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최근연재일 :
2023.06.27 01:06
연재수 :
327 회
조회수 :
101,381
추천수 :
2,395
글자수 :
2,515,552

작성
18.11.25 06:21
조회
153
추천
6
글자
19쪽

35. 기대는 기대게 돼(3)

DUMMY

"...플라나 사제 등 뒤에 숨는 건 여전하군."


깔보는 게 흘러넘치다 못해 피부로 와닿는 조롱이었다. 눈빛마저 이글거리기 그지 없다.


하나하나 진지한 녀석이다보니 이런 사소한 농담도 건네기 힘들었다. 따지고보면 농담이라기보단 시비에 가까웠지만 그건 본인의 평소 행실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반 랜드레이도 야우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과연 결혼은 두 번하고 이혼은 세 번했다는 스칸달른의 용사 다웠다.


"이건 뒤에 숨은 게 아니야. 그냥 뒤에 선거지. 우리 사제 님은 등이 아주 넓거든."


"으음? 저기 레이크 님. 그거 혹시... 칭찬하시는 거예요?"


에반젤린은 갑자기 어깨 위의 손을 덥썩 잡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응?"


난 손을 빼려고 했지만 가볍게 붙잡힌 손은 이상하게 쉽게 빠지지 않았다.


"다, 당연히 칭찬이지. 등이 넓은 사람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잖아. 그... 아니었나?"


"아, 그런 의미셨어요? 사실 제가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요즘 살이 좀 찐 거 같아서 신경 쓰고 있거든요."


살이라. 에반젤린이 살이 쪄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도 그럴게 에반젤린이 입고다니는 옷은 발목까지 전신을 덮고 있었고 요즘 유행처럼 허리띠 같은 것을 꽉 조여 매 몸매를 과시하지도 않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했더라. 진실을 말해야했던가,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했던가.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누나들은 아니라고 하면 솔직하게 말하라며 날 혼냈던 거 같은데.


"글쎄. 옷 때문에 가려져서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경험으로 미루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네? 하지만... 제가 지금 여기서 벗어 보여드릴 순..."


에반젤린이 눈을 휘둥그래 떴다.


"아니요, 누가 그렇게 해달래요?!"


사람이 너무 솔직해도 안된다는 게 이런 것 때문에 있는 말은 아닐텐데도 나는 한차례 진땀을 빼고야 말았다.


"농담이에요."


에반젤린은 웃어 넘겼지만 난 힘들었다.

물론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순 있었다. 능글맞은 남자가 아무것도 아닌척 저질스런 농담을 건네는 것 정도야 못볼건 아니지만 난 그런 걸 아무렇지도 할만큼 배포 큰 사람이 아니었다. 에반젤린의 생각은 조금 다른걸까.

걱정스레 곁눈질로 날 살펴보던 에반젤린은 오해가 풀리자 또 살갑게 날 대했다.


"흥."


또 시간낭비라는 생각이라도 든 것인지 반 랜드레이가 콧방귀를 끼었다.


"생각없이 입만 놀리는 것도. 여전하군."


녀석은 앞머리를 쓸어넘기고선 보란듯이 눈썹을 으쓱였다.

얘는 수련하려 다닌다더니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아니꼽게 말할 수 있는지 연구하러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맨날 바쁘신 용사님이 여기 왜 오셨는데."


"슈리츠 때문이지."


"그럼 거길 가면 되지 여기는 왜 왔냐고."


당장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보면 되지 구태여 여길 와서 평화롭던, 아니 그다지 평화롭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 남은 마음마저 흐트러놓냐는 것이다.


"잘 지내나 궁금해 했거든."


"응?"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챠라가 말이야. 안 그래 보여도, 야우라랑 잘 지냈던 편이다."


난 또 뭐라고.

순간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기분을 느꼈다. 눈앞이 의혹으로 흐릿해지는 그런 기분. 하마터면 질겁부터할 뻔 했다. 아니라는 걸 알고선 싸늘해졌던 등간도 금새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마구간은 이미 다녀온 후다."


"그럼 넌 여기 올 필요 없었잖아. 차라리 어디가서 자선이라도 하지."


"슈리츠를 위해서 약초를 구해다준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듣자 나는 덜컥 정신이 들었다.


"왜? 그럼 안 되는 거였어? 걔 음식 가리냐?"


말 주제에?


"아니. 회복은 순조롭다더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그..."


반 랜드레이는 말미를 길게 늘였다.


"그?"


내가 되물었다.


"그..."


반 랜드레이는 같은 소릴 반복해 내었다.


"그으?"


다시 되묻자. 녀석은 헛기침을 하더니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일단은. 고맙다고 해두지."


...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말없이 이름만 빌려써서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그..."


반 랜드레이는 답지 않게 뭔가 계속 말하면서 우물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말도 부쩍 늘었다.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럴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 경우에는...


"랜드레이 형제님이 많이 부끄러우신가봐요."


에반젤린이 말했다. 멋쩍어 할 반 랜드레이를 위해 손으로 입까지 가리고선 내게 속닥인 거였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한 눈에 그런 티가 나니 가소롭기 그지 없었다.


"그러게 고마워 할 줄은 아는 놈이었어. 다시 봐야겠네."


"후후 저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뭐가 그렇게 히히덕댈 거리가 있어!"


말 그대로 히히덕 거리는 우리가 거슬렸는지 반 랜드레이가 버럭 소리쳤다. 하여간에 귀엽게 봐주려고 해도 여지가 없는 녀석이었다.


"내가 그거 가져다 준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큰소리야."


명분을 얻은 나는 여유롭게 세게 나가보았다.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 풀 하나 얻어주겠다고 뜻하지않게 도둑질이나하고 개한테 쫓기고 그 녀석도 또 만나고.

그러고보면 어떤 약초꾼이 나 잡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일은 유야무야 없는 일이 된 모양이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사례를 줄 수도 있다."


"됐어. 나도 사례받을만큼 떳떳하진 않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흥, 뭐 훔치기라도 했나보지?"


반 랜드레이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갑자기 목이 매여서 대꾸도 못하고 헛기침만 반복했다.


"그래도 용케 약초를 쓸 생각을 했군. 마구간지기가 알려주던가? 아니면 따로 능통한 요원이라도 있던 건가. 그 쬐그만한 정령술사?"


"그 얘긴하지마. 아주 이상한 애랑 엮여서 아주 생고생이었으니까."


"이상한 애?"


얘기하지말라니까 랜드레이 녀석은 도리어 관심을 보였다.


"있어. 요즘 몇 번 만난 애가."


그런 요상한 녀석은 백날말해봐야 내 입만 아팠다.


"여자야?"


"어? 뭐... 일단 그렇긴 한데."


"이 마을 사람이 아니지?"


"어... 어. 아마도?"


기이하게도 하는 말이 딱딱 맞아 떨어지기에 나는 반 드레이가 묻는 족족 대꾸를 해주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수상할 정도로 숨기는 게 많고."


"좀 이상하진 않아."


많이 이상하지.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여기까지 오면서 들은 하소연이 좀 많거든."


"하소연?"


"종류는 많지. 하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어."


"네가 아까 물었던 것들?"


"그래. 전부 수상하다는 여자애가 하나씩 끼어있더라고. 대개 사소하거나 꼭 홀린 것 같아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던데 너도 당했나보군."


"아니 그게 당했다기보단..."


그렇게 말하면 좀 억울한데 달리 대신할 말도 또 없었다.


"뭐... 비슷하지. 한 서너번 만났나?"


"서너번? 그렇게 많이 봤다는 경우는 처음인데."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지 말자고 했잖아."


서러워진다고.


"그 여자의 이름이..."


"글리 캐스트래."


나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부터해주었다.


"...그게 본명이군."


"이것도 거짓말일지 모르지. 아 맞아. 그래도 내가 당하기만 한 건 아니거든? 한 방 먹여준 적도 있어."


"허어?"


반 랜드레이는 믿기 어렵다는 말을 하진 않고 표정으로 보였다.


"꽤 귀한 물건인거 같던데. 너 살래?"


"언제부터 그렇게 장사치가 됐지?"


"아니. 원래 마을 사람은 용사님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있는 거지."


"난,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어쨌거나 그 훔쳤다는 걸 한 번 보기나 하지. 좋은 단서가 될거야. 값을 치를지 말지는 그 다음에 결정하지."


반 랜드레이는 뒤로 물러서서는 하늘그림의 입구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안내하라는 것이다. 반은 농담삼아 한 이야기였는데 제법 진지하게 나오자 나는 흔쾌히 녀석을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그 사이 에반젤린은 야우라를 도와주러 갔다.


그게 사실 말이 좋아 귀한 물건이지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누구에게 보여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애물단지나 다름 없었는데 마침 처분해줄 사람이 딱 생긴 것이다.

돈까지 받을 수 있으면 더 좋은거고. 난 수전노가 아니다. 그래도 가진 걸 그냥 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걸 알고있냐?"


나는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다 들어주는 건가?"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화나 낼 것 같은데도 그냥 묻는 거였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진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다."


반 랜드레이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맞아. 그랬지.

녀석은 스칸달른의 용사였다.

그래. 그런 거였다. 용사란 자고로...

그 다음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자고로, 뭐였지. 어떤 느낌인진 아는데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자고로... 자고로 알게 뭐란 말인가. 이제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알아서 까먹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일부러 기억할 필요도 없겠지. 지금은 그 미력의 돌을 어디다 쑤셔박아놨는지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한 때였다.


나는 혼자 푸흐흐 하는 웃음을 흘리며 내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에 곧장 입을 다물었다. 웃음기가 싹 가셨다.


난장판이라는 말론 부족할 정도였다. 빌려온 책은 펼쳐지고 뒤집어져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내 방에 있는 물건 중에 가장 유용했던 깃털 베개는 그 내용물을 바깥에 쏟아내 온 방이 지저분했다.

침대는 헤집어져 나무로된 골조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한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 애는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릴 보자마자 소리쳤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렸잖아!"


그리고는 자리에서도 벌떡 일어났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반갑지도 않아? 아... 이 방?"


글리는 마치 용서를 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빙긋 웃었다.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어쩔 수 없었다고. 착한 아이는 방을 어지르지 않는 법인데. 레이크가 너무 꽁꽁 숨긴 탓이야. 그렇지? 남의 것을 주웠으면 돌려줘야지. 맞지? 레이크, 아이, 힐, 데른?"


그러면서도 글리는 다른 곳을 보듯 미묘한 각도로 고개를 돌려서는 눈동자만 굴려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걸 위해서 오늘 레이크하고 얘기를 하러 왔단 말이야."


"얘기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말했다.


"오, 실수. 글리가 그렇게 말했나?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선생님은 실수하는 사람보다 고치지 않는 사람이 더 잘못된 거랬어.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제대로 물어볼게."


글리의 선홍빛 눈이 이채를 발했다.


"미력의 돌을 어디다 숨겼어. 레이크?"


내가 해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도 몰라."


"왜? 잃어버린 거야? 그럼 안 되는데. 만약 정말 그렇다면, 글리는 화를 낼지도 몰라. 그래선 안 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해줘, 레이크. 미력의 돌이 어디있다고?"


"나도 올라와서 찾을 생각이었는데 네가 이만큼 뒤져서 못 찾은 거보면 여기 없는 거 아닐까?"


"어우... 글리는 잔꾀 부리는 사람은 나쁘다고 배웠는데. 레이크는 나쁜 사람인 걸까?"


"너 저번에 엄청 많이 가져간거 같은데 아직도 그게 더 필요하냐?"


"그게 딱 필요한만큼이었단 말이야. 만약 팔아 넘기기라도 했다면 정말 가만 안 둘거야. 글리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저번에 봤지?"


콱!


이죽거리는 글리의 머리 위로 짧은 단검이 날아와 박혔다. 맞지 않을 것이란 걸 알은건지 아니면 반응조차 못한 것인지 글리는 놀란 것처럼 목만 움츠리고선 또 싱글싱글 웃었다.


"깜짝이야..."


"네가 글리 캐스트냐?"


검을 던졌던 반 랜드레이가 앞으로 나섰다.


"아니면 니나?"


"전에 그런 이름을 빌린적도 있긴하지? 하지만 그건 돌려줬어. 정말이야."


머리 위의 단검을 뽑아보고자 몇 번 흔들어보던 글리는 그게 뽑히지 않자 금방 포기하고 랜드레이의 질문에 대꾸했다.


"스텔라도 너겠군."


"어우. 글리는 예의없는 사람은 싫어하는데. 어떻게 자기소개도 하기 전에 남의 이름을 세 번이나 말할 수 있을까? 그치만. 눈색이 같은 사람은 좋아해. 감안해 줄 수 있어. 그런데 넌, 글리보단 조금 더 어두운 색이구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이야."


"난 네 눈색 같은 건 관심없어!"


반 랜드레이가 글리에게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검부터 뽑았을 녀석이 맨손인 걸보면 공간을 감안해서 엄청 참고 있었다.


글리는 다가온 반 랜드레이의 아귀에서 벗어나 오히려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아주 약간, 바보처럼 멍하니 서있던 반 랜드레이는 뒤를 돌아 글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번엔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정말 무식한 친구네."


그 말이 가위처럼 끈을 잘라낸 것인지 반 랜드레이는 등에서 주무기로 사용하는 긴 검을 꺼냈다.

조금이라도 도와볼까 생각했던 나는 그걸 본 후엔 마음을 접고 문을 막는 한에서 가능한한 뒤로 물러났다. 이런 방에서 저런 걸 휘둘렀다간 남아나는 게 없을텐데.


"나는 스칸달른의 용사, 반 랜드레이다."


"용사? 반... 뭐라고? 글리는 처음 듣는 걸?"


"앞으로도 못 듣게 되겠지!"


반 랜드레이는 공간에 주눅들지 않고 긴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아찔하게 공기를 가른 검은 글리에게 다다라 무언가 막혔다. 언제 뽑아낸 것인지 글리는 처음에 반 랜드레아가 던졌던 단검으로 공격을 막아내었다. 아니 막아내지 못했다.


단검은 글리의 손에서 떨어져나갔고 멀리 미끄러졌다. 글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전에 보여준적 없는 날선 눈으로 반 랜드레이를 노려봤다.


"...아파."


글리가 말했다.


"숙녀를 아프게 하다니. 그러고도 용사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그 이상의 아픔은 없겠지."


"아아, 용사란 뭘까? 모두를 구한다는 건 뭘까. 그럼 이럴 때 글리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거야? 다른 나라 용사면 되나?"


"헛소리하지말고 얌전히 엎드려."


반 랜드레이는 겨누던 검을 내리고 말했다.

그 때였다. 정확히는 그 때인지도 잘 모르겠다. 시키는 대로 바닥에 엎드리는 것처럼 보였던 글리는 정말 번쩍인 것처럼 움직여 창문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금방 거길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우리가 창가로 갔을 때, 글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 지는 않았다. 녀석은 창문 옆, 방과 방사이. 부르기도 애매한 공간에 발을 걸치고, 또 손으로 붙잡아 매달려 서있었다.

마치 우리가 내다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리는 생각했어."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글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면 글리가 레이크에게서 미력의 돌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하고 말야. 그래서 결론을 냈어. 레이크가 글리의 소중한 것을 가져갔으니. 글리도 레이크의 소중한 것을 가져가야지 하고."


"소중한 거?"


내가 물었다.


"근데. 방에 별 게 없더라고? 그나마 찾은 게 이거야."


글리는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워놓은 작은 동전을 보여주었다. 그건.


"용사토큰?"


그건 반 랜드레이의 말이었다.

그랬다. 그 동전은, 유치하기짝이 없는 이름을 가진 그건 내 물건이었다. 거의 잊혀진 것이나 다름없는, 하지만 버려지진 않고 있었던 것.


"만약 돌려받고 싶다면. 미력의 돌을 가지고 글리를 찾아와. 어디로 와야하는지는 방 안에 남겨뒀어. 지도로. 글리와 레이크는 그런 사이잖아? 글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길 바라. 그럼 안녀엉."


그 말을 끝으로 글리는 잽싸게 지붕 위로 올라가 사라져버렸다. 그건 반 랜드레이가 창 밖으로 나오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 외벽에서 글리처럼 움직이는 건 반 랜드레이도 나도 불가능했다.


우리는 꼼짝없이 글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안으로 돌아오고나서 방안을 조금 살펴보니 정말 녀석이 말했던대로 지도가 있었다. 엄밀히 말해 지도는 아니었다. 그저 어느 지명이 적힌 쪽지일뿐이었고 가야할 곳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지도일 뿐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완전 파탄이 난 방밖에 없었다. 이쯤되니 한 숨도 안 나왔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란 이토록 초연한거였구나.


어디부터 정리를 시작해야할까, 고민할 무렵 반 랜드레이가 날 불렀다.


"어떻게 할거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단 치워봐야지."


뒤통수가 가려웠다.


"아니 그거 말고."


그게 아니라면.


"글리? 뭐. 그런 건 그냥 가져가라 그래. 이제 필요도 없고."


"돈이 필요했다면 진작에 바꿨을 물건이다. 가지고 있었다는 건 이유가 있을 텐데."


"까먹고 있었던 것뿐이야."


나는 우선 바닥에 늘어진 깃털들을 발로 쓸어모아보았다.


"그래.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그리고 그 미력의 돌이 어디갔는지 진짜 모르겠는데 거길 어떻게 가."


"돌이 있다면 갈거냐?"


"그럼... 가져가서 토큰이랑 바꾼 다음 그 토큰을 다시 돈으로 바꿔서. 망가진 침대랑 베개를 새로 살 순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되게 아쉬워지네 그거.


"복수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그건 그거고. 그럼 뭐하냐고. 방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없는 걸."


달리 더 할 말은 없었는지 반 랜드레이는 팔짱을 끼고 서서 침묵을 지켰다.

뒤이어 소란을 들은 클로에와 야우라 에반젤린까지 한 번에 방으로 올라왔다.


클로에는 방 내부를 보자마자 화를 내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챈 것 같았다. 에반젤린이 그 애를 챙겨 다른 방으로 갔다. 비용과 관련된 부분에서 상심이 매우 클 애였다.


그런 거 전혀 상관없는 야우라만 이리저리 방을 둘러보며 연거푸 감탄을 내뱉었다.


"미력의 돌은 없어도 좋다. 네가 거기까지 가기만한다면 그 비용은 내가 대지."


반 랜드레이는 야우라에겐 신경 끄고 아까 전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날 데려가야 돼?"


"내가 가면, 그 녀석이 튀어나와서 상대해줄까? 글리 캐스트는 널 불렀다. 네가 가야 미력의 돌을 가져왔다 생각하고 나타날 거야."


"아. 그 돌."


대뜸 야우라가 말했다.


"내 방에 있는데. 지금 줘야 돼?"


"그게 왜 네 방에 있냐?"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나는 매우 빠르게 되물었다.


"왜냐니. 내가 며칠 전에 잠깐 본다고 가져갔잖아. 너도 알았다고 말했잖아."


그러니까 잠깐 보는데 그게 왜 아직도 거기 가 있냐고.


작가의말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캐치를 못하겠어요 뭐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7 56. 또 손가락 걸고(7) +2 23.06.27 49 1 17쪽
326 56. 또 손가락 걸고(6) +2 23.06.22 47 1 15쪽
325 56. 또 손가락 걸고(5) 23.06.16 42 2 16쪽
324 56. 또 손가락 걸고(4) +2 23.06.08 48 1 14쪽
323 56. 또 손가락 걸고(3) +2 23.06.05 48 2 19쪽
322 56. 또 손가락 걸고(2) +4 23.05.05 50 2 14쪽
321 56. 또 손가락 걸고(1) +2 23.04.26 58 2 16쪽
320 55. 기우면 될까(5) 23.02.15 61 2 14쪽
319 55. 기우면 될까(4) +2 23.02.09 65 2 14쪽
318 55. 기우면 될까(3) +2 23.02.03 62 2 18쪽
317 55. 기우면 될까(2) +2 23.01.30 64 2 13쪽
316 55. 기우면 될까(1) +2 23.01.28 61 2 16쪽
315 P.S 옛날 옛날 어느 옛날에 23.01.25 83 2 7쪽
314 54. 조각조각 사각사각(8) 23.01.18 61 2 12쪽
313 54. 조각조각 사각사각(7) +2 23.01.13 78 2 14쪽
312 54. 조각조각 사각사각(6) +1 21.11.06 124 1 16쪽
311 54. 조각조각 사각사각(5) +2 21.10.24 106 2 20쪽
310 54. 조각조각 사각사각(4) 21.10.19 110 2 20쪽
309 54. 조각조각 사각사각(3) +1 21.10.13 122 1 17쪽
308 54. 조각조각 사각사각(2) +2 21.10.05 202 2 12쪽
307 54. 조각조각 사각사각(1) +1 21.10.02 122 3 17쪽
306 드리는 말씀 21.10.02 144 4 2쪽
305 53. 파편의 편파(5) +2 21.01.26 163 3 20쪽
304 53. 파편의 편파(4) +2 21.01.07 134 2 13쪽
303 53. 파편의 편파(3) +2 20.12.31 137 4 27쪽
302 53. 파편의 편파(2) +2 20.12.21 151 4 19쪽
301 53. 파편의 편파(1) +2 20.12.15 133 3 20쪽
300 52. 편파의 파편(6) +2 20.09.19 174 6 24쪽
299 52. 편파의 파편(5) +2 20.09.09 168 3 16쪽
298 52. 편파의 파편(4) +2 20.09.05 137 5 19쪽
297 52. 편파의 파편(3) 20.08.20 136 4 19쪽
296 52. 편파의 파편(2) 20.08.13 140 3 20쪽
295 52. 편파의 파편(1) +8 20.08.07 166 5 17쪽
294 51. 찰박찰박 해(5) +3 20.04.24 184 2 17쪽
293 51. 찰박찰박 해(4) +2 20.04.21 149 2 19쪽
292 51. 찰박찰박 해(3) +4 20.04.13 151 3 20쪽
291 51. 찰박찰박 해(2) +3 20.04.07 152 3 16쪽
290 51. 찰박찰박 해(1) 20.04.07 143 3 12쪽
289 P.S 푹 익혔어 +4 20.04.02 157 3 10쪽
288 50. 삼월의 토끼(5) 20.04.01 148 2 12쪽
287 50. 삼월의 토끼(4) 20.03.27 137 3 14쪽
286 50. 삼월의 토끼(3) +4 20.03.25 144 3 20쪽
285 50. 삼월의 토끼(2) +2 20.03.22 177 3 22쪽
284 50. 삼월의 토끼(1) +2 20.03.17 139 2 15쪽
283 49. 오목과 오목(5) 20.03.13 148 2 16쪽
282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71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54 2 22쪽
280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57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64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53 2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