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의 영혼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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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목
작품등록일 :
2024.07.18 22:22
최근연재일 :
2024.07.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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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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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없이

DUMMY

띡-


“4500원 입니다.”


휙.


담배를 꺼내 든 내 손 아래로 얇은 사각형 플라스틱이 떨어졌다.

나는 잠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한 눈에 봐도 인생 참 피곤하게 살 인상을 품은 사람이다. 남을 대하는 꼴 하며, 관상까지 뭐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침식당했나?’


절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비주얼이다.


“계산.”


그러나 그는 별 신경도 안 쓰는 지 주머니에 한 손을 꽂아놓은 채로 휴대폰만 볼 뿐이었다.

이런 시답지 않은 일 하나하나에 화를 낼 단계는 이미 지났다. 말하자면 해탈의 경지였다.

껄렁거리는 태도를 보며 놈이 살아갈 미래를 내 멋대로 제단해 상상하고, 한껏 비굴해진 모습을 위안으로 삼으며 화를 삭혔다.

근데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내 일인데.


“손님.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 뭔.”


놈은 갑자기 인상을 확 구기며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땠다. 안 그래도 좋지 못한 인상이 구겨지기까지 하니 참 뭐라 표현하기 힘든 얼굴이 되었다.

못마땅한 듯 계산대를 두드리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신분증은 뭔 신분증. 아저씨. 내가 미자로 보여요? 네?”

“네. 너무 동안이셔서요~ 제가 잠시 확인만 해도 될까요?”


이런 놈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다.

그냥 적당히 처신하면서 상대를 한 번 띄워주면 대부분은 군말 없이 보여준다. 한 가지 경우 빼면.


“아니, 집에 놓고 왔어요.”


어? 반응 봐라?


“네~ 그래도 보여주시지 않으면 결제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니, 놓고 왔다니까. 그냥 계산 좀 해 줘요.”


표정이 점점 구겨진다. 이러다 뚫리겠다.

보통은 그냥 다음에 온다고 하고 나가기 마련이다. 여기서 편의점 알바 붙잡고 이야기 해도 안 되는 걸 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놈 관상하며··· 반응을 보아하니.

빼박이다.

너 이 새끼 미자구나?


“죄송합니다. 손님. 다음에 와주시겠어요?”

“와 씨 미치겠네.”


녀석을 그렇게 한참을 불같이 화내다가 결국 자기가 집어던진 카드를 낚아채며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오늘도 편의점의 평화를 지켰다!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 근처에 있어서 크게 소리내면 들을 것 같았다.


“아오.”


녀석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멀리 떠나가는 걸 보고난 뒤, 나는 시큰거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보던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서울에 나타난 게이트의 위험 등급을 주위 단계에서 다시 한 번 격상하여 경계 단계로 올렸습니다. 관리국에선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나, 시민분들께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시길 바란다며 우려······.]


게이트. 헌터.

그것들이 나타나고 나서 세상은 크게 뒤바뀌었지만, 내 다리가 이런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


교통사고였다. 내가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건.

음주운전이라고 했다. 그래도 재해를 마주한 거 치고 다리 한 쪽이면 싸게 먹혔다고 자기자신을 달랬지만, 사고가 앗아간 건 고작 그런 게 아니었다.

꿈.

헌터가 되고 싶었던 내 꿈이 한 순간에 산산조각났다.

억울했다.

난 검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마검이 좋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흩날리는 꽃잎도, 쏘아지는 빛도, 공기를 얼리는 냉기도 모두 좋았다.

유튜브에 나오는 랭커들의 검무를 수 백. 수 천 번을 돌려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검을 쓰고 싶다.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젠 그럴 수 없겠지만.


“에휴.”


가방을 열어 낡은 책 두어 권을 꺼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엉터리 검술 교본이었다. 자세도, 초식도 모두 엉망이지만, 관련 서적이라곤 이런 것 밖에 없어 수 십 번을 돌려본 물건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모든 게 고가의 재산인데, 거기서 나오는 검술교본 같은 게 시중에 풀릴 리가 없으니까. 지금 검술명가로 떠오르는 여러 가문들도 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나 같은 서민에겐 그런 물건은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


ㅡ그러니 결국 상상할 뿐이다.

책과 게이트 공략에서 찍힌 검술명가들의 검을 뜯어보고, 검에 담긴 의미와 묘리를 고찰하고 분석한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변형시켜 상상했다.


그때마다 검은 항상 다른 형상의 띄웠다.

검은 용이었고, 호랑이였으며, 여름이였고, 겨울이였으며, 태양이였고 달이였다.

불처럼 타올랐다.

물처럼 부드러웠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무처럼 울창했다.

그 수 십개의 검술을 재조합하며 구체화시켰다. 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물론 내가 상상한 검술은 세상에 나올 수 없을 거다.


“어차피 몸이 이러니 뭐.”


검을 쥐어도 중심이 흔들린다.

땅을 박차고 뛰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게중심을 무겁게 둘 수도 없었다. 아파서.


“에휴유······.”


괜히 또 울적해젔다.

내가 거듭 한 숨을 쉬며 책의 첫 장을 펼친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종이 소리와는 거리가 먼 굉음이 밖에서 터져나왔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리자, 통창 너머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야······?”


얼어붙었다. 몸이 빳빳하게 경직되어 움직이지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생생한 광경에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잘 가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시작된 붕괴는 도미노처럼 건물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있는 건, 말 그대로 집채만한 골렘이었다.


-우어어어어!!


녀석이 포효하며 푸른 화염을 토해냈다. 불길에 닿은 물건들은 삽시간에 녹아내려, 거리엔 붉은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내 현실감각도 돌아와,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챙겨 편의점에서 뛰쳐나왔다.


쿵!


놈이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땅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서로 밀어내며 더 먼저 저 괴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한 순간에 내세에 덧씌워진 지옥이 펼쳐졌다.


“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했다. 그것이 단말마인지 공포에 질린 사람이 목 놓아 지르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 데 뒤섞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괴성이 되었다.

아이를 앉고 뛰는 엄마, 정장을 입은 직장인, 커플.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혼비백산하게 대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타인의 배려가 있을리 만무하다.


절뚝. 절뚝.


최선을 다해 자리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도, 뛰지 못하니 걷는 것과 매한가지다. 나는 순식간에 행렬에서 뒤쳐졌고, 인파에 파뭍힌 날 살펴주는 사람 따윈 없었다.


퍼억!


“비켜!!”


떡대 좋은 아저씨가 내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안 그래도 평범한 사람이 밀어도 중심이 흔들리는 나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종이인형처럼 날아가 바닥을 뒹굴렀다.


“으윽, 시발······!”


다친 다리에서 쑤시는 통증이 일었다. 부딧혔을 때 삐었는지 발목과 이어진 다리 전체가 아렸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멀쩡한 오른 다리로 상체를 밀어올리고 다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다른 쪽 발이 땋에 닿는 순간 밀려오는 고통에 바로 힘이 풀려 바닥에 고꾸라졌다.


쿠웅! 쿠웅!


더불어 놈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지진이라도 온 것처럼 땅이 흔들려서, 꼼짝없이 바닥에 붙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고 싶었다. 억울할 만큼 억울한 인생이었다. 죽음마저 그렇게 맞이하고 싶진 않았다.

이를 악물고 팔을 앞으로 뻗었다.

바닥을 짚고 몸을 끌어당기고 멀쩡한 다리로 밀어내며 포폭을 시작했다.


-우워어어어!!


쾅! 쾅!


깨진 시멘트나 아스팔트 조각 따위가 날아들었다. 사람들의 비명을 듣고 흥분한 골램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고 작은 파편들이 도로에 박히고 건물에 떨어졌다. 사이로 흐르는 용암의 열기는 뜨겁다고 말하기 부족했다.

재주껏 피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보아하니 골렘은 걸리적거리는 건물을 부수는 데 정신이 팔려 다른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게 문제였다.


콰과과광!


놈이 정신없이 내리친 건물의 파편이 내 머리맡에 떨어졌다.

찢어지는 굉음에 귀가 얼얼했다. 이명으로 귓 속이 꽉 들어차 오히려 때아닌 정적이 찾아왔으나,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팔을 뻗었다.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깝다.

만약에 내가 조금 더 빠르게 기었다면······.

어쩌면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미래에 모골이 절로 송연해졌다.

이윽고 자욱하게 피어난 흙먼지가 차차 가라앉자 내 모습이 떨어진 타일에 비쳤다.

언제 다쳤는지 이마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내 눈은 빠질듯이 커져 있었으며.


-구워어어······.


놈은 그런 나를 빤히 처다보고 있었다.

머리에 자리한 푸른 고리 한 쌍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척.


나와 눈을 마주쳤다.


쿵! 쿵!


녀석이 내게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보폭 자체가 차원이 달라서, 내가 죽자고 기어온 거리가 단 두 발자국만에 따라잡혔다.

잔해더미에 봉쇄된 도로 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놈은 다른 곳에 주위를 돌리지 않고선 곧장 내게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녀석이 내쉰 날숨에 섞인 붉꽃이 혀를 낼름거렸다. 열기에 아지랑이가 정신없이 일렁거려서, 마치 내가 환영을 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여긴 내가······.”

“자네······ 안되네······.”

“아! 그냥······!”


그래서 이 것도 환청인 줄 알았다. 몇 번이고 유튜브에서 들었던 두 목소리가 지금 들려올 리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 왼 편의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인영이 점점 선명해지고, 그의 붉은 두 눈이 내 눈과 마주쳤을 때, 그게 환청이나 환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헌터계에 떠오르는 샛별, 초신성, 혜성처럼 떨어진 신예(新銳).

조만간 이명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신인 헌터.

유지훈.

그가 이곳에 내려왔다.


“이야, 존나 크네.”


벽을 타고 내려온 그는 골렘의 크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게이트 브레이크로 탈출한 몬스터다. 규격을 상회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런 놈을 바라보며 입가를 밀어올렸다. 마치 견적을 짜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이어서 내게도 눈길을 돌렸는데.


“음······.”


얼굴. 몸. 다리. 아무런 감흥도 없는 눈으로 날 휘릭 훑어보더니 무어라 중얼거리며 그대로 시선을 거뒀다.

애석하게도 목소린 여기까지 들렸다.


“쓰레기군.”


‘어?’


뭔가 이상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보통 인명 구출할 때 저딴 말을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잠시.


“후우.”


그가 한차례 숨을 고르며 기백이 바뀌었다. 날 그대로 밟아죽이려던 골램도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유지훈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그가 검을 뽑아들었다. 흉흉한 마력이 검에 모여들어, 검이 지나간 자리에 긴 꼬리가 생겼다.

두 손으로 검을 들어올려 머리와 평행하게 위치시킨다. 팔꿈치는 조금 뒤로 빼고, 무릎을 조금 굽히며 무계중심을 아래로 둔다. 그 와중에도 불어넣은 마력을 압축시키며 검은 세상 무엇보다 서슬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진행되었고, 나는 그 모습에 홀려 있었다.

나는 저 자세를 알고 있다. 수 십. 수 백 번을 돌려보며 눈에 담고 머릿속에 각인했다.


[성좌검 - 6식]

-별자리 잇기


그러나 직접 본 그의 검은, 영상에서 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상 따위가 이 별의 향연을 가히 다 담을 수 없었다.


ㅡㅡ!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섬광과 함께, 그의 검이 쏘아졌다.

영상에선 눈 깜짝할 세에 전방의 적을 산산조각으로 베어버렸었다. 그래서 항상 영상을 0.1배속해여 깨지는 픽셀 사이에서 검결을 감상했었다.

그러나, 왜일까.

그의 검이 훤하게 보였다.

두부 썰듯 부드럽게 베어내는 검과, 그 뒤를 따르는 빛의 잔상.

우에서 좌로, 다시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검이 이끄는 길 하나하나. 맺히는 별 하나하나 전부 선명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그가 수놓는 별들이 빽빽한 밤하늘을 세겨넣고 있었다.

내가 별자리를 공부했으면, 저 검이 말하는 별을 알 수 있었을까.


ㅡㅡ.


어깻죽지에 그의 검이 지나간 가운데,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생각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 시간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건 오직 검은 쥔 그 뿐이었다.

사고의 가속일지, 죽기 직전의 주마등일지, 혹은 무엇도 아닌 신의 마지막 동정일지도 모르나, 나는 감사히 그의 검을 감상했다.

검은 내 목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다음 그려야 할 별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의 검에는 주저가 없었다.

그를 저주할 겨를은 없었다. 죽음을 부르짖는다던지, 죽어서까지 세상에 남을 원한 따위를 가질 세도 없었다.

자리를 잇는 검은 마치 유성우 같기도 했다. 천천히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것이, 자연재해처럼 항거할 수 없이 느껴졌다.

이윽고 검이 내 목을 지나고.

내 몸을 산산조각으로 베어버리는 와중에도.


그의 검은.


그저,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눈을 떴다.

나는 내 방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것도 10년 전, 내가 갓 20살이 될 적.

교통사고를 당하기 일주일 전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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