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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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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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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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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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2)

DUMMY

"집 가는게 뭐 어때서?"


나는 당당하게 물었다. 캥기는 게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럴땐 당당하기라도 해야했다.


"뭐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반 랜드레이는 시큰둥하게 손을 저었다.


먼저 말을 꺼낸 녀석이 그렇게 말하고 그냥 가버리자 나는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새삼 위해주는 척 말하는데,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으니 저 녀석과 난 상극이 맞다.


전에도 말한적이 있다. 사람이 세명이나 모이면 없던 용기도 생기는 법이라고.

그리고 때 마침 세 명이 된 우리는 전보다는 더 대범하고 더 염치없게 탑 내부를 돌아다녔다. 다른 애들을 찾으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반 랜드레이가 주도하는 거였다. 그건 의외였다. 야우라가 그럴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 야우라는 아까부터 영 마음이 편치 못한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별 볼일 없는 손님에게나 내어줄 법한 방. 누추하고 협소하다는 건 아니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수수하고 겸손하게 차려져 묵는 사람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그런 곳.


"뭔가 이상한데."


야우라가 흠, 하고 신음을 흘렸다.


"또 뭐가. 아니 근데 거긴 왜 보는거야."


나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야우라를 잡아 끌었다.

그 애는 식탁보를 들춰 테이블 아래를 보고 있었다.


"왜냐니 숨어있을 수도 있잖아."


"뭐가."


"레샤가."


아니 걔가 왜, 하며 덧붙이려고 했던 나는 한 차례 참아보기로 했다. 참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좀 전에도 별 생각없이 한 소리 했다가 거하게 역풍을 맞지 않았던가. 조금은,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성의를 보여야했다.

음, 그래. 그래서 뭐라고 할까. 아. 음.


"뭐야아?"


그 즈음 야우라가 가늘게 뜬 눈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표정이 또 왜 그래. 넌 내가 무슨 말만 했다하면 그러더라?"


"내가 뭐 어쨌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똑바로 마주보고 되물었다.


"이러고 보잖아 이러고."


야우라는 가는 눈에 더 해 미간에 주름까지 만들고선 턱을 괴고 손가락 네개를 번갈아가며 뺨을 두드렸다.


내가 저랬다고? 뺨을 두드리는거야 확실히 안했으니 그렇다쳐도 나는 한사코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나에겐 별 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 능력이 없었다.


저런 행동가지 같은 건 어디서 배우는 걸까. 저런 인재가 있다는 사실이 분했던 나는 꽉 쥐었던 주먹을 보이지 않게 풀었다.


그래 숨기지 않고 말해서.


"암만 그래도 레샤가 거기 있겠냐?"


사람을 뭘로 생각하느냔 말이다.


"걔는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야우라는 잊지말아야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것처럼 말했다.

알고 있다면 제발 그걸 지켜줬으면 좋겠는데.

나날이 늘어나는 레샤의 눈그늘이 얘한테는 안보이나 싶었다.


"그러니까 거기 있겠냐고."


"농담이잖아, 농담. 농담도 못해? 내가 진짜 거기서 레샤를 찾았을까봐?"


"그럼 뭔데."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그게 뭔질 모르겠단 말이야."


"아까 시궁창 갔다왔다고 얘기했잖아"


나는 거뭇거뭇하게 얼룩진 바짓단을 다시 보여주었다.


"그거 말고!"


야우라 목청을 높였다.


"그럼 뭐!"


나도 높였다.


"뭔가 좀. 처음 맡아보는 냄샌데. 아닌가 맡아본적있는 거 같기도 하고."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 먹을 수가 없었다. 야우라가 알고 맡을 수 있는 냄새를 나는 못 맡을 수도 있다보니 처음부터 이야기가 엇나가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 이거 때문일 걸."


대뜸 반 랜드레이가 끼어들었다.

녀석은 항상 걸치고 다니는 판쵸 안을 뒤지더니 아까의 인형머리를 꺼냈다.


"아니 넌 그걸 가져왔냐?"


비위도 좋은 녀석이었다.


"어! 그거그거! 그거그거그거!"


이번에는 야우라가 내 등을 확 밀치며 인형 머리에다가 삿대질을 해댔다. 궁금증이 확 가신건지 너무 맑고 발랄한 음성이었다. 그걸 내 어깨 위에서만 안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아 좀 내려와!"


그리고!


"넌 저거 보고 아무렇지도 않냐? 사람 머리잖아!"


"무슨 소리야. 사람 냄새가 안나잖아. 썩은내도 안나고."


야우라는, 넌 그것도 모르냐, 하는 것처럼 굴었다.


"미안하게 됐네. 코를 쑤시는 시궁창 냄새 속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를 혼자 못 맡아서 미안하게 됐어!"


나는 홧김에 소리쳐버렸다.

억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억울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시궁창 냄새와 썩은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없었다고!


비웃는 거 같던 야우라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할 말도 잊은 건지 손만 까닥댈뿐이었다.

야우라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서운해?'


"아니."


서운할 것도 없었다.


"에이, 서운하잖아아."


야우라는 나에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너스레를 떨었다.


"그 냄새 좀 못 맡을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나도 알아. 그런 거 가지고 뭐라하면 서운하지. 나도 누가 내가 못하는 거 가지고 막 뭐라하면 얼마나 서운한데."


그리고는 확 태도를 바꾸어 날 노려봤다.


"알겠어? 서운하다고!"


진짜 하고싶은 말은 그거였던 모양이다.


"언제까지 그 얘기할거야! 됐고! 여긴 딱 봐도 없으니까 그냥 다음으로 가자."


나는 그냥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아아! 또 내 말 무시한다!"


야우라가 어깨동무를 풀지도 않고 따라다니든 말든, 난 신경쓰지 않고 다음 방으로 나아갔다.

반 랜드레이도 우선은 우리에게 맞춰주려는 것인지 별 말없이 따랐다.


"마지막으로 걔네를 본 게 어디야?"


나는 무거워진 걸음을 힘겹고 힘겹게 옮기며 반쯤 업혀있는 야우라에게 말했다.


"너가 우리랑 있었던 방 있지? 거기서 오그리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가 마지막이야."


"오그리?"


"응. 요리사래. 되게 마르고 키가 큰 사람이었는데, 숫기가 없는지 겨우 말을 걸더라."


아, 우리가 먹은 저녁을 만들었다던 사람.


"근데 그 사람을 만난 게 왜 마지막이라는거야?"


요리사를 만난 것과 야우라와 다른 애들이 떨어지는데는 전혀 연관성이 없지않은가.


"에반젤린이 도와주러 갔거든."


아 순식간에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너는 핑계대고 빠져나왔고?"


"엇.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찍은거지."


"아아앗!"


야우라는 괴성으로 앙탈부렸지만 나도 그럴만하니까 그런거였다.


그건 그렇고 에반젤린이 오그리를 따라갔다고? 그럼 레샤도 당연히 에반젤린을 따라갔을 것이다. 도와주러 갔다고 하니, 손님에게 집안 청소를 시키는 몰상식한 녀석이 아니라면 한 장소에 머물러 있을테고 찾기는 더 힘들어진 셈이다.


어려웠다. 찾는 것이 어려운게 아니라 복잡해진 생각이 마구잡이로 부푸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 불려가긴 한 것인지, 당장 그것부터 의심이 드니 골치가 아팠다.


"빨리 찾아야겠군."


반 랜드레이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러는 게 낫겠지?"


지금은 그 녀석이라도 그렇게 말해주는게 다행이었다.


"그래. 빨리 찾아야 끝장을 보지."


아닌가? 아무래도 반 랜드레이는 나랑은 다른 생각을 하는 거 같았다.


"너 누구 말하는거야?"


이런 건 지금이라도 정확히 해둬야했다.


"누구겠냐. 글리 캐스트지. 이 이상 시간 끌리고 도망다니게 놔둬봐야. 그 녀석이 원하는대로 되어갈 뿐이야."


"아아."


그러셨구나.

뭐,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금방 찾을거야. 그리고 인형머리가 별거라구."


그와중에도 야우라는 천하태평이었다.

그 말대로 인형머리가 별 건 아니었다. 인형 머리 자체는 별 것도 아니지.

다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법이다. 버려진 인형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의 기분을.


"너. 방금 내가 아무 생각 없다고 생각했지."


아주 짧은 시간 뜸을 들였을뿐인데 야우라는 그 미세한 차이를 잡아 비집고 물었다.


"아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보단.


"그거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인형 머리야. 그것도 나랑 비슷한 옷을 입고있는. 거기다가 시궁창에 버려져 있었다고."


"어... 조오금 취미가 이상한 사람이겠지. 그리고! 걱정하면 어떡할건데. 빨리 찾아져?!"


갑자기 고양된 야우라는 내 머리통을 부여잡고 고개를 맞추어 딱 정면을 보게 만들었다.


"그럴 정신머리로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란 말이야. 그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눈앞에 지나가는 것도 놓치겠다!"


기염을 토하던 야우라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는 다른 감각에 집중하 듯 어딘가 먼곳을 주시했다.


"어? 누가 뛰나본데?"


"머, 뭐?"


말하기가 무섭게 복도 끝의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아이가 뛰쳐나왔다. 크림색 로브, 시커먼 머리칼. 쓸데없이 길어서 허공에 휘적대는 것 같은 스태프.

우리가 아는 한 그렇게 생긴 애는레샤 레스트레이드밖에 없었다.


"아! 레샤!"


야우라가 소리쳤다.

주변은 보지도 않고 우리가 있는 반대쪽으로 뛰던 레샤는 야우라의 목소리를 듣고선 우뚝 멈춰서더니 황급히 뒤로 돌아 우리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 빠르게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열려있는 문에서 또 한 사람의 팔이 불쑥 튀어나와 레샤를 붙잡았다.


"잡았다!"


레샤의 모자를 낚아챈 팔의 주인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우스운 상황이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잘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레샤를 찾고, 반 랜드레이는 글리 캐스트를 찾게 되었으니.


녀석은 붙잡은 레샤의 양쪽 어깨 위에 손을 올려서는 그 뒤에 서서 우릴 맞았다.

놀란 척이라도 할법하건만 그건 맞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뻔뻔스러운 태도였다.


"어우, 이게 누구야? 레이크하고, 냄새나는 용사님이랑... 누구였더라?"


"야우라!"


야우라가 크게 제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 맞아. 야우라 엘라하르우. 원래 글리가 이런 거 잘 안 까먹는데. 요즘 정신이 없어서... 훗, 미안해?'


일부러 모른체 했다는 걸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약 올리는 거에 취약한 야우라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앞을 반 랜드레이가 막고 섰다.


"이번엔 그 꼬맹이를 데려다가 무슨 짓을 하려는거냐. 글리 캐스트."


"아아."


글리는 목을 곧게 뻗고 슬프기 그지없는 신음을 흘렸다.


"글리는 슬퍼. 무슨 짓을 하려고 하냐니, 누가 들으면 글리가 어엄처엉 무서운 짓을 하려는 줄 알겠어."


글리는 슬며시 웃으며 레샤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팔을 배까지 미끄러지듯 내려 목을 감싸듯 뒤에서 안았다.


"히이익...!"


바짝 쫄아있던 레샤가 몸서리쳤다.


"글리는, 그저 친구가 되려고 한 것뿐인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냥 그것뿐이었는데... 도망가 버리는 거 있지?"


글리는 오른손을 굽혀 레샤의 뺨을 살짝 만졌다.


"다, 다다다 당신이랑... 제가, 오오왜... 치친, 친구가 됩니까. 예에...?!"


레샤가 달달달 떨면서 말했다.


"어우, 그래에. 목소리를 들려주니까 얼마나 좋아. 그럼 글리랑 레샤는 친구하지 말까? 그치만 글리는 레샤와 친구하고 싶은데. 글리는 레샤의 도움이 필요해."


"도움이 필요하면... 그냥 그렇다고 말하라고요...!"


"헛. 그럼 레샤는 친구가 아닌 글리를 도와줄 거야? 어우, 글리는 정말 행복해. 이런, 마음 따뜻해지는 세상에 살아서 말이야. 글리의 부탁은 어렵지 않은거야. 마침 더 쉬워졌지. 레샤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돼."


하며, 글리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품안을 뒤지고는 다시 아까와 똑같이 레샤의 뒤에서 그 애의 목을 끌어안았다. 차이라면 이번엔 손에 단검이 들려져있다는 것과 글리의 웃지 않는 눈이 우릴 향해있었다는 것이다.


"자, 미력의 돌은 어디 있어. 레이크?"


이번엔 글리의 눈동자가 반 랜드레에게로 향했다.


"아니면. 용사님이 알고 계실까?"


글리의 손끝에서 한 번 회전한 칼 끝이 레샤의 눈동자 앞에 겹쳐졌다.


"아아악!"


레샤의 쨍한 비명이 복도에 울렸다.


"레이크으...! 빨리요...! 지금 날붙이가, 예에...?! 눈앞에, 예에...?! 알아요?! 알고 있냐고요읍!"


글리는 팔을 들어 소매로 레샤의 입을 막았다.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친구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글리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농담처럼 했다.


"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람 목에다가 칼을 들이밀고 돌을 내놓으라고? 그런 짓을 하면 정말 너 원하는대로 너가 하고 싶은대로 이뤄질거라고 생각해?"


"아아, 아니야. 레이크. 그러면 안 돼."


글리는 기분 나쁘도록 말끝을 늘였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 무슨 일이 일어날거라고 상상하는 거야? 글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배웠어. 지금은 아무 일도 없잖아. 그럼 앞으로도 아무 일도 없을거야, 레이크. 아무 일도."


또 다시 궤변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보장하는데. 그 잘난 선생님?"


나는 참지 못하고 조금은 날카롭게 대꾸해버렸다. 저 녀석 선생님 얘기를 할 때면 신경이 곤두서곤 했는데.


"레이크, 방금 글리가 했던 말 뭘로 들었어?"


화를 낼 줄 알았던 글리는 오히려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 일도 없을거라고 했잖아. 보장은 레이크가 하는 거야. 봐,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글리가? 하지만 이 손목엔 실이 묶여있어. 글리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지. 그리고 그 묶인 실을 따라가보면 그 끝엔... 레이크의 혀가 있는 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글리는 그렇게 말했다.

헛소리였다. 헛소리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글리가 말 한 아무 일도 없는 그런 미래.

내가 미력의 돌을 주면 글리는 군말없이 레샤를 놔주고 사라지는, 그런 상황.


나는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시름에서 벗어났다. 야우라였다.


"그거... 그냥 주자. 응? 쟤 이상한 애잖아. 진짜 홧김에 확 질러버리면 어떡해?"


야우라는 매우 열정적으로 속닥였다.


"그러고야 싶지. 근데..."


콱! 하는 소리에 난 하던 말을 끊고 고개를 들었다. 반랜드레이가 검의 폼멜로 벽을 후려친 소리였다.


"웃기지마라...! 지금 인질극을 벌이겠다는거냐. 그것도 이 반 랜드레이 앞에서...!"


이후로도 속이 끓어오르는 것인지 녀석은 검 끝으로 벽과 바닥을 쳤다.


"단념해라. 난 무르지 않으니까."


그건 조금 위험한 발언이었다.


"야...! 그러다 진짜 무슨 일 나면 어떡하려고...! 네가 책임질거야? 죽은 사람 살려낼 거냐고...!"


나는 녀석의 뒤통수에다가 열변을 토했다.

잘못 되면, 그야말로 잘못 되어 버리는 거였다.


"인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저 녀석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다. 난 그걸 알려주지."


반 랜드레이는 매섭게 치뜬 눈으로 짓이겨 말했다.


"굽히고 들어가면 진다. 지면 되찾을 수도 없어. 하지만 지금은 동등해. 동등해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너도 멍청하게 굴지마라, 정령술사! 안 그러면, 인질이고 뭐고 없으니까...!"


정면으로 뻗은 검이 글리를 향했다.


"어떡할거냐, 글리 캐스트. 놓아주지 않으면. 너도 곱게는 못 갈거다."


반 랜드레이는 협박에 협박으로 맞서고 있었다.


"어떡해...! 이상한 놈이랑 이상한 놈이 만나서 이상해지고 있잖아...!"


야우라가 내게 속닥였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야우라가 그렇듯이 나에게도 특별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 근데 그거 지금 나한테 없단 말이야...!"


"뭐? 어디다 잃어버렸는데...? 너 진짜...!"


그러는 동안 반 랜드레이는 한 걸음 한 걸음 글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오는 거야? 정말? 여자아이는 얼굴에 상처가 나버리면 마음 깊은 곳에도 상처가 나는데..."


글리는 그 보조에 맞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 정도는 고칠 수 있는 약을 찾아보지."


글리가 단검을 치켜들어도 반 랜드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목은 살짝 베여도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위험하기도 하고?"


"여기엔 플라나 사제도 있다. 금방 찾아보지."


"눈은. 고칠 수 없어."


"고칠 수 있어. 그런 마법을 들어본적이 있다. 그것도 찾아보지."


신경전 같은 말싸움 끝에 글리가 비죽 웃었다.


"어우, 누가 이렇게 구해주면 글리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에게 푹 빠져버릴거야."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죽일 생각은 없었나보군."


"죽이면... 용사님도 글리를 죽일 거잖아."


"모르지. 네가 말했던 대로 너도 너 하기에 달렸다."


"그럼. 글리는, 선택할게."


글리는 단검을 빙글 돌려 고쳐잡고는 레샤를 감아 붙잡고 있던 팔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반 랜드레이가 팔을 뻗었을 때 레샤의 등을 확 떠밀었다. 동시에 허여물그레한 가루연기가 퍽 터졌다.


"이게...!"


연막 같은 게 아니었다. 아주 잠깐의 교란을 일으킬 뿐일 연기를 털어낸 반 랜드레이는 레샤가 입은 로브의 모자를 잡아 치워내듯이 휙 잡아끌었다. 거칠기 그지없는 취급에 레샤는 바닥에 엎어졌다.


챙!


그러나 귀를 울리는 금속음이 터지자 뒤도 안돌아보고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글리 캐스트는 도망치지 않고 맞서고 있엇다. 어쩌면 도망치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지.

어쨌든 우리도 얼른 레샤를 마중나갔다.

쇳소리가 가득할 정도로 숨을 몰아쉬던 레샤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왈칵 소리쳤다.


"레이크는 친구를 위해서 그거 하나 못 줘요...?!"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적당한 변명거리조차 찾지 못했다.


"아니... 그게..."


"죽을 뻔했잖아요...! 제가 죽으면 레이크가 책임질거예요, 예...?! 책임질거냐고요...! 억울하게 죽어 원한을 가지고 세상에 떠돌게 어떡할거냐고요, 책임질거에요오...!"


"아니 미안한데! 그 돌! 나한테 없어!"


나는 우선 흥분된 상태로 긴장이 풀려 횡설수설하는 레샤를 진정케해보기로했다.


"그럼 어디있는데요!"


"너한테. 옷 안에. 주머니 많더라."


그 말을 들은 레샤는 옷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이내 미력의 돌을 안의 주머니에서 찾았다.


"...이게 왜 저한테 있는겁니까...?"


"아니, 그 왜.... 물건을 숨길 때는 의외의 곳에 숨긴다고 하잖아."


물론 그 게 핑계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글리 녀석을 만났을 때 지나치게 불안했던 게 화근이었다.


챙!


이번엔 금속에 돌과 맞닿은 소리였다.

반 랜드레이의 검이 글리에게 밟혀 바닥과 부딪쳤다.

검을 놓치지 않고 버틴 반 랜드레이에게 글리는 온몸을 날려 어깨로 들이받았다. 반 랜드레이는 검을 놓치며 벽에 부딪쳤고, 글리는 바닥을 한바퀴 뒹굴어 몸을 바로 세웠다. 일어난 녀석의 시선은 우릴 향해있었다.


"정말 못 됐어. 그런 걸 글리에겐 비밀로 하고 말야! 익...?"


달려오려던 글리 캐스트는 다시 뒤로 당겨졌다.


"너희들은 바보냐?!"


반 랜드레이가 글리를 붙잡고 소리쳤다.


"그러게! 우린 셋이 합쳐서 바본가봐!"


도무지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사과의 뜻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가서 플라나 사제나 찾아! 이 녀석 말고 하나 더 있다며!"


반 랜드레이는 글리를 상대하면서도 고래고래 소리쳤다.


맞아. 그랬다. 슬리체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아니. 그 목소리대로 그렇지 않았다.

그 슬리체가 빠져나오는 환영처럼 어둠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글리가 바라지 않으니까."


우리가 있는 바닥을 주변으로 하얀 원이 그려졌다.

하얀 원! 그 땅을 밟고 있으면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기묘한 마법이었다.

나는 그 원이 완성되기 전에 물러나 레샤와 야우라도 잡아당겼다.

원이 완성되자 그 자리의 돌바닥이 파삭하고 비틀어져 부서져 돌 편이 사방에 튀었다.


어... 정정하자면 내가 전에 본것하곤 좀 달랐다. 그건 저렇게 파괴적이진 않았는데.

대체 원 위에 있었으면 어떻게 됐단 소리야.


"어, 저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 그런 거 하지마."


나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고 진심을 담아 농담을 건네보았다. 원래 안 친한 사람들끼리는 농담을 한 번 주고 받는게 좋다고 하지 않던가.


"그걸로 좋다면. 얼마든지."


창백한 얼굴의 소년이 준 대답은 오한이 들도록 건조했다.


작가의말

좀 고민이 생겼습니다 1인칭 주인공시점도 분명이 장점이 있지만 어떤 상황에선  한계가 있으니까요

중간에 시점이 바뀌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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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P.S 옛날 옛날 어느 옛날에 23.01.25 83 2 7쪽
314 54. 조각조각 사각사각(8) 23.01.18 61 2 12쪽
313 54. 조각조각 사각사각(7) +2 23.01.13 78 2 14쪽
312 54. 조각조각 사각사각(6) +1 21.11.06 124 1 16쪽
311 54. 조각조각 사각사각(5) +2 21.10.24 106 2 20쪽
310 54. 조각조각 사각사각(4) 21.10.19 110 2 20쪽
309 54. 조각조각 사각사각(3) +1 21.10.13 122 1 17쪽
308 54. 조각조각 사각사각(2) +2 21.10.05 202 2 12쪽
307 54. 조각조각 사각사각(1) +1 21.10.02 122 3 17쪽
306 드리는 말씀 21.10.02 144 4 2쪽
305 53. 파편의 편파(5) +2 21.01.26 163 3 20쪽
304 53. 파편의 편파(4) +2 21.01.07 134 2 13쪽
303 53. 파편의 편파(3) +2 20.12.31 137 4 27쪽
302 53. 파편의 편파(2) +2 20.12.21 150 4 19쪽
301 53. 파편의 편파(1) +2 20.12.15 133 3 20쪽
300 52. 편파의 파편(6) +2 20.09.19 174 6 24쪽
299 52. 편파의 파편(5) +2 20.09.09 168 3 16쪽
298 52. 편파의 파편(4) +2 20.09.05 137 5 19쪽
297 52. 편파의 파편(3) 20.08.20 136 4 19쪽
296 52. 편파의 파편(2) 20.08.13 140 3 20쪽
295 52. 편파의 파편(1) +8 20.08.07 166 5 17쪽
294 51. 찰박찰박 해(5) +3 20.04.24 184 2 17쪽
293 51. 찰박찰박 해(4) +2 20.04.21 149 2 19쪽
292 51. 찰박찰박 해(3) +4 20.04.13 151 3 20쪽
291 51. 찰박찰박 해(2) +3 20.04.07 152 3 16쪽
290 51. 찰박찰박 해(1) 20.04.07 143 3 12쪽
289 P.S 푹 익혔어 +4 20.04.02 157 3 10쪽
288 50. 삼월의 토끼(5) 20.04.01 147 2 12쪽
287 50. 삼월의 토끼(4) 20.03.27 137 3 14쪽
286 50. 삼월의 토끼(3) +4 20.03.25 144 3 20쪽
285 50. 삼월의 토끼(2) +2 20.03.22 177 3 22쪽
284 50. 삼월의 토끼(1) +2 20.03.17 139 2 15쪽
283 49. 오목과 오목(5) 20.03.13 148 2 16쪽
282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71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54 2 22쪽
280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57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64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53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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