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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ustme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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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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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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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 4막 4장 - 찰나의 휴식 (3) | Isaac

DUMMY

하라익과의 대화가 끝나고 돌아온 침대는 나를 편안하게 꽉 감싸준다. 편안하다와 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잘 맞지 않는 표현처럼 느껴지는 감각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불편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이함. 초월자의 세계에 갔다 온 후유증이라 생각된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흘리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일어나니까 머리가 더 아파져 온다. 초월자를 함부로 만나면 안 되겠다. 자제하도록 하자.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침대에서 걸어 나온다. 바닥을 디디는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휘청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갈 뿐. 문 손잡이도 한 번에 잡지 못했다. 몇 번 허공에 손을 휘적이고 나서야 금색의 손잡이가 손에 들어온다. 진짜 초월자를 함부로 만나는 건 자제해야겠다.

문을 열고 십자 복도로 발을 옮긴다. 주변을 둘러본다. 내방 주위의 문 세 개에 알 수 없는 글자가 떠올라있다. 아마 맥, 글린다, 에스나의 이름이겠지. 이 문들은 방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표시해준다. 한글로 나타나지 않은 게 조금 신기했지만.

몸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 머리는 아직 아프지만, 걷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럼 조금 돌아다녀 볼까?

"이동. 15층."

대리석 바닥. 대리석 벽. 대리석 천장. 원목으로 만들어진 식탁과 의자들.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화덕. 벽에 걸려있는 요리도구들. 화덕 옆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냉장고가 있다.

더 현대적인 디자인을 원했지만, UMO 시스템상 이것이 한계였다. 어쩔 수 없이 만족해야 했지. 그래도 기능적인 부분은 다 작동한다.

냉장고를 연다. 각종 재료가 눈에 들어온다. 신선한 채소, 막 잡아온 듯한 해산물, 육즙이 살아있는 육류. 디저트로 사용할만한 과일들도 있다. 맛있어 보이지만, 뭔가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본능적인 행동으로 냉장고를 열었을 뿐.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이제 뭘 할까. 방에 이름이 있는 걸 보면 다들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거다. 지금이 몇 신지는 몰라도, 꽤 늦은 밤이라는 건 짐작이 가능하지. 아마 자고 있을 테니 깨우는 건 좀 그렇겠지?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건가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피곤해 보이는 맥이 서 있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면서.

"여긴 무슨 일이야?"

질문에 잠에서 덜 깬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가씨께서 야참을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참으로 글린다다운 명령이다. 저녁이 맛없어서 대충 먹더니만, 야식을 챙겨 먹다니. 큰뱀이 몸에 있어 많은 열량이 필요한 건 알고 있지만, 너무 많이 먹는 거 같단 말이지.

맥은 한숨을 쉬고 부엌 주변을 둘러본다. 그 동작 하나하나에 피곤함이 묻어나온다. 너도 정말 힘든 삶을 살았구나. 글린다 같은 사람의 시종이라니······.

"그런데 재료들은 어디 있나요?"

주변을 둘러보던 맥이 나를 바라본다. 아. 냉장고가 뭔지 모르는구나. 이 부분은 생각해본 적이 없네. 알려줘야겠다.

"이게 창고야."

냉장고의 문을 열어준다. 맥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손가락으로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가리킨다.

"말도 안 돼! 고기를 저렇게 두는데 안 상한다고요? 이거 마법인가요?"

원래의 냉장고는 과학이지. 여기서는 마법이지만.

"마법 맞아. 원하는 대로 꺼내 가."

맥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꺼낸다. 고기부터 시작해서 채소들까지. 아주 골고루 꺼내 간다. 대충 집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균형 잡힌 식단을 준비하는 거 같다. 정말 고생이다.

"뭐에요. 마법사님도 계셨어요? 방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더니만."

"아가씨. 여기까지 내려오셨어요?"

하품하며 등장한 글린다에게 맥이 질문한다. 글린다는 손을 휘적이고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벌써 본격적이다.

그나저나 방문을 두들겼구나. 하라익과 만나고 있느라 듣지 못했나 보다. 초월자와 만나면 바깥 상황을 알기 어렵군. 자주 하기에는 부담이 큰 행동이다.

"뭡니까. 여기 다 모이는 겁니까?"

부엌 한복판에 에스나가 나타난다. 이곳에 전부 모여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쉰다. 어쩌다 보니 다 모여버렸네.

"오신 김에 야참 드시고 가세요."

"원래 그럴 생각으로 들른 겁니다."

편한 옷차림의 에스나가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졸지에 맥은 4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나도 먹을 거거든. 그러므로 의자에 앉는다. 맥은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를 보고 한숨을 쉰다. 조금 미안하다.

미안함은 맥이 만들고 있는 음식의 향기 앞에서 녹아내린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침이 넘어간다. 다른 사람들도 음식이 기대되는지 침을 삼키고 있다.

"향이 좋습니다."

에스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입맛을 다신다.

"맥은 정식으로 요리 교육도 받은 사람이에요."

오오. 글린다의 자랑스러운 말에 에스나가 놀란다. 나도 조금 놀랐고. 시종한테 교육이라니. 요리 교육이기는 해도 교육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맥이 들었나 보다. 요리하면서 웃는다. 자기 딴에는 조용히 웃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다 들린단다. 에스나도 글린다도 그런 맥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흘린다.

"식사 준비 다 되었습니다."

맥이 뻗은 왼팔에 세 개의 접시가 올려져 있다. 내가 보기에는 기행에 가깝지만, 에스나와 글린다는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그런 자세로 식탁에 다가온 맥은 접시를 하나씩 각자의 앞에 올려둔다.

"그럼 맛있는 식사 되십시오."

평소와는 말투가 달라졌다. 일을 할 때는 사람이 바뀌는 건가.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맥은 글린다의 뒤 편에 가만히 서 있는다. 솔직히 나는 불편하다.

"그럼 먹도록 하죠."

접시에 담긴 것은 잘 구워진 스테이크. 아스파라거스도 구워져서 올려져 있다. 글린다는 접시 위에 올려진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들어 올린다. 포크로 스테이크를 찌른다. 칼로 잘 구워진 고기를 썰어낸다. 뜯긴 부위에서 육즙이 흘러나온다. 침이 절로 삼켜진다.

글린다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잘라낸 고기를 입으로 가지고 간다. 나와 에스나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본다. 금속에 찔려 있는 고기 조각이 옅은 분홍빛 입술을 넘어간다. 글린다는 눈을 감고 스테이크를 씹는다. 천천히 음미한다. 턱을 움직여 씹는다. 잘게 찢겼을 고기 조각이 글린다의 목을 타고 넘어간다.

"음. 맛있네. 고기가 상당히 좋은 거 같아."

"감사합니다. 아가씨."

요리를 평가하는 글린다. 감사를 표하는 맥. 이렇게 보니 주종관계라는 것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너도 와서 앉아."

"네?"

글린다의 말에 맥이 당황한다. 글린다는 말 없이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낸다. 맥은 빈 의자를 보고, 글린다를 보고, 의자를 보고, 나를 보고, 의자를 다시 보고, 에스나를 보고, 의자를 한 번 더 보고, 글린다를 바라본다. 글린다는 한숨을 쉰다.

"앉으라고!"

결국, 화를 못 참고 소리 지른다. 놀라울 정도로 인내력이 바닥이다. 맥은 깜짝 놀라며 글린다가 꺼낸 의자에 앉는다.

"접시도 가지고 와!"

"네!"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있던 맥이 소리치며 일어난다. 화덕 근처로 가서 접시에 남은 스테이크를 옮겨 가지고 온다. 의자에 앉기 전에 머뭇거리지만, 글린다의 눈총을 맞고 얼른 자리에 앉는다.

"그럼 식사를 재개하지요."

글린다가 다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하다. 조금 전의 상황으로 약간 어색하지만 나도 고기를 썬다. 잘 구워진 스테이크는 나이프의 움직임에 따라 쉽게 잘려나간다. 에스나도 칼을 움직인다. 맥만이 포크와 나이프를 쥔 채로 눈동자를 돌려댄다.

"어서 먹어."

옆의 글린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맥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으로 제대로 된 식사가 시작되었다.

맥이 만든 스테이크는 정말 최고다. 여태까지 먹은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재료가 좋아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 없이 식사에 집중 중이다. 말이 필요 없는 멋진 맛.

"제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요."

맥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면서도 중얼거린다. 글린다의 시종이라는 입장 때문인가?

"좀 닥치고 먹어라."

글린다의 한 마디에 맥은 찍소리도 못한다. 그저 나이프를 열심히 움직일 뿐.

"맥.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에스나가 나이프를 내려놓고 물어본다. 그냥 넘어가면 될 걸 물어보다니. 불편해 보이는 에스나의 얼굴을 보니 이 상황 때문에 스테이크가 넘어가지 않나 보다.

"에. 그게."

맥은 옆의 글린다의 눈치를 본다. 글린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스테이크를 써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역시 제가 시종이라서······. 아가씨랑 같은 식탁에 앉는 게 좀······."

현대 지구인인 나로서는 체감하기 힘든 감정이다. 에스나는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너 말이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내가 말했지 않았어?"

글린다가 스테이크를 써는 동작을 멈춘다. 쥐고 있던 나이프를 들고 맥에게 들이민다. 맥은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움직여 최대한 멀리 피한다.

"그래도···."

"앙? 그래도는 무슨!"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내려친다. 정말 종잡을 수 없다. 화내는 지점이 도대체 어디야?

"잘 들어. 난 이제 오스왈츠 가문과 연이 끊겼어."

그건 그렇지. 아버지를 죽이고, 숙부에게는 쫓겨났고. 오스왈츠 가문과는 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거다.

"넌 어디 고용된 거지?"

"오스왈츠 백작가요."

"그럼 이제 나와의 관계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없죠."

오. 그렇게 되는 건가? 맥은 오스왈츠 백작가에 고용되어 글린다의 시종이 된 거다. 즉 둘 사이를 묶어주는 오스왈츠 백작가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이상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라고 글린다는 주장하는 거다. 맥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닥치고! 우리는 지금부터 친구다!"

폭력적인 수준의 관계 설정이다. 실제로 폭력이 동반되고 있기도 하지. 글린다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있는 맥의 눈은 공포가 깃들어 있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평범한 사람이 눈앞에 칼을 들이밀고 친구 하자고 하면 고개를 끄덕여야지.

"아주 멋진 광경입니다."

에스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게 멋진 광경이야? 에스나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일단 칼을 내려 두시는 게 어떠실까요?"

맥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글린다가 들고 있는 나이프의 끝을 바라본다.

"존댓말!"

"제발 내려줘!"

나이프가 더 가까이 들이밀어 지자 맥은 바로 반말을 내뱉는다. 목숨에 위협을 느끼니 관계 따위는 금방 재정립되는군. 아주 멋진 광경이다. 이건 에스나가 말한 의미와 다른 의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 먹어라!"

"네!"

"반말!"

"알았어!"

글린다가 칼을 다시 스테이크에 박아넣는다. 좋아. 식사 재개로군. 맥은 상당히 어색한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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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073. 5막 1장 - Reborn (1) | Glinda +2 19.06.22 1,810 27 11쪽
72 072. 5막 서장 - Awaken | Glinda +6 19.06.21 1,809 27 11쪽
71 071. 4막 종장 - 숲 속에서 | Isaac +4 19.06.20 1,848 27 11쪽
70 070. 4막 5장 - 악마가 사는 숲 (3) | Isaac +6 19.06.19 1,845 30 12쪽
69 069. 4막 5장 - 악마가 사는 숲 (2) | Glinda +4 19.06.18 1,879 29 11쪽
68 068. 4막 5장 - 악마가 사는 숲 (1) | Isaac +10 19.06.17 1,933 31 11쪽
» 067. 4막 4장 - 찰나의 휴식 (3) | Isaac +6 19.06.15 1,942 30 11쪽
66 066. 4막 4장 - 찰나의 휴식 (2) | Isaac +5 19.06.14 1,932 30 12쪽
65 065. 4막 4장 - 찰나의 휴식 (1) | Isaac +6 19.06.13 2,027 33 12쪽
64 064. 4막 3장 - 다시, 티파나 (3) | Isaac +2 19.06.12 1,999 30 11쪽
63 063. 4막 3장 - 다시, 티파나 (2) | Isaac +3 19.06.11 2,007 30 12쪽
62 062. 4막 3장 - 다시, 티파나 (1) | Glinda +4 19.06.10 2,062 33 12쪽
61 061.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6) | Isaac +4 19.06.08 2,081 36 12쪽
60 060.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5) | Isaac 19.06.07 2,047 34 11쪽
59 059.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4) | Isaac +14 19.06.06 2,102 36 12쪽
58 058.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3) | Isaac 19.06.05 2,139 33 12쪽
57 057.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2) | Isaac +8 19.06.04 2,139 32 11쪽
56 056.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1) | Isaac +6 19.06.03 2,163 35 11쪽
55 055. 4막 1장 - Over the Death (2) | Isaac +6 19.06.01 2,133 35 11쪽
54 054. 4막 1장 - Over the Death (1) | Isaac +2 19.05.31 2,134 32 11쪽
53 053. 4막 서장 - 기사와 소년 | Glinda +2 19.05.30 2,135 39 12쪽
52 052. 3막 종장 - 오스왈츠 가문 | Isaac +4 19.05.29 2,179 36 13쪽
51 051. 3막 4장 - 오스왈츠 성으로 (4) | Isaac +6 19.05.28 2,167 3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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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45.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2) | Isaac +2 19.05.21 2,253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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