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그렇군요. 혹시 이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예를 들어... 뭔가 이상한 의식 같은 걸 했다든가...”
음. 큰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얘기야.
망해버린 관광 도시에서 어슬렁거리는 여행자라니 어딜 봐도 수상하지. 게다가 실제로 의식 같은 것도 했고.
눈앞에 있는 남자도 그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구태여 내게 묻는 건 어서 자백하라는 압박의 일환인가?
그러고 보니 테스카가 이상한 일을 벌인 걸 알고 있다는 건 역시 이 사람들이 플루아의 악마...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크크크.-
테스카는 여전히 모호한 대답을 내놓으며 불쾌하게 웃었다. 애초에 이 녀석에게 제대로 된 말이 나올 거라곤 기대도 하지 않지만.
“이거 참. 갑자기 실례했습니다. 저는 알렉스라고 하는 자입니다.”
말이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남자가 먼저 자기를 소개 했다.
알렉스라고 이름을 밝힌 남자는 악의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싱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왠지 대하기가 거북한데...
“드렉이라고 합니다. 일행들과 여행하는 중에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금방 떠날 거예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해 봤지만 마땅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저쪽에서 소개를 해 와서 나도 자기소개를 해봤지만 잘한 걸까?
“그렇습니까. 이런 때라 플루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정말로 유감입니다. 아하하. 아 그렇지. 괜찮으시다면 지금부터 함께...”
“알.”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말을 쏟아내던 알렉스를 제지하듯 멀찍이서 주위를 살피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크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직접 박히는 것처럼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였다.
“네. 아가씨.”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죠.”
“아, 하지만 아가씨...”
알렉스는 곤란한 듯이 나와 그녀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아마 나에게 뭔가 권유하려고 하던 모양이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한 나에겐 민폐 외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학창시절에도 어딘가에 끼지 못하고 혼자 있던 게 다반사였던 나에게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쓸쓸함이나 고립감보다도 저런 쓸데없는 호의였다.
소풍 같은 이벤트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홀가분하게 혼자 놀고 있던 때에 다가와선 ‘같이 놀자’ 같은 소리를 하는 잘나가는 녀석들이 늘 무서웠었다.
본인은 동정이나 선의에서 한 별 거 아닌 행동일지 몰라도 당하는 외톨이 입장에서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말한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뿜어져 오는 관심과 압박이 장난 아니거든.
마치 달의 중력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지구에 내던져진 것만 같다고나 할까.
그 압박에 못 이겨 무리에 합류하게 되어도 어차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게 되어 또 다른 압박을 받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거절했다간 음침하고 재수 없는 놈으로 찍힐 뿐이고. 아니, 그건 원래부터 그랬던가.
여하튼 승낙하든 거절하든 어떤 선택을 해도 결론적으로는 나만 상처를 입게 되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여러분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합시다.
“알.”
곤란해 하는 알렉스의 망설임을 단칼에 자르듯 그녀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눈에 띄게 침울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고개를 숙이곤 마차로 돌아갔다.
나로서는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끌려서 거북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절대로 거절이다. 게다가 그 상대가 악마일지도 모른다면 더더욱.
“거기 여행자분.”
알렉스가 마차의 문을 열어주자 마차로 오르려던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네, 네?”
“나쁜 말은 하지 않겠어요. 볼일이 끝나거든, 으응, 끝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도록 하세요. 더 늦기 전에.”
그녀는 쌀쌀맞게 말을 끝맺고는 그대로 마차에 올라탔다. 그녀를 실은 마차는 곧 왔던 길을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알렉스의 미안해하는 듯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속도를 낸 마차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차가 모습을 감춰도 느껴지는 희미한 땅울림만이 떨떠름한 내 기분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결국 뭐였던 거지?
갑자기 찾아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 나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한 건가? 아니면 그 짧은 시간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모은 걸까?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악마가 알려줄 리도 만무하니 아마 쭉 알지 못하겠지.
-잘 알고 있군.-
말이나 못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그녀는 떠났다.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기에 뭔가 알아낼 수도 없었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해 졌다.
그녀의 말을 따라서 당장 플루아를 떠나자. 응 그렇게 하자.
나는 곧장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관에 돌아온 나를 반겨준 것은 심각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에와 세라씨였다. 볼일이 있어서 함께 나갔을 터인 두 사람이 어째서 나보다 먼저 돌아와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아니, 지금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사정은 나중에 천천히 얘기할 테니까 길과 라뮤가 돌아오는 대로 이곳을 떠납시다. 일단 얼른 짐을 싸요.”
악마라든지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말 하려니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얼버무렸다. 나중에 생각이 나면 적당히 이야기를 꾸미든지 해야지. 지금은 어서 플루아를 떠나는 게 선결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두 사람은 어두운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독촉하려던 순간에 나에가 불쑥 말했다.
“나갈 수가 없다구...”
“뭐?”
“플루아에서 나갈 수가 없단 말이얏!”
되묻는 내 말에 나에가 짜증을 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기백에 밀려 나도 모르게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무, 무슨 말이야?”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다시 한 번 묻자 세라씨가 평소의 포근해지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나에랑 같이 플루아의 근방을 조사하러 도시 밖으로 나가보려고 했는데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플루아로 돌아와 버리고 말더라구요.”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이이익!”
흥분한 나에가 바닥을 쾅쾅 차며 씩씩거렸다. 카운터 안쪽에서 주인 부부가 떨고 있으니까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꼬맹이가 해줬던 저주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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