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마왕 각오를 다지다.
안녕하세요. 마왕의 바둑을 시작합니다. 공모전 참가합니다.
자신이 할 말을 모두 했다고 생각했는지 학수는 먼저 교실로 돌아갔다.
준혁과 준만 둘만 남았을 때 갑자기 준만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준혁아.”
“뭐가 말인가?”
“사실 나는 김학수가 너를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도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 김학수의 관심이 너에게로 향하면 내게로 향하는 괴롭힘이 줄어들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랬나?”
“나 정말 쓰레기지? 난 정말 이기적인 놈이야. 그래도... 이런 나이지만 너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싶어.”
갑작스런 준만의 양심고백.
준만이는 자신의 진심을 준혁에게 털어놓고 사과를 구하고 있었다.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준만이는 준혁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왜냐하면 준혁이 했던 말이 자신을 일깨우고 학수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준만의 사과에 준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응했다.
“용서하고 말 것도 없다. 누구나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준혁은 모든 존재의 행동원리는 결국 자기 보호에 있다고 생각했다. 준혁 그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랬기에 준만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준혁아. 고마워.”
“고맙다면 대국이나 한판 두도록 하지 사실 네게는 대국 신청을 하러 온것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래. 그렇게 할게.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 내게 대국신청을 해.”
준만이는 혼쾌히 승낙했다. 이제 준만은 더 이상 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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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뒤늦게 준혁과 학수가 대국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뭐어? 일주일 뒤에 대국을 둔다고? 그런 말을 어떻게 얼굴하나 변하지 않고 하는거야?”
지연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지만 정작 당사자인 준혁은 느긋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저 대국을 약속한 것 뿐이다.”
지연은 준혁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학부모 참관 대국시간에 하는 대국은단순히 일반 대국이 아니야. 잘못하면 학교에서 퇴교처리 당할수도 있는 공식기전이란 말이야.”
일반 대국이라면 지연이 놀랄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대국이 학부모 참관때에 이뤄진다는 것이 문제다. 보통 그때의 대국은 말그대로 진검승부. 일반 공식기전과는 중요도가 차원이 다르다. 공식기전중에서도 따라 대회기전이라는 요인까지 적용되어 지는 쪽은 엄청난 레이팅 하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더구나 중원고등학교에는 반면 50집 이상 차이로 공식기전에서 지게되면 그대로 퇴학처리된다는 교칙이 있다.
명문중의 명문인 그들 학교에서 있을 수 없는 차이이기에 엄격하게 적용되는 교칙이다. 그래서 보통은 50집 이상 차이나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만큼 집차를 벌리는 일은 없다.
도박장에서 돈을 다 잃은 호구에게 개평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국은 다르다. 대국을 두는 사람들인 준혁과 학수의 관계 때문에 그렇다. 준혁에게 들은 것들을 종합해봤을 때 학수가 준혁을 학교에서 내쫓기 위해 대국시간을 일주일 뒤로 잡은 것으로 보였다.
기억을 모두 잃은 준혁과 아마 7급에 걸맞는 기력을 갖춘 학수의 대국. 그 실력차이만큼이나 결과또한 자명했다.
지연이 아는 학수라는 아이는 인성은 글러먹었지만 실력자체는 반에서 최상급에 드는 아이였다.
아마 7급. 100여년전 사람들의 저변이 적었을 때는 아마 7급정도야 약한 기력에 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둑전공을 한다. 그만큼 수만배 수십만배의 사람들이 바둑을 하는만큼 그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레벨에서 아마 7급은 꽤 높은 기력에 속했다.
지연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자칫 잘못하면 준혁은 일주일 후 퇴학처리 당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군. 걱정해줘서 고맙다.”
“에에? 걱정? 오,오해하지 마라. 나는 단지 공정한 승부를 위해 기억을 잃은 네가 알지 못할 것 같은 교칙을 말해둔 것 뿐이다. 에... 그러니까 이건 너를 걱정한다던가 좋아한다던가 그런게 결코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강준혁 네놈. 쓸데 없는 오해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지 말도록 해라.”
텐션이 높아져서 횡설수설하는 지연에게 준혁이 말했다.
“알겠다. 그런 오해 없도록 하지.”
오해의 여지를 칼같이 자르는 준혁의 대답. 지연으로서는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나빴다.
둘의 풋풋한 광경을을 준혁의 앞에서 지켜보던 준만은 이마를 가볍게 쳤다.
‘후후후. 앞으로가 볼만 하겠는걸.’
왠지 준만은 준혁과 지연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궁금해졌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준만은 슬슬 지연의 난입으로 멈추었던 대국을 속개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탁.
준만이 착수한 후에 준혁에게 말했다.
“준혁아 네 차례야.”
“흠. 거기에 착수했군.”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둑판을 바라보는 준혁. 하지만 준혁의 시선은 바둑판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후후후. 철저하게 밟힐 준비를 하라고.’
일주일 뒤에 상대할 학수. 현재의 준혁으로서는 쉽지 않은 상대다. 거기다 상대는 자신에게 적대적이다. 지연의 말대로 상대는 자신을 철저하게 밟아서 학교에서 퇴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슨 싸움이든지 간에.
준혁은 다시 바둑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바둑판에 착수했다.
탁.
준혁이 착수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퍼졌다.
‘싸운 후엔 이긴다. 그리고...’
적을 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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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떠있는 연못.
밤에는 달을 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월광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그곳은 대한민국 바둑의 명문가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천원이가의 심처였다.
가뜩이나 보름달이 뜨는 밤. 월광지 옆에 있는 팔각정에서는 두 노소가 대국을 두고 있었는데 바로 기성 이진후와 손녀인 이지연이었다.
이번 차례는 지연이 둘 차례. 하지만 지연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까 준만이와 대국을 두던 강준혁의 모습.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예전의 강준혁에게서는 찾아볼수가 없었던 모습이다.
'사고가 났다고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수가 있지?'
예전의 강준혁은 바둑을 둘때면 무표정을하고 있었다. 겉으로 봐도 무척이나 따분하지만 시키니까 한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잃고난 강준혁은 달랐다. 바둑을 둘때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바둑이 흥미로운 건가?'
기억을 잃었다지만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강준혁. 지연은 달라진 준혁의 모습에 요새들어 부쩍 그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녀석만 보면 왠지모르게 평정심을 못찾고 텐션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게 강준혁에 대한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바둑을 두던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집중하자 집중. '
그녀가 상념을 접고 다시 바둑판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할아버지인 기성 이진후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하자꾸나.”
“할아범. 아직 바둑 안끝났어.”
이진후의 말에 상념을 마친 지연이 다시금 바둑판을 보는 척 할 때 이진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에잉. 쯧쯧. 못난 것. 바둑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두는 것이라 누누이 말했다. 바둑두는 사람의 마음이 여기에 없는데 계속 두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아 진짜 아니라구. 집중하고 있었다니까.”
“아니긴 뭘 아니야. 이것아 남자라도 생긴 것이냐?”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망할영감쟁이가!”
‘호오 앙큼한 것 같으니라구. 남자가 있긴 한가보구먼.’
늙은 생강이 맵다는 말이 있다. 이진후는 지연의 버릇으로 지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꿰고 있었다. 지연은 몰랐지만 그녀는 정곡을 찔릴때면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으로 이진후는 지연이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하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날밤의 대국이 끝났고 기성 이진후는 자리에 누웠다. 아까 손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주일 후에 있을 학부모 참관 대국이었다고 말했었다. 보통 학부모 참관 대국시간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참석한다. 그들 자녀들의 학업성취도를 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진후는 참석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성혁이 사라진 그날 이후, 외부활동을 거의 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석할 생각이었다.
“손녀사위 될놈 얼굴이나 보러가야 겠구먼.”
능글맞게 웃으며 기성 이진후는 눈을 감았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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