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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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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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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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3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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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DUMMY

마차에서 봤을 때는 단순한 폐허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서 본 저택은 의외로 정리되어 있었다.

도시의 모든 식물들이 말라버린 것과는 달리 저택을 감싸듯 자라난 넝쿨의 틈새로 보이는 벽은 비록 빛이 바랬지만 흙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어서 저택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역시 아까처럼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는 누구도 없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누군가가 서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오기 전부터,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서 있던 그녀는 우리를 보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집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뒤늦게 그녀가 메이드복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표정도 억양도 없이 기계처럼 말을 남긴 그녀는 그대로 뒤를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혹시 미리 연락이라도 한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헛소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더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건만 일이 너무 술술 풀리니 불안이 더 가중됐다.

“겁먹은 거면 먼저 돌...”

“그래도 돼?!”

“......어서 가자.”

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내 뒷목을 잡고 먼저 걸어가는 메이드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쳇, 너무 빨리 대답했나.

끌려가듯 걸어가는 길에는 먼지 한 톨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넓은 저택을 앞에서 걸어가는 메이드 혼자서 다 청소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만 다른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방에 숨어서 악마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마는 나다.

벽에 걸린 오래된 그림들을 구경하며 어딘지도 모를 길을 메이드를 따라 걸어 어느 구석진 방 앞에 멈춰 섰다.

“이 곳입니다.”

메이드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문고리를 돌렸다. 그 너머에는 창고로나 쓸법한 좁고 허름한 방이 있었다.

그 안에는 몸도 뒤집기 힘들 것 같이 좁은 침대와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낡은 책상과 의자뿐이었다.

책장을 놓기에도 여의치 않아 보이는 방에는 생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하나 있는 창문조차 넝쿨에 가려 제대로 햇빛도 비치지 않는 방에서 집사장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문서를 읽고 있었다.

“들어오시지요.”

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집사장은 말했다.

집사장의 말에 따라 나와 길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방은 우리가 나란히 선 것 만으로도 꽉 찬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거 참 실례를. 케티. 의자를 두 개 준비해 주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집사장님.”

휑한 방에는 다른 사람이 앉을 의자조차 놓여있지 않았다. 서 있는 우리를 눈치 채고 메이드에게 의자를 부탁하며 집사장은 문서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완전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아래로 사납게 치켜 올려진 눈썹과 날카로운 눈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고집스레 뻗은 콧날과 꽉 다문 입술이 강직한 인상을 풍겼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였다.

결코 크지 않은 체격에서 뿜어지는 정돈된 위압감이 절로 등이 굽어지게 만들었다. 이 세계에 중년들과 노인들은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 걸까.

잠시 후 케티라 불린 메이드가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의자를 가볍게 들고 나타나 우리에게 앉기를 권했다.

나와 길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서 집사장과 마주했다.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먼저 입을 연 것은 길이었다. 이 무서운 영감님 앞에서도 주눅 든 기색 없이 당당히 반말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더 초조해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집사장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워낙 드나드는 이가 적은 도시인지라 싫어도 귀에 들어오게 되어있지요.”

“그러면 우리가 왜 왔는지도 알고 있겠군?”

돌려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건지 길은 언제나 직구로 말을 던졌다. 좀 더 사람을 배려하는 화법을 익혀줬으면 한다. 내가 할 말은 아닌가?

“글쎄올시다. 저는 그저 늙어빠진 집사인지라 모르겠습니다만.”

그에 반해 집사장은 길의 질문에 두루뭉술하게 대꾸했다. 어느 쪽도 포커페이스지만 대하는 방식이 달라 대화가 맞물리지 않았다.

길은 속내를 꿰뚫어보려는 듯 집사장의 눈을 직시했다.

“이 도시에 악마의 저주가 내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는 바가 있으면 들려줬으면 좋겠군.”

“그 또한 저는 잘 모르는 이야기군요. 말하기 좋아하는 시민들에게 물어보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시민들은 이 저택에 악마가 사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더군. 예를 들면... 집사장 당신이라든가.”

길의 당돌한 말에 집사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핫! 오랜만에 재밌는 농담을 다 듣습니다 그려. 시민들 사이에선 그런 헛소문이 떠돌고 있는 겝니까?”

“그런 듯 하더군. 헛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 사이에서 좋지 못한 분위기가 흘렀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살려줘요.

기 싸움을 하듯 잠시 동안 말없이 노려보고만 있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선을 거뒀다.

“그래서, 이제 할 말은 끝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오래 머물지 마시고 갈 길을 서두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주니 하는 헛소문은 차치하고서라도 오래 머무를 곳은 못되는 곳인지라.”

할 말은 끝났다는 듯이 축객령을 내리는 집사장에게 길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나갈 수가 없군. 헛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도 플루아의 저주라는 게 내린 모양이라서.”

“...호오?”

집사장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에게 저주를 내린 범인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로서 저 반응은 뭘까? 만약 연기라면 집사장은 꽤나 좋은 배우가 될 자질이 있는 거다.

길도 그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쩌면 가식이라고 생각해서 열 받은 것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짐작 가는 바는 없나?”

“금시초문이로군요. 가끔 여행자나 상인들이 눌러 살게 됐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집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눌러 살게 됐다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저주에 걸려서 나가지 못하게 됐을 뿐이겠지.

“뭐, 유감스럽게 되었지만 여러분은 당분간 플루아에서 지내게 되겠군요.”

“그렇게 되겠군.”

“허허. 그렇다면 몇 가지 당부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다만, 아 물론 싫으시더라도 따라주셔야 겠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집사장이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스산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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