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7 R.O.K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완결

仁伯
작품등록일 :
2018.12.03 07:03
최근연재일 :
2019.07.16 07:00
연재수 :
231 회
조회수 :
18,625
추천수 :
112
글자수 :
1,625,564

작성
19.06.02 10:57
조회
34
추천
0
글자
9쪽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3 - 처형

인공지능, 민주주의




DUMMY

그 때 갑자기 인간 촌민들의 환호성이 악을 쓰듯 내지르는 고함과 욕설로 바뀌었다.

다른 생각에 골몰하다 깜짝 놀란 정하준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잔디밭 중앙으로 누군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양쪽으로 두 명의 경비단원이 팔짱을 끼고 데려온 자의 얼굴을 확인한 정하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딴 데 정신이 팔린 사이, 황광현이 촌민들과 대표들에게서 처형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듯하다. 그것이 의사진행방식에 합당한가의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미 저들의 머릿속에는, 자신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의 피를 쥐어짜려는 일념 뿐이다.

눈과 입을 제외하고는 머리통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은 심원기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정하준으로선 억울했지만, 자신이 연출한 상황이 아니라고 알릴 방법도 없고, 그를 납득시킬 자신도 없다.


심원기를 바라보는 정하준, 그리고 그의 주변에 앉은 주민 대표들의 표정을 살핀 조달평은 위험을 직감했다. 재빨리 주위를 훑어보았다. 잔디밭에서 소리지르는 참관인들에게서 일말의 광기마저 느껴졌다. 자신들을 공개처형이라도 시킬 것 같은 분위기 아닌가. 마음이 급했다. 지푸라기 같은 것이라도 잡을 만한 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참고인은 말합니다. 주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처형세력의 뜻에 어긋난다고. 과연 그럴까요? 그가 어떻게 그리 확신할까요? 이곳에 머문 지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 그가, 처형세력의 속내를 어떻게 그리 속속들이 꿰뚫어보고 있을까요? 자! 보십시오! 이 자는, 전직 국가보위부장조차 몰랐던 기밀, 즉 이곳을 운영하는 반공전략연구소가, BSS/EBF라는 암호명의 생체신경탑재형 휴머노이드 시스템연구를 위해 우리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실험을 진행 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제2차 한반도전쟁의 영웅이기도 합니다. 미중러가 북한 정권의 붕괴를 틈타 북한 영토를 차지하려는 비열한 전쟁에서 미합중국의 첨병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무공훈장까지 받은 자란 말입니다. 본 의장은 이런 의심이 드는 군요. 혹시 참고인이 반공전략연구소의 지령을 받고 침투한 첩자는 아닐까? 여러분! 초록은 동색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반공전략연구소나, 반공대한민국의 국가보위부나, 이 나라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넣는 악의 축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가보위부 출신인 저 두 사람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저렇게 애쓰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광현은 오른팔을 쭉 뻗어 정하준을 손가락질하며 침튀겨 열변을 토했다.

그의 선동에 휩쓸려버린 인간 촌민들은 눈 감고 귀 막고 생각마저 멈춰버린 상태에 빠졌다.


정하준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반공전략연구소 첩자라면, 기밀을 이렇게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겠냐?!


“실험주관자의 의도? 참고인은 안다지만,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시민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타당하고 이곳에 갇혀 언제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을 이곳에 가둔 국가보위부 요원들 목을 자르겠습니다!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하듯 저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즐길 것이고! 겨우내 얼어붙은 땅과 말라붙은 나무를 적시는 봄비를 맞듯 저들이 흩뿌리는 피를 뒤집어쓰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간의 한을 푸는 이 자리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우우우오오오오와와와와와와!!!”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던 더러운 욕망을 폭출시키는 듯한 고함이 그토록 컸던 스피커 음향마저 덮어버렸다.


양팔과 어깨를 붙잡힌 채 무릎이 꿇린 심원기는 몸부림을 치다가 경비단원에게 주먹으로 구타를 당했다. 조달평의 안색도 새하얗게 질리는 게 확연히 눈에 띄었다.


마을 이 곳 저 곳에서 황광현의 발언을 들은 촌민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금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표회의석과 공개처형장소를 에워쌌다.


정하준은 머리를 쥐어짰다. 저들을 살려야 한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저들을 처형한 촌민들의 다음 타겟이 자신이 될 것 같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피를 통해 분노와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일시에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그 극적인 쾌락의 늪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꿈 속에서 뇌가 말라 갈라지는 것 같은 고통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아찔한 희열에 중독되었던 자신처럼.


양 팔을 구속당한 채 무릎이 꿇려진 상태에서 다른 경비단원이 무릎에 체중을 실어 심원기의 등을 눌렀다.

그대로 상체가 기울어진 심원기는 멀리서 달려온 또 한 명의 경비단원이 들고 있는 연장을 목격하고는 더욱 거세게 몸부림을 쳤다.

등을 누르던 경비단원이 휴대하고 있던 작은 칼로 그의 허벅지를 푹 찔렀다. 그럼에도 몸부림이 잦아들지 않자 허벅지에 꽂힌 칼날을 비틀었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는 심원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목에는 핏줄이 터질듯이 도드라졌다. 그러자 왼팔을 붙들고 있던 경비단이 주먹으로 심원기의 턱을 후려쳐 턱관절을 아예 빼버렸다.


정하준은 날이 제대로 서지도 않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온 경비단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금남로5가역 식당에서 자신의 질문에 답했던 전방경비단 수석경비대원 임지훈이었다.


그가 강진모와 민무철을 바라보았다. 그 두 사람은 황광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인간 경비단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임지훈이 자신이 들고 있던 도끼를 번쩍 들어 머리 뒤로 넘겼다가 세게 내리찍었다.


둔탁한 파공음에 이어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겹쳐진 묘한 소리가 단발적으로 터졌다.

도끼날이 무딘 탓에, 그리고 후두부의 BB가 거치적거리는 탓에, 아랫목과 등의 경계부위에 도끼가 절반 정도 꽂혔다. 경추가 부러지고 목이 절반 정도 잘린 터라 목숨은 끊어졌지만 덜렁거리는 목이 애매했다. 목 앞부분의 경동맥이 멀쩡한 탓에 피도 많이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도끼를 머리 위로 넘겼다가 내리찍었다. 그렇게 두세 번을 더 도끼질을 한 다음에야 심원기의 목을 분리해낼 수 있었다.


정하준은 뜯겨지다시피 한 심원기의 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등을 밀던 경비단원이 이번엔 되려 등 부위의 옷가지를 잡아끌어 목이 분리된 시신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그러자 목이 끋겨진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참관중인 촌민들의 비명같은 환호성에 벼락처럼 정하준에게 내리꽂혔다. 그 충격의 소용돌이에 전율하면서도 시선은 임지훈에게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심원기의 목을 뜯어내고 그의 시신을 붙잡았던 동료 경비단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도끼 머리부분을 오른 쪽 어깨에 걸친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조달평을 노려보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일견 무뚝뚝하지만 친절하고 정중했던 그가 갑자기 사람의 목을 거침없이 뜯어내는 살인마로 돌변한 건 무엇 때문일까? 하늘을 찢어발기는 듯한 저 환호성이 원인일까?

그가 속한 민얼마을 전체의 울분이기에, 이를 해소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울분가득한 환호는 그렇게 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만의 논리일 뿐이다.

국가보위부의 부당한 정책에 의해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데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아무리 정당하다 한들, 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위부에서 폐기처분당한 전 요원 두 명이서 이를 몽땅 감내해야 하나. 그 두 사람이 민얼마을의 설립과 사상범의 분류과정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없이?

공개처형과정에서 성립하는 살인죄, 그리고 이를 교사하고 방조하는 수많은 부수적인 범죄행위들의 위법성과 책임은 어떤 사유에 의해 조각되고 면제될 수 있을까.

정하준의 눈에 비친 민얼마을 주민들, 참수의 처형에 열광하는 그들은, 왜곡된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분노의 배설, 그 쾌락에만 갈급한 탐욕의 노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심원기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조달평은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환자처럼 몸을 퍼덕거렸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고, 극도의 공포에 의식이 날아가버린 탓에 몸뚱이는 통제를 잃어 바지에 똥오줌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경비단원이 조달평의 바지를 벗기며 코를 쥐어막자 촌민들은 박장대소했다. 그 광경이 마치 희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똥과 오줌으로 더럽혀진 앙상한 하체와 덜렁거리는 중요부위까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지만 조달평은 수치심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잔인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한 번에 숨이 끊어지길 빌고 또 빌면서도 처형이 중지되는 기적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했다.




Neo-Familism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_ -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067 R.O.K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게시기간과 관련한 공지입니다 19.08.26 30 0 -
231 Epilogue +2 19.07.16 83 1 10쪽
230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6 - 인간의 모순, 인공지능의 모순 +2 19.07.15 65 1 16쪽
229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5 19.07.13 36 1 24쪽
228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4 - one for all and all for one +2 19.07.12 37 2 15쪽
22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3 - 론머맨이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의식네트워크의 실상 1 19.07.11 38 0 13쪽
226 네오패밀리즘의 역설 3 : 소유자와 소유물 사이의 네오패밀리즘 19.07.10 39 1 11쪽
225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2 - 론머맨의 의도 2 19.07.09 33 0 14쪽
224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1 - 인간의 오만이 낳은 결과 19.07.08 41 1 20쪽
223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0 - 론머맨의 의도 1 19.07.07 38 0 15쪽
222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9 - 대한민국 보조인법 네오패밀리즘의 발상의 기원 2 19.07.05 56 1 11쪽
221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8 - 대한민국 보조인법 네오패밀리즘 발상의 기원 1 19.07.04 38 1 12쪽
220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7 +2 19.07.03 45 1 17쪽
219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6 +2 19.07.02 70 1 19쪽
218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5 +2 19.07.01 34 1 14쪽
21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4 +2 19.06.30 41 1 29쪽
216 호굴 속으로 19.06.29 50 1 13쪽
215 론머맨의 진면목 1 +2 19.06.28 43 1 16쪽
214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3 19.06.27 35 1 16쪽
213 위험천만한 반전계 +2 19.06.26 36 1 13쪽
212 철저한 농락 +2 19.06.25 37 1 15쪽
211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2 19.06.24 35 0 11쪽
210 '과거 북조선 인민들의 생체신경무단적출 - 주한미군과 호국회 개입' 뉴스편집 2 19.06.23 38 0 13쪽
209 '과거 북조선 인민들의 생체신경무단적출 - 주한미군과 호국회 개입' 뉴스편집 1 19.06.22 35 1 13쪽
208 광기의 표출 19.06.21 28 0 19쪽
20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 19.06.20 28 1 14쪽
206 미행 그리고 역습 2 19.06.19 24 1 11쪽
205 미행 그리고 역습 1 19.06.18 33 1 18쪽
204 미행 19.06.17 32 0 23쪽
203 소피들에게 마수를 뻗친 론머맨 19.06.16 27 0 11쪽
202 합종연횡 3 19.06.15 35 0 15쪽
201 합종연횡 2 +2 19.06.14 45 1 14쪽
200 합종연횡 1 19.06.13 37 0 15쪽
199 하나의 개체에 공존하는 인격들 2 - 정하준과 에그의 커뮤니케이션 19.06.12 33 0 29쪽
198 하나의 개체에 공존하는 인격들 1 - 정하준의 삭제된 기억, 그리고 복제된 소피들의 인격 19.06.11 36 1 16쪽
197 죽음의 압박 19.06.10 37 1 9쪽
196 민얼마을 해커 2 19.06.09 34 1 12쪽
195 민얼마을 해커 1 19.06.08 32 0 13쪽
194 커져가는 불신 7 - 론머맨에 대한 정하준과 룩의 의심 19.06.07 31 0 17쪽
193 피를 마시는 거목, 그 실체의 끝 19.06.06 36 1 8쪽
192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6 - 진압 19.06.05 31 0 15쪽
191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5 - 혼란 그리고 갈등 19.06.04 42 0 17쪽
190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4 - 무력시위 19.06.03 36 0 15쪽
»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3 - 처형 19.06.02 35 0 9쪽
188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2 - 선동 19.06.01 38 0 26쪽
187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1 - 연출 19.05.31 31 1 13쪽
186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2 19.05.30 35 0 12쪽
185 민얼마을 - 민얼마을의 민주주의, 그 실체 19.05.29 33 0 12쪽
184 민얼마을 5 - 해커 19.05.28 33 1 19쪽
183 민얼마을 4 - 드라이브 19.05.27 39 0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