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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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이아빠
그림/삽화
내복이아빠
작품등록일 :
2011.05.26 12:44
최근연재일 :
2019.01.29 07:0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9,361
추천수 :
90
글자수 :
250,466

작성
17.09.28 16:01
조회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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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제1장 남자와 소녀 - 9

DUMMY

사람들에게 묻고 물으며 한참을 걸어가던 남자는 이윽고 커다란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다. 대문에 걸린 현판에는 '비어랑 살필집'이라 쓰여 있었다. 살필집은 살피아치들의 일터로 비어랑의 치안을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를 띈 엄숙한 느낌의 커다란 대문으로 다가가니, 기다란 갈래곳(지창)을 들고 있는 문지기 두 명이 곳을 엇가리며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문지기들은 별다른 꾸밈이 없는 검은 색 두루마기 위에 푸른 색 조끼를 걸치고, 어깨와 허리는 붉은 빛의 두껍고 기다란 오라를 감아 그 끝을 질끈 묶고 있었다. 왼쪽 가슴 주머니 위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이름표를 찼다. 머리에는 앞으로만 챙이 난 검은색 갓를 쓰고 있었고, 갓의 앞머리에 비어랑의 표식인 푸른 해태가 수놓아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오라의 색 덕에 눈에는 확 띄는 복장이었다. 전형적인 살피아치의 복장이었다. 이름표 위의 계급장을 보건데 급은 여서활. 여서활이면 가장 말단 살피아치였다.


"호패를 보이시고 용무를 말씀하십시오."


둘 중 체구가 더 큰 문지기가 말했다. 그 문지기가 절대 작은 키는 아니었는데도 남자가 한 참은 더 큰 것이 남자의 키가 크긴 큰 모양이었다.

남자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곧 빛바랜 청동판 하나를 꺼내들었다. 타원형의 청동판에는 한 마리의 붕새가 새겨져 있었고, 한쪽 끄트머리에는 때를 많이 탔지만 아직까지는 붉은 빛이 살아있는, 실을 꼬아 만든 수수한 노리개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붕새가 새겨진 면의 반대편에는 남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문지기에게 건네주었다.

문지기는 청동 호패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살펴보더니 다시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가람가야의 분이시군요. 용무를 말씀 하십시오"


"오 코를 몇 개 배어 왔는데......."


문지기는 아주 잠시 동안 남자의 지팡이와 삿갓과 등짝의 귈타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곳을 거두어 길을 터주었다.


"쭉 들어가셔서 왼쪽 건물입니다. ‘브슬집’이라 쓰여 있으니 쉽게 찾으실 겁니다."


"고맙습니더."


호패를 받아 품속에 쑤셔 넣은 남자는 곧장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지기가 일러 준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브슬집.

이곳은 오의 창궐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온 가우리의 고을들이 연합하여 만든 곳으로 오의 대대적인 토벌작전과 개채수의 조절을 담당하는 곳이라는 거창한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오의 목을 베어 삶을 이어가는 '브슬아비'들의 정산소 비슷한 곳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아직도 그렇지만 오의 불규칙적이고도 위협적인 번식은 가우리 곳곳에 퍼져있는 성들 사이의 교류를 끊어놓는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에, 계약과 돈으로 움직이는 싸홀아치 비슷한 브슬아비들은 대부분 오를 죽이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다. 오 사냥은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있을지언정 일이 끊기는 경우는 없으니까.

편의상 옛가우리에서 돈으로 고용하던 싸홀아치였던 브슬아비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신분의 증명방법도 자격요건도 아무것도 없다. 단지 몸뚱아리 굴려가며 먹고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누구나 오의 코를 베어오면 적당한 금액을 정산 받을 수 있었고, 이것이 남자가 담뱃값과 밥값을 버는 방법이었다. 오는 위협적이긴 하지만 날랜 싸움꾼은 오를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고, 보통 단련된 싸홀아치 한두 명 정도면 무난히 상대할 수 있기 때문에 키가 크고 몸이 날랜 남자의 용돈벌이로 딱이었다. 물론 남자는 오가는 길에 얻어걸리는 오들의 코만 냉큼 배어 소금에 잘 절여놓았다 담배가 다 떨어졌을 때 파는 것뿐이었다.

남자는 눈앞의 대나무 발을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 넓지 않은 건물의 안에는 길쭉한 책상을 죽 이어놓아 계산대처럼 만들어 둔 창구와 의자 몇 개가 있었고, 창구 너머로는 늘어선 몇 개의 책장, 그리고 가운데 쯤 커다란 나무 궤짝 하나가 있었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 따위는 없었고, 단지 갈색 머리를 질끈 묶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젊은 여자 한 명만이 책상에 널려 있는 서류더미들을 뒤적거리며 살펴보고 있었다. 보통 브슬집의 지부에는 이렇게 한 두 명만이 고용되어 사무실을 관리하고 정산업무를 본다.

남자는 오의 코들을 절여놓은 그 가죽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가죽주머니의 입구를 꿴 끈을 풀자, 가득 찬 소금 속에 붉은 빛 살점이 보였다.


"오 코 세 짝입니더."


남자는 창구 안쪽의 유일한 직원인 그 여자에게 오의 코 세 개를 꺼내주었다. 강한 악취에 질색할 만도 한데, 머리를 틀어 묵은 정산원은 별 내색도 없이 천위로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세 점. 음....... 동전 세 냥씩 총 아홉 냥이네요."


살덩이 세 개를 눈으로 확인한 정산원이 가운데의 궤짝에 그것을 집어넣고 책상 위의 장부를 뒤적거리더니 말했다.


“아홉 냥.”


남자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꼴랑 아홉 냥?"


"네?"


비어랑에서는 익숙하지 않을 가야지방 사투리인 남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정산원이 되물었고, 남자는 입맛을 다시고는 다시 말했다.


"아, 생각보다 얼마 안 주길래예."


직원이 싱긋 웃었다. 입이 커서 그런지 웃음이 시원했다.


"갓 봄이잖아요. 겨울 동안 토벌한 오가 꽤 돼서, 요즘은 얼마 안 쳐주네요. 근데 가야 쪽 분이신가 봐요? 요새 가야 출신인 사람들이 거의 없던데 이쪽에는."


"예, 뭐....... 수고하이소."


계속 있다가는 이것저것 끊임없이 물어올 것 같은 느낌이라, 정산원의 손에서 동전 아홉 개를 받아든 남자는 대충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아홉 냥이라....... 아홉 냥이면 담뱃잎 반 주머니도 못 사는데. 그리고 담배는 웬만하면 반 주머니씩 팔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남자는 결국 담배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홉 냥 정도면 한 끼에 한 냥 정도하는 국밥 아홉 그릇은 사먹을 수 있다. 도통 여인숙 같은 숙박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남자는 모르겠지만, 여인숙에서 이틀 정도 묵을 수 있는 정도의 돈이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뫼를 넘을 때 그 오들의 코도 몇 개 가져올 걸 그랬네.


"이 가시나는 잘 기다리고 있을라나."


오는 길을 좀 헤맨 탓에, 소녀와 헤어진 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깟 발육부진의 꼬마 하나 없어진다고 신경이나 쓸까보냐. 어쩌다 말도 안 되는 인연으로 여기까지 함께 왔지만, 딱 여기까지다. 큰 눈의 새하얀 소녀의 삶은 여기서 다시 시작. 적당한 거처와 먹고 살 일 정도만 봐주고는 그대로 안녕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방랑하고 방황해야지.

하지만 부지런히 발을 놀려 도착한 그 거리 그 소나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할 소녀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닭꼬치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가슴이 철렁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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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5 17.09.28 85 1 7쪽
18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4 17.09.28 95 1 10쪽
17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3 17.09.28 98 1 7쪽
16 제2장 오랜비가 끝나면 - 2 17.09.28 77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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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장 남자와 소녀 - 14 17.09.28 110 1 8쪽
13 제1장 남자와 소녀 - 13 17.09.28 87 1 6쪽
12 제1장 남자와 소녀 - 12 17.09.28 88 1 9쪽
11 제1장 남자와 소녀 - 11 17.09.28 112 1 9쪽
10 제1장 남자와 소녀 - 10 17.09.28 119 1 6쪽
» 제1장 남자와 소녀 - 9 17.09.28 154 1 7쪽
8 제1장 남자와 소녀 - 8 17.09.28 169 2 7쪽
7 제1장 남자와 소녀 - 7 17.09.28 181 1 8쪽
6 제1장 남자와 소녀 - 6 17.09.28 215 4 8쪽
5 제1장 남자와 소녀 - 5 17.09.28 250 4 7쪽
4 제1장 남자와 소녀 - 4 17.09.28 289 6 8쪽
3 제1장 남자와 소녀 - 3 17.09.28 342 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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