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시즌 제06시리즈 – vs 창원 (3) 전체 집합!
쾅!
[날아갑니다~! 날아갑니다! 홈런! 창원의 샤비 선수가 쓰리런 홈런을 날립니다.]
‘엄허? 순진한 게 아녔네···?’
미간에 ‘내 천(川)’ 자를 그리며 허리를 숙인 두열은 간질에 걸린 사람처럼 키득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그가 걱정되었는지 코치와 만호가 마운드를 올랐다.
‘아···. 정말, 바닥까지 가네···.’
“괜찮아?”
그제야 고개를 들고 표정을 바로 하는 그였다.
“후! 죄송합니다.”
“아니야. 안 되는 날도 있는 거지. 그런데 더 던질 수 있겠어?”
“네? 당연히 더 던져야죠.”
“감독님께서 불펜 준비 안 되셨다고 투구 좀 끌어달라시네?”
“네? 이번 이닝에 바꾸신다고요? 저 아직 90개도 안 던진 걸로 아는데요?”
“안 되는 날인데 어떡해? 오늘은 그냥 마음 비우고, 최대한 시간 끌어. 알았어?”
“끄응··· 알겠습니다.”
스프링캠프를 지내며 두열과 사이가 가까워진 투수 코치였지만 감독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두열도 그것을 알기에 짜증이 났지만 수긍을 한 것이었고.
[아! 마두열 선수가 로진 백을 신경질적으로 던집니다. 더그아웃과의···.]
다짐을 받은 투수 코치는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내야의 선수들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상시의 두열이라면 이렇게 선배들이 많은 자리에서 화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달리 성질을 부리는 모습이었다.
“왜 그래?”
“죄송합니다. 아직 5회도 안 끝났는데, 다음 투수를 준비시킨다는 말에···.”
“임마. 원래 이 정도 됐으면 다음 투수 준비시키는 게 정상이잖아? 왜 유난을 떨어?”
“그래. 너 요즘 이닝 좀 잡아 먹었다고 우쭐해진 거 아냐?”
원래 이런 상황이었다면 투수를 안정시키며 더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도록 격려를 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선배들 입장에선 요즘 잘 나가는 두열이 너무 우쭐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경고를 할 때라고 생각을 했다.
“후···. 죄송합니다.”
“이 자식이 잘 한다, 잘 한다 하니까 어디서 한숨이야?”
“에이, 형들 왜 그러세요? 아직 시합 중이잖아요. 왜 애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에요?”
“만호 너도, 너무 두열이만 감싸고 돌지마.”
“뭔 말이래요?”
“다른 후배 투수들 기 죽는 거 안 보여? 니가 두열이 전담 포수야? 왜 다른 애들한텐 사인을 강요하면서 두열이한테만 선택권을 주는데?”
이 소란이 더 커지면 경기 중에 같은 편끼리 치고 박고 싸움이 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형님들, 죄송합니다. 제가 무던하게 행동을 했어야 했는데, 요즘 우쭐한 마음에 동료들께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남은 꾸지람은 경기 후에 경청토록 하겠습니다.”
“크흠.”
시합에서 가장 지켜줘야 할 대상인 선발을, 그의 세상이라는 마운드에 올려놓고 도마 위의 생선처럼 칼질을 할 뻔했다.
두열이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하자,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야수들이었다.
흥분을 했던 두열처럼 그들도 뭔가에 씌었던 것 같이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원래 이럴 때일수록 분위기를 모아 단합된 힘을 보였어야 했는데, 모두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남은 아웃 카운트 두 개를 모두 금세 처리할 수 있었다.
스윙이 커진 5번 타자는 떨어지는 공에 배트가 따라 나왔다가 내야 땅볼로 아웃이 되었고, 6번 타자는 오랜만에 삼진 처리가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던 두열이었다.
하지만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두열.”
“네, 코치님.”
“오늘은 그만 던져라.”
“네? 저 이제 90개인데···.”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오늘 컨디션도 안 좋아 보이는데 무리할 필요 있겠어?”
“그래도···.”
“씁! 불펜에 선수들 많으니까 오늘은 그냥 쉬자. 알겠지?”
“알겠습니다···.”
두열은 어쩔 수 없이 코치의 말에 수긍을 하였지만, 그의 손에 들린 수건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투수가 아닌 사람은 ‘왜? 쉬게 해준다는 데 좋은 거 아냐?’ 하고 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선에서 자신의 직무에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오늘은 그만 일하고 퇴근하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일이 끝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진단다.
‘크윽.’
굴욕적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 내가 못난 탓이다. 내가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오지 않았어.’
그런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곁으로 다가왔다.
“어이, 두열 잠깐 보자.”
선배 몇 분이 잠시 전에 마운드에서 있었던 문제를 놓고, 더그아웃 뒤편 복도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 것이다.
하아···. 이럴 땐 그냥 두고 봐주면 안되나···.
하지만 그것은 두열의 바람일 뿐이었다.
선배들은 화를 내었고, 두열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결국 저녁에 집합을 하라는 명령까지 떨어졌다.
“니가 애들한테 전달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젠장. 나 때문에 전체 집합까지···. 후···.’
“그리고 잘 나갈 때 처신 잘 해. 이것도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선배들이 복도에서 사라지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친구 수로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성공한 자의 가장된 모습을
여유라 하고,
실패한 자의 진실된 모습은
비굴이라 하며,
그리곤
그것이 사회라 한다.‘
라고 했던가?
오늘 생각해 보니 아예 틀린 말 같지도 않았다.
잘 나갈 때는 모난 행동에도 격려를 받았다.
하지만 바닥으로 떨어지면 곧은 행동에도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잘 한 건 없었지만, 이 정도까지 혼날 일은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전체 집합이라니···.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잘 나가건 못 나가건 항상 중심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래, 항상 겸손해야지···.
그런데!
‘아니지? 항상 잘 나가면 되는 거 아냐? 우캬캬캬. 그러네?’
이상한 결론을 짓는 두열이었다.
충격이 커서 미친 것 같았다.
******
다행히 시합은 우리의 승리로 돌아왔다.
내 뒤를 이은 불펜들이 모두 선방을 펼쳤고, 타격도 터져 1점 차 짜릿한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 집합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집합을 당했다.
어느 팬이 ‘요즘도 집합 같은 거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에이,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답변을 했었다.
하지만··· 있다.
선배들께 들었던 옛날 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아주 가끔 있는 편이다.
물론 예전처럼 빳다를 맞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니지? 개김성이 강한 녀석들은 줘터지기도 한다.
선배들 화가 나면 전체 기합도 받고.
그럼 어떨 때 전체 집합을 당하냐고?
팀 성적이 엉망일 때.
경기력에 망조가 들었을 때.
상하 기강이 무너졌을 때.
나처럼 찍혔을 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코치님들이 말리지 않냐고?
그분들도 같은 세계에서 사시던 분들이다.
더 독려하면 독려했지 말리진 않는다.
아마 코치님 몇 분은 참석을 하시고 싶을걸?
“똑바로 안 서?”
대선배들이 주르륵 도열을 하였다.
나이순이었다.
내 나이는 거의 꼬래비.
막내가 아닌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니지? 나 때문에 집합한 거니까···. 끄응···.
병장급 되는 선배들은 뒤로 물러서 구경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짬이 안 되는 선배들은 거기에서도 각을 잡고 있었다.
일선은 역시 상병!
중진급 이상의 선배들이 앞으로 나섰다.
“머리 박아.”
조용한 읊조림이었지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머리 박앗!”
목청이 터져라 복명복창을 했다.
즐겁게 대화를 하는데 리액션이 시큰둥하면 말을 하는 사람이 흥이 떨어지듯, 이런 얼차려를 받을 때는 복명복창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괜히 나긋하게 대답이라도 했다간 한 대 맞을 걸 두 대로 맞아야 한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행히 오늘의 시합에서 이겨서 그랬을까?
선배들의 목소리에도 나긋함이 실려 있었다.
“마두열!”
“네! 92, 마! 두! 열!”
나처럼 또박또박 생년과 함께 이름을 말해야 한다.
“야! 니가 올해까지 부산에서 7년 차가 됐다고 심장이 머리 위에 붙었지?”
“아닙니다~!”
“근데! 선배들 다 모여 있는 마운드에서 송진 가루를 날려?”
“시정하겠습니다~!”
“앞으로.”
“앞으로옷!”
젠장! 이게 얼마만에···.
짝!
“고개 봐라?”
“죄송합니다!”
얼라? 따귀까지?
아프진 않았지만 당황스럽다.
그래서 그랬는지 원위치를 시켜야 하는 고개가 너무 늦게 돌아왔다.
너무 오랜만에 맞았더니 감각이 없어졌다.
잠시 화가 났지만, 정신을 차리고 신속하게 반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나 때문에 머리를 박고 있는 후배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칠 순 없었다.
“아파?”
“아닙니다!”
“안 아파?”
“아닙니다!”
“기분 나빠?”
“아닙니다!”
“할 줄 아는 말이 ‘아닙니다.’밖에 없어?”
“아닙니다악!”
“소리 질러? 열 받냐?”
“아닙니다.”
“목소리 봐라? 머리 박아.”
“머리 박아!”
“기상.”
“기상!”
“뒤로 취침.”
“뒤로 취침!”
무려 오 분간을 오뚝이처럼 행동해야 했다.
선배들의 마음이 조금 풀어졌던 것일까?
“전체 기상.”
“전체 기상!”
“오늘 왜 모인 줄 아나?”
“모릅니다!”
“야, 마두열! 아나?”
“모릅니다!”
“정말 몰라?”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이상하게 더 이상 화가 나진 않았다.
내가 했던 행동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 관계가 프리하다는 외국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감정은 잘 조절해야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했다간 매장 당하기 딱 좋다.
아무리 내 기분이 별로였다지만 선배들 앞에서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에 대해서 충분히 사죄를 해야 했다.
왜냐고?
나도 내 앞에서 후배가 그런 행동을 하면 보기 싫으니까.
내가 보기 싫은 행동을 다른 사람은 보라고?
그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심보다.
“니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니까, 너는 안 되겠다. 다들 나가고. 선배님들도 자리 좀 비켜 주시죠.”
“흠. 그래.”
모두가 창고 밖으로 자리를 피했다.
넓지만 조용한 이곳에 중진급 선배들과 나만 남게 되었다.
새가슴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가슴이 쫄렸다.
“머리 박아.”
“머리 박앗!”
아! 호되게 걸린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기합을 받아서 그런가?
화가 나기보단 슬픔이 몰려왔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당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울컥했지만 참았다.
울더라도 혼자 있을 때 울어야 했다.
남자가 눈물만 많아 가지고···.
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넓은 곳이었지만 커튼을 닫았는지 어둠이 몰려왔다.
“움직이냐?”
“아닙니다!”
“왜? 너 혼자 벌 받으니까 열 받지?”
“아닙니다! 오늘은 제 실수가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저편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머리를 박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피 버스 데이 투유~ 해피 버스 데이 투유~”
억?
“사랑하는 두열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우우우~!”
“캬캬캬캬캬~!”
“저 새끼 왜 아직도 저러고 있어?”
“야! 두열아! 새끼야! 형들이 장난 좀 쳤다고 열 받았냐?”
“일어나 새꺄!”
선수들은 두열이 생일을 맞아 멋진 승리 후에 에이스가 된 그의 지휘에 맞게 근사한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시합이 안 풀린 두열에게 무언가 채찍과 당근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야구가 아무리 투수 놀음이라지만.
그의 곁에는 이렇게 멋진 선배들이, 그리고 후배 동료들이 많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었다.
투수가 아무리 힘들고 외로운 자리더라도, 항상 그 옆에 우리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야, 너 왜 그래?”
그런데 두열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선배들은 앞다투어 두열을 일으켜 세웠다.
누군가는 ‘그 봐, 이건 너무 심하다고 했잖아.’ 하며 서로를 책망하였다.
“으흑흑흑.”
“임마, 왜 울어?”
당황하는 선배들과 동료들에 의해 일으켜 세워진 두열이 오열을 터트렸다.
화가 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너무 기뻐서 그런 것일까?
“흑흑흑. 저 오늘 생일 아니에요···. 흑흑흑.”
“뭐?”
“야이~ 만호 새끼야! 오늘 두열이 생일 맞다며!”
“아니, 그게···.”
“민증 생일은 삼 일 뒤에요. 흑흑.”
“뭔 말이여?”
“원장님이 그러시는데 오늘이 사고 날이라고 하셔서, 기일 겸해서 제 생일이라고···. 흑흑흑.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흑흑흑.”
“새끼가! 놀랐잖아! 그냥 니 생일은 올해부턴 무조건 오늘이야! 알았어?”
“흑흑. 네···.”
“대답 봐라? 알겠냐!”
“네엣! 알겠습니다앗! 잉잉.”
“조~하~!”
옆으로 태웅과 진운이 나섰다.
잉? 흑흑. 너희들은 왜?
너희도 축하해 주려고? 선물 주냐?
“시작해도 됩니까?”
“조~하~!”
고맙···
“하하하하하하!”
“응?”
퍽! 퍽! 퍽! 퍽! ···.
“억!”
후배들의 집단 생일빵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아프지만.
가장 기쁜.
선물이었다.
“우애앵~ 더~! 더~! 더~ 때려줘~!”
“미친 새끼! 죽여 버려!”
“우아아악!”
퍽퍽퍽퍽퍽!
아파서···.
좋았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으로 동료 부모님 기일 제사상까지 모시는 지극 정성을 보였다.
하나하나가 다른 존재들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하나로 뭉쳐 정말 우리가 된 듯한 일체감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모두가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들이 계셔서 외롭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실 부모님도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며 따스한 기운을 내뿜어 주시는 듯했다.
사랑합니다.
- 작가의말
제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건강하십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얄랴뷰~.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