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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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
작품등록일 :
2014.03.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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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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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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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3

[무쌍]은 성장 소설입니다. 시대상과 현실을 접목한 소설입니다. 느긋이 감상해 주십시요.




DUMMY

아침 일곱 시면 김말순은 정신이 없었다. 밥을 대어 먹는 고속도로 공사장 인부가 21명에 하숙생이 3명이다. 이들의 아침을 차려 내려니 정신없이 돌아쳐야 했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먹성도 좋았다.

"이모 밥 더 주세요."

"물 좀 주랑께요."

"아그야, 고추 좀 주면 쓰겄는디."

"화따, 된장이 직이는구마."

사투리도 가지각색이었다.

다행히 빠릿빠릿한 무쌍이 한몫을 했다.

무쌍은 아침과 저녁 식사 시간엔 꼼짝 못하고 아저씨들 심부름을 해야 했다. 식사 보조는 물론이고 수시로 술심부름과 담배 심부름을 해야 했다. 덕분에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먹고 살 일을 고민하던 김말순은 밥집을 차렸다. 고속도로 공사장에 버글거리는 인부들 상대였다. 건넌방과 사랑방을 비워 하숙도 쳤다.

도지로 받은 쌀이 있고, 푸성귀는 강변 채마밭이 있다. 식재료를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어 이문이 제법 남았다. 생선과 육 고기 구입은 막걸리 배달을 하는 조 씨가 수시로 도움을 주었다. 손이 모자라면 이웃 노 씨 댁과 하동댁이 거들어 주었다.

문제는 친척들이었다.

김말순이 밥집을 차리자 큰댁의 동서를 비롯한 친척들이 벌떼처럼 흉을 보고 손가락질 했다.

그들의 뒷담화는 두 가지였다.

천한 태생이 결국 천한 먹거리 장사를 한다는 것, 남편을 잡아먹은 년이 아랫도리가 허전해져서 수단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득시글대는 남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참으로 듣기에 민망한 입초시였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에 김말순은 아예 귀를 닫아 버렸다. 하늘같은 남편이 욕을 먹어 미안하지만 쌍이를 제대로 키우고자 하는 일이다. 남편이 싫어 할 리 없었다.

굿판에서 수많은 사연의 사람들을 겪어 보았다. 그녀는 일찍이 사람들의 추한 내면과 인간사 허망함을 맛보았다. 일일이 상대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남편이 죽은 후로 보리 한 됫박 보태 주지 않던 친척들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그들의 행태가 가증스러웠다.

“커험, 질부 있는가.”

공사장 인부들이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아침 시간이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김말순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정지에서 나왔다.

“당숙 오싰습니까.”

진보의 당숙인 박평수는 고개를 숙이는 질부를 마뜩찮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자네는 우리 밀양 박 씨를 머로 생각하는가?”

“네?”

김말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숙을 쳐다보았다. 댓바람에 찾아와 가문을 들먹이는 저의가 불길했다.

육십 초반의 당숙은 머리가 벗겨지고 수염이 하얗게 세었다. 깐깐한 성정만큼이나 건강한 편이라 스무 마지기 논농사를 거뜬히 감당했다.

“험, 우리 밀양 박 씨는 박혁거세(朴赫居世)님의 후손일세. 시조이신 박언침(朴彦忱)공은 박혁거세님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이네.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가문이라는 게지. 우리 밀직부사공파는...

김말순은 짜증이 났다. 설거지 거리가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세 개나 남아 있다. 빨리 끝내고 강가 밭에 나가 채소를 뜯어 와야 점심 준비를 할 수 있다.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 나올 정도로 바쁜 하루다.

평소 얼굴도 보이지 않던 당숙이 나타나 한가히 족보 놀음을 하니 속에 천불이 났다.

“저어 지가 마이 바쁘거던예. 급한 일이 아이마 저녁에 뵈면 안되겠심니꺼. 점심 준비 할라카마 시간이 없심더.”

박평수는 매우 불쾌했다. 인상이 절로 찌그러졌다.

“어허, 이보게. 가문의 체통을 지키는 것 보다 더 급한 일이 오데 있다고 그카는가. 질부는 주변을 돌아보게.”

당숙의 말에 김말순은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보았다.

박평수는 혀를 끌끌 찼다. 무식한 여자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라는 말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참오해 보라는 뜻으로 던진 말이다. 근본 없는 무식한 것들은 저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는 김말순의 소심한 반항을 알지 못했다.

“그게 아니네. 질부가 천한 밥장사를 하는 것 때문에 일가붙이들의 말이 많아. 심지어 남정네를 셋과 기거를 함께 한담서.”

김말순은 그제야 박평수가 아침 댓바람에 찾아온 목적을 확실히 깨달았다. 꼬장꼬장한 늙은이가 총대를 메고 따지러 온 것이다.

“그게 어때서요. 먹고 살자고 하는 밥장사고, 먹고 살자고 하숙을 치는 거지예. 어린 쌍이 델꼬 굶을 수는 없다 아입니꺼.”

박평수는 눈을 꿈벅였다. 말없고 조신했던 질부가 아니라 당돌하고 거친 장돌뱅이에 다름 아니다.

“어허, 저런 쯧쯧, 인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외간 남자를 집안에 끌어 들이는 우세스런 행사를 한단 말인가. 자네가 집안 체면과 인보를 손톱만치라도 생각한다면 해서는 안 되는 행사야.”

김말순은 억울함과 서러움에 목이 메었다.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하는 꽉 막힌 노인네다. 마카 남만 못한 친척들이다.

오기와 반항심이 고개를 바짝 들었다.

남편 생전에는 억울해도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 입을 열지 않았다. 남편이 죽고 나니 쌍이가 전부다. 쌍이를 제대로 키우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

“먹고 사는 일에 귀하고 천한 일이 오데 있심니꺼. 농사일도 똥오줌 만진다고 천하다 칼낍니꺼. 지가 손 놓고 있으마 우리 모자를 당숙이 먹여 살릴 낍니꺼. 집안에 남정네를 끌어 들이다뇨. 당숙 네도 공사판 하숙생이 둘이나 있지 않심니꺼. 당숙모가 외간 남자를 끌어 들여 노는 김니꺼. 한 푼이라도 벌라꼬 애쓰는 거 아임니꺼. 당숙께서 쌀 한 됫박이라도 주고 그런 말씸 하시소.”

숨 돌릴 틈도 없이 쏘아 붙이는 말에 박평수는 뒷목을 움켜쥐었다. 여리고 약한 몸띠에서 나오는 패악이 보통이 아니었다.

사리를 따져 이해를 시키면 머리를 숙일 줄 알았다. 오히려 독사처럼 고개를 빳빳이 드니 노기가 솟았다.

“험, 맘대로 하게. 이래서 근본 없는 천한 것을 집안에 들이면 안 되는 것이야. 인동 질부 말이 맞았어. 진보를 홀려가꼬 집안에 들어 온 불여우 구만. 늑대 같은 것들이 수십이나 우글거리니 큰 사단이 날게야. 큼!”

당숙이 독설을 쏟아 내고 휭하니 나갔다.

김말순은 억장이 무너져 뜨락 맨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절로 쏟아졌다. 자신이야 쌍이를 위해 못 할 일이 없지만 죽은 남편까지 욕을 본 듯해 분이 가시지 않았다.

속에 든 말을 처음으로 쏟아 냈지만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란 성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남편과 다른 사람들, 박진보와 다른 사람들이었다.

“엄마, 종할부지 나쁜 사람이제?”

“어머나, 쌍이 니 그 있었디나?”

헛간에서 무쌍이 불쑥 나오자 김말순은 깜짝 놀랐다.

“씨이, 다 들었다. 아저씨들 밥 해주는 거 나쁜 거야?”

김말순은 분한 표정으로 씩씩대는 아들을 꼭 안았다.

“아이다. 아저씨들은 맛있는 밥을 먹어서 좋고, 엄마는 돈을 벌어서 좋아.”

무쌍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지, 좋은 일이지. 나두 아저씨들에게 심부름 값 벌고 있걸랑. 그것도 나쁜 일 아니지?”

김말순의 표정도 환해졌다.

“그래, 나쁜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야. 쌍이가 아저씨들 심부름 해주고 받는 용돈은 나쁘지 않아.”

“엄마, 내가 얼른 커서 엄마 욕하는 사람들 전부 혼내 주께”

“아이구 우리 아들 고마워서 우짜노”

“엄마, 내가 어깨 주물러 주께.”

“아이구, 우리 아들 다 컸네.”

김말순은 눈물이 솟았다. 함께 농사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남편은 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들의 여린 손이 남편의 큼직한 손과 데자뷰를 일으켰다.

김말순이 아들의 밤송이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이 잘 자란다면 무엇을 못하랴.

친척들의 입초시가 터무니없지만은 않았다.

젊은 미망인을 노리는 늑대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해 보려는 남정네들 등쌀에 죽을 맛이었다.

특히 건넌방에 하숙하는 이강철은 고래 힘줄만큼이나 질기게 매달렸다. 웬만한 남자들은 딱 잘라 거절하면 물러난다.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곧 포기를 한다. 이강철은 포기를 몰랐다.

그렇다고 짭짭한 벌이가 되는 하숙과 밥집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밥집이 아무리 힘들어 보았자 농사일에 비길 수 없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은 몸이 약한 그녀도 이력이 붙어 그럭저럭 해 나갈 만 했다.

“흥, 집안의 체면? 기가 막혀서”

박평수의 방문으로 설거지가 늦어졌다. 그릇을 부시는 김말순의 손이 거칠어졌다. 설거지를 마친 그녀는 홀치기 틀을 꺼냈다.

따가닥- 따가닥- 실패가 후크에 걸린 비단 천을 감아 도는 단조로운 소리만 대청에 울렸다.

실패를 든 손이 천에 새겨진 물방울무늬를 감아 돌리지만 생각은 따로 놀았다.

그녀의 걱정은 친척들의 입초시가 아니라 공사 진행에 있다. 고속도로 공사가 끝나면 밥집도 끝이다. 들리는 말로는 육 개월이면 공사가 끝난다고 했다.




댓글과 추천이 고픕니다아!! 바쁘시더라도 발도장 꽝 찍어 줍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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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8 +16 14.03.06 8,726 202 9쪽
17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7 +9 14.03.06 8,217 225 7쪽
16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6 +17 14.03.05 8,904 239 9쪽
15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5 +13 14.03.05 8,824 246 8쪽
14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4 +9 14.03.05 9,609 253 8쪽
»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3 +11 14.03.05 9,065 229 9쪽
12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2 +10 14.03.05 10,171 25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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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0 +18 14.03.05 9,871 265 9쪽
9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9 +14 14.03.05 9,499 24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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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7 +17 14.03.05 10,740 306 10쪽
6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6 +16 14.03.05 11,717 319 8쪽
5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5 +12 14.03.05 11,756 306 7쪽
4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4 +13 14.03.05 12,571 290 8쪽
3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3 +23 14.03.05 14,714 356 8쪽
2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2 +18 14.03.05 18,089 360 7쪽
1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 +28 14.03.05 33,177 45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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