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색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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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7.06.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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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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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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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Ⅲ

DUMMY

한때 바람의 마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떠올렸던 적이 있다.

그때는 단지 무의식중에 비슷한 친우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넘겼지만······. 어쩌면 그건 이미 초인적인 영역에 이른 아쿠아의 육감이 진실을 직감하고 보내왔던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역시 그런 거였나.”

아니, 필시 그랬던 것이리라. 아쿠아는 류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퍼즐이 맞춰지듯 떠오르는 해답들을 쓸쓸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역시, 라니요?”

의미심장하게 중얼대는 아쿠아를 향해 비올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아쿠아는 자신을 향해 내밀어져있는 지팡이를 조심스레 잡으며 말했다.

“지인들이 나랑은 다른 시간대로 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어. ···뭐, 설마 류신 녀석의 이름이 먼저 나올 줄은 몰랐지만.”

아는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대에 떨어지고, 훗날의 시간대에 떨어진 이가 그 흔적을 찾는다. 차원이동을 다룬 매체에선 의외로 흔한 이야기다.

그랬기에 아쿠아도 혹시나, 하는 가능성의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단지 지인들 중에서도 하필 류신의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가 생각했던 가능성은 다른 이의 것이었으니까.

”내가 염두에 뒀던 건 비올라, 네 쪽이거든.”

“···저요?”

“그래. 엘카프가 내게 맡긴 아이. 이그벤의 제자야.”

슬픈 목소리로 그녀를 향하는 아쿠아의 목소리에 비올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가 언급한 이름들을 듣는 순간, 모호하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았어.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생판 모르는 인물이 나를 언급한다? 차라리 내 지인이라는 쪽이 더 그럴듯하지. 단지··· 단지······.”

그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인들이 수백 년이나 전의 인물이 됐을 가능성 따위··· 누가 믿고 싶을까. 그랬기에 아쿠아는 그 가능성을 직감했던 순간부터 비올라를 조사하길 멈췄다.

하지만 진실은 멀리 빙 둘러서라도 그를 향해 닥쳐왔다. 그것도 짐작할 수 없는 형태로. 아쿠아는 자드키엘을 꾹 쥔 채 응접실 바깥으로 나섰다.

“···잠시만, 혼자 있게 해줘.”

부탁, 명령, 혹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말만을 남긴 채 아쿠아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 뒤를 라피와 딱히 분위기를 안 살피는 하스만이 따라갔다.


“저기, 나 혼자 있게 해달라고 했지?”

성의 한구석. 사용인도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 장소에서 아쿠아는 자신을 뒤따라온 라피와 하스를 보며 물었다.

“저는 당신의 수호정령인걸요. 인원수로 치지 않는답니다.”

“아쿠아 오빠. 어디 아픈 거야?”

그에 라피와 하스는 분위기에 참 맞지 않게도 상큼한 목소리로 답했다. 뻔뻔하다거나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둘의 대답에 아쿠아는 피식 웃음을 지어버렸다.

“이래서야 뭐라 타박하기도 어렵잖아.”

“으웅?”

“요 녀석, 요 녀석!”

“으에에에에. 답답한 거야아아~”

아쿠아는 과거부터 쭉 동료였던 하스를 꽉 껴안았다. 평소부터 갑갑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하스는 그런 아쿠아의 행동에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아쿠아는 그녀를 놓아주는 대신 더 꽉 껴안을 뿐이었다.

“하스야······.”

그리고 들려온 울먹이는 목소리에 하스가 자신의 몸에서 힘을 뺐다. 어지간해선 분위기를 읽지 않는 하스지만,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변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우는 거야?”

“돌아가도, 류신은··· 엘카프는 이제 못 만나.”

“으웅?”

“네 언니도··· 다시 못 만날지 몰라.”

“어째서?”

슬픔어린 목소리로 이별을 고하는 아쿠아의 목소리에 하스는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아쿠아는 이미 그러리라고 예상한 듯,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도 차분하게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류신과 엘카프도 이 세계에 왔어. 어쩌면 그 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것도 수백 년 전이야. 시리우스에서도 인간을 택한 그 둘은 그렇게 오래 살 수 없어······.”

물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적어도 게임에서의 능력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그들은 이미 초월한 자들.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이니까.

허나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 아쿠아의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둘의 성격상 대리인 따위를 내세우지 않고 직접 아쿠아를 찾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에필라인이나 노바도··· 비슷할지 몰라. 수백 년, 혹여나 그보다도 더 전에 이동해서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그 수명을 끝냈을지도 몰라······.”

그것이 아쿠아의 두려움이었다. 혹여나 지구로 돌아가더라도 지인들과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소한 이미 두 명의 지인과는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괜찮은 거야!”

대비하지도, 각오하지도 못한 앞으로 드리운 절망 앞에서 아쿠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런 아쿠아를 향해 하스는 상쾌할 정도로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고······?”

“언니는 천하무적인 거야. 절대 하스를 두고 가지 않는 거야!”

자신만만한 하스의 목소리에 아쿠아는 흘러나오던 울음마저 멎어버림을 느꼈다. 별다른 확신도, 다른 무엇도 없는 말이었으나 하스의 외침에는 그만한 힘이 담겨있었다.

“···어쩌면 나 때문에 네가 언니랑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는데?” 최초의 꼬아버린 계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하스는 아쿠아의 곁이 아니라 원래 주인인 에필라인의 곁에 계속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스는 그런 거 모르는 거야. 언니랑은 꼭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다른 문제는 없는 거야!”

자신을 원망하라는 투로 말을 꺼낸 아쿠아의 심경이 무색하게도 하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것은 이별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치기와 같았으며··· 동시에 어리석은 어른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나, 참. 그런 식으로 말을 해버리면···”

아쿠아는 하스를 바라보며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목소리에는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옅은 희망이 배어있었다.

“무서워하는 내가 바보처럼 보이잖아······.”

“무서워하는 건 죄가 아니에요. 아쿠아.”

하스 덕분에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은 아쿠아의 등을 쓸어주면서 라피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래. 어찌 단순한 두려움이 죄가 될 수 있으랴.

“하지만 두려움에 잡아먹혀 진실과 대면하길 외면하는 건 죄예요. 진실은 그런 죄인을 언제나 더 큰 절망으로 징벌하죠.”

“···그렇지.”

이미 한 번 진실과 마주하길 피했던 아쿠아는 그녀의 말을 뼈저리게 이해했다. 아무리 외면하고, 피해도 그것이 진실인 이상 언젠가는 눈앞에 드리우게 된다고.

그 순간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순간이리라.

“아쿠아. 당신은 다시 한 번 도망칠 건가요?”

“······.”

아쿠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고 있던 행동이 또 한 번의 ‘도망’에 해당하는 것임을 그녀의 목소리로 듣고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 레아트리스는 분명히 많은 걸 알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친구에 대한 것들, 과거의 정보들······. 그것들은 분명히 아쿠아가 친구이자 미래에 떨어진 이로서 반드시 알아야할 것들이겠지요.”

“그래. 그렇겠지······.”

중요한 친구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고서 방을 뛰쳐나온 그를 질타하듯 라피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 목소리의 가락마다 얼음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아쿠아의 정신이 차갑게 일깨워진다.

“정말이지. 너희들은··· 내가 잠시도 어리광부릴 틈을 주질 않는구나.”

“어리광을 부릴 때가 아니니까요.”

라피는 아쿠아의 등에서 상냥하게 손을 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아쿠아에게만 말하는 것 같지 않은 목소리로 읊조린 그녀는 아쿠아의 손에 들린 자드키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상황은 이미 예상하던 범주를 벗어나서 돌아가고 있어요. 아쿠아의 지팡이를 되찾은 건 분명히 호재지만, 우리의 손 바깥에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아쿠아가 판단력을 잃어서는 안 돼요.”

“···그래. 지금의 난 리더니까.”

아쿠아는 자신의 볼을 짝짝 두들기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기가 뭘 한 건지 잘 모른 채 우웅?하고 고개만 갸웃하는 하스와 옅은 미소를 머금은 라피를 이끌고 응접실로 되돌아갔다.


“음. 빨리 돌아오셨군요?”

응접실로 돌아온 아쿠아의 표정을 본 순간, 레아트리스는 뜻밖이라는 듯 읊조렸다. 그녀의 짐작보다 아쿠아가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이 훨씬 짧았기 때문이다.

“아쿠아님은 강한 분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럴 수가 있나?’

맞은편에 앉아있던 비올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함은 그치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하는 레아트리스와 응접실의 풍경을 두고서 아쿠아는 그녀만큼이나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지?”

그야 그럴 법도 하다. 분명히 그가 자리를 비울 때까지만 해도 으르렁거리고 있던 비올라가 돌아오고 보니 레아트리스와 사이좋게 앉아있었으니까.

“그게··· 아는 분이더라고요.”

“아는 사람이라고?”

“네. 꼬마 엘프 레아트리스. 잠들기 전엔 요만한 아이여서 기억을 못하고 있었어요. 저쪽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저를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내가 자리를 비운 후에 대화를 나눠보니 서로 기억이 났다··· 뭐, 그런 건가?”

“맞아요.”

두 여인은 시원스레 아쿠아의 추측을 긍정했다. 백작도 대충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봐선 그에게도 이미 어느 정도 설명이 이뤄진 모양이다.

“으음. 그럼 류신과 엘카프는 같은 시간대에 떨어졌다는 거군. 이런 중요한 걸 놔두고 자리를 비웠었다니. 실수를 해도 제대로 해버렸어.”

아쿠아는 스스로의 행각을 한탄하며 눈을 똑바로 뜬 채 레아트리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는 빛깔부터가 다른 그의 눈을 보며 레아트리스도 몸가짐을 바로잡으면서 자세를 고쳤다.

“우선 먼저 자드키엘을 가져다 준 점에 감사를 표할게. 류신과의 맹세였다고 했던가. 내 친구의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하신 헌신에 비하면··· 이따위 일은 공로의 축에도 못 끼니까요.”

“그리고 추궁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네게선 들어야할 얘기가 많을 거 같거든. 어떻게 생각해?”

“말씀하세요.”

아쿠아의 말에 레아트리스는 생긋 웃으면서 선선하게 대답할 뜻을 비쳤다. 아쿠아는 스승의 동료라는 점 때문일까, 매우 협조적인 레아트리스를 향해 우선 가장 중요한 부분을 물었다.

“류신, 엘카프. 그러니까 내 친구들은··· 죽은 거야?”

바로 지인들의 생사확인이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확률이 낮다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정말로 극적인 확률이겠지만 그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지구에 돌아갔다면······.

시공을 넘어서 다시 만날 수도 있으리라. 그런 소망을 품은 아쿠아의 물음에 레아트리스는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작가의말

물렁물렁한 주인공 멘탈은 별로들 안좋아하실 것 같지만서도..


이런 캐릭터니 어찌하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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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9. 그랑 레인저와 사혼의 마녀Ⅰ +4 19.01.25 90 1 11쪽
86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Ⅲ +6 19.01.23 84 1 12쪽
85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Ⅱ +1 19.01.21 74 1 12쪽
84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Ⅰ +4 19.01.18 92 1 13쪽
83 17. 순조로운 나날Ⅳ +1 19.01.16 103 1 13쪽
82 17. 순조로운 나날Ⅲ +3 19.01.14 98 1 12쪽
81 17. 순조로운 나날Ⅱ +4 19.01.11 74 0 13쪽
80 17. 순조로운 나날Ⅰ +4 19.01.09 90 1 13쪽
79 16. 카이란스 왕국Ⅳ +4 19.01.07 78 1 13쪽
78 16. 카이란스 왕국Ⅲ +3 19.01.04 97 1 12쪽
77 16. 카이란스 왕국Ⅱ +2 19.01.02 80 1 12쪽
76 16. 카이란스 왕국Ⅰ +2 18.12.31 92 1 12쪽
75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Ⅴ +2 18.12.28 95 2 12쪽
74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Ⅳ +3 18.12.26 104 2 12쪽
»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Ⅲ +2 18.12.24 95 3 12쪽
72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Ⅱ +5 18.12.21 114 2 13쪽
71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Ⅰ +5 18.12.19 115 0 13쪽
70 14. 재를 찢고Ⅳ +2 18.12.17 116 1 14쪽
69 14. 재를 찢고Ⅲ +4 18.12.14 131 2 12쪽
68 14. 재를 찢고Ⅱ +2 18.12.12 107 2 12쪽
67 14. 재를 찢고Ⅰ +2 18.12.10 115 1 12쪽
66 13. 마나의 그릇Ⅴ +4 18.12.07 116 1 12쪽
65 13. 마나의 그릇Ⅳ +2 18.12.05 156 1 12쪽
64 13. 마나의 그릇Ⅲ +4 18.12.03 110 1 12쪽
63 13. 마나의 그릇Ⅱ +1 18.11.30 143 1 12쪽
62 13. 마나의 그릇Ⅰ 18.11.23 125 0 12쪽
61 12. 기어오는 혼돈Ⅳ +1 18.11.16 110 0 11쪽
60 12. 기어오는 혼돈Ⅲ +1 18.11.09 133 0 12쪽
59 12. 기어오는 혼돈Ⅱ 18.11.02 1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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