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바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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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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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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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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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1.

DUMMY

12.


병실 밖을 걸어나와 병원의 복도를 지나자 처음 마주치는 간호사나 의사들은 하나같이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땐 산소호흡기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있는 환자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도 내 방식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낸다.

처음 만나는 종족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다들 나를 볼 때마다 어떤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병원의 지하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같은 모양의 차량 다섯대가 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건 뭐지?

경호를 받는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라곤 예상하긴 했지만 눈앞에서 이렇게 검은색 세단 여러 대가 대기하고 있으면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차량들 옆에서 다른 두 명의 요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포룸 요원이 우릴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교수님은 저희가 최소한의 인원을 붙여드릴태니 자택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본 교수 역시 동원된 인원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다고 느꼈는지 조금 표정이 굳어지며 포룸 요원을 쳐다보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제가 여러분 업무에 몰지각하긴 해도 이건....」


「교수님.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지금은 설명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포룸 요원이 간곡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요원과 그의 뒤에 있는 다른 검은 양복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쫓던 교수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리을 군을 잘 부탁드려요.」


「네.」


-[조심하세요. 그리고 또 만나요.]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교수님이 안계시면 제 말을 알아듣는 사람도 없어요.]


날 치료하려는 시도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의사들과 만날 일이 있다면 교수님도 같이 찾아오겠지. 그러니 상원의원의 말처럼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그렇게 본 교수와 헤어져 안내에 따라 검은 차량 중 한 대에 올라 탔다.

무척이나 고풍스러워 보이는, 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였지만 내가 저쪽 세상에서 자동차에 취미가 있던 것도 아니니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차에 타자 다른 요원들도 덩달아 차량에 탑승했고 포룸 요원이 마지막으로 내 오른편에 앉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리을 군 이라고 했나요? 의사소통은 안되지만 내 말은 알아듣는거죠.」


대답을 하려고 입을 벌려봤지만 본 교수님이 곁에 있을 때 와는 달리 또 다시 미약한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건 좀 당황스러운데.

의사 말대로 어제와 같은 발작이 일으나진 않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에서 의사표시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지금은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되는 게 많을태지만 오늘 하루 만이라도 우릴 믿고 따라오세요. 전 포룸 요원입니다.」


그러고선 커다랗고 파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의미인걸 깨닫고 나도 맞잡는데 팔이 위아래로 붕붕 하고 크게 흔들린다.


「뭐 합니까, 선배.」


내 왼편에 앉아있던 나와 비슷한 키의 선량하게 생긴 바가지머리 엘프 요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포룸 요원을 바라보았다.


「아니 오르세우스. 너도 한번 만져봐. 인간이야 인간.」


「소년에게 무지하게 실례라고 생각되는데요.」


「교과서에서만 보던 바로 그 종족이랑 실제로 악수하는 거라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까.」


포룸 요원이 뭐가 그리 신기한지 어린애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예, 예.」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인지 아니면 평소 모습인지 두 사람은 익숙한 리듬으로 주거니 받거니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따금씩 주변을 경계하는 시선에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내 위치는 차량의 뒷자석 가운데였고 운전석과 조수석에도 처음 보는 검은 양복의 요원들이 앉아있었다.

좌우로 검은 양복의 사내들 사이에 끼어서 누가 보면 어딘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죄를 지은 건 아니었지만 알몸으로 경찰차에 치인 경험이 생각났다.


「출발해.」


포룸 요원의 말과 함께 운전석에 앉은 장발의 플로지아 요원이 차량 앞 쪽에 설치된 여러 장비들을 가볍게 조작했다. 삐빅 하는 신호음과 함께 곧 선두에 서있던 차량부터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다섯 대의 차량들이 미끄러지듯 일사분란하게 병원의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주차장 입구를 나서자 차량의 보닛에서부터 장막이 걷히며 외부의 밝은 빛이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그 밝은 빛에 잠시 눈을 찡그렸다.

그리곤 감았던 눈을 뜨자 곧 주변의 풍경이 펼쳐졌다.


-[....]


뭐랄까.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오고서 처음으로 바깥 세상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창 밖의 세상을 두리번 거리며 바라보는 날 흥미롭게 지켜보는 경호원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내 눈과 귀는 온통 이 낯선 세상의 풍경에 사로 잡혔다.

빛깔.

느낌.

움직임과 흐름들.

처음에는 위를 바라보았다.

오후의 절반을 지나는 옅은 주홍빛의 하늘엔 떠 있는 구름이 많지 않았지만 그 선명한 빛깔들은 저물어가는 태양빛과 어우러져 마치 물감을 섞어놓은 듯한 복잡한 채도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시선은 도시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을 쫓아 자연스럽게 건물들로 향했고 주변 풍경은 어쩐지 이곳이 대도시의 번화한 지역 같다는 느낌을 전해 주었다.

저 멀리선 하늘을 찌를 듯한 스카이스크래퍼가 보이고 주변엔 일정한 높이로 통일된 석조 건물들이 수백미터를 늘어서 있었다.

정돈되어있는 거리의 모습은 도시의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는 느낌을 전해주었고 또 사진으로만 보던 서구의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서구의 도시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이유는 실은 내가 여러 나라의 모습들을 잘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거리에선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세계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일단 도로 위의 신호등부터 표지판과 안내 문구의 색상과 디자인들이 달랐다. 교차로의 건너편에선 넓은 도로와 중앙에는 트램처럼 보이는 경전철의 선로가 보였고 대중교통 버스의 디자인들도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시선의 흐름은 차량에서 가로수로 그리고 마침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로 이어졌다.

귀가 뾰족한 엘프가 깔끔한 양복을 입고 길을 걷고있었다. 직장인일까.

수염도 나지않은 호리호리한 톨브족 젊은이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머리에 무언가를 잔뜩 바른 채 멋쟁이처럼 걸어다닌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플로지언 한 명이 주문한 물건을 운반해주고 있는 셀라에게 무언가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고 조금 통통한 엘프족 아가씨가 그곁을 지나 자신의 친구인지 연인인지 모를 훤칠한 키의 엘프 남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서나 있을법한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중에 나에게 익숙해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인간이 아니다.


아...


하고.

실감이라고 하면 아마 이때가 처음 제대로 실감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행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이런 느낌이 해외에 나간 경험과 비슷한지 잘 모르겠다. 낯선 세상을 처음 본 덕에 묘하게 들뜨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절실하게 깨달았다.

거리와 풍경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은 그냥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라 생각하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이 비록 다른 세계의 모습이라고 할 지라도 문명화된 현대 사회라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낯설음은 조금 달랐다.

이 느낌을 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눈앞에 걸어다니는 이들이 마치 예전 만화영화에 나오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토끼나 여우처럼 느껴졌다. 혹여 이 모든게 누군가가 잘 만들어놓은 가짜가 아닐까?

극장이나 TV 화면에서 의인화된 동물들은 낄낄대고 즐기면 그만이었지만 눈앞에서 살아움직이는 이종의 인류들은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존재하던 세상에서 온 나에게 무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등줄기로 조금 차가운 감각이 지나가면서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때 크고 두꺼운 손이 내 머리 위에 푹 하고 얹어졌다.


「서, 선배. 뭐하는 겁니까.」


「어? 뭐하긴. 이 친구 지금 네 녀석이 첫 실전에 나가서 토하기 직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있잖아.」


「그게 몇 년전 일인데... 아니, 그보다 VIP 라는 걸 잊은거 아니죠? 자꾸 그렇게 함부로 만지면 안된다구요.」


「알게뭐야. 괜히 차 안에서 토하면 난리 난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후배인 오르세우스 요원은 막나가는 자신의 선배를 다룰 방법을 찾지 못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포룸 요원은 후배의 말에도 신경쓰지 않는지 그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두어번 흔들며 말했다.

아니, 흔드는게 아니라 쓰다듬는 건가.

으으어억. 머리가 휘청휘청 움직인다.


「뭐가 그리 겁이 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 하지 않았습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 기세에 설득당해 나도 모르게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헝클어 놓았던 불쾌한 느낌들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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