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6
[무쌍]은 성장 소설입니다. 시대상과 현실을 접목한 소설입니다. 느긋이 감상해 주십시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냐?”
이강철은 김말순의 죽은 남편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감히 김말순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그 싸늘한 눈길을 다시 받으면 심장이 정지해 버릴 것 같았다.
어린놈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세상에서 젤로 훌륭한 사람이지예. 돌아가실 때 지보고 무쌍답게 살아라 켔심더.”
“아버지는 누구나 아들에게 훌륭한 사람이다.”
“울 아부지는 틀립니더.”
침울한 표정이지만 녀석은 당당하고 단호했다.
이강철은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아홉 살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절대 저놈처럼 말 할 수 없었다.
이강철은 그 후로 무쌍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오지에 처박힌 이강철의 유일한 취미는 포르노 사진이었다. 서울에 올라가면 세운상가에 나가 포르노 브로마이드 수십 장을 구입해 오곤 했다. 등신대 포르노 브로마이드는 상당히 비싸다. 그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김말순이라는 철벽에 막힌 그는 등신대 브로마이드를 방바닥에 깔아놓고 가슴을 식혔다. 촌구석에서 그외에는 할 짓도 없었다.
남자는 적절하게 성적 욕구를 배출하지 못하면 욕구불만에 빠지게 된다. 욕구 불만은 강력 범죄로 나타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본이 종군 위안부를 설치한 이유다.
남자들은 여자도 성적 욕구 불만에 시달린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사람의 지식이나 판단이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일반화이고 보면 상리에서 벗어난 생각은 아니다.
그러한 생각의 바탕에서 미망인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
이강철 역시 남자이고, 그런 일반화된 생각에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과부의 성적 욕구는 아무리 내숭을 떨어도 숨기지 못한다고 굳게 믿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믿음이다. 딱히 이강철이 변태적인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일반화란 말은 특별함이 있기에 생긴 용어다. 이강철에게 특별함은 김말순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여자라도 잡을 수 없는 여자라면 안달 할 필요가 없다. 김말순은 잡을 수 없는 바람이 아니라 분명히 꺾을 수 있는 버드나무였다.
신분, 나이, 물리적 위치, 어떤 면으로 봐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자가 김말순이다. 손에 넣을 수 있는 흙 묻은 진주, 세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가 김말순이다.
눈앞의 보석을 쥘 수 없으니 이강철은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퇴근하는 이강철을 남 계장이 잡았다.
“여, 이기사 자네 요즘 무슨 일 있나?”
이강철의 속내를 매일 얼굴을 맞대는 계장이 모를 리 없었다.
“이런 촌구석에서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아냐, 자네 요즘 부쩍 이상해졌어. 하숙집 아줌마와 잘 안 되는 모양이지?”
이강철의 입에서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왔다.
“아줌마 아닙니다.”
계장이 낄낄 웃었다.
“푹 빠졌구먼. 애 딸린 여자가 아줌마가 아니면 성처녀냐. 아줌마 얼굴 보고 싶어서 서두르는 거지?”
이강철은 비시시 웃었다. 계장 성격에 부인하면 더 파고든다.
“계장님은 점집 차려도 먹고 살겠습니다.”
“어, 정말이야? 애가 2학년이라고 했지. 여자 나이로 보면 친자식이 아닐지도 모르지.”
이강철은 계장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계장도 김말순을 이십대 초반이나 중반으로 본 것이다.
“친 아들 맞습니다. 그 사람 저보다 한 살 많아요.”
“진짜야? 난 이십대 초반으로 봤는데.”
예상대로 계장이 화들짝 놀랐다.
“다들 그렇게 봅니다.”
“인물이야 빤드르 하지만 혹까지 딸린 과부라면 총각이 손해 아닌가?”
“애가 딸린 게 대숩니까. 내가 키우면 되지요.”
단호한 이강철의 대답에 계장이 실실 웃었다.
“허허, 이사람 보게. 제대로 맛이 갔어. 근데 진행이 안 되나 보지?”
이강철이 한숨을 푹 쉬었다.
“예, 철벽입니다. 당재 터널보다 더해요. 뚫을 수가 없어요.”
당재울 터널은 옥천면 인근 터널로 경부고속도로 최악의 공구중 하나다. 공사 기간 동안 십여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악명 높은 공구다. 하루 굴착 거리가 30cm에 불과했던 당재울을 모르는 상공부 직원이 없었다.
“똑똑한 년이 이쁜 년 못 당하고, 이쁜년이 젊은 년 못 당한다더니 이기사가 그 짝이구먼. 그 정도 인물에 서른하나면 이기사가 목 멜만 하지.”
이강철이 시무룩해지자 계장은 신이 났다.
“계장님, 방법이 없겠습니까? 요즘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남계장이 이강철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작업복에 쌓인 먼지가 부옇게 일어났다.
“이 사람이 약해졌구만, 여자는 일단 눌러야 돼. 쌀이 익어 밥이 되면 끝이야. 과부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며? 그럼 그냥 눌러. 누르면 끝난다고.”
계장의 장담에 이강철 역시 동의했지만 곧 머리를 흔들었다. 쌀도 쌀 나름이다. 김말순은 쌀이 아니라 차돌이다. 차돌에 거시기를 잘못 들이대면 사단이 난다.
안타깝게도 이강철은 퇴근하지 못했다.
중장비 반장이 현장 사무실에 우당탕 뛰어 들어와 사고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몇 달간 사고가 없던 현장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덤프 기사 한명이 오징어포가 되었다.
놀란 이강철은 말순씨마저 머릿속에서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이강철이 현장에 뛰어 갔을 때는 이미 기사는 가슴이 뭉개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갈비뼈가 박살나고 내부 장기가 터져 나온 시체가 흥건한 핏속에 떠 있었다.
이강철은 뱃속에 든 내용물을 다 토해 내고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자 자신을 사고 현장으로 몰아 보낸 계장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요?"
“그기요, 글쎄. 우야꼬!”
절반쯤 넋이 나간 사고 차량 기사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우야꼬!"라는 요령부득의 말만 되풀이 했다.
길바닥에 엎어진 사람에게 길을 묻는 꼴이었다. 대답 듣기를 포기한 이강철은 사고 현장 사진을 먼저 찍고, 구급차를 불렀다.
이강철은 십장에게 사고 경위 파악을 지시하고 담배를 빼 물었다.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자 머리가 핑 돌았다. 빈속에 독한 연기가 들어가자 다시 구토가 치밀었다.
십장은 얼굴이 노랗게 질려 있었다.
"그기 말입니더, 아까 짐에 모래를 까닥 실고 나오던 이기사 담뿌 뒷발통이 모래구디에 빠짓뿟다 아임니꺼. 물이 찬 구디라 악세루다를 밟아도 헛발통만 돌자 조기사가 뒷발통에 가마니를 깔았심더. 그라고 갑자기 담뿌가 후진하는 바람에 조기사가 뒷발통에 깔리뿟심더. 우야믄 좋심니꺼? 조기사 절마 얼라도 있는데."
골재 채취반 십장은 얼굴이 허옇게 떠서 주절거렸다. 들으나 마나 한 보고다. 사투리가 심한 십장의 말투가 짜증을 일으켰다. 사고 현장을 봤을 때 이미 알 수 있었던 내용이다.
이강철은 정신이 아득했다. 대문짝 보다 큰 글씨로 쓰인 [무사고 218일]이란 글씨가 왈칵 덤벼들어 눈에 쑤셔 박히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사고였다. 안전과 작업 절차에 조금만 신경 썼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매일 트럭이 수백 대 드나드는 좁은 임시 도로다. 말이 도로일 뿐 봇도랑에 콘크리트 관을 매설해 물길을 터주고 모래를 덮은 통로에 불과하다. 모래 채취장으로 넘어가는 덤프트럭 출입이 하루에 수백 회다.
수시로 바퀴가 빠지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콘크리트 관은 파손된다. 불안정한 통로에 거대한 트럭이 줄지어 교행 하는 통로에 신호수 한명 없었다.
안전에 신경 쓰는 관리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신호수 한사람만 세워 뒀어도 피할 수 있는 사고다. 물론 자신도 신경 쓰지 못했다. 모두들 공사 진척률에만 눈이 벌게져 있었다.
공사 진척도는 모든 가치에 우선했다. 관리자와 감독관들은 상부의 압력과 문책성 독려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안전을 챙길 시간도 돈도 정신도 없었다. 어느새 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생길 일이 일어났다는 식의 내성이 생겨 버렸던 것이다.
“에이 씨펄”
현장 사무실에 돌아온 이강철은 안전모를 벗어 내 팽개쳤다. 그는 한 시간 동안 사고 보고서를 쓰고 찢는 일을 되풀이 했다. 아무리 애써 봐야 책임을 면할 길이 없었다.
계장은 현장 담당인 자신에게 뒷수습을 떠넘기고 잠수를 타 버렸다. 업체쪽 책임자도 공기 단축을 몰아붙인 이강철을 원망하며 공동 책임을 거론했다.
힘없는 자신만 동네북이 되었다. 사고 뒤처리에 진을 뺄대로 뺀 이강철은 달이 뜨고서야 퇴근했다.
댓글과 추천이 고픕니다아!! 바쁘시더라도 발도장 꽝 찍어 줍셔^^
Commen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