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로맨스

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3,733
추천수 :
473
글자수 :
163,678

작성
16.03.16 07:20
조회
757
추천
15
글자
12쪽

감금-11

DUMMY

황급히 도망간 그녀가 그를 다시 찾아온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문을 벌컥 열고는 닫지도 않은 채로 그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어제 일을 사과하러 왔다.”

그는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제는 내가 이성을 잃었다. 네게 말할 수는 없다만, 몹시 힘든 일이 있었다. 근래에 가장 힘들었지. 어쩌면 나는 네가 그것을 풀어줄 수 있을까 해서 너를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소저의 심복이라도 된단 말이오.”

그러나 천화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이 아니다. 너를 그렇게 본 것에 대해서, 그리고 네 신체에 한참이나 폐를 끼친 것에 대해서, 사과한다.”

그 전에 자신에게 가했던 고문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무릎이 좀 저렸을 뿐이오.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소.”

그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자, 그녀는 무겁게 말했다.

“희와 령이라고 했지.”

“뭐?”

그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기절할 듯 놀랐다.

“그 애들은.......”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애들은 내버려 두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애들만은 안 되오.”

“음? 그런 뜻이 아니었다. 오호라.”

그녀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찮은 고문보다 그 애들이 더 효과적이었겠구나. 그렇게 끔찍이 아끼는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녀가 세모눈을 하고 웃으니 메스꺼웠다.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 애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비급은 영영 잃는 줄 아시오.”

그가 말하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네 앞에선 무슨 농을 못하겠구나. 진작 알고 있었다. 그 애들을 괴롭히면 내가 잃는 것이 더 많으리라는 것을. 넌 죽어서라도 나를 용서하지 않았겠지.”

그는 조금 안심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았다.

“내 말해주고 싶은 건 그 애들이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참말이오?”

“그 애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태공가의 사람들은 분명 살아있다. 나조차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 것 같지만 그건 확실해.”

“믿을 수 없소.”

“맹세하마. 이것 또한 내 선물이니라.”

거짓이어도 좋았다. 그건 처음으로 듣는 바깥세상의, 그것도 소식을 알고 싶어 몸이 달은 사람들의 일이었다. 그는 묶여 있던 가슴이 한 순간에 씻기는 것을 느꼈다.

“혹시 더 아는 것은 없소?”

“도적단의 형태로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 정말 꼭꼭 숨어버린 모양이더구나. 나도 백방으로 찾고 있지만 그 애들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찾지 못했다. 그게 증거다. 죽었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찾아내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그는 행복감을 느꼈다.

멀리, 멀리 달아나거라.

가서 다시는 나를 찾지 말거라.

그리고 뒤에 스미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 애들을 보고 싶지 않느냐.”

“보고 싶소.”

“네가 무슨 말을 하면 되는지 알지 않느냐.”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그녀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놈의 비급, 지긋지긋하오.”

“그래. 그렇겠지.”

그녀는 턱을 괴고 딴청을 피웠다.

“그럼 그것 때문에 온 것이오?”

“실은, 네게 다른 방식의 설득을 하러 왔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부담스러운 눈이었다.

“결과는 같을 테지만 들어는 보겠소.”

“천랑비급의 비밀에 대해서다. 네가 모르는.”

생뚱맞은 이야기였다.

“문주인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단 말이오?”“본래 문주만이 아는 비밀이다. 그러나 너는 비밀을 정식으로 인수받을 시간이 없었지.”

그는 그 때의 밤을 생각했다. 살기에 바빴던 밤이었다.

“우리 예천가와, 너희 태공가. 그 두 가문에 얽힌 비밀이다.”

금시초문이었다.

“우리 가문가 소저의 가문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오?”

“우리는 같은 시조를 두고 있다.”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하는 천화를 보니 의구심이 솟구쳤다. 반론이 마구 생산되었다.

“허, 우리가 같은 핏줄이오?”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시조다. 너도 그 이름을 알 것이다. 태화노군님을 말이다.”

태화노군이라면 천랑비급을 창시한, 태공 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 그 강대한 힘으로 무림의 공적이 되어가면서까지 천하를 뒤집으려 했던. 거의 뒤집을 뻔했던 시조. 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어째서 ‘우리’의 시조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이 모든 천랑비급의 시조인 것은 맞다. 하지만 무림제일이 되는 데에는 그분 혼자로는 부족했지. 그분을 돕는 제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도 아오.”

“네가 익힌 무공은 천랑비급의 극천법일 것이다. 그것이 천랑비급의 반쪽이다.”

그녀의 말이 점점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극천법을 다루는 것은 맞았으나, 그것은 천랑비급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다.

“반쪽이라니. 그것 자체가 천랑비급이오.”

“잘 보아라.”

그녀는 품속에서 검을 꺼냈다.

붉은 검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검기였다. 피와 닮은 검기. 불길하게까지 느껴지는 검. 그 역시 어느 정도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자신했지만, 그녀를 이길 수는 없을 터였다.

“극화법, 제 일(一)식.”

그녀가 검기가 넘실거리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는 돌벽을 향해 세차게 내질렀다.

가루가 튀다 못해 돌벽이 박살이 났다.

“제 이(二)식”

붉게 물든 검기가 점차 나눠지더니, 수십 마리의 뱀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 그것이 검과 합쳐지나 싶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벽을 강타했다.

“삼(三)식.”

벽을 강타하던 검기 중 절반 정도가 한데 어우러지더니 거대한 참격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것이 이미 작은 뱀들이 강타하고 있는 벽에 모이더니, 그녀가 검을 휘두른 찰나의 순간에 벽을 갈라버렸다.

보안 먼지와 함께 그토록 단단해 보였던 돌벽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직 깊은 공간이 더 남아 있었으나 그 위력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총 오십 칠식의 초식 중 가장 기본인 세 개의 초식이다. 네게 보여준 것은 일부러 느리게 한 것이고, 보통 이것을 삼식까지 한순간에 반복하여 적을 무너뜨린다. 이것이 예천가의 현 문주로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검법. 극화법이다.”

그는 그 위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굉장하군. 그런데, 이것은 왜 보여준 것이오?”

“느껴지는 것이 없느냐? 극천법의 가장 기본적인 세 초식이 무엇이냐.”

그는 기억을 되새겼다.

“그건.......!”

“그래. 모두 극화법의 세 초식을 파훼하는 것이다. 급습에 대한 회피, 연이은 타격에 대한 방어, 마지막의 일격에 대한 반격. 그렇다고 극천법이 극화법의 상성이라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약하면 이식 만에 뚫릴 터이니, 결국 검법이 아닌 검사의 강함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지. 알았느냐? 극화법과 극천법. 공격을 통한 승리와 방어를 통한 제압. 그것은 한 쌍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 쌍을 이뤄야 천랑비급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극천법의 기본 초식은, 정말 그녀가 보여준 세 초식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아는 극천법이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만 알고 있었던 극천법의 기본. 그것을 그녀가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문과 네 가문의 사이가 그토록 좋지 못했던 것도, 태공가가 극천법을 훔쳐갔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화노군께서 돌아가셨을 때, 극천법의 계승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태화노군께서 주로 쓰시는 검법이 극천법이었고, 그것과 어울릴 극화법의 제자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 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나도 확실하게는 모른다만, 극천법을 익힌 그는 제자들로부터 떨어져 자신만의 가문을 세웠다. 그것이 태공가다. 남은 제자들의 가문이 예천가인 것이고.”

그는 한데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잠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천랑비급이 공방일체의 검법이란 말이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소. 이도저도 아닌 검법이 아님에야. 애초에 운용하는 검기부터가 공이냐 방이냐가 첨예하게 다른데, 그걸 어찌 합친단 말이오?”

“내가 뭐라 말했느냐. 태화노군님과 어울릴 극화법이 많이 필요했다고.”

“그렇다면.......”

“그래. 극히 다른 검기를 가진 두 사람. 극화법을 익힌 사람과 극천법을 익힌 사람이, 함께 싸우는 것이다.”

지나치게 황당한 이야기였다.

“본래 이런 이야기는 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들어줄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같이........ 한 명이 방어하고 한 명이 공격한다? 일견 그럴듯해보여도 얼토당토않은 소리요. 애초에 천랑비급에 그런 조합은 나와 있지 않소.”

“그건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결국 궁극적인 것은 이 극히 다른 검기의 합일이야. 결코 섞일 수 없어 보이는 것이 융화되어 쓰는 사람조차 알지 못하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천화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정해진 조합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생적으로 다른 두 사람이 본래 하나인 것처럼 싸우는 것에는 어떠한 요령도, 기술도 없으니까. 그저 상대방과 맞추어가야 한다. 그것이 단 하루 만에 가능할지, 아니면 평생 걸려도 불가능할 지는 두 사람과의 합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두 사람의 기는 하나가 되어 아무도 그 둘을 상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긴 시간 동안 그들의 활력을 소모시키는 것 뿐. 그것이 천랑비급의 온전한 극한이다.”

그녀의 말은 예전부터 믿기 힘들었으나 이건 그중 가장 믿기 힘든 소리였다.

“그럼 내가 비급을 가르쳐주어도 문주께는 아무 소용없었겠군.”

그가 말했다.

“어째서 그렇지?”

“그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소?”

어림짐작한 말이었으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것 보시오.”

“.......너는 아니겠지.”

왜 자신을 운운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당연한 말로 대꾸했다.

“원수에게 등을 맡기고 내 소중한 이들에게 칼을 들이미라는 얘기 아니오.”

“그런 얘기까지는 아니다. 다만.......”

“이것이 설득이라면 관두시오. 소저를 따를 이유가 없으니.”

“비급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녀가 다급하게 말하자 그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소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는데.”

“나는 그냥 나와 같이........”

“그 얘기라면 아까 말하지 않았소.”

그가 말하자 그녀는 적잖이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본 후 말했다.

“그럼 조건이 있소. 그것을 지켜준다면 함께 싸우겠소.”

“정말이냐? 그래, 어떤 조건이냐?”

완전히 반색하여 말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소저와 함께 싸우겠소. 단, 소저가 하는 일이 대의에 어긋남이 없으며, 인간의 도리에 반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오. 그리고 과거, 소저가 정말로 내 가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어야 하오. 이것을 모두 만족한다면 소저가 내게 한 것도 모두 잊고 소저와 싸우겠소.”

천화는 조건을 다 듣기도 전에 실망하는 것 같았다.

“너무 어렵구나.”

“나로서는 최소한의 조건이오.”

“그래. 네가 이런 말을 한 것만이라도 좋은 발전이지.”

그녀가 한숨을 호르르 내쉬었다.

“두고 보자꾸나. 그럼 오늘의 교섭은 여기까지인 걸로 하겠다.”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간 후,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오직 한가지였다.

희와 령이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랑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 16.04.11 358 0 -
공지 매일 오전 7시 30분 16.03.15 636 0 -
37 만남-5 +2 16.04.10 401 3 9쪽
36 만남-4 +2 16.04.09 424 2 9쪽
35 만남-3 +2 16.04.08 578 2 8쪽
34 만남-2 +2 16.04.07 433 2 8쪽
33 만남 +4 16.04.06 456 2 9쪽
32 세 번째 장 +2 16.04.05 374 4 10쪽
31 장화신은 홍련-3 +2 16.04.04 402 5 14쪽
30 장화 신은 홍련-2 +2 16.04.03 330 5 11쪽
29 장화 신은 홍련 +2 16.04.02 372 4 9쪽
28 연극 +2 16.04.01 439 4 7쪽
27 다시, 홍련 +2 16.03.31 458 4 11쪽
26 허씨 +2 16.03.30 368 5 12쪽
25 몽운사 +2 16.03.29 483 6 11쪽
24 홍련-4 +2 16.03.28 482 8 12쪽
23 홍련-3 +2 16.03.27 508 8 10쪽
22 홍련-2 +2 16.03.26 607 10 9쪽
21 홍련 +2 16.03.25 597 12 8쪽
20 두 번째 장 +2 16.03.24 709 10 11쪽
19 천랑비급 +2 16.03.23 634 12 15쪽
18 열쇠 +2 16.03.22 601 13 14쪽
17 다시, 감금 +2 16.03.21 595 12 7쪽
16 다시 만났을 때 +2 16.03.21 621 10 9쪽
15 첫 만남 +2 16.03.20 599 11 12쪽
14 그런식으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2 16.03.19 674 12 12쪽
13 이날 잡히지만 않았어도 +2 16.03.18 640 15 14쪽
12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2 16.03.17 742 11 14쪽
» 감금-11 +2 16.03.16 758 15 12쪽
10 감금-10 +5 16.03.15 902 2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