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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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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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UMMY

“드렉씨...?”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보는 라뮤를 보고나서야 아차 싶었다.

나한테 밖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라면 옆에서 보는 사람들에겐 혼자서 미쳐 날뛰는 걸로 밖엔 보이지 않았겠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어서 그 녀석과 싸우고 있었다고? 그야말로 중2병 커밍아웃이다. 일단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오해를 풀어야 한다.

흥분한 탓인지 아직까지 정돈되지 않은 호흡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다.

“하아... 하아... 잡아먹으려는 게 아냐.”

움찔

아차 오히려 더 겁을 먹게 한 건가. 여기선 우선 다른 화제로 돌려야겠다.

“여신님도 궁금해 하더라고.”

“여신님이...?”

여신의 이야기에 라뮤가 반응했다. 눈만 빼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흥미를 보였다. 왠지 새침한 고양이를 길들이는 것 같은 성취감이 느껴졌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등짝. 등짝을 보자.”

“어? 등짝이요?”

흐름을 타고 예전 만화책에서 봤던 명대사를 날렸다. 분명 어린 소년들에게 먹히는 필살의 주문 같은 말이었을 터다.

“이렇게...요?”

필살의 주문이 멋지게 먹혔다.

라뮤는 내게 등을 보이며 망설이듯 옷을 걷어 올렸다. 옷 아래로 드러난 살결이 눈부셨다. 정말로 남자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잘록한 허리와 섬세한 피부가 여실히 드러났다.

―라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

계속 보고 있으면 남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존엄이라든가 인간성이라든가 기타등등 기타등등.

고개를 한 번 내저어서 정신을 바로 잡았다. 순간 내가 어떻게 된 것이 틀림없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손을 뻗어 테이블 너머에 있는 라뮤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히앗?!”

작게 울리는 라뮤의 비명을 bgm삼아 매끄러운 등 위에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대리석 같이 반질거리는 등이 따뜻하면서도 누르면 탄력 있게 손가락을 밀어낸다. 언제까지고 만지고 싶은 감촉이었다.

사양 않고 나머지 손도 움직여 양손으로 라뮤의 등을 마음껏 주물 거렸다. 간지러움을 참듯이 나지막히 신음을 흘리는 라뮤의 모습도 최고였다.

한동안 마음껏 라뮤의 등으로 놀고 나서 만족하고 손을 뗐다.

바리케이드마냥 머리에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도 벗겨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탓에 가려져 있던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이 드러나 형용 못할 색기를 뿌렸다.

저게 남자란 말이지....

직접 중요한 부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기회가 되면 반드시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응? 인간으로서 존엄? 그딴 건 개나 줘버리라지. 나는 큰 꿈을 위해서 소중한 것도 포기할 수 있는 남자니까.

“이걸로... 여신님도 만족 하셨을까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라뮤가 내게 물었다.

“여신님?”

여기서 여신님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걸까?

“아까 드렉씨가 여신님이 궁금해 하신다고...”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러고 보니 했구나. 하지만 별다른 뜻 없이 내뱉은 말이라고 하면 화내려나.

잠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라뮤군.”

다시 사령관 포즈를 잡으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바뀐 분위기에 라뮤는 긴장한 기색으로 내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껏 목소리에 힘을 주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농담이었네.”

“......네?”

순간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라뮤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지.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다.

“농...담?”

“다른 말로는 조크라고도 하지. 크하하하!”

괜히 뻘쭘해져 호쾌하게 웃어보았다. 인생살이 대부분은 웃기만 해도 원만하게 넘어가는 법이다.

“거짓말...이었군요?”

그런 내 앞에서 라뮤가 위험한 느낌으로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화나게 해버린 건가?

어떻게 아냐고? 여동생이 화가 났을 때랑 반응이 비슷하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이 뒤의 일도 대충은 예상이 간다. 내 여동생은 화가 나면 손이 나가는 타입이었으니까.

예상대로 분을 못 참고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노려다보던 라뮤가 달려들어 양손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여동생과는 달리 때리는 힘이 약해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여동생은 한방 한방에 체중과 살기를 실어서 때리기 때문에 몸이 버티질 못한다.

반면에 라뮤가 때리는 건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기분 좋게 느껴졌다. 할아버지에게 안마를 해주는 손주만큼이나 갸륵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바보 바보! 드렉씨는 바보!”

한동안 나를 때리는 라뮤를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드디어 지친 것인지 씩씩거리며 손을 멈췄다.

“하아... 바보 같아요.”

나를 때리는 동안 진정이 된 것인지 깊은 한숨을 쉬며 차분해진 목소리로 라뮤가 중얼거렸다.

“그런가. 나 바보 같구나...”

짐짓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더니 라뮤가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아, 아니에요. 바보 같은 건 드렉씨가 아니라 저에요.”

그렇게 말하는 라뮤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왠지 후련해 보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걸 멋대로 판단해서 혼자 무서워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힐끔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는 이렇게 엉터리에 엉망진창이고 이상한 사람인데 말이에요.”

“별 말씀을.”

너스레를 떨며 대답하자 라뮤가 쿡쿡 웃었다.

뭔가 좋은 분위기가 된 것 같았다. 역시 필살의 주문. 도X반 씨 감사합니다!

“드렉씨 저 부탁이 있어요.”

말을 꺼낸 라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이 모습을 보니 뭐든지 들어 주고 싶은 기분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설령 보증이라도 서주고 싶어지는 마성의 자세다.

“뭔데?”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만 빼꼼히 들어 올려다보는 하트를 강타하는 포즈로 라뮤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형이라... 집에는 여동생 밖에 없어서 들어 볼 기회가 없던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사내놈들한테 그렇게 불려봐야 기분 좋을 리도 없었던 터라 신경 쓰지 않았었다.

뭔가 대단한 거라도 부탁할 줄 알았는데 어쩐지 김새는 걸.

“안되나요?”

바로 대답하지 않아서 불안해졌는지 소심하게 라뮤가 재촉했다.

“아니아니 되고말고 물론 되지 암.”

라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듯한 화사한 최고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고마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드렉형!”

천사다. 천사가 눈앞에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동생아 미안하다. 나는 앞으로 이 남동생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했단다.

남몰래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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