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거
나에게 맡겨달라.
카이젤은 그렇게 말한 아이노라에게 정말로 날리아를 맡기기로 했다.
단장으로써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바쁜 점도 있었지만, 아이노라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말을 듣자 그녀에게 일을 맡겨보기로 한 것.
그리고.
날리아는 곧 요새 안에 있는 자신의 숙소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으.....?"
정신을 잃기 전의 자신은 분명 카이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식이 돌아온 곳이 자신의 숙소라니.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던 날리아는 의식이 돌아오고 나서도.
멍한 얼굴을 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동료가 다가와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흥. 또 실패인가. 이제 녀석이 너를 보고 방심을 할 일도 없으니 사실상 계획은 끝이 났다고 봐야겠군."
"큭..."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동료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문장. 여신의 힘을 가진 카이젤을 암살할 방법은 그가 방심하고 있을 때 죽이는 것 뿐이었는데.
이제 자신이 그의 목을 노리다 실패했으니. 그는 버르셜 가에서 온 모든 엘프들을 의심할 것이었고 따라서 그를 죽일 방법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그 단장녀석.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 일단 돌아가기는 했지만, 네가 단장의 목숨을 노리려다 실패했으니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이제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린 널 버리는 수밖에 없지."
"뭐... 뭐라구?!"
동료의 말을 들은 날리아는 깜짝 놀라며 그렇게 말했고,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영주님께선 저 단장을 죽이라 명령하신 적이 없다. 물론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지."
"너... 너희들!"
분명 카이젤 암살계획을 같이 짰던 동료들이 이제 와서 자신을 버리겠다고 하자 날리아는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자신과 저들 둘 뿐이었는데, 그들이 날리아를 모른채 하게 되면 모든 죄를 자신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만약 저 단장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온다면, 우리는 네가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렇고 말이지."
"이런 배신자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배신자는 바로 너다."
"뭐라구?!"
배신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오히려 동료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들은 날리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동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주님께서는 단장을 도우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이르셨다. 헌데 너의 그 독단적인 불순행동으로 단장이 우리 모두를 의심하고, 영주님을 의심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책임을 대체 어떻게 질 참이냐?"
"윽... 크윽......!"
같이 계획을 짜서 카이젤을 죽이자고 했던 자들이.
이제 일이 이렇게 되니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모두의 앞에서 배신자라고 말하다니.
날리아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이 XXXXX!"
분노한 날리아는 곧바로 동료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졸랐고, 그런 날리아의 돌발 행동에 근처에 있던 다른 엘프들이 달려들어 날리아를 뜯어 말렸다.
"무슨 짓이야! 그만 둬!"
"누가 좀 도와줘!"
주변에 있던 엘프 대여섯명이 달려들어 용을 쓴 후에야.
겨우 동료에게서 떨어지게 된 날리아는, 그녀를 가만히 두면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린 동료들에 의해.
홀로 작은 오두막에 갇히게 되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 되면 단장이 우리 쪽으로 찾아와서 오늘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 그 때까지 거기서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도록."
날리아를 작은 오두막에 가둔 동료는 그렇게 말하고는 숙소로 돌아가 버렸고, 그리 크지 않은 오두막 안에 갇히게 된 날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양 손으로 감싸쥐었다.
"XXXXX. 같이 녀석을 없애자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렇게 날 버리다니... 반드시 복수해 주마."
분노한 날리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손으로 오두막의 벽을 쳤다.
입술과 손. 양 쪽에서 흘러나오는 피.
하지만 몸의 아픔보다, 동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내일까지 기다려봐야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모욕을 당하는 것 뿐이겠지. 그렇다면......"
더이상 앞길이 보이지 않게 된 날리아는 어차피 모욕을 당하느니.
목숨을 끊기로 결정을 내렸다.
바로 그 때.
"하이고. 아주 배가 잔뜩 부르셨네. 그런 일로 목숨을 버리려고 하다니. 그럴거면 그 몸뚱이. 차라리 날 주는게 어때?"
"누구냐?!"
갑작스럽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자신의 몸 안 쪽에서 들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란 날리아.
아이노라는 씩 웃으며 그녀의 밖으로 나왔다.
"안녕. 암살 미수범?"
"뭐... 뭐야?! 유령?!"
아이노라를 본 날리아는 깜짝 놀라며 싸울 준비를 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그녀는 아이노라의 마법 한 번에 쉽게 제압되고 말았다.
"윽... 빌어먹을!"
"미안. 좀 그러고 있어. 나도 맞는건 아프거든. 네가 마법만 못쓰면 상관이 없을텐데."
"대체 넌 뭐냐?! 왜 나에게 접근한 거지?"
"응? 왜냐구? 네가 죽이려고 했던 카이젤씨가. 네가 죽는걸 원하지 않거든."
"뭐라구? 그 인간이?"
"그래. 이상한 사람이지? 자길 죽이려고 했던 녀석을 생각해 주다니.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라니깐."
"너 같은 몬스터를 부리는 자가 대륙에 영웅이라고 알려지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재미? 니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남의 눈에 안띄게 돌아다니는데는 익숙하거든. 그보다......"
"뭐냐 몬스터?"
아이노라의 묘한 미소에 소름이 돋은 날리아가 묻자 아이노라는 쿡쿡 웃고는 말했다.
"우리. 재밌는거 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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