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다른 방향으로 조사를 위해 나섰던 길과 라뮤가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1층 테이블에 모여 있던 우리들을 이상하게 보며 두 사람이 빈 자리에 앉았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 것 같다만?”
의아해하며 내게 묻는 길에게 나는 곧장 말해주지 못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도 될 말과 하면 위험한 말을 머릿속에서 골라내며 정리하고 있자니 테이블에 턱을 얹고 축 쳐져 있던 나에가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말야. 여기에 갇혀 버렸다구. 진짜 말도 안 돼.”
“아아. 그거 말인가.”
그에 반해 길은 동요하는 모습 없이 담백한 반응을 보여줬다.
“뭐야? 설마 알고 있었던 거야?!”
전혀 놀라지 않는 길의 모습에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나에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나에의 급격한 텐션변화에도 길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뭣 때문에 지금까지 돌아다녔다고 생각한 거냐?”
길은 당연한 것처럼 말했지만 어떻게 조사한 거지? 오늘도 플루아 사람들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론 나오려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만 해도 우연히 꼬맹이를 낚아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겨우 듣게 된 이야기고 말이다.
“친절한 누나들이 많이 찾아와서 가르쳐 줬어요 헤헤.”
궁금해져서 슬쩍 라뮤에게 물어봤더니 알고 싶지 않았던 씁쓸한 진실만을 알게 됐다.
누구는 다짜고짜 악마 취급에 모두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누구는 알아서 찾아왔단 말이지? 얼굴인가? 이세계에서도 결국 얼굴인 거냐? 제길...
“하지만 ‘저주받은 아가씨’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들 곤란한 얼굴을 하고 도망가 버렸어요.”
라뮤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른다’가 아니라 ‘알지만 말할 수 없다’란 건가.
어젯밤의 주인아저씨도 비슷한 분위기였지. 플루아 전체에서 그 말은 금기어인 걸지도 모른다.
실물을 본 뒤라 어째서 그런 건지 더욱 궁금해졌다.
“우우~ 그럼 어째서 그렇게 침착한 거야? 우린 여기서 꼼짝 못한단 말야!”
“나에. 저기 드렉씨처럼 얌전히 있어요.”
세라씨가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나에가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힐끗 곁눈질 했다.
“저 녀석은 그냥 아무 생각도 없는 것뿐이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심한 말을 한단 말이야...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상황에선 조금 상처 입는다.
뭐, 아무 생각도 없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마음의 안식을 위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라뮤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얌전히 내게 머리를 맡기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이젠 아무래도 좋아.
“별 것 아닌 일이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이 도시에서 나갈 수 없게 된 것도 결국은 악마의 저주 때문이다.”
그리 말하는 길의 눈이 한 순간 내게 머무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지?
“그렇다면 그 악마를 찾아내서 처치하면 될 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아.”
“으으... 그건 그렇지만~”
나에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납득하지 못한 표정으로 투정을 부렸다.
“저기... 지금 악마를 어떻게 하신다고...?”
그때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국자를 한손에 든 카티아가 서 있었다.
주방까지 우리 얘기가 들렸던 건가. 딱히 비밀스런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상관은 없다만.
“이제 걱정 마시길. 플루아에 자리 잡은 악마는 이 분들이 처리해 주실 겁니다. 무엇을 숨기랴 이분들이 바로 마왕을 물리쳐주실 용사님들입니다.”
우왓. 깜짝이야.
어디서 나타난 건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마빈이 불쑥 나타나 영업사원처럼 말했다.
“어, 언제부터 여기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어보자 마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길님과 라뮤님과 입구에서 만나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전부터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 뭔가가 시야 바깥에서 움직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몰랐던 건 나뿐이었나 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엑?! 있었어?”
“어머어머.”
뒤늦게 나에가 놀라며 실례되는 말을 던졌다. ‘있었어?’라니 마치 부르지도 않은 생일 파티에 따라갔다가 뒤늦게 발견되어 미묘한 표정으로 환영받는 외톨이의 기분이 돼버리잖아.
그 뒤에 다른 친구들에게 조용히 ‘쟤 누구였지?’같은 소리마저 하면 그처럼 비참할 수가 없다.
참고로 경험담이다.
아무리 마음이 넓은 마빈이라도 상처 받아버릴 거라고.
“하하하. 익숙한 일이니 마음 쓰실 거 없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마빈의 안색을 살펴봤더니 내 시선을 알아차린 마빈이 웃으며 말했다.
이 얼마나 커다란 남자인가. 내 얄팍한 저울로는 도저히 잴 수가 없는 대범함이다.
그건 그렇고 내 비참한 경험에 공감해 줄 사람은 정녕 없는 건가... 비참하다...
“손님들이... 용사님?”
마빈의 이야기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카티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주방에 있던 주인 부부마저 밖으로 나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우리끼리 이야기 하던 게 어느새 일이 커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야할지 갈피도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거침없이 입을 연 것은 길이었다.
“사실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알고 있는 걸 모조리 말해주지 않겠나?”
처음부터 준비해뒀던 것처럼 길은 거침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주인 부부는 꾸밈없이 직구로 물어오는 길에게 당황해하면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 채 꾸물거렸다.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걸까?
“제가 다 말씀 드릴게요.”
그런 두 사람을 대신해서 입을 연 것은 카티아였다.
“하지만 얘야...”
“엄마, 아빠. 언제까지고 이대로 있을 순 없어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아가씨를 위해서도요.”
제지하려는 주인 부부를 일축하며 카티아는 말을 이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거에요.”
카티아는 운을 떼며 깊게 호흡했다. 우리는 누구 하나 이의 없이 카티아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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