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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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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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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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회편 18

DUMMY

죽인다!



장첸의 머릿속이 살의로 가득 차올랐다.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대응에 가온의 간담이 순간 서늘해질 정도였다.





'그래도 도발하면 도발하는대로 넘어오는 머저리라서 다행이다.'





전에 봤을때도 생각한 거지만 비밀을 엄수하는 재무진의 부하치고는 상당히 즉흥적이며 쉽게 열이 받는 녀석이다.


머리에 열이 오르면 오를수록 가온의 기술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이 기술을 습득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흐름.]

[......?]




상상속 수련의 세계.

거대 공룡과의 사투를 어떻게든 끝내고 새로운 관문에 도전, 이번엔 어두운 그림자같은 녀석들과 싸우고 간신히 패배만 면한 가온에게 마우스가 그렇게 말했다.




[뭐가요?]

[네가 이번 시련을 클리어 한다면 얻을 수 있는 기술이지.]

[그걸 말해줘도 됩니까? 하긴 기술 이름만 들어봤자 뭔지도 모르겠지만...]

[근접전에 관해 거의 무적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이야.]




오늘의 마우스는 어딘지 모르게 친절했다.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데 그의 그림자 얼굴이 웃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채찍만 휘둘러선 의욕이 떨어질 테니까 당근을 미리 주는거야.]

[흐음...]

[이 기술은 강자일수록 빛을 발한다. 뭐...결정타를 날리기에 유효한 기술은 아니지만, 상황을 지연시키거나 상대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할 땐 이것보다 좋은 기술은 없지.]

[방어기술 이라는 건가요.]

[그렇게도 볼수 있겠지만...정확히는 다르지.]



마우스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걸 히죽 웃은거라 이해한 가온은 그의 다음 말에 흐름이란 기술에 흥미가 생겼다.




[이걸 습득하면, 넌 인간인 상태로도 정부공인 뭐시기랑 대등한 싸움을 펼칠 수 있을거다.]

[......]

[뭐, 습득한다해도 숙련도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천차만별이니 그 수준까지 가려면 노력좀 해야겠지만.]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데요?]



마우스가 뭐겠어 하고 후후 웃었다.




[실전이지. 너보다 강자일수록 숙련도는 쭉쭉 오를거다. 이 기술의 숙련도가 맥스치에 달하면, 그 다음에 넌...]







사악!



"큿."



회상은 장첸의 검기에 의해 중단되었다.

강렬한 독기를 머금은 검기에 머리카락이 조금 잘려나간 가온은 그가 정말로 자신을 죽일 생각이었다고 깨닫고 우스워졌다.




'지금 나를 죽이면 여러가지로 문제가 될 텐데...진짜 뒷생각 안 하네.'


심판은 아직 상황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멋대로 싸움을 시작한 장첸을 보고 말리려 했다.


그야 이런 사태는 상정하지 않았다.

설마 정부공인 순위권자에게 정당한 룰로 이겨놓고 시간을 끌어서 이겼다고 재시합을 요구하다니?




'미쳤지만...대단하군.'


내심 가온에게 탄복한 심판은 앞날이 창창할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안한다고 바로 수락될 내용이 아니오. 일단 물러나서..."

"비켜! 죽여버린다!"



다른 나라의 인사에게 중국말로 마구 욕하며 살기를 뿜는 추태를 부리는 장첸의 모습에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알아듣진 못해도 그 태도로 봐서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잘 보였다.


[어, 어떻게 되가는 걸까요...?]



임이나가 불안한 듯 옆에 있던 류열을 보았으나 류열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갔나 찾아보니 그는 이미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 장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김류열?!"

"김류열이다!!"



한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의 등장에 관중들 사이에서 작은 환호가 일었다.




"김류열...꺼져."

"지랄하네. 물러나라 장첸. 그런 어처구니 없는 룰로 정당하게 승리한 학생에게 이 무슨 추태지?"

"먼저 도발한 건 그쪽 꼬마다! 죽여버리기 전에 비켜!"

"흥. 완전히 돌았구만...정 그렇다면 내가 상대해주마."

"이 새끼가...!!"



중국말로 대화를 나누던 둘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일반인들은 물론 근거리에서 지켜보던 프로 커튼 사냥꾼인 심판조차 주춤거릴 기세.

일촉즉발에 상황에 가온이 류열을 말리기 위해 걸음을 뗀 순간,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고 재무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리 친구가 이벤트가 뭔지 아는구먼~]



사람 좋게 허허 웃던 재무진이 눈을 빛냈다.



[좋다. 허락하지.]

"뭐?!"



류열이 깜짝놀라 외쳤지만 재무진은 아랑곳 않고 말했다.




[이렇게 흥을 돋궈 주었으니 나도 도와야겠지? 보자...만약 이가온. 자네가 이긴다면 내일 입장료는 전액 무료다. 정부지원이니 주최 관계자들은 걱정 말고.]



관중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류열은 분노하며 관중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재무진에게 성토하기 위해 목에 주술을 실었다.


그 순간, 가온이 류열의 팔을 잡았다.




"가온아. 이건 아니야. 아무리 화가 나도 지금은 물러나서..."



류열은 가온이 부당한 룰과 경기에 화가나서 순간적으로 뱉은 말이라 여겼다. 허나 그 생각은 가온의 눈을 보고 사라졌다.


그건 분노에 생각을 못하게 된 사람의 눈이 아니라, 뭔가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우게 해 주세요."

"......"

"걱정마세요. 제가 이깁니다."

"이 애새끼가...!!"



듣고있던 장첸이 이를 갈았다.

걱정과 경악, 기대의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 심판은 주최측에서 허락한 이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그가 류열에게 눈짓했고 류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물러났다.

가온이 죽을 것 같으면 대회를 방해할지라도 끼어들 생각이었다.



"그럼...경기를 다시 재개합니다.

"어서...빨리!!"



장첸이 재촉했고 가온은 여유롭고 폴짝폴짝 뛰며 몸을 풀었다.

심판이 일단 둘에게 거리를 벌리라고 명령했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싫었던 둘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시작!"



그리고 시합 재개가 선언되자마자 장첸이 땅을 박찼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몇십 미터는 될 거리를 좁힌 그. 정부공인 순위권자의 실력에 거리를 벌리는 것 따위 의미없는 것이다.



"이 애송이!"



아까처럼 독기의 검기를 마구 날려대는 장 첸. 저걸 하나라도 맞았다간 보통은 치명상 이리라.


하지만 가온은 한끗 차이로 잘만 피해댔고 그럴 때마다 장첸은 속이 타들어가 죽을 것 같았다.



'분명 독에 중독됐을텐데 대체 뭐지? 정화라도 한 건가? 대체 무슨 술수를 쓰는 거야?'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면, 힘으로 찍어눌러 주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장첸의 미칠듯한 기술이 가온은 물론 경기장까지 파괴해 나갔다.



장첸이 겉으로 화려하지 않은 타입이라고 들었던 사람들은 갑자기 화려한 기술들이 난무하자 감탄사를 내질러댔다.



여러개로 땋은 금발 롤머리가 눈에 띄이는 정부공인 순위권자 플라첸은 위에서 지켜보다가 쯔쯔 혀를 찼다.



"완전 짐심이군. 죽일 생각인가."

"......"



미헤유를 흘끗 바라보자 그녀의 두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흐음. 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미헤유가 어떤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헤유를 아는 이들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모습을 보면, 어쩌면 조금 사실일 수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찌됐든...엄청 잘 싸우는 걸?'




플라첸의 감탄대로 가온은 장첸의 맹공을 피할 뿐만 아니라 간간히 반격도 가했다. 그 반격도 소용없는 몸부림이 아니라 확실히 장첸을 무력화 할만한 정확한 공격이라 장첸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빈도는 늘어났다.


[가온 선수...! 시종일관 밀리고 있습니다. 반격할 수 없는 걸까요?]



이렇게 걱정스러웠던 임이나가 어느새 해설도 잊고 어?! 우아?!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너무 빨라서 뭐가 뭔지 잘 모르던 일반인들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밀리기만 하고 방어에 급급하던 가온이 반격을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밀리는 빈도가 줄더니 이젠 확실한 공방을 나누고 있다고.




"야, 저거..."

"그래. 뭔가..."

"안 밀리는 거 같지 않아?"



관중들의 고양된 목소리대로, 가온의 검은 장첸의 나이프를 정확히 포착해 깡깡 부딪혔으며 간혹 장첸이 파고 들어와도 '흐름'으로 제대로 반격해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밀고 들어가지는 못해도, 밀리지는 않고 있었다!



"우와! 우와아하!"




광기어린 미소를 보이며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마인과 믿을 수 없다는 듯 경기장을 바라보는 로베르트.


걱정 가득하던 알래인과 친구가 된 소녀도 어느새 숨을 잊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에서 경이. 그리고 기대로 바뀌어가는 경기장의 분위기를 장첸도 읽었다.




'......이젠 됐어. 더 이상 추태를 보일것도 없다.'



후우. 장첸이 심호흡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비기를 쓸 생각이었다.




'남들 앞에서 보여줄 만한 건 아니지만...이 애새끼를 죽일 수 있다면...!!'



주인은 웬만한면 숨기라고 했으나 이 경기를 허락해준 건 죽이는 것을 허락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장첸은 자기 좋을대로 생각했다.



'후회하게 해 주마.'



장첸은 분노한 것처럼 페이크를 넣었다. 허나 가온은 걸려들지 않고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기다렸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파악하는 건진 모르겠지만...움직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장첸의 나이프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의아하게 바라보던 가온은 흠칫 놀라더니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콰싯!



"크윽...!'


어깨에서 피보라를 뿜으며 뒤로 구르는 가온.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구경꾼들과 달리 강력한 커튼 사냥꾼들은 경악했다.



"저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다니..."

"아니...그보다 저건 완전히..."



커튼 상황실의 웅성거림에 가은이 의아한 듯 가영에게 물었다.



"지금 뭘 한 거야? 조금 느릿해지는 느낌을 받긴 했는데..."

"주술로 상대의 체감을 조작한 거야."

"그런 게 가능해?!"

"아마 사전조건이 있겠지.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도 저런 기술이라면...강력한 기술을 쓰지 못할텐데..."

"그게 뭐가 문젠데? 한 방이라도 맞으면 이가온은 끝일텐데?"



바로 그게 문제야. 가영이 말했다.




"누가봐도 커튼보다는 인간에게 쓰라는 듯한 기술이잖아?"







재무진은 곰방대를 탁탁 내리치며 어두운 눈을 했다.

누가봐도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는 속으로 장첸을 까내리고 있었다.




'멍청한, 머저리 같은 놈...앞뒤가 보이지도 않는거냐.'



이번일이 끝나면 큰 제재를 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재무진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기대하는 이이나를 보고 화면의 가온을 보았다.


장첸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죽지 않는다니.

대체 뭐란 말인가. 저 재능은.



'...이현수...! 이이협...!'



불쾌한 자들을 떠올린 재무진이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기술을 보인 이상, 적어도 이가온에게 어떤 피해라도 입히라고.




장첸은 그 나름대로 경악했다.

한방에 끝날줄 알았거늘 피해내다니.



이 기술은 김류열이라도 지지는 않아도 크게 베일만한 기술인데 그걸 저 따위 애송이가 온전치는 못해도 피해냈다?



장첸은 그를 얕보는 마음을 버렸다.

더 이상 추태를 부리면 재무진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가온을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을 지워갔다.



'저 놈에겐 뭔가 있어. 기술이건. 힘이건...'




그 비밀이 뭔지 모르는 이상.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말려 죽일 것이다.

반격의 기회따윈 주지 않겠다.







'...냉정해졌군.'




이제부터의 싸움이 더 힘들어 질 거라 예감했음에도. 기온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감으로 두근대기 까지 했다.



재미있었다.

복수만을 위해 수련할 땐 느끼지 못했던 재미가 지금 목숨이 위험한 이 순간에 느껴졌다.


눈앞의 녀석은 인간 쓰레기지만 기술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가온은 후우 심호흡을 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완성된다.'




'흐름'이.


그리고 수많은 난전을 헤쳐온 장첸은 직감했다.

이대로 두면 이놈은 금방 자신을 능가할 것이란 것을.


'이 기술, 뭔지 모르겠지만 벨 수 있을 것 같을때도 흐르듯이 나를 넘겨버려...! 뭔가가 나를 휘감는 듯한 느낌인데 뭔지는 모르겠어..! 그렇다면..!'



힘으로 날려버려주마.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장첸이 젖먹던 힘까지 짜넀다.




"크읍! 흐아아아아아아아!!"




장첸의 몸에서 주술이 폭발했다.

그야말로 한계까지 끌어올린 주술량. 이것으로 잠시동안이나마 공세가 급격히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장첸. 네가 그렇게 까지 한다고...?"



지켜보던 정부공인 순위권자중 한 명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장첸의 저 공세는 자기 자신이라도 받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헌데.

그 엄청난 공세를 20살도 되지 않는 소년이 버티고 있다.




폭풍같은 기세에 아까보다도 더욱 몰리는 것은 분명해 보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다.



장첸의 검기가 날아들 때마다 관객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가온은 아슬하게. 위태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돌입할까?'



류열은 망설였다.

지금 장첸의 기세를 보면 가온을 죽일 기세라 당장 뛰어들어야 옳았지만 문제는 상대인 가온이 전혀 투지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지금 가온이 우연으로 피해내는 건지 아니면 어떻게든 대응하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고 싶은거야. 저 아이가, 아니. 이가온이란 인간이 얼마나 성장했나...!'





괄목할 만한 성장. 최하위로 불리던 것이 불과 몇달 전 일.

그것이 단시간만에 이렇게나.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가온은 시시각각 밀렸다. 어깨. 겨드랑이 옆. 쇄골. 목. 팔. 다리.



그 모든 것에 검흔과 피분수가 남았다.

거기다 기분 탓인지 적중할 때마다 그의 스피드가 느려지는 듯 했다.



'이제야 독이 도나! 그럼 넌 끝이다!'



장첸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까지 감수하며 주술을 끌어올렸다.



장첸은 가온을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전력을 다해 물어 죽일뿐.




그의 검이 하늘마저 두동갈 낼 기세로 커졌다.

보기만 해도 치명적일 것 같은 초록색의 독이 넘실거리는 주술의 검에 사람들이 비명을 피어올렸다.



[이, 이가온 선수!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움직이지를 못하는데...! 한계인 걸까요?!]

"끝이다! 이가온!"




장첸의 외침과 동시에 류열이 쯧. 혀를 차고 나설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완성이다."

"......?!"



오싹.


장첸의 온몸에 오한이 달렸다.



'뭐,지?'




그 오싹함에 떨면서도, 장첸은 어떻게든 나이프를 내리친다. 그래야 이 오싹함을 걷어낼 수 있을 테니까. 허나.




화륵.



가온이 검을 휘두르자 장첸의 독검이 불꽃과 섞이더니 타는 것처럼 와해되어 버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가온의 온몸에, 불타는 듯한 붉은 기운이 은은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던 프로 커튼 사냥꾼들과 정부공인 순위권자들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로 지켜보단 가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언니? 어떻게 된..."



하지만 가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두 눈에는 경악이 어려 도저히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가은은 이 기이한 상황에 더욱 어리둥절함을 느끼고 이번엔 아버지 이이협을 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 이이협이.

한국 최강의 커튼 사냥꾼이 입을 딱 벌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화신(化神)지경 이라고...?!"






"뭐,야."





장첸이 말을 더듬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야, 눈앞의 애송이가 하고 있는 그 경지는 자신과 동등한 경지. 자신도 얼마 전에야 겨우 손에 넣은 그 경지였으니까!



"네놈이 어떻게 그걸 쓸 수 있는 거냐고?!"

"고맙군. 장첸."







말끝에 가온이 검을 휘둘렀다. 아까와 다른 것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불꽃이 반응하며 같이 몰아친다는 사실.


동등한 경지에 오르자 남은 것은 순수한 기술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가온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정부공인 순위권자의 노련함에 정교하고 강력한 검술로 당당히 맞섰다.



"애송이가! 까불지 말라고!"





채채채챙!



나이프과 검의 어지러운 검무.

숨 막힐 듯한 접전속에서, 문득 관중 한 명이 말했다.



"어째...이가온이 밀고 있는것 같지 않아...?"

"그,그러게. 장첸이 밀리는 것 같은데...?"




그 위화감을 한 명, 두 명이 알아차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절반 이상이 눈치챘다.



가온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최하위 이가온이라고?!"




한국 학생 벤치에 앉아있던 남학생 한명이 비명을 질렀다.

웅성대던 그들 중, 한 명이 납득한 듯 중얼거렸다.





"과연...저게 퇴마 이씨 가문이구나."



그 말에 모두들 어떻게든 납득하려고 했을 때.




"택도 없는 소리. 퇴마 이씨 가문은 관계없어."



이준형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얼굴은 분한듯, 하지만 어딘가 희열에 찬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저게 이가온이다."



동경하는 무언가를 바라보듯. 이준형이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채앵! 챙!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장첸이 둘렀던 독의 기운이 야금야금 깎여나간다.




"그럴수가! 주술의 기운 자체를 없애는 주술이라고?! 대체 뭐냐!"

"뭐긴. '흐름'을 완성한 거지."






마우스는 말했다.




[흐음을 완성할 경우 말야. 넌 그녀랑 같은 걸 쓸수 있어.]

[그녀...?]

[이가람. 이랬던가.]



정지한 가온을 보고 마우스가 어둠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녀가 사용했던 번개로 변하는 기술. 그건 흐름을 극한으로 마스터한 자들 중에서도 적성에 맞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경지지. 뭐...네가 터득하려면 한 달은 걸리겠지만.]




미안하게 됐네요. 마우스.



가온은 히죽 웃었다.



"지금 완성한 것 같은데!"



그 말에 호응하듯 온 몸에서 불길이 화륵 치솟았다.

불길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하늘을 뚫을듯 크게 솟구쳤으며 그 화려한 광경에 벙쪄있던 관중들이 소리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가온!! 이가온!!





"시끄러! 시끄러 이 새끼들아!"



장첸이 발악하듯 비명을 질렀다. 그는 이제 수명이 깎여도 상관치 않으니 주술을 더욱 끌어올리려 했고. 그 순간. 가온이 말했다.




"나를 견제하지 않아도 되겠어...?"

"뭐?"



장첸은 숨을 들이켰다.

그랬다. 이가온은, 흐름을 마스터한 이 때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위협적인 커다란 기술을 갖고 있던 녀석이었다. 큰 기술을 쓰지 못하도록 몰아쳐야 하는데, 그걸 잊었다.



즉.



"섬광이다."



번쩍-!




"크아아아아아아아!!'



기껏 끌어올렸던 주술을 전부 방어로 변환했음에도 섬광의 빛은 주술의 방어막을 종이 쪼가리 찢듯 뚫어버리고 장첸의 몸을 공격했다.




'주, 죽는다...!'



허나 직전에 가온은 섬광을 멈췄다. 그리고 빈틈 투성이인 장첸의 얼굴을 검자루로 찍은 후 그를 넘어뜨려 등 뒤로 돌아가 목을 졸랐다.



"커윽...! 칵...!"

"항복해. 장첸."

"이, 이 개새끼가...! 카악!"




다리는 가온의 다리에 붙잡혔고 두 팔을 꺾여 가온의 한 손에, 그리고 목은 다른 한 손에 졸린 장첸은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항복해. 어서!"

"웃기지 마라! 때려죽여도...!"

"그래...?"




가온은 별안간 그를 풀어주고 일어서다니 뛰쳐 일어서려는 장첸의 뒤통수를 걷어차 다시 넘어뜨리고 두 팔로 그의 팔을 잡았다.



"뭐, 뭐 하려는...!"

"흐읍...!"



뚜둑.


"그, 그만!"



장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잠시 후, 그의 손목은 처참하게 꺾여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그를 아랑곳 않고 얼굴을 걷어찬 후 마운트를 잡은 가온은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내리쳤다.


이 놈이 지금까지 얼마나 악행을 저질러 왔을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케인과 또 한명, 이자견을 생각하면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퍼억! 투콱! 퍼억! 퍽!



둔탁한 소리만이 울려퍼지고 그 잔혹함에 경기장마저 조용해진 그 순간.

누군가가 가온의 손을 잡았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류열이 이제 됐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됐어.꺾였어."

"......"



그의 말에 다시 장첸을 보니, 장첸은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항...복...항...보옥..."

"......"




끝났다고 직감한 가온은 후우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경기장이 찬물을 뿌린듯 조용해 져 있었다.




'...너무 열이 올랐네.'



아직도 에메라가 걸어놓았던 암시가 남아있는 걸까. 어쨌건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 생각하며 도움을 요구하듯 류열을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가온의 오른 손목을 붙잡더니 번쩍 들어올렸다.




"승자!! 이가온!!"

[아, 아...!! 스, 승자! 이가온 선수입니다아아아아아아아!!]



......

......




조용하던 관중들 사이에 물결이 일었다.



"이겼어...? 학생이...?"

"정부공인 순위권자를 상대로..."

"그것도, 패널티 없이 정면으로...!"




1초.

2초.

3초.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의 엄청났던 환호를 갱신할만한 환호가 경기장은 물론이고 도시를 쩌렁쩌렁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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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손을 잡다. (3) 20.08.04 68 2 18쪽
350 손을 잡다. (2) 20.08.03 68 2 22쪽
349 손을 잡다. (1) 20.08.03 66 3 15쪽
348 믿기 힘든 감정 (4) 20.08.01 70 3 17쪽
347 믿기 힘든 감정 (3) 20.07.31 65 3 15쪽
346 믿기 힘든 감정 (2) 20.07.30 67 2 12쪽
345 믿기 힘든 감정 (1) 20.07.29 66 4 12쪽
344 원숭이(猿) (2) 20.07.28 61 3 21쪽
343 원숭이(猿) (1) 20.07.27 58 3 13쪽
342 달의 기운. 20.07.26 55 3 15쪽
341 더 진화해야 한다. 20.07.25 56 3 12쪽
340 대회의 (2) 20.07.24 59 3 14쪽
339 대회의 20.07.24 63 2 14쪽
338 고대의 유적 20.07.22 67 3 19쪽
337 머나먼 숲 20.07.21 64 4 15쪽
336 소년의 땅 (4) 20.07.20 54 1 12쪽
335 소년의 땅 (3) 20.07.19 54 3 14쪽
334 소년의 땅 (2) 20.07.18 57 3 12쪽
333 소년의 땅 (1) 20.07.17 57 4 14쪽
332 파벌 20.07.16 76 4 20쪽
331 개(犬) (8) 20.07.14 69 4 16쪽
330 개(犬) (7) 20.07.14 66 4 22쪽
329 개(犬) (6) 20.07.13 64 3 20쪽
328 개(犬) (5) 20.07.12 60 4 20쪽
327 개(犬) (4) 20.07.11 61 3 19쪽
326 개(犬) (3) +1 20.07.11 74 4 13쪽
325 개(犬) (2) 20.07.09 56 2 13쪽
324 개(犬) (1) 20.07.08 6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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