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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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초
작품등록일 :
2012.02.22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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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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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기슭 # 양떼구름 10 전조 3

DUMMY

그믐날 오전. 안금분 일행이 달건주막에서 합석하기 전 둔부정산맥 문경산 홍곽부의 집. 일명 '사채 대문'앞.


"자자, 줄 서시고, 돈 받으신 분 뒤로 빠져요. 나도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야. 당신들 줄 잘 세워야 일당받으니까 빨리빨리 서 봐요. 거기, 삐져나오지 말고. 일렬로 똑바로. 보기 좋게 그림자를 맞춰 봐."


줄 세우는 남자가 바쁘다.


"내가 준 돈은 사채 선이자라는 걸 명심하세요. 지금 쓰면 안 됩니다."


정정한 장수 열 명을 일렬로 세우고 제일 앞에서 그들을 점검하는 자는 말끔히 넘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전원 집으로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이제부터 한 명씩 들어가 돈을 빌립니다. 개인당 '원'은 십만, '엽전'으로 열 닢. 주머니 챙기려고 더 부르면 곤란해요. 내가 말한 금액 외적으로 빌린 건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잊으면 안 됩니다. 난 그거 책임 안 져."


경각심 없어 보이는 장수가 눈에 띄어 그를 향해 한 마디 더 던졌다.


"기억하세요. '귀의 사채를 갚지 못하면 죽지도 못하고 끝나지도 않는다'라는 말. 곱씹어두세요."


나머지 인원 전원에게 돈을 나눠준 뒤 장수 개개인 얼굴을 본 후 마지막으로 제일 앞 장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시선은 전체를 바라보았다.


"자...이제 시작해봅시다. 장수본부 의뢰로 모집한 열 분. 혹시 여기가 아니더라도 사채 써보신 분?"


질문에 두 명이 손을 들었다.


"역시. 처음 볼 때부터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여기 있다는 건 돈 다 갚았고, 위험성도 안다는 것이겠죠. 두 분 제외 나머지는 지금부터 잘 들어야 합니다."


선두에 선 장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가 점차 구름 많아지는 하늘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가 장수본부 출신도 아니고 멀리서 왔거든. 그래서 여기...뭐라고 해야되나...방식, 방식이 달라요. 하지만 별 상관없으니까. 어쨌든, 다 동의했잖아요. 세 나라를 공격하기로 한 거. 장수본부 의뢰로 하는 짓은 일단 반역이 아니라고 규정해놨고. 의뢰는 의뢰일 뿐, 나중에 개울나라 소속이 되거나 할 때 오늘 의뢰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했죠. 그러니까 다들 온 것이고. 이런 걸로 뒤끝 남으면 나라님들 속이 좁은 거지. 안 그래요?"


과거 장수본부가 독립기관으로 힘을 갖고자 규칙을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동맹 세 나라와 여러 마찰이 있었다. 물론 동맹 세 나라는 해를 입히는 의뢰를 철저히 막고자 하였지만, 장수 의뢰의 자율성을 보장하자는 움직임이 더 거셌고, 공교롭게도 각 나라 출신 장수가 다시 장수본부로 복귀하여 힘을 보탬으로써 현재에 이르렀다.


"죽거나 죽이는 일은 아닙니다. 그냥 부림 좀 하고, 각자 능력으로 마찰을 일으키면 돼. 본 놀이는 다른 데서 진행하거든. 알아듣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돈을 빌리러 가봅시다. 어디보자...산 넘어가려면 서둘러야겠네요. 점심 이후부터 현지조달로 쓰려고 장수본부에 의뢰를 신청한 거니까.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외부인이 의뢰 신청하는 게 까다롭더라고. 뭐, 당연히 그래야 정상이지만. 쉬우면 안 좋은 사람이 장수 가져다가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안 그래요?"





===





달건주막 사립문 대나무 살을 쥐고 꺾어보았더니 제대로 부러지는 소리를 냈는데, 놔두면 원래대로 돌아갔다. 임용식과 진미설이 각자 주막을 둘러보았으나 손님은 없었고, 무뚝뚝한 주막 아주머니도 간데없었다.


"선배, 아는 것만 말하자면 일단 손님 없는 건 원래 그랬습니다. 임의로 나가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어설 때 이미 없었다고요."


"꾸미지 않았다는 말이니."


"아주머니는 모르겠네요. 어디 갔는지."


"주인이 주막 놔두고 떠나지 않았다면 어디 있을까...내 생각에 방 같은데. 바람도 불지 않고, 세 손님 방문이 살짝 열려 있는데다,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어. 저 사람이 아주머니 아닐까."


술은 막걸리 두 잔. 약간의 취기도 사라진 상태로 손바닥을 비비는 진미설. 현재의 '비정상'을 의심해 볼법한 건 역시,


'저 일행...'


안금분이 일어서서 세 손님 방 쪽으로 걸어갔고, 나머지 두 장수가 뒤늦게 의자를 뒤로 밀었다. 툇마루에 자리 잡고 앉아 뒤돌아선 미설과 시선을 마주친 다음 어떤 잡티도 없는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불렀다.


"손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으면 안 됐어요. 이해하시죠?"


"장수본부 장수는 천강산보다 덜 하다는 표현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요. 난 재미없는데. 길 가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앞을 막는 것 같잖아."


"말 그대로예요. 그래서 실험해 볼 생각이에요."


임용식이 진미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공간을 만들어 줬네요. 그냥 내버려둘 생각은 없나 봅니다."


"아무렴."


정기로 빗어 만든 물건이 서서히 나타났다. 그녀 왼손에 간장 종지, 오른손에 밥그릇.


"...금분씨, 소개해 줘야죠. 기본은 지켜야지 않겠어."


"다시 한 번 오빠 이름을?"


"아니. 관람하시는 분."


세 손님 방문이 열리고, 주막 아주머니가 두 손을 모은 채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안금분이 손가락으로 입술 막는 시늉을 보였다.


"끝날 때까지 가만히 계세요."


이어서 문이 활짝 열리면서 낯선 남자가 발을 절룩이며 나타났다.


[다리가 네 개 아니니 불편하구나.]


"그러십니까."


개울나라 황토조직 장수 둘 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높은 분'을 이끌고 온 여자에 대한 의심은 잠시 떨쳐내고 온전한 하나를 향해 자세를 낮추었다.


[어떤 구경을 보여주려는 것이냐.]


"이곳 산맥과 저편 산맥의 훌륭한 장수가 모여, 친히 사람으로 납시어주신 '산걷기'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소소한 대결을 준비했습니다."


[살점은?]


"튈 것입니다."


[혀가?]


"입 다물면 깨물어 잘릴 것이고, 입 벌리면 잡아 뽑을 준비가 된 장수입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난 '둘'이 가는 걸 보겠다.]


"산걷기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깊이 숙인 안금분이 얼굴을 보였다. 달건주막을 마치 자신 안방처럼 편하게 둘러보고는 오른편 사립문부터 왼편 담벼락까지 부채꼴로 팔을 펴서 담고는 안에 든 장수 넷에게 말했다.


"이렇게 되었어요. 우리...미설씨, 용식씨는 천강산 손피득 장수와 싸우시면 됩니다. 미로는 잠깐 피해 있을래?"


사람이 높은 분과 같이 앉아서 또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황. 어찌 돌아가는지 빠르게 읽은 진미설이 밥그릇 안에 간장 종지를 넣었다.


"이봐 금분씨. 지금 시작하는 거 아니지?"


생긋 웃어 보이며 손피득을 본 다음 다시 미설을 바라보았다.


"전 지금 거짓말을 못해요. 옆에 누가 계신지 파악했지요?"


"아니라는 말로 알아들을 게."


"문답 없이 싸우면 되는 겁니까."


임용식이 옷 소매를 털어 '벚꽃 잎'을 날렸다.


"일단 남은 술 좀 마시고. 성 내부에선 나름의 일과라는 게 있으니 술을 자제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 없잖아. 너도 할래?"


"언제 물어보고 건넸습니까."


원래 자리로 돌아가 막걸리를 주고받는 두 사람. 손피득은 여전히 동요하지 않았고, 안금분은 한쪽 무릎을 굽힌 뒤 턱을 괴었다.


'역시 황토조직. 당황하지 않고 주워담는 게 빨라. 싸움도 이 인조로 움직일 것으로 보이고...넓게 싸웠으면 고전했겠지만, 한정된 공간에 넓이는 주막 마당이 전부. 오빠가 이겨야 해요. 안 그러면 내가 죽잖아.'


안금분 옆에 앉은 남자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하늘만 보고 있었는데, '사람둔갑'이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그냥 귀찮아서 그러는지 얼굴 살이 흐느적거리며 노인으로 변했다가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아이로 돌아오더니 다시 처음 중년 남자의 평범함으로 돌아갔다.


"이봐요. 당신이 높은 분 곁에서 여유 부릴 수 있는 것도 다 은덕 때문이잖아. 우리가,"


진미설의 말 허리를 끊고 금분이 들어왔다. 긴장감 없이 청량한 목소리가 괜히 거슬렸으나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둔다.


"제가 이 분 앞에서 명령내리듯 떠들 수 있는 이유,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아요. 본디 산걷기님은 사람 일에 관심 없으시니까. '무례'의 정도도 우리를 기준으로 판단해 주십니다. 즉, 당신의 말에 내가 진심으로 불쾌감을 표시한다면 그땐 산걷기님께서 어떤 말씀으로 중재할 거예요. 당연히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사람, 그리고 사람보다 높은 곳에 계시는 분 사이의 틈새를 어찌 알겠어요. 다만,"


손가락을 돌려서 꼬던 머리카락을 풀고 깍지를 끼었다.


"피득오빠와 대결을 통해 승패를 내기 전까지 산걷기님과 대화는 불가능해요. 자, 보다시피 저 역시 이제 나눌 수 없답니다. 싸움은 시작되었으니까."


막걸리가 달다. 미설이 내려놓은 잔을 채우고 임용식 자신은 병째 마셨다.


"요컨대 주막을 무대로 만들고 진즉 모셔온 산걷기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싸워라잖아."


"네. 진전된 대화를 원하면,"


손피득이 목 운동으로 근육을 풀었다. 그때 관절 마디마다 뼈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고, 양어깨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이기세요."


'그걸 말이라고 해. 안 그러면 목숨이 날아가잖아...'


높은 분 산걷기와 안금분이 나눈 대화를 미루어 볼 때 진 쪽은 반드시 죽는다. 그 정도 조건이 아니고선 사람 따위가 훨씬 높은 데 오른 존재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평화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네. 현실이 느껴지니까 긴장돼서 소변 마려워. 넌 어때."


"전 아까부터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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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개울기슭 # 양떼구름 13 전조 6 21.06.16 12 2 4쪽
109 개울기슭 # 양떼구름 12 전조 5 19.07.26 31 2 8쪽
108 개울기슭 # 양떼구름 11 전조 4 +1 19.07.21 44 3 7쪽
» 개울기슭 # 양떼구름 10 전조 3 18.10.29 62 2 10쪽
106 개울기슭 # 양떼구름 9 전조 2 18.10.25 62 2 7쪽
105 개울기슭 # 양떼구름 8 전조 18.10.21 45 2 9쪽
104 개울기슭 # 양떼구름 7 18.10.15 63 2 8쪽
103 개울기슭 # 양떼구름 6 18.08.07 89 2 9쪽
102 개울기슭 # 양떼구름 5 18.08.05 53 2 9쪽
101 개울기슭 # 양떼구름 4 18.08.01 73 2 7쪽
100 개울기슭 # 양떼구름 3 18.07.26 72 2 7쪽
99 개울기슭 # 양떼구름 2 18.07.08 73 2 9쪽
98 개울기슭 # 양떼구름 18.06.29 71 2 11쪽
97 소용돌이눈 2 18.06.27 87 2 5쪽
96 소용돌이눈 18.06.26 41 2 12쪽
95 개울기슭 # 천둥구름 21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3 18.05.24 90 2 8쪽
94 개울기슭 # 천둥구름 20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2 18.05.21 55 2 9쪽
93 개울기슭 # 천둥구름 19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1 18.05.19 58 2 10쪽
92 개울기슭 # 천둥구름 18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0 18.05.11 126 2 11쪽
91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7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9 18.05.08 111 2 9쪽
90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6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8 +1 18.04.26 102 4 9쪽
89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5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7 18.04.08 107 2 8쪽
88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4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6 18.04.05 91 2 11쪽
87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3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5 18.04.04 103 2 10쪽
86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2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4 18.04.03 89 2 12쪽
85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1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3 18.03.11 110 2 8쪽
84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0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2 18.03.10 123 2 9쪽
83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9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8.03.09 82 2 11쪽
82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8 조짐 18.01.24 97 2 8쪽
81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7 18.01.15 115 2 9쪽
80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6 17.11.29 221 2 8쪽
79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5 17.11.27 121 2 10쪽
78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4 17.11.21 369 2 9쪽
77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3 17.11.06 235 2 8쪽
76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2 17.11.04 101 2 10쪽
75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7.11.02 414 2 10쪽
74 궁철, 추격의 장 3 17.10.27 106 3 4쪽
73 궁철, 추격의 장 2 17.05.25 153 2 9쪽
72 궁철, 추격의 장 17.05.18 477 2 6쪽
71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8 예봉산 원정대 17 17.05.17 234 2 9쪽
70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7 예봉산 원정대 16 17.05.16 139 2 11쪽
69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6 예봉산 원정대 15 16.07.26 326 2 13쪽
68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5 예봉산 원정대 14 16.07.22 172 2 13쪽
67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4 예봉산 원정대 13 16.07.20 220 2 15쪽
66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3 예봉산 원정대 12 16.05.25 380 2 8쪽
65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2 예봉산 원정대 11 16.04.22 371 2 6쪽
64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1 예봉산 원정대 10 16.04.21 589 2 8쪽
63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0 예봉산 원정대 9 16.04.18 372 3 10쪽
62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9 예봉산 원정대 8 16.03.25 355 2 8쪽
61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8 예봉산 원정대 7 16.03.23 338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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