만.
“주인장.”
“네?”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따뜻한 식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욕조와 잠자리도 있었으면 좋겠군.”
“......네?”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사라졌다. 거울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내 표정도 그렇겠지.
아니 지금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 작가의말
비축분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2권의 끝도 다가온다는 거지요.
남은 시간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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