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7 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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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仁伯
작품등록일 :
2018.12.03 07:03
최근연재일 :
2019.07.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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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7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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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민얼마을 4 - 드라이브

인공지능, 민주주의




DUMMY

하지만 법조인이고 PD고 학자라고 해서 자기 밥그릇 챙기겠다고 싸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아니, 쪽수가 많아졌으니 자신들을 찍어눌렀던 실험주관자에게 맞서자고 제안하는 자들도 등장하지 않았을까.


“이곳으로 이감된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은 잔뜩 위축되어 있었소. 그래서 이곳으로 이감된 이후로도 K-law파동으로 잡혀들어온 자들과는 물론, 반동형무소에서부터 함께 있었던 수감자들끼리도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 하지만 신입촌민들은 혈기왕성했소. 부당하게 체포되어 반체제사상범 취급을 받아 억울한 심정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소. 격리구역 내에 위치한 경찰서 무기고를 털어 무장한 수백 명이 도로에 방치된 차량들을 몰고 높다랗게 담이 쳐진 도청 건물로 전진했소.”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은 K-law파동 연루자들을 말리지 않았습니까?”


“말린다고 들었겠소? 그리고 말리는 사람은 맨손이고, 말 안 듣는 사람은 총으로 무장하지 않았소? 달리 방법이 없었소. 그나마 여성과 중고등학생, 그리고 미취학아동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K-law파동에 연루된 사상범 중에 중고등학생과 미취학아동들도 끼어있었습니까?”


“2차파동 당시 의식네트워크상에서 오피니언커뮤니티의 각종 인터뷰와 토론 그리고 미디어PD들의 보도영상을 조회한 이들 중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은 만 18세 미만의 중고등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퍼센트에 달했어요. 국가보위부에서는 성인들보다 학생들의 반체제적 성향을 더 경계했죠. 들리는 말로는, 정규교과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발달을 제어하는 중고등학교에서조차 일부 학생들이 이런 반체체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해요. 이런 아이들이 학교생활 중에 다른 학생들에게 그런 성향을 널리 퍼뜨릴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사회에 나가 시민단체에 참여하거나 반국가적 온라인게시물에 집착하는 식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될 거라 본 거죠.”


“그래서 국가보위부에서는 오피니언커뮤니티의 데이터, 시민단체와 함께 활동한 미디어PD들이 제작한 데이터에 접속한 BB엑세스노드IP를 확인하여 그 중 중고등학생을 걸러내고, 그 아이들의 네트워크데이터선호도를 파악했습니다. 일단 학생들 개개인의 BB 엑세스노드IP로 선호하는 사이트나 SNS에 접속한 다음, 해당 학생이 검색하고 조회한 데이터, 그리고 사이트나 SNS를 관장하는 인공지능이 자동추천하는 데이터 등을 전수조사해서 그 데이터의 이념성향을 분석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수치를 매겼습니다. 친체제적일수록 +(플러스)수치가 높게, 반체제적일수록 -(마이너스)수치가 높은 식으로요. 그래서 그 데이터들을 조회한 횟수와 조회시간 등에 따라 수치를 더하고 빼서 최저기준점인 -점수 이하의 학생들을 잠재적 반체제사상범으로 규정하여 그 명단을 일선교육청에 하달했습니다. 교육청에서는 해당 학생들의 제적을 권고하는 전자공문을 해당학교에 보냈고요. 하지만 그렇게 제적당한 학생들 대부분의 반체제적 성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죠.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소견조차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교육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팽배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온라인시민활동에 참여하다가 한꺼번에 다 잡혀들어간 겁니다.”


“미취학아동은요?”


“체포된 자의 반동성향이 무척 강하거나 부부가 모두 파동에 연루된 경우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 역시 어려서부터 그런 성향을 보일 것이라 판단한 거죠. 그래서 아버지와 자식이나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어떤 때는 한 가족 전체가 체포되어 이곳으로 보내진 거예요. 어쩌겠어요? 연좌제를 금했던 이전 헌법조항이 마지막 개헌 때 삭제된 마당인데······.”


정하준 자신을 공격했던 정지현이란 여자대원도 고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얼굴이었다. 그럼 고작 서너 살 나이에 이곳으로 끌려온 건가? 그녀의 부모 역시 이곳에 있고?

여자의 몸으로 그토록 강인하게 몸을 단련하고 격투기술을 익혔다면, 그 과정이 상당히 험난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들은 왜 그걸 방관했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민무철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럼 총기로 무장한 파동 연루자들은요? 컨트롤 타워로 몰려간 겁니까?”


“이곳을 통제하는 인력이 머물 만한 곳이 달리 있겠소?”


정하준은 당시 상황이 눈에 선했다.

거대한 성벽과 철문으로 둘러싸인 철옹성 앞에 농성하듯이 우르르 몰려든 수백 명의 파동 연루자들. 방아쇠 한 번만 당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지녔으니 얼마나 든든할까.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의 증언과 만류도 그 든든함에 튕겨나갔겠지.


그 든든함에는 이런 상식적 판단도 일정 부분 깔려있을 것이다.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주의원리가 헌법상에 명기된 반공대한민국 안에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사람의 목을 일본도로 자르고 산 채로 사지를 절단해서 전시하는 잔혹한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졌다는 게 말이 되나.’

정하준도 생체신경적출현장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라며 코웃음치고 말았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곳을 향해 발포했습니까?”


“하지 않았소.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읊조리듯 대답하며 당시를 회상하는 민무철의 두 눈에 얇은 수막이 덧씌워졌다.


“고작해야 체포되면서 시위진압용 휴머노이드 경검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은 게 전부인 자들 아니오? 그런 자들 수백 명이 저마다 총기로 무장하였으니 무서울 게 없었겠지. 그들은 컨트롤 타워에서 책임자가 나와 자신들과 이야기하기를 원했소. 그게 가능할 거라 믿은 거요. 이해가 가시오? 어쩔 수 없었소. 그래서 그들은 경험할 필요가 있었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사람의 목이 날아가고 사지가 잘리는 공포 말이오.”


민무철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반공형무소에서 피실험자들이 공개처형되던 기억이 되살아났나. 아니면 총을 든 촌민들에게 벌어졌던 참상 때문인가.


“혹시 컨트롤 타워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죄다 일본도로······?”


“아니오. 기관총과 기관포, 수류탄, 일본도 등으로 완전무장한 군용 휴머노이드 수백 기가 투입되었소. 그래서 518민주광장과 금남로1가 일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보나마나한 전투였군요.”


경찰서에서 보유하고 있는 총기라봐야 M16A1과 K2 그리고 제1차 한반도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M1칼빈소총 정도가 전부다. 그 총들이 사용하는 5.56밀리미터 총알로는 2030년대부터 보급된 대한민국 국군 경량화방탄복도 뚫지 못한다.

그렇다면 평균방호력이 경량화방탄복의 몇 배에 달하는 군용 휴머노이드의 장갑은? 흠집이나 났을까 모르겠다.


“중앙제어시스템의 통제를 받는 군용 휴머노이드들은 마치 모의총격전훈련에 참가하는 것 같았소. 테러리스트소탕작전을 펼치듯이 분대별, 소대별로 분산해서 퇴로를 차단하고 도로 인근 건물에 진입하여 상층 창문에서 파동 연루자들을 3점사로 조준사격했소. 총을 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촌민들은 마구잡이로 총을 갈기다가 도로가에 쓰러졌소. 그나마 군에서 복무했던 경험이 있는 자들은 최대한 멀리 도망쳐서 몸을 숨겼다가 휴머노이드들이 분소로 복귀한 다음에야 몸을 빼 남은 일행들에게 돌아갔고.”


정하준으로선 확실히 의외였다.

기관총과 기관포를 마구 갈기며 수류탄을 있는 대로 투척해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파동 연루자들을 완전히 말살시켰다면, 그 엄청난 힘에 완전히 억눌려 저항 같은 건 꿈도 못 꿀 것이다.

그런데 치밀하게 계획된 군사작전을 신속하게 전개했다. 쏴 갈기라고 만든 기관총을 들고 건물 상층에서 저격하듯 3점사했다는 점도 이상하다.


혹시 그 또한 실험주관자의 어떤 메세지였을까.

무엇보다 생존자를 남겨두어 촌민들에게 도청 건물 일대에서 벌어진 일을 알리도록 하지 않았는가.

또한 그 메세지는 지금까지 죽음의 공포에 기반한 경고와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한다.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총에서 칼을 쓰다가 다시 총을 썼다. 그것도 과거 북조선에서 정치범들을 처형할 때처럼 고사포로 몸뚱이를 걸레짝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조준사격으로 최대한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죽였다.

그렇다. 효율적이다. 조직적이고 치밀하며 군더더기없다.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파동 연루자들은 그제야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소. 이감되기 전에 겪은 일들을 자세히 들으면서 주관자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에게 바라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았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화분배방식 아니었겠소? 사람들은 매일 아침 518민주광장에 놓인 식량과 식수를 가져와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은 양으로 배급하였소. 이후 주관자가 개입하지 않음을 확신한 두 부류의 촌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소. 주관자는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하길, 무엇을 성취하길 바랄까. 그들은 자신들이 이 곳에서 조우하게 된 것 또한 주관자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점에 주목했소. 그리고 파동 연루자들의 직업에서 주관자의 의도를 간파하고, 임시회의체를 구성하는 동시에 집단에 필요한 법규를 제정하기 시작했소. 법조인 출신 촌민들이 온갖 법제를 쏟아냈고, 이를 촌민들 전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논의한 것이오.”


“미취학아동도 회의에 참석시켰습니까? 그 아이들 발언까지 반영하는 건 너무···!”


“이유는 간단하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 징징거리는 소리까지 들으며 회의했다가는 안건 하나 처리하는 일도 버거울 거라 발언했던 촌민의 잘린 목이, 다음 날 아침 하루분으로 지급된 식량과 식수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소.”


“!”


또 다시 칼이 등장했다.

총알구멍 몇 개 뚫린 시신보다는 뭐든 확 잘라버리는 게 확실히 전달되는 메세지가 강하긴 하다. 그런데 이를 더욱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인 공개처형은 피했다.

왜일까.

혹시 촌민 중에 미취학아동과 중고등학생들이 다수인 점을 배려한 건가.

왜 미성년자들을 배려하는가? 주관자의 실험목적에 그 아이들의 역할이 크기 때문일까.

그럼 만약 아이들이 주관자의 의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 손가락이나 손목, 팔 등을 자르는, 비교적 가벼운(?) 경고에 그치려나.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이 이야기했던 처형이 실제로 일어나자 파동 연루자들은 극도의 공포에 빠졌소. 자신이 별 생각없이 던진 발언, 별 의미없이 한 행동 때문에 목이 날아갈 수 있음을 인지한 것이오. 그래서 그들은 입을 닫았고 삼삼오오 흩어져 탁혼촌 내 빈 건물에 숨어 지냈소. 이 때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이 전면에 나섰소. 이미 공평하지 않은 재화분배 때문에 몇 번씩이나 처형을 당했던 그들인지라 음식을 독차지하는 일은 없었소. 그들은 숨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물과 음식을 주면서 회의체의 구성과 촌민들간의 소통방법, 법규의 제정과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소. 그러면서 음지에 숨은 이들을 다시 햇빛 아래 모이게 했고 공동체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갖추어나갔소.”


“그래도 생각보다 진행이 원활했던 것 같습니다.”


“뭐가 말인가?”


“탁혼촌을 정비하는 일 말입니다. 한 집단의 거버넌스시스템과 법제를 구비한다는 게 사실 보통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공급되고 범법행위를 억제하는 강력한 공권력이 있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완벽하게 억제되기는 했지만···!”


“목 잘린 사람이 한 사람뿐이었을 것 같소? 그건 아니오. 사실 그동안에도 수백여 명의 촌민들이 더 처형을 당했소. 자신에게 배급된 식량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면서 다른 사람의 식량을 빼앗아 먹는 이들, 성욕을 참지 못하고 부녀자를 희롱하거나 강간한 자들이 생겨났소. 그런 일이 발생하면 다음 날 범죄자들은 어김없이 참수를 당했소. 심지어 촌민 한 명은 당일 공급된 음식 중 일부를 아무도 모르게 빼돌려 은닉했는데도 다음 날 목이 잘렸소. 모든 촌민이 인식조차 못했는데도 말이오. 그래서 탁혼촌 내에 자신들이 모르는 감시시스템이 있음을 알아챘소. 다만 처음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에는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소. 그런 일을 맡을 사람도 없었거니와, 또 그것이 주관자의 의도와 어긋날 경우 이를 모의했던 촌민들 모두 목이 달아날 테니까.”


어떤 사회든지 규범을 어기며 욕구를 실현하는 범죄행위는 발생한다. 빈틈없고 강력한 공권력으로 감시하고 제재하며 처벌해도 범죄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 모든 구성원이 합리적인 사고와 투철한 준법의식을 가지고,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며, 어떠한 경우에도 구체적 타당성을 지닌 규범을 가진 사회라면 가능할까. 조건 하나 하나가 꿈 같은 이야기다.


“공동체의 대표회의제를 통해 안건을 논의하는 방식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나갈 즈음, 외부에서 촌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K-law파동 연루자들 말고 초기에 입촌한 이들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했거나 전투병과로 해외파병을 갔다 온 전과자 출신들이었어요.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똑같이 음식을 배급받고, 내부문제를 해결한답시고 회의를 열어 어린 아이들 투정까지 들어주는 광경을 목격하고 비웃었죠. 그리고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시하려 했고요. 당시 남아있는 파동 연루자들 대부분 여성이거나 미성년자들인 데다가, 반동형무소 출신 분들은 연세가 비교적 많으신 지라 이들을 제압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신입촌민들이 들어올 때마다 항상 한두 건의 범죄, 특히 강간은 꼭 일어났죠.”


건물 1층 로비에서 휴머노이드를 학습시키던 아이들 중 열 살도 채 되어보이지 않던 어린 아이들도 많았는데, 이제 보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강간에 의한 임신으로 태어났을 리는 없다. 모든 범죄행위에는 참수라는 처벌이 따른다는 명제가 모든 촌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후로는 범죄를 기도하는 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확신이 굳어지기 전, 탁혼촌 초기, 그러니까 십이삼 세에서 십육칠 세에 이르는 아이들 중에는, 아버지 없이,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평생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받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처음 치안경비단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준법의식이 약하거나 집단의사에 반항적인 자들을 감시하여, 그가 저지를 지 모르는 범죄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거죠. 범죄의 경중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목을 자르는 건 부당한 처사니까요. 실행의 착수 전에 이를 막아 그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후에 마을 일대를 순찰, 수색하면서 주관자가 운용하는 감시시스템을 찾는 임무가 추가되면서 치안경비단에서 전방경비단이 분화되었습니다. 이후에 휴머노이드를 조립하여 학습시킨 이후에는, 이 두 경비단을 지원하는 휴머노이드 지원경비단이 창설되었고요.”


정하준은 정주훈의 설명을 찬찬히 따져보았다.

범죄를 막기 위해 경비단을 창단했다. 그럼 그들을 누가 훈련시켰을까.

아마 군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반동형무소 피실험자들과 신입촌민들, 그리고 몸을 단련했던 운동선수 출신 촌민들 중에서 비교적 규범을 잘 지켜 살아남은 자들일 것이다.

정하준 자신이 접한 경비단원들의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한다면, 십대 중반의 아이들부터 이삼십대 남녀들까지 폭넓게 자경단원으로 받아들였을 게 분명하고.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신입촌민들의 출신과 입촌시기다.

왜 운동선수나 군 출신의 촌민들이 탁혼촌의 운영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 들어왔을까. 그리고 그들이 투입된 이후에, 촌민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감시시스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까.

주관자의 조치가 어쩌면 그리 공교롭게 일련의 사정들을 일으키게 된 것일까.


군용 휴머노이드들이 군사작전을 전개하여 총기로 무장한 파동 연루자들을 제거했을 때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왜 그리 효율적이었을까. 왜 그런 훈련된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혹시······, 한 번 따라해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너희들은 화력과 방호장비의 차이 때문에 진 게 아니다. 조직력이 부족하고 사격경험이 없기 때문에 졌다. 제대로 근육을 키우거나 몸을 움직이는 기술을 익힌 적이 없고 훈련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제부터 한 번 해봐라. 체계적으로 운동하고 조직력을 키우고 사격술을 익힌다면, 너희들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운동을 가르치고 상하위계질서를 통해 조직을 정비하고 총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투입시킨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왜? 너무 비슷하니까.

탁혼촌민들이 휴머노이드를 사용할 수 있게끔 518민주광장 앞에다 폐기된 휴머노이드와 드론을 수북이 쌓아놓고, 그 중에 쓸만한 거 건져서 재조립하고 수리해줄 휴머노이드테크 과학자, EB에 저장된 가상인격 손보면서 제한학습프로그램 짤 수 있는 인공지능개발자 겸 육성심리학자, 거기다가 동력부족문제를 해결할 태양광발전기술연구원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겨준 반공전략연구소, 달리 말하면 실험주관자의 꼼꼼함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라고 볼 수 밖에 없으니까.


과연 주관자가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인간사회 공동체가 무력과 응집력을 갖춘 소수에게 재화가 집중되었던 계급체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외부의 침입을 경계하고 내부의 혼란을 통제할 공권력, 이 공권력이 공정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규정하는 규범들, 규범들을 제정하고 개정할 수 있는 회의체, 모든 구성원이 나이와 성별, 능력에 상관없이 똑같이 배급받는 재화분배원칙까지 갖춘 민주주의공동체에 이르렀다.

아마 탁혼촌이라는 명칭에 반발하여 자신들끼리 민얼마을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지은 것도 그 즈음일 것이다. 반공대한민국의 전체주의에 반대한 자신들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자긍심의 발로였겠지.


하지만 주관자의 드라이브는 그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인간사회가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 곧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사회로까지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인간사회가 개혁에 의해 개선되고 혁명을 통해 진화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을 실험집단에게 밟게 했다면 어땠을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실험 중에 발생하는 돌발상황을 예측하거나 사후에 적절하게 처리하는 문제만 해도 지난하다. 피착취계급이 단결하여 착취계급과 충돌하였다가 공멸할 수도 있고, 피실험자 전원이 죽음을 각오하고 주관자에게 저항하여 어쩔 수 없이 실험을 폐기해야만 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 밖에 예상치 못한 온갖 위험요소를 사전에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공개처형이라는 강력한 드라이브는 필요하다는 게 주관자의 판단일 것이다.


한편으론 찬성이다. 하지만 강력하기만 할 뿐 정밀하지 못했던 드라이브에 대해선 여전히 반대다.


민무철이 설명하는 드라이브에 포함된 메세지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재화는 절대적 평등의 원칙에 따라 분배한다. 왜? 재화의 편중을 막기 위해서였다.

인간사회가 변화하는 원동력은 자본의 편중 때문이 아니던가.

문명 초기 잦은 전쟁으로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우월한 무력이 자본을 독차지하였고, 이후 지역에서는 귀족과 평민 사이 그리고 국가로 보았을 때에는 왕과 귀족의 주군관계를 통해 사회가 안정된다. 그 과정에서 무력은 혈통과 신분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되어, 기존의 힘있는 자가 고귀한 혈통, 높은 신분을 지닌 자로 거듭나 기존에 자본이 편중되는 재화분배구조가 유지된다.

그러나 혈통과 신분에 따라 맹목적으로 흘러가던 자본의 흐름은, 한정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를 오가며 재화를 유통시키는 상인에 의해 그 단순한 메커니즘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 상인은 기술발전에 따른 공산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시장자본을 독식한다. 이에 따라 상품을 소비할 수요를 늘리고 상품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 식민지를 늘리고, 피식민국가가 바닥나자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목적에서 전쟁을 벌였다.

이후에는 물건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대기업 혹은 이로써 국적을 초월한 다국적기업, 그리고 자본흐름이 원활해짐에 따라 자본과 신용을 바탕으로 무형의 상품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대기업이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산업시스템은 인터넷이라는 또 다른 산업혁명을 맞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유무형의 재화를 생산하는 자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온오프라인상에서 그런 다양한 재화들을 구비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구체적인 소비욕구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개인화된 수요공급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손에 쥔 자가 돈을 버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은? 사람의 육신과 육신, 의식과 의식이 네트워크로 묶였다. 생체전자두뇌를 통해 의식만으로 접속하여, 생각을 소통하고 디지털화된 감각정보들을 주고 받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러한 감각정보들이 네트워크상에서 복제되고 확산되는 한계가 사라졌다. 동시에 그런 정보들을 생산하고 유통하여 소비하는 과정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재화의 흐름이 빨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시스템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되지 못한다. 인간의 육신에서 비롯되는 노동력이 사고연산능력, 힘, 속도, 정확성 등 모든 면에서 관리인격과 가상인격, 휴머노이드와 드론이 제공하는 그것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가 더 이상 국민의 의무가 아닌 나라에서, 그러한 세상에서 복합적인 감각정보들의 소비에만 열중하며 시간을 탐닉하는 인간의 니즈(needs), 그 본능적 소비를 선도하는 자가 자본을 장악한다.


그렇게 무력에서 기술을 지나 자본, 그리고 이젠 정보와 복합감각을 매개로 한 자본집중도는 시대가 바뀔수록 더욱 빠르고 심해졌다.

그렇다면 이게 끝일까. 아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특정 계층 혹은 부류에 쏠린 자본을 빼앗아오는 메커니즘을 고민할 것이다.


결국 인간사회의 발전이란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될 수밖에 없는 재화를 더 빨리, 더 많이 가져오는 시스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그러한 자본의 편중 혹은 편중된 자본의 이동을 막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가진 바 능력이 뛰어나거나 욕구가 강한 자들이 남들보다 많은 재화를 차지하려고 할 때마다 강력하게 응징한다면?

기존 체제에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 불만 자체가 사라진다.

뭘 해도 똑같은 양과 질의 재화를 배급받는다면, 어느 누구도 주어진 일을 잘해내거나 열심히 하려 하지 않는다. 구성원 개개인은 발전하지 않고 사회는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다.

주관자는 개인과 사회 모두가 죽어버린 상태를 바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주관자의 드라이브가 작동하는 또 다른 원칙은, 정당하고 공정하게 합의된 규범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범들은 재화분배의 절대적 평등이라는 대원칙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학교갈 나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라도, 힘없는 여자라도, 늙고 병든 노인이라도, 심지어 휴머노이드라 하더라도 일절 차별받지 않는다.

본래 촌민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체를 대표회의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도, 전체회의에서 다수결로 통과되었으며 대표자의 선출 역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선거에 의했기 때문이 아닐까.




Neo-Fami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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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Epilogue +2 19.07.16 83 1 10쪽
230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6 - 인간의 모순, 인공지능의 모순 +2 19.07.15 65 1 16쪽
229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5 19.07.13 36 1 24쪽
228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4 - one for all and all for one +2 19.07.12 37 2 15쪽
22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3 - 론머맨이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의식네트워크의 실상 1 19.07.11 38 0 13쪽
226 네오패밀리즘의 역설 3 : 소유자와 소유물 사이의 네오패밀리즘 19.07.10 39 1 11쪽
225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2 - 론머맨의 의도 2 19.07.09 33 0 14쪽
224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1 - 인간의 오만이 낳은 결과 19.07.08 41 1 20쪽
223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0 - 론머맨의 의도 1 19.07.07 38 0 15쪽
222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9 - 대한민국 보조인법 네오패밀리즘의 발상의 기원 2 19.07.05 56 1 11쪽
221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8 - 대한민국 보조인법 네오패밀리즘 발상의 기원 1 19.07.04 38 1 12쪽
220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7 +2 19.07.03 45 1 17쪽
219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6 +2 19.07.02 70 1 19쪽
218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5 +2 19.07.01 34 1 14쪽
21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4 +2 19.06.30 41 1 29쪽
216 호굴 속으로 19.06.29 50 1 13쪽
215 론머맨의 진면목 1 +2 19.06.28 43 1 16쪽
214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3 19.06.27 35 1 16쪽
213 위험천만한 반전계 +2 19.06.26 36 1 13쪽
212 철저한 농락 +2 19.06.25 37 1 15쪽
211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2 19.06.24 35 0 11쪽
210 '과거 북조선 인민들의 생체신경무단적출 - 주한미군과 호국회 개입' 뉴스편집 2 19.06.23 38 0 13쪽
209 '과거 북조선 인민들의 생체신경무단적출 - 주한미군과 호국회 개입' 뉴스편집 1 19.06.22 35 1 13쪽
208 광기의 표출 19.06.21 28 0 19쪽
20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 19.06.20 28 1 14쪽
206 미행 그리고 역습 2 19.06.19 24 1 11쪽
205 미행 그리고 역습 1 19.06.18 33 1 18쪽
204 미행 19.06.17 32 0 23쪽
203 소피들에게 마수를 뻗친 론머맨 19.06.16 27 0 11쪽
202 합종연횡 3 19.06.15 35 0 15쪽
201 합종연횡 2 +2 19.06.14 45 1 14쪽
200 합종연횡 1 19.06.13 37 0 15쪽
199 하나의 개체에 공존하는 인격들 2 - 정하준과 에그의 커뮤니케이션 19.06.12 33 0 29쪽
198 하나의 개체에 공존하는 인격들 1 - 정하준의 삭제된 기억, 그리고 복제된 소피들의 인격 19.06.11 36 1 16쪽
197 죽음의 압박 19.06.10 37 1 9쪽
196 민얼마을 해커 2 19.06.09 34 1 12쪽
195 민얼마을 해커 1 19.06.08 32 0 13쪽
194 커져가는 불신 7 - 론머맨에 대한 정하준과 룩의 의심 19.06.07 31 0 17쪽
193 피를 마시는 거목, 그 실체의 끝 19.06.06 36 1 8쪽
192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6 - 진압 19.06.05 31 0 15쪽
191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5 - 혼란 그리고 갈등 19.06.04 42 0 17쪽
190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4 - 무력시위 19.06.03 36 0 15쪽
189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3 - 처형 19.06.02 34 0 9쪽
188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2 - 선동 19.06.01 38 0 26쪽
187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1 - 연출 19.05.31 31 1 13쪽
186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2 19.05.30 35 0 12쪽
185 민얼마을 - 민얼마을의 민주주의, 그 실체 19.05.29 33 0 12쪽
184 민얼마을 5 - 해커 19.05.28 33 1 19쪽
» 민얼마을 4 - 드라이브 19.05.27 39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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