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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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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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484

작성
18.06.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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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71화

DUMMY

“아저씨, 아무래도 여긴 글른 것 같아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어야 할 상훈의 모습이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봄이는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지만 타고 온 차량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차량에서부터 이어지는 발자국은 한 개뿐이었다. 그 사실을 안 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차량으로 향했다.


차량 유리는 선탠이 짙지는 않았지만 흐릿한 시야 때문인지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봄이는 그대로 차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안에 있던 남성은 하던 일을 멈추고 태연하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깐, 아저씨가 뭔데 내 가방을 뒤져요?”


당황한 봄이가 재빨리 그에게 달려들어 가방을 빼앗았다. 하던 일을 끝마치지 못한 상훈이 그녀에게서 다시 빼앗으려 손을 내저었지만 봄이가 가방을 품 속에 껴안은 채 으르렁대며 그를 노려보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다.


“몰래 봐서 미안한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다른 게 아니라 남은 식량 때문인데...... 우리가 가진 식량이 거의 다 바닥났어. 혹시 숨겨 놓은 식량이라도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 줘.”


그를 째려보던 봄이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바뀌었다. 그런 그녀를 이해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상훈이 재빨리 덧붙였다.


“아, 당연히 의심하는 건 아니야. 남은 물건을 재분배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나 몰라서 계산이 어긋나면 큰일이잖아.”


상훈은 사실대로 말하기가 좀 그랬는지 그의 목소리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런 그를 애석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던 봄이는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아저씨한테 왜 그런 걸 숨겨요.”


“봄아, 잠깐만.”


봄이가 다시 등을 돌리려는 순간 상훈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봄이가 뒤돌아보자 상훈은 곧장 그녀에게 가까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봄이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상훈의 행동에 봄이는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그를 밀쳐버릴 뻔했다. 당황함에 짓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뒷걸음질쳤다.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상훈은 그대로 몸을 구부려 봄이의 얼굴로 손바닥을 뻗었다. 봄이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반응해 자신의 얼굴로 향하는 그의 손목을 왼손으로 세게 움켜잡았다. 그 때문에 상훈의 손바닥은 봄이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너무나도 당황한 봄이는 호흡마저 가빠졌다. 혼란스러운 그녀의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마구 엉켜 들었다. 봄이가 한동안 상훈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그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너 다쳤잖아.”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잡힌 손목에 힘을 주었지만 봄이에게는 그의 손목을 놓아줄 기색이 없었다. 봄이는 왼손으로는 그가 손목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은 채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짚어 보았다.


봄이의 오른손은 그녀의 관자놀이와 뺨 사이에서 멈췄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따끔한 감각이 전해졌다. 끈적끈적한 감촉도 전해졌다. 뺨에서 피가 흐르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었다. 오래 된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상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봄이는 상처가 났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뺨이 후끈거리며 쓰라려오는 것 같았다.


봄이는 상처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상훈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왼손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져나갔다. 그런 봄이를 지켜보던 상훈이 옅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분명히 어젯밤에 생긴 상처일 거야. 망할 놈들. 잠깐 기다려.”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차량으로 돌아가 가방들을 가지고 왔다. 그는 가지고 온 가방을 잠깐 동안 뒤지더니 이내 가방 속에서 조그마한 통을 꺼냈다. 봄이의 작은 손바닥에도 전부 들어올 만한 크기의 작은 상자였다. 그 순간까지도 봄이는 넋 놓은 사람처럼 멍청하게 서서 상훈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상훈은 들고 있던 작은 통 속에서 또다시 무엇인가를 꺼냈다. 검지손가락 길이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작고 귀여운 반창고였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하던 봄이는 그가 꺼내 든 반창고를 보자마자 뒤로 도망치듯 몇 걸음 물러났다.


“어, 그거 혹시 내 얼굴에 붙이겠다는 건 아니죠?”


봄이가 뜨악하니 물었지만 상훈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태연하게 그녀에게다가왔다. 봄이는 한 걸음 더 내빼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만류했다.


“됐어요, 됐어. 그런 거 쓸모도 없고 딱히 바라지도 않아요. 이런 사소한 일에 신세 졌다고 나중에 들들 볶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다 끼친다구요. 필요 없으니까 얼른 저리 가버려요.”


그녀의 말을 들은 상훈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얼굴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상처가 있으니까 보기 싫잖아.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걱정 말고 이리 와. 그러다 곪는다.”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봄이는 기겁을 하며 피하기만 했다.


“나한테 왜 이래요? 필요 없다니까.”


봄이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와의 거리가 좁아드는 것을 느꼈다. 자꾸만 뒷걸음치던 다리도 점차 느려졌다. 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그를 밀쳐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상훈은 이렇다 할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로 머뭇거리기만 하는 봄이의 턱을 붙잡고 그녀의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봄이는 저항할 의지조차 완전히 상실한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러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당장이라도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차분한 감정이 그녀의 머릿속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지금까지 상훈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쳐다보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살아생전 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에 봄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봄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목구멍에서는 마른 침이 자꾸만 넘어갔다. 상훈은 그런 봄이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뺨에 작은 반창고를 붙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반창고가 붙고 나서도 상훈은 봄이의 얼굴을 몇 번씩이고 살펴보고 나서 만족한 얼굴을 짓더니 피식 웃었다.


“이제 됐다. 흉한 상처 때문에 예쁜 얼굴이 가려졌었네.”


상훈은 그렇게 말하며 도무지 입을 다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봄이의 양쪽 뺨을 톡톡 건드렸다. 그의 말뜻을 반도 알아듣지 못한 봄이는 수치심을 느끼긴커녕 얼떨떨한 얼굴로 가만히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마법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봄이는 원래 마법사를 믿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시시한 이야기들이 완전히 허위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뒤돌아 걸어가려는 상훈에게 봄이는 그의 등 뒤에다 대고 쏘아붙였다.


“고맙다고는 안 할 거예요. 아니, 아예 보답 같은 걸 바라지 않는 편이 좋을 걸요.”


“보답이라면 벌써 받았어.”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가져온 가방 중 한 개를 봄이에게 건넸다.


“가보자. 쓸만한 게 있나 살펴봐야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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