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시즌 제26시리즈 – vs 잠실 (4) 무릎 꿇어.
2번 타자 이하늘 선수가 좌타석에 들어섰다.
두열은 그를 맞아 초구부터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공 하나가 살짝 빠지는 속구였다.
탁!
[아! 아깝습니다. 3루 파울 라인을 따라 파울이 되었는데요?]
[글쎄요. 타자가 잘 쳤다기 보단 왠지 투수가 맞춰준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가요? 이번 공은 155km/h를 기록했습니다. 마두열 선수 초반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하늘 선수는 잘 생긴 외모에 플레이도 깔끔한 편이었다.
팀의 색깔과는 잘 안 어울리는 플레이를 펼쳐서 밉보였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런 선수가 에이스가 돼서 팀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이 선수는 팔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타이밍이 약간 늦었어도 긴 팔을 이용하여 바깥쪽 공을 커트할 수 있었다.
두열이 다시 신중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전과 같은 코스로 공을 뿌렸다.
이번에는 타자도 타이밍을 맞추며 적절한 스윙을 가져갔다.
그러나.
훙!
“스트라이크!”
두열의 예고를 들었던 것일까?
잔뜩 힘을 주어 스윙을 했던 하늘이 도망가는 공을 따라 배트를 내었다가 큰 헛스윙 후 철퍽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 직구로 보이는데, 무슨 놈의 공이 저기까지 휘어져?’
황당하다는 표정의 하늘과는 다르게 두열은 이빨까지 보이며 씨익 해맑게 웃음을 보였다.
첫 공은 155km/h의 Four Seam Fastball. 그리고 이번에는 146km/h의 회전력이 강한 Two Seam Fastball이었다.
최초 포구가 되는 위치는 비슷해 보였지만, 포구가 끝난 후의 위치는 공이 세 개나 차이 나게 빠져나간 곳이었다.
하늘은 1회부터 옷에 묻은 흙이 짜증났지만 애써 그것을 털어내며 마음을 다졌다.
마운드에서 환하게 쪼개고 있는 투수의 이빨을 부러트리고 싶은 욕망이 불쑥 일었기 때문이다.
‘아니지. 흥분하지 말자. 1번 타자도 공 네 개로 아웃을 당했는데, 나까지 빨리 죽으면 안 되지.’
하늘은 최대한 침착하게 커트를 해내며 투구수를 늘릴 계산을 세웠다.
‘와라, 내가 장타력은 없지만 맞추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타자다.’
‘두열아! 여기 어때?’
‘아뇨, 이번에는 몸 쪽 공이 어떨까요?’
‘그래? 좋아. 그럼 이거?’
‘오키도키~! 형님도 힘 좀 내세요. 오늘 사인이 아주 그냥 죽여줘요~.’
사인을 주고받는 배터리의 시선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주전으로 나온 네시는 에이스로 급부상한 두열이 자신의 사인에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광대가 승천했다.
그리고 그 광대만큼이나 자신감도 상승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분위기를 타는 타입.
87년생인 그도 이제 서른 줄에 들어섰다.
이대로 만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말년을 후보로 지내며 쓸쓸하게 은퇴를 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직도 터지지 않은 포텐셜이 존재하고 있었다.
덩치가 작은 만큼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고, 강한 어깨도 가지고 있었다.
체구 등의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갈아엎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오늘의 하나의 기회였다.
억억을 외치는 프로 야구 세계에서 그는 아직도 삼천 만원이 되지 않는 연봉을 받고 있었다.
부익부 빈익빈. 같은 1군에 소속되어 되어 있지만 이 논리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은 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수두룩하였다.
그의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오늘 내 진면목을 보여 주지! 아내에게 매년 5천만 원만 가져다 주면 원이 없겠다. 오늘의 이 기회, 꼭 잡는다.’
‘형님 의지 잘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는!’
두열의 발이 다시 올려졌다.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다소곳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 칼날을 감추고 있었다.
공은 채찍과 같은 몸을 타고 공간으로 뿌려졌다.
강한 무기를 가진 자들은 흐느적거리는 채찍과 같은 무기의 무서움을 잘 모른다.
맞아 봐야 ‘아! 내 살이 이렇게 분리가 되는 거구나!’ 하고 반성을 한다.
그러다가 채찍이 팔에 감겼을 때 상대가 그것을 잡아채면 ‘아! 내 팔이 로보트 태권 브이처럼 분리도 되는구나.’ 하며 망각의 세계에 빠져들어 버린다.
두열의 공도 그와 같았다.
부드러운 몸놀림에서 나온 공이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공은 날카로운 면도칼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이번에도 속구?
그래, 부드럽게 던졌지만 속구다.
몸 쪽?
내가 몸 쪽 공 싫어하는 걸 알았구나.
높나?
아니야, 높지 않아. 그리고 코스도 스트라이크 존이야.
그럼!
팔이 긴 하늘이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서 있던 위치도 홈플레이트에 가장 가까운 인사이드.
몸 쪽 공에 대항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속도라도 낮았으면 디딤 발을 이동시켜 각이라도 잡을 텐데, 바깥쪽 공에 대비를 했던 터라 그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속구.
‘오케이! 잡았어!’
평소 다운 스윙을 즐기던 그가 팔을 완전히 몸에 밀착시키며 몸통 스윙으로 변환을 하였다.
팔이 펴지지 않아, 원래는 몸 앞에서 이루어져야 할 타격이 몸 내측까지 밀려들어 오게 된 것이다.
빠악!
“아악!”
안타를 칠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던 하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타석에 드러누웠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타자는 두열의 공이 몸 쪽 높은 공이라고 판단을 하였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눈 앞에서 타격이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너무 가까운 위치로 공이 들어오니 어쩔 수 없이, 타격 전에 상체를 확 열어 버렸다.
하지만 기본기가 있기 때문에 고개까지 돌리지는 않았다.
헌데, 직구인 줄 알았던 공이 갑자기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채찍과 같이 유선형으로 돌아 고개를 향해 날아드는 게 목격되었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방망이의 궤적을 바꿔 공을 막으려 하였다.
그 공은 직구가 아니었다.
바로 좌타자 몸 쪽으로 휘는 커트볼이었다.
당황한 타자가 뒤늦게 사실을 깨닫고 방어를 해 보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몸으로 향한 공은 배트 목 부분을 강타했고, 그 공은 배트를 부수며 포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타자는 부러진 제 방망이 조각에 얼굴을 맞았고, 놀란 가슴에 뒤로 훅 넘어지고 만 것이다.
자신이 들고 있던 날카로운 배트가 제 얼굴을 긋지 않은 게 다행인 상황이었다.
[이하늘 선수 괜찮나요? 일어나지를 못하는데요?]
– 잠실수문장 : 와, 지금 엄청 위험했네요.
L 디오씨 : 그러게요. 지금 자기가 든 배트에 얼굴 완전히 나갈 뻔 했어요.
L 서울사랑 : 야구가 원래 이렇게 위험한 운동인가요?
TV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느린 화면을 보고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잠실과 하늘의 팬들은 더욱더 가슴을 졸였다.
잘 생긴 그여서 여성 팬들이 많았는데, 그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길 뻔했다.
하지만 배트는 다행히 얼굴을 스치지 않았고, 타자는 놀란 마음에 넘어진 것으로 보였다.
– 부산갈매기 : 맞지도 않은 것 같은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
L 마낄라 : 아마도 창피해서 저러는 듯.
[아! 느린 화면을 보십시오. 파편이 튀어 눈 속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 부산갈매기 : 헐. 엄살이 아니네요.
위험한 상황이 예견되자 이틀 연속 구급차가 맹렬히 질주를 하였다.
하지만 타자를 살피던 의료진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이물감이 있던 하늘은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지만, 의사는 파편이 들어갔지만 안구에 상처를 낼 정도는 아니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눈 속에는 이물질이 있었고, 의료진은 그를 안심시키며 후송을 시작했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후후. 복수 한 번 확실하게 하는구나.
국9마의 글을 본 모두의 네티즌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지금 공은 확실히 위험한 공이었다.
두열이 의도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타자 본인의 실수로 큰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두열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타석 근처까지 내려와 타자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다른 이의 생각에는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잠실의 선수들의 으르렁거림이 두열에게 전해지는 듯했다.
흥! 웃겨? 지가 하면 로멘스고 내가 하면 불륜이야?
의도하지도 않았던 부상인데 왜 나한테 성질인데?
퇴장만 안 당하면 싹 다 맞춰 버리고 싶네.
잠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두열이 잠시 흥분을 하였으나 다가온 네시의 다독거림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괜찮지?”
“그럼요!”
“훗! 그런데 실전에서 네 공 받아본 게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게요. 형님 리드, 왜 이렇게 좋아졌어요?”
“원래 이랬다 아이가~.”
“아. 네네.”
두열과 네시는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잠시 킥킥거리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둘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오늘은 무조건 공격적인 피칭으로 상대를 눌러 버리자는 합의를 본 것이다.
네시도 은근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몸 쪽 공의 사인이 많을 테니 단단히 각오를 하라고 엄포까지 놓았다.
그리고 타자가 후송되자 둘은 다시 자리로 옮겨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이하늘 선수가 괜찮다는 소식이 현장에서 전해졌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양팀의 선수들이 굉장히 위험하게 플레이를 하지 않나 싶은데요? 동업자 정신에 위배되는 일은 안 나왔으면 하는데···.]
2번 타자 이하늘은 포수가 공을 잡아 파울팁 아웃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로 팀의 리더인 3번 백영한 선수가 입장하였다.
‘엇! 돌발 퀘스트? 이 형 대적자였어? 어쩐지···.’
【선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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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프 능력 ◆
– 사용중 (L) 차가운 눈빛 : 집중력, 동체 시력 능력이 3%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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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티브 스킬 ◆
– 대기중 (L) 타격 머신 : 스킬이 활성화되면 일시적으로 집중력 10%, 동체 시력 10%, 지혜 능력 10%가 상승합니다. 단, 활성화가 끝나면 하루 동안 각 능력치가 5%씩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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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버프에 액티브까지 가지고 있었어? 우미, 둘 다 ‘L’급이네? 미친 거 아냐?’
특별한 친분은 없지만 좋은 선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미친 듯한 능력치와 버프, 액티브 스킬은 무엇이란 말인가?
두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영한의 스텟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이 선수도 다른 능력자들과 비교해도 나쁜 구석이 보이지 않는 좋은 선수임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한 팀에 많게는 두 명의 대적자와 특수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이 다섯까지 있었고, 적게는 한두 명의 능력자만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버프와 액티브 스킬을 같이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가깝게는 대용이 있었지만 적으로 만나 직접 겨뤄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영한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 능력이 생긴 경우가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능력을 키워 스스로 이 능력을 만든 특이 케이스였다.
스텟에 ‘S+’급도 세 개나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을까?
그래, 아마도 이치료와 같이 자신을 개발하였으니 일부는 알고 있을 공산이 커.
두열이 그런 생각을 하자, 알림음이 그에 대한 답변을 주었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 영한은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타격 머신을 사용한 후엔 예측 능력이 높아져 수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사용이 종료된 후에 무기력감을 느끼며 능력치가 떨어지는 것까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열은 괴물 같은 영한을 마주하며 오히려 결의를 불태웠다.
‘어차피 엎어트리려 했던 타자였잖아. 쫄지 말고! 확실히 한 번에 확 무너트리자!’
다짐을 한 두열의 ‘S+’ 스텟들이 팽그르르 돌며 위용을 뽐내었다.
마치 우리도 꿀릴 것 없다는 듯이 아우성을 외치는 것 같았다.
‘그래, 나도 절대 약하지 않아!’
- 작가의말
도움 요청합니다.
전일 표현 중 마지막 부분에서 ‘탈곡기’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응원을 주시는 분의 댓글을 보니 다른 소설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다른 소설에서 ‘탈곡기’라는 표현이 쓰였다면 어떤 책의 몇 화인지 알고 싶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표현이 나오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내용을 보고 수정을 하기 위함이니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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