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쟉 더 베가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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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7.10.1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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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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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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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맨헌트(16) - 심판의 날

DUMMY

【 파-앙! 】


채찍의 끝이 공기를 찢는 파열음을 냈다.

비대한 남자 앞에 있던 작은 그림자가 화들짝 튀어 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어.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돈 많고 가문 좋고 잘생긴 나라도 말이야.”


돈과 가문은 몰라도 ‘잘생긴’ 에선 좀 무리가 많은 남자가 세 겹인 턱을 흔들며 채찍 끝머리를 문질렀다.


“한마디로 인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던 고통에서 피해갈 수 없다는 거야. 그건 나이 어린 너도 마찬가지.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고통을 피하려고 해. 그렇지만 말했다시피 고통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

“정답은 이거야. ‘고통은 미리 겪어 놓으면 나중에 훨씬 덜 고통스럽다’ 이게 내가 지금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건 어릴수록 효과가 좋아. 어린 애들의 상처는 빨리 아물거든.”


남자의 뱃살은 갈비뼈를 뚫고 넘칠 듯 출렁거렸다. 하필이면 입고 있는 건 사타구니 사이를 가리는 거적떼기 하나뿐인데 역한 땀냄새와 함께 축 늘어진 가슴이 흔들거렸다.


“그러니까 넌 날 원망하면 안돼. 이러는 나도 괴롭지만 다 널 위한 거니까. 그리고 나도 이 일을 하는 것에 괜한 죄책감을 가질 필욘 없어. 비록 지금 넌 괴로울지 몰라도 나중엔 반드시 내게 고마워하게 될 거니까. 그렇지? 맞아··· 이건 다 널 위한 거라고.”

“···싫어···”


작은 목소리가 구슬프게 울렸다. 그러나 남자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망설임은 버려야 해. 이 모두 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갈 연약한 널 위해 이러는 거라고. 절대로, 저~얼대로 이걸 하는 건 내가 누굴 때리고 싶어서가 아니고 몸에 난 상처를 보고 흥분하는 체질인 것도 아니야. 그저 겸사겸사 내 다리 사이에 있는 몽둥이를 달래주려고 하는 것 뿐이지. 이제 내 덕분에 넌 앞으로 인생에 고통스런 순간이 찾아와도 별로 괴롭지 않을 거야, 그래··· 분명 그렇지 않을 거야. 내 말이 맞지?”

“······”

“내 말이 맞으면 고개를 끄덕여.”

“······”

“빠알리이~! 끄덕여어엇~!”


다시 한번 허공에서 파열음이 나자 작은 그림자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남자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이제 우린 이걸 하기로 합의한 거다? 내 말 맞지? 맞으면 고개를 끄덕-“

“맞긴 뭘 맞아, 이 새끼야.”


【 쿵! 】


나무문이 경첩째로 흔들렸다. 뭔가가 밖에서 그 문을 후려치고 있었다.


“누··· 누구야?!”

“니 다리 사이에 달린 몽둥이 주인.”

“무슨! 소리야! 내 자X는 내 것이라고!”


와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작살나 떨어져 나갔다.

근육질의 험악한 사내가 몹시도 피곤한 듯 인상을 찡그리고 이 가학성 변태 뚱보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누, 누구야 넌! 난 분명히 비용을 지불했어?! 분명이 거금을 주고 이 계집애를 산-“

“걔들 다 저승 갔다, 이 씹새야!”


【 콰작! 】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펀치 한방에 나가떨어진 뚱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래턱이 늘어진 것이 턱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어으어으어어어어···”

“개 같은 노므 쉐끼. 너 같은 놈들 조져주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남자가 박살 난 문짝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다짜고짜 뚱보의 가랑이 사이로 내리찍었다.


“크앙아아갸아아아옥~~!”

“개!(콰직) 빌어먹을! (콰직) 버러지만도! (콰직) 못한 쉐끼가! (콰직) 지 가랑이에 달린 것도 조절 못해서 이런 애들까지 넘봐! 그것도 납치해 온 애들을! 이런 똥죽을 만들어도 못 먹을 새끼야! (콰직)”


피가 튀고 살이 튀고 물이 튀었다.

하반신이 찰떡처럼 뭉개진 뚱보는 허옇게 뜬 눈과 함께 부글부글 게거품을 내뿜었고 안 그래도 지독한 몰골에 이젠 피까지 뒤집어쓴 남자의 주먹이 안면을 부숴버리자 지저분한 오물을 뿜으며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남자는 바닥에 엎드려 있던 작은 그림자에게 다가와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바샤, 구하러 왔다.”


**********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코쟉이 여자아이 하나를 안아들고 나타나자 엘프는 기겁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당신은 정말 상식이란 게 없는 사람이네요.”

“이 마을 어디에 상식이 있는데? 원래 그런 거 없는 동네에서 없는 거 찾지마.”

“후우~ 말이라도 못하면.”


아이에게 묻은 피를 닦아주며 그녀는 그 몸에 난 흔적들을 살펴보았고 곧 치를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독한 자들···”

“이제 내 방식에 뭐라 하지 마라. 그 미친 기사놈이랑 몇 마디 해보고 알았다만 이것들은 전부 인간 취급해 줄 가치도 없어.”

“그 멸망한 왕국의 기사라던 사람··· 당신하고 뭔가 계속 얘기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어요.”

“난 그 자식 볼 때부터 배알이 꼴려서 더는 말 섞고 싶지 않은데.”

“그 사람처럼··· 인간이 그렇게 오랜 세월 뒤틀린 채 살아오면 결국 괴물이 되고 마는 걸까요?”

“알게 뭐야. 이젠 완전히 뒈져버렸으니 잊어버려. 그 자식 칼이 약점이었던 게 다행이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고, 퉷~!”


코쟉은 고르도스의 목을 친 것으로 모자라 그의 검을 들고 절구 찧듯 마구잡이로 내려찍었다. 머리가 대롱거리는 상황에서도 150년을 살아온 이 기이한 기사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연실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코쟉은 지긋지긋하단 얼굴로 고르도스를 그의 애검의 먹이로 만들어 버렸다.


전신을 난도질 당하면서도 연실 꿈틀거리던 고르도스는 결국 푸줏간의 다짐육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버렸고 고기를 못 먹는 엘프는 그것이 인간의 고기라는 생각이 들자 마자 바로 거하게 토해버렸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지 엘프는 진저리를 치며 다급히 코쟉을 재촉했다.


“빨리 아이들을 구해서 나가죠. 이런 곳은 빨리 떠날수록 좋아요.”

“물론 그럴 거다만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알려주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와.”


그들은 각자 탄바리용의 더러운 건물들을 오르내리며 꼭대기에 갇힌 아이들을 구출해 냈다. 엘프는 납치된 아이들을 희롱하던 자들을 최소한 살려는 주었으나 코쟉에게 걸린 운 나쁜 녀석들은 너덜너덜해진 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다 숨통이 끊어졌다.


그리고 잡혀온 모든 아이들을 데리고 합류 장소에 도착했을 때 엘프의 눈에 보인 건 쓰레기를 씹어먹은 듯한 얼굴로 아래를 쏘아보고 있는 코쟉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왠지 두려워 그녀는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그때 그가 다가와 손에 든 것을 들이밀었다. 그건 더러운 헝겊으로 만든 토끼 인형이었다.


“이 애들··· 고된 하루가 끝나면 다들 토끼 인형을 안고 자더군.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이 말이야.”

“······”

“곰도 있고 토끼도 있겠지. 두 아이가 안고 자는 인형은 똑같은데 눈을 뜨면 보이는 게 다르고 해야 하는 게 달라. 그게 왜 그런 것 같나? 혀를 뽑아 목을 졸라 죽여도 모자랄 어떤 놈들이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 와 부모를 죽이고 자길 납치해서 상상도 못할 짓을 시키게 만든 거지.”

“···그만···”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고 나면 이 애들이 하루에 몇 끼 먹는 줄 아나? 딱 한끼야. 더 먹으면 살이 쪄서 손님들이 싫어한대. 그럼 과자 하나만 가져와도 무슨 짓이든 하려고 들겠지. 그럼 이 변태 놈들이 대체 뭘 요구할 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걸 거부할 수 있을까? 이 애들이?”

“그만해요, 이제 그만!”

“내 고향에선 애들도 뼛속까지 쓰레기 본성이 스며든 지라 몸을 팔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해. 헌데 유독 그런 녀석들은 남들보다 참 빨리도 가더군. 이유도 없이 목을 메질 않나 괜히 무모하고 정신나간 짓을 벌이다 다른 놈 손에 멱줄이 끊기기도 해. 자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머리는 어느새 병 들었던 모양이야.”


코쟉은 히죽 웃었다. 그건 웃겨서 웃는 모양이 아니라 아주 메마르고 공허한 웃음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가 전에 말한 화살. 지금 꺼내.”

“그걸로··· 뭘 어쩌려구요?”

“바로 이때를 위해 준비하라 한 거야.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쏴.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끝난다.”

“······”


엘프는 등의 화살집에서 세 개의 화살을 꺼내 들었다.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엘프의 마력을 응축한 이 화살. 그것은 신화시절 전쟁에나 사용되던 것으로 집채만한 바윗돌을 날리는 것과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상한 예감에 작게 떨며 질문했다.


“이걸··· 어디다 쏘려는 거죠? 혹시 잔당들이 남아있다는 건가요?”

“저기다. 저쪽을 향해 쏴.”

“먼저 내 말에 대답을 해요. 이건 정말 위험한 도구에요. 뭘 위해 하는 건지 알지 못하면···”

“이 애들을 위한 거다. 넌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된 모양이군. 이제 네 종족의 아이를 구했으니 더는 손쓸 일 없다는 거냐?”

“아니에요!”

“그럼 빨리 쏴! 이 바보 같은 에르푸야!”


발끈한 그녀가 곧바로 화살 한대를 코쟉이 가리키는 쪽으로 쏴 날렸다. 날아간 화살은 점차 시퍼런 불빛을 내며 타오르더니 하나의 유성처럼 변해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곧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 쿠우웅~! 】


“저게··· 어디죠?”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기로.”

“······”


엘프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이제 슬슬 저녁 무렵, 바람 속엔 긴장이 서려있었다. 축축한 공기가 그녀의 폐 속으로 들어왔다.


【 쉬잇! 】

【 쿠우웅~! 】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가자 또 한번 거대한 소리가 났다. 옥상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허공을 울리는 묵직한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코쟉은 오히려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 대체 뭘 생각하는 거에요? 애들이 무서워 하잖아요.”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좋은 거야.”

“뭐라고요?”

“저기 저 여자애 보이나? 나랑 알던 놈이 구해온 애다.”


코쟉의 손가락이 어니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 바샤를 가리켰다. 아이의 눈엔 두려움이 엿보였지만 그건 불안함을 동반한 건 아니었다.


“그 자식은 저 여자애 하나를 구하려다 놈들에게 죽었어. 평생 누군가를 죽이며 살아온 삶이었지만 마지막엔 저 애를 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수포로 돌아갔지. 그런데 빌어먹을! 나한테 저 애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더군. 시팔, 여기서 숨어살려고 들어온 나한테 말이야.”

“···숭고한 희생이었군요.”

“숭고는 시팔, 좆까! 그러고 죽어버리면 날더러 뭐 어쩌라는 거야?!”


코쟉은 말을 멈추고 한참을 씩씩거렸다.

엘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애도의 마음으로 망자를 위한 기도를 읊조렸지다. 그러다 문득 공기중의 습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걸 느끼곤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방금 당신 도대체 뭘···”

“그래서 난 지금 여기까지 온 거다. 저 애를, 그리고 저 애와 같은 꼴이 된 아이들을 구하려고 말이야. 하지만 아직 다 안 끝났어. 진짜로 이 애들을 ‘구하려면’ 아직 안 끝났다고. 그 기사놈을 뭉개 놓고 이 마을의 엿 같은 일당들을 전부 썰어버렸지만 아직도··· 아직도 끝이 안 났단 말이야!”

“안 끝났다고요? 자··· 잔당이 남아있는 거라면.”

“아아~ 있지! 잔당들이 아직 남아있어, 바로 저기! 얘들아 이리로 와서 저 밑을 내려다 봐라. 저게 바로 너희들을 이 꼴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주춤거리는 발걸음, 그러나 코쟉의 재촉에 아이들이 옥상 근처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은··· 바로 탄바리용의 주민들이었다.


“어이구! 이게 뭐야?! 어디서 이렇게 물이 넘쳐?!”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수문에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관리하는 놈 어디 갔어?!”


웅성대던 그들 위로 코쟉이 떠나가라 고함을 쳤다.


“야이~ 개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말종 새끼들아! 당장 이 앞으로 모두 튀어나왓!!!”

“뭐야, 저 새낀?”

“저 새끼가 이렇게 만든 건가?!”


코쟉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리자 거리 가득한 피 냄새에 집안으로 꽁꽁 숨어있던 그들은 하나 둘 밖으로 기어 나왔다. 물론 마을을 흥건히 적신 이상한 물난리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밖엔 없기도 했다.


400명 남짓한 작은 마을 탄바리용은 오늘의 살육극으로 그 수가 더욱 줄어 코쟉과 엘프, 납치된 아이들이 서있는 건물 밑에 모인 자들이 주민의 대부분이었다. 코쟉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엘르푸, 마지막 화살을 쏴. 저쪽이다.”

“다··· 당신··· 당신 대체 뭘 꾸미는 거에요?”

“이 아이들을 구해준다고 했어. 구한다는 건 뭐지? 그저 몸만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빼내주면 되는 건가?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떻게 견디라고? 이 더러운 것들에게 농락당한 과거를 안고 어떻게 구해진단 말이야? 이 엿 같은 소굴에서 빠져나온 건, 진짜 자유를 위한 길고 험난한 여정의 첫걸음 밖에 안돼. 이 더러운 기억에서 빠져나오려면 평생이 걸려도 모자랄 거라고!”

“그럼··· 이 화살이 대체 그것과 무슨 관계인데요.”

“그래서 그게 필요한 거야.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끊어버리는 거지. 그만 입 닥치고 빨리 쏴, 이 망할 에르푸야!”

“설마 지금까지 이 화살을 쏜 곳은··· 설마··· 설마···”


그녀의 머리 속이 탄바리용의 정상, 100년이 넘었다던 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두발의 화살을 날렸으니 이 세 번째 화살이 날아가면···


“아··· 안돼요!”

“이리 내!”


코쟉의 동작은 민첩했다. 엘프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활을 빼앗고 밀쳐 넘어뜨렸다. 그녀가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저들은 이 일과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자들이에요. 게다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 그저 방관했을 뿐이니 죄가 없다고? 저놈들이 최소한 사람이었으면 이 애들은 벌써 옛날에 구해졌을 거야. 그러긴 커녕 놈들은 이곳에 매달려 마냥 꿀만 빨았지. 다들 못 본 척, 못 들은 척, 알지 못하는 척 하면서 말이야! 이제 방관자의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안돼에~~!!!”


코쟉의 손을 떠난 활시위가 화살을 날리고 그 화살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퍼런 불빛이 되어 날아갈 때 탄바리용의 주민들은 모두 그 불빛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곧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100년동안 건재했던 수문이··· 파괴된 것이다.

몰려오는 파도를 보며 코쟉 앞에 모여 있던 ‘탄바리용’ 이 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전부 뒈져라, 벌레들아! 오늘이 이 개 같은 동네의 마지막이다!”


붕괴된 수문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물의 군대가 마을 전체를 휩쓸었다. 그리고 코쟉은 아이들을 떠밀며 아래를 보라고 다그쳤다.


“저걸 봐! 똑똑히 보라고! 너흴 유린하고 이용해 먹던 놈들. 너희가 고통 속에 울부짖으며 도와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귀 막고 눈 막고 관심도 안주던 개새끼들이 지금 떠내려간다! 잘 보라고!”


아이들의 눈엔 두려움이 그러나 또 한편으론 깊은 고통과 슬픔이 있었다. 그 옆에서 코쟉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 살면서 여기로 끌려왔던 걸 떠올릴 때가 있을 거야! 자기가 더러워진 몸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을 거고 어느 개썅놈년이 그걸 알고 너흴 조롱할지도 몰라. 어디서 어떤 삶을 살던 이 지옥 같은 과거가 평생 너희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거다.”

“······

“그러니 이 광경을 똑똑히 눈에 새겨둬! 저 병신 같은 것들이 물속에 떠내려가며 살려 달라고 비명 지르는 걸 보라고! 알겠냐? 오늘 너흰 제대로 복수했어! 그냥 시간 속에 묻어둔 게 아니야. 너흴 모른척한 개자식들이 지금 똥물을 퍼먹고 뒈지고 있다고! 그러니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아. 너흴 지옥으로 몰아넣은 그 놈들, 오늘 다 죽었다! 이 사실을 잊지마, 절대 잊지 말라고! 이게 앞으로 너흴 당당하게 만들어 줄 거야. 너흴 건드렸던 놈들, 오늘 다 벌받아 지옥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다! 다 죽었단 말이야! 전부 다!”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저 고래고래 고함치는 코쟉이 무서워 우는 아이도 있었고 물속에서 아우성치며 떠내려가는 그들을 보며 죽음의 참혹함에 눈을 감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노기 띈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그 역겨운 쓰레기들의 최후를 똑똑히 지켜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코쟉은 그저 정신 나간 것처럼 비웃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뒈져라, 개새끼들아! 전부 다 뒈져! 심판의 날이 찾아 왔다, 이 악마 같은 새끼들아아!!!”


**********


“이 소개장이 있으면 모르긴 몰라도 한 자리 주긴 할 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기··· 괜찮으십니까?”

“뭐가 말이오?”


코쟉은 풀리오다네스에서 만난 젊은 대장장이와 마주 앉아있었다. 이곳을 떠나기 전 그와 만난 자리에서 코쟉은 술 퍼먹고 토하는 양 그간의 이야기를 미친 듯 쏟아냈고 청년 대장장이는 파랗게 변한 얼굴로도 그 모든 걸 담담히 들어주었다.


“설마 그딴 개새끼들 떼거리로 수장시켰다고 내가 충격 받을 거라 생각한 거요?”

“···아닙니다. 그러시다면야···”


대장장이가 그런 말을 한 건, 코쟉이 전에 본 적 없이 피곤하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이 이상한 방랑자에게 작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까칠한 성격인 건 알았지만 역시나 예민한 대답이 돌아오자 쓰디쓰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 하지마쇼. 나 이래 보여도 신세 진 놈한테 사기치는 개새끼는 아니야. 탄타롯드 공작가하곤 살짝 인연이 있어서 말이지. 슁그바넴에서 잘해 보슈, 댁은 이 도시에 안주하는 고인물들보단 싹수 있어 보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들은 건 절대 남한테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 검에 대해서도···”

“이게 그렇게 별난 검이요?”


코쟉이 가져온 건 고르도스의 검이었다.

그를 150년이나 장수하게 만든 기이한 검. 코쟉의 경험상 이런 수상한 물건은 꼭 골치 아픈 이계의 썩을 것들과 관계 있는 지라 바로 버렸겠지만 묘하게도 이 검에선 그런 엿같은 기운은 느끼지 못했다.


혹시 마법인가 싶어 혓바닥으로 핥아보았다만 마력을 감지하는 그의 특수한 혓바닥은 그저 묵묵 무답이었다. 그리고 대장장이는 짐짓 목소리를 죽이며 소근거렸다.


“확신은 못하지만 이 검 말입니다... 각인된 글자가 맞다면 정말로 그걸 겁니다. 그 아론다-“

“쿨럭!··· 쿨럭!··· 저, 정말이요? 그 아론 머시기 하는 그거? 신화, 전설에 주구장창 나오던 그거?”

“예··· 각인된 글자는 ‘아에론디아이트’ 비슷하게 읽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이래서 신뢰가 가네요. 신화 시대 같은 고대의 물건이라면 지금이랑 읽는 법이 다를 테니까요.”

“···얼마전에 이거 열화품을 들고 자기가 기사왕이라며 뻐기던 놈을 하나 손 봐줬는데··· 고르도슨지 뭔지 하는 놈이 희한한 재주를 부렸던 것도 이제 이해가 가는군. 설마 그 전설의 물건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하이랜드 영지에 떨어진 신비한 유성은 대장장이라면 다들 아는 꿈의 재료죠. 제가 보건대 이 검은 원재료 하나 외엔 다른 불순물이 거의 섞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건 유성을 이용해 만들어진 그 전설적 검의 1세대 아니면 2세대쯤 되는 엄청난 물건일 겁니다. 악마와 악령, 미지의 괴물과 싸우던 최전선의 물건이에요.”

“미친··· 왜 이딴 게 내 손에 들어왔대··· 혹시 이거 가지고 싶소?”

“······당신도 아실 것 아닙니까? 전설 속 아론··· 어흠, 그 검의 주인들은 언제나 재난과 사고와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사건과 얽히고 설키게 된다는 걸요. 전 그런 인생 싫습니다.”

“나도 싫은데··· 싫긴 한데 난 원래 그런 것들과 자주 얽히는 인생이긴 하군···”

“가지고 가십시오. 당신께 이 검이 온 것도 인연이겠죠. 정 마음에 안 들면 팔아버리셔도 큰 돈이 될 것 아닙니까? 움직이는 노후보장금이네요.”

“하긴··· 그렇네. 거 아주 마음에 드는 말이군.”


대장장이가 거칠고 더러운 천으로 그 검을 둘둘 말아 건네 주었다.


“평소엔 지팡이로 쓰십시오. 꼭 필요할 때만 이걸 푸시고요.”

“좋아 보이는군. 고맙소, 대장장이 양반.”

“저야말로 감사하죠. 그런데··· 그 얘기 속에 엘프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년···”


코쟉은 찝찌름한 표정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내가 자길 대량 학살자로 만들었다고 징징거리더니 애들 데리고 휑하니 가버렸소. 다신 나랑 만나기 싫다더군.”

“이해해주시죠. 제가 알기로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에 생명애찬론자라고 하던데.”

“니미!~ 걔들이 사실은 옛날에 인간을··· 아~ 됐소! 이런 걸 당신한테 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지.”


한참 조용히 있던 코쟉은 곧 다시 탁자를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그 바보 같은 년이 끝까지 바보 짓을 한 건 한 건데···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묘한 기분인지 모르겠군. 괜히 짜증나기도 하고··· 아니 짜증은 원래 많이 내니까 그냥 기분 탓인가?”

“아마 당신께선··· 어느새 그녀를 친구처럼 여기셨던 게 아닐까요?”

“친구? 내가? 그 답답한 년을?”


멍한 표정으로 대장장이를 흘겨보던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괴더니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어쩌면 그랬을 지도···”

“하지만 세상 만사 뭐든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있겠습니까.”

“킥킥, 그렇구만. 내가 지금 여길 지나가게 된 것도 내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지.”


그는 탁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하여간 잘해보쇼. 거기 공작님 심기 불편하게 하지 말고. 당신은 나랑 달라서 다른 사람 기분 잘 맞춰줄 것 같거든, 킬킬.”

“네··· 잘 가십시오. 아! 그리고 나가시려면 중앙 광장으론 가지 마세요. 사람들이 많아서 움직이기 복잡할 겁니다.”

“왜? 삼류 마법사가 와서 마술 공연이라도 한답니까?”

“아뇨··· 그게 아니고··· 거 아주 못된 짓을 한 녀석 하나가 붙잡힌 모양입니다. 아시죠? 죄수들 걸어놓는 곳 말입니다. 놈을 거기에 걸어놓았다는 군요.”

“흠~ 어떤 죄목인데 그러지?”

“그게···”


대장장이가 소근거리자 코쟉의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그리고 그는 곧 입꼬리를 길게 늘였다.

그리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말이다.


“그것 참··· 재미있겠구먼.”


작가의말

프롤로그에서 이어지는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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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십자로(18) +10 20.01.03 302 18 17쪽
183 십자로(17) +10 20.01.01 253 16 16쪽
182 십자로 (16) +7 19.12.30 289 15 16쪽
181 십자로 (15) +6 19.12.27 269 18 16쪽
180 십자로 (14) +6 19.12.23 263 15 15쪽
179 십자로 (13) +8 19.12.18 261 13 15쪽
178 십자로 (12) +6 19.12.16 286 15 16쪽
177 십자로 (11) +12 19.12.13 281 12 16쪽
176 십자로 (10) +9 19.12.11 291 12 17쪽
175 십자로 (9) +7 19.12.06 274 14 16쪽
174 십자로 (8) +6 19.12.04 345 13 17쪽
173 십자로 (7) +6 19.12.02 252 13 16쪽
172 십자로 (6) +1 19.11.29 295 15 16쪽
171 십자로 (5) +4 19.11.27 275 12 16쪽
170 십자로 (4) +3 19.11.25 301 11 16쪽
169 십자로 (3) +3 19.11.22 328 14 13쪽
168 십자로 (2) +10 19.11.20 291 11 16쪽
167 십자로 (1) +3 19.11.18 302 12 14쪽
166 십자로 - 프롤로그 +1 19.11.18 309 1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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