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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의 이름은 여신님에게서 받은 거랍니다.”
“여신님?”
입을 다문 길티니어바우트의 바통을 이어받듯 세라씨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네. 아주 상냥하고 아름다우신 분이랍니다.”
“저기... 좀 더 자세히......”
“네?”
이 사람은 안 되겠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기만 하고 있잖아.
“뭐야 너 여신님도 모르는 거야 설마? 말도 안 돼!”
하나하나 짜증을 유발하는 반응이다. 저렇게 사람 속을 긁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못하는 인종인 건가?
불편한 심기를 눈에 담아 쏘아 보냈더니 더욱 살벌한 눈빛으로 돌아와서 가만히 눈을 깔았다. 저런 타입은 거북하단 말야.
얌전히 눈을 깐 게 먹힌 것인지 나에르시아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코웃음 치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이 세계 ‘파시온드’의 여신 아벨리아님.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우리 용사들을 파시온드로 불러오신 굉장한 분이야. 너도 만나봤으니 알거 아냐?”
“아니. 난 만난 적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여신님 비슷한 것도 못 만나 봤다. 오늘 만난 것도 쬐끄만 꼬맹이뿐이고.
“하아?! 거짓말 하지 마. 여신님이 아니면 누가 널 여기로 부른 건데? 아니면 뭐야? 진짜로 마왕의 첩자?”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어서 흔들지 말아주세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어머 어머.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나에. 후훗.”
“아앙? 그걸 리가 없잖아! 지금 시비 거는 거야?”
세라씨의 말 덕분에 나에르시아가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얼마나 세게 흔들어 댔는지 살짝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드렉도 지쳤을 테니.”
한동안 여자들이 아웅다웅하는 걸(주로 나에르시아가)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있었더니 상황을 방관하고 있던 길티니어바우트가 말했다.
“네~에.”
“그럴까요 그럼.”
효과는 굉장했다! 마이페이스인 세라씨와 저 안하무인이 옷을 입고 걸어다니는 것 같은 나에르시아가 단번에 말을 따르다니.
“우리들은 이만 실례하도록 하지.”
할 말을 마치고 세 사람은 방을 나서려고 했다.
“어, 잠깐만!”
“왜 그러지?”
문고리를 잡은 채 뒤돌아보며 길티니어바우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말했다시피 오늘은 끝이다. 아니면 뭔가 더 필요한 거라도 있나?”
“있고말고. 나는 어디서 자면 되는 거야?”
“여기. 인그라뮤트의 방이다.”
“아하 그렇구나.”
이젠 딴죽을 걸 힘도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상황에 몸을 맡기자.
“에엣?!”
하지만 다른 쪽은 그럴 마음이 없는지 격하게 반응했다.
“기, 길씨. 그게 무슨 소린가요오?”
몸을 오들오들 떨며 새하얗게 질린 인그라뮤트가 소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준비된 방이 더 없어서 어쩔 수가 없다. 아니면 드렉을 복도로 쫓아내는 편이 좋은가?”
“......아니요.”
소심한 반항도 부질없이 길티니어바우트-길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근데 괜찮은 거냐?”
“뭐가?”
“음...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창때의 여자애랑 남자가 한방에서 밤을 보낼 경우 생길 수 있는 불상사라던가...”
정말로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세간의 눈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인지라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다. 내 명예를 위해서 한 번 더 말해두지만 결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 아마도.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냐? 인그라뮤트는 남자다.”
“......뭐라고?”
내가 지금 잘 못 들은 건가? 요즘 들어 가는귀를 먹은 건지 통 듣는 게 시원찮은 것 같다.
괜히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다시 물었다.
“인그라뮤트는 남자라고 했다.”
“뭣, 이...!”
방 한구석에서 불쌍하게 떨고 있는 인그라뮤트를 봤다. 머리의 태반을 가리고 있는 빵모자로도 가리지 못한 가련함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사랑스러운 몸짓. 어딜 어떻게 봐도 어엿한 미소녀다.
“......진짜로?”
“물론.”
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경악하고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잘못 된 것은 나인가 세상인가.
하지만 그런 한편으론 납득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일 리가 없어’라고.
일부에게선 세상의 진리라고도 일컬어지는 말인 만큼 시야를 넓히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은 잔뜩 일어났다. 이 판타지 세계에 끌려온 것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그래 받아들이자. 노 프라블럼.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나가보겠다.”
대답조차 듣지 않고 길은 세라씨와 나에르시아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이로써 방에 남은 것은 나와 인그라뮤트뿐이다.
방에는 간소한 티 테이블과 그리 크지 않은 침대가 전부였다. 이불조차도 따로 없었다.
되도록 침대 쪽을 의식하지 않으며 티 테이블과 세트인 의자에 몸을 걸쳤다. 아무리 남자라고 알았어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침대로 돌격하는 건 허들이 너무 높았다.
“어흠. 인그라뮤트라고 했지? 일단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련?”
긴장한 탓인지 이상한 말투가 되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은 인그라뮤트가 아나콘다와 한 우리에 갇힌 햄스터처럼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무서워하는 거야? 내 어중간한 인생을 돌아봐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공포를 줄만한 일을 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직접 의자를 빼서 앉으라고 제스처를 취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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