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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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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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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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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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모질고 척박했던 초년

DUMMY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어허, 보아하니 부자(父子)로 보이지도 않는데, 부처님을 모신 나도 이 꼬마한테 튀밥 값은 해야 할 것 아니오. 사주를 몰라 정확치는 않지만 조그만 얼굴에 ‘물’과 ‘불’이 들어 있는 관상이라니.”


스님은 안타깝다는 듯 몇 차례나 혀를 끌끌 찼다.


“물과 불이 들어 있는 관상이요?”


삼촌이 궁금하다는 듯 큰소리로 물었다. 처녀시절 신이 내려서 오랫동안 무당을 했던 노모한테도 ‘두 사람 운세’ 란 비슷한 얘기를 들었었다.


“초년(初年) 운세가 박복(薄福)해 보이는데다 ‘구석’이란 이름자도 어디엔가 갇힌듯 보이고. 여러 가지 것들이 신경 쓰여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요. 나무관세음보살!”


‘구석’이는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앞날을 걱정해 주는 잘 생긴 젊은 스님이 좋았다.


답례로 다시 종지기에 쌀 튀밥을 수북하게 담아주었다. 여섯 살 자신이 이 순간 베풀 수 있는 최고의 것이었다.


“이름이 ‘구석’이라고 했지? 이거 받아라. 나와 사형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절이다. 잘 보관했다가 어느 때라도 생각나거든 찾아오너라.”


스님은 자신이 기거하고 있다는 절간 주소가 적힌 종이를 주었다.


***


삼촌과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구석’이가 해야 하는 일도 한 가지씩 늘어만 갔다. 종전과 달리 튀밥을 튀러 오는 동네사람들이 이제는 기계주변에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서성대지 않아도 되었다.


맡기고 돌아가면 됐기때문이다. 그러면 ‘구석’이는 혼자서 배우고 익힌 거미줄 같은 골목길 약도를 따라서 얼마 후 튀밥자루를 배달해 주었다. 어느 때는 자신이 살아가야할 세상만큼이나 자루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은 삼촌과 복잡한 읍내 장터에서 튀밥기계를 차렸다. 이렇게 먼 읍내까지 오는 날은 아침나절 보리밥을 먹고 두 시간이나 걸어와야만 했다.


장작더미와 시커먼 기계장치를 실은 수레를 끌고 고갯길을 오를 때는 ‘밀어라’고 ‘구석’이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읍내는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이 섞여서 사는 곳이었다. 동네 보다 몇 곱절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날은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 무렵, 튀밥기계 돌리는 것을 ‘구석’이한테 맡기고 주막에 갔다 오겠다던 삼촌이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튀밥기계에 달린 압력계는 무더운 날씨 엿가락처럼 늘어져 쑥쑥 올라가기만 했다.


삼촌이 갔던 주막 쪽을 수 없이 쳐다보며 기다렸다. 그러나 삼촌은 꿩궈먹은 소식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느덧 압력계가 끝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다. 기계를 멈추지 않고 계속 돌린다면 폭발할 지경이었다. 맑은 하늘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질 때처럼 마음이 바빠지며 생각이 많아졌다. 어른들은 이런 날씨를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이 때 높은 굽 구두 신은 세련된 아줌마가 쌀 튀밥을 튀러왔다.


“얘, 꼬마야! 너희 아빠는 어디 갔니?”


이런 아줌마는 시골마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손가락이 곱고 긴 도시사람이었다. 진한 화장품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빠 아닌데요? 삼촌이지.”


‘구석’이는 얼굴이 벌겋게 긴장되어 아직까지도 튀밥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삼촌이 어린애한테 이런 일을 시킨단 말이냐?”


이런 절대 절명의 위험한 순간 ‘구석’이는 깡통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꺼내야만 폭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단 한차례 배우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압력계가 멈춰선 튀밥기계 밑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분리시켰다.


만약 기계가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다면 주변 것들이 하늘로 날아가는 아찔한 순간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위험한 순간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어머, 너 꼬맹이가 제법이구나?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주막에 간 삼촌이 안 오는데 가만있음 폭발하잖아요?”


‘구석’이와 엄마뻘 아줌마 두 사람은 이날 길거리서 인연이 되었다. 앞으론 읍내 아줌마 집에서 살기로 약속하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막걸리 냄새를 피우고 돌아온 삼촌에게 아줌마는 제법 큰돈을 주었다. 젊은 시절 무당을 했다는 할머니 점괘가 맞은 셈이었다.


꼬질꼬질 냄새나고 가난에 찌든 초가집 보다는 커다란 기와집에서 화장품 냄새나는 젊은 아줌마와 살고 싶었다. 다음날부터 손가락이 희고 기다란 예쁜 아줌마는 이모님이 되었다.


***


기와집은 군인처럼 머리가 짧고 검은 양복 입은 덩치 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메뚜기처럼 허리를 깊게 숙이는 깍두기 인사를 했다. 드럼통만한 사람들이 허리를 배꼽까지 숙이고 부담스런 인사를 하는 이모님은, 깡패 오야붕 아내였다.


얼굴에 칼자국 흉터가 있는 오야붕 아저씨는 화가 나면 우악스럽게 밥상을 던지고 이모님을 때렸다. 심할 때는 머리채를 잡고 내팽개쳤다. 죽도록 맞아서 머리카락을 산발한 이모님은 감기지도 않는 시커먼 눈으로 ‘구석’이를 껴안고 울었다. 치맛단이 올라가도록 두 다리를 뻗고 큰소리로 신세한탄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럴땐 ‘구석’이도 이모님 얼굴 멍 자국을 어루만지며 함께 울었다.


“이모, 내가 호 해줄 테니까 울지 마.”


‘구석’이는 이모님 남편이라는 우악스런 오야붕 아저씨가 무서웠다. 아저씨한테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모님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호 해주는 ‘구석’이가 옆에 있어야만 무섭지 않다고 했다.


‘구석’이도 불쌍한 이모님을 혼자 두고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어쩔 수도 없는 생활이 얼마쯤 계속되었을까? 맹자의 좋은 교육을 위하여 어머니가 ‘묘지근처’나 ‘시장 통’ ‘서당 주변’으로 이사 했다는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가 생각났다.


***


“야, 이 잡년아!!! 개 같은 잡년아! 저리 안 꺼져.”


이모님과 스무 살 쯤 나이 차가 나고 얼굴에 칼자국과 주름살이 많은 오야붕 아저씨가 험상궂은 얼굴로 내뱉는 육두문자는 무서웠다. 지구 종말이 올 것처럼 무섭게 다그쳤다. 잠을 자다가도 혼비백산해야 할 만큼 내 뱉는 고함속에 날카로움이 숨어있었다.


오늘도 오만상을 찡그린 오야붕 아저씨는 무서운 헐크가 되었다. 손에 잡히는 살림을 가리지 않고 집어 던져 유리창이 깨지며 파편이 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공포의 도가니였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당장이라도 죽일 듯 눈에 핏발이 섰다. 이런 순간 어줍게 말리거나 말을 걸었다간 줄초상 나는 날이었다. 아내를 허수아비처럼 때리는 천하에 불한당 같은 나쁜 놈이었다.


오야붕 아저씨는 몸집이 절반 밖에 안 되는 이모님을 인정사정없이 때리고 부쉈다. 때로는 달려들어 숨을 못 쉬도록 목을 조르기도 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깡패라는 것을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소문냈다.


상대방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듯 무지막지하게 폭행했다. 어떤 날은 너무나 심하게 맞은 이모님이 식음을 전폐 꼼짝 못하고 이틀씩이나 누워있기도 했었다. 그러면 ‘구석’이는 울면서 일어나라고 팔목을 잡아당기며 조르기도 했다.


일곱 살 때는 ‘구석’이를 데리고 할머니가 혼자 사는 시골집으로 도망쳤지만 삼일도 못 가 잡히고 말았다.


오야붕 아저씨는 검은 양복을 입은 졸개들을 데리고 와 대문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신은 무서워서 도망친 이모님을 향해 나쁜 짓을 했다는 듯 다그쳤다. 얼마쯤 큰소리로 행패를 부린 후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데리고 나갔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었다.


‘구석’이와 이모님이 도망칠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죽도록 맞으면서도 감내하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달리 뾰쪽한 수가 없었다.


***


오늘도 이모님은 막소주를 사발에 부어 냉수처럼 마시며 신세한탄을 했다. 소주만으론 부족한지 연신 담배를 숨이 다 하도록 깊이 들여 마셨다. 담배를 쥔 이모님 손가락은 희고 예뻤다.


‘구석’이는 어린나이였지만 깊이 몰아쉬는 이모님 숨소리가 살아가는 것이 힘든 한숨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모! 이제 술 고만 먹어? 아저씨 오면 술 마신다고 또 때린단 말이야.”


오야붕 아저씨를 ‘이모부’라 부르라고 몇 차례나 꾸중을 들었다. 그러나 ‘구석’이는 이상하게도 ‘이모부’ 라는 호칭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냥 무서워서 도망도 못가고 헤어질 수도 없는, 정나미 떨어지는 깡패 오야붕 아저씨였다.


“호호호, 이모는 좋겠네. 맞을까봐서 걱정해주는 우리 ‘구석’이도 있고.”


반쯤은 술이 취해서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해대는 이모님 볼에 소리 없이 눈물이 지렁이 자국처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구석’이가 이모님에게 달려들어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래. 우리 ‘구석’이는 나중 어른 되면 어떤 사람 될 거야?”

“이모. 나는 사람은 절대로 안 때리는 착한 사람 될 거야.”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구석’이가 최고다.”


이모님은 자그만 ‘구석’이를 힘껏 안아 주었다.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일곱 살 ‘구석’이는 싫다고 집을 나갈 수도 안 들어 올수도 없었다. 지옥 같은 환경이었다.


인내는 누구에게나 이겨낼 수 없는 한계의 선이 있었다. 이모님은 지옥과도 같은 이곳을 떠나야만 하겠다고 생각한 듯 했다. 그리고 떠날 채비를 했다.


주섬주섬 속옷을 싸고 가방을 챙겨 ‘구석’이를 앞세우고 친정집, 지인 집으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졸개가 수십 명씩 되는 오야붕 아저씨에겐 언제나 부처님 손바닥 안 이었다. 용케도 귀신처럼 찾아냈다.


오야붕 아저씨는 읍내 사방에 흩어진 졸개들을 시켜 택시기사를 족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모님과 ‘구석’이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고 말았다. 마치 눈 내리는 날 아침 바둑이 발자국처럼 훤히 꿰고 있었다.


이후엔 도망을 쳤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히고 또 때렸다. 말로만 아내였지 부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인간 말종이었다.


***


오늘도 이모님 예쁜 얼굴은 아저씨가 던지는 밥그릇에 맞아서 시커먼 혹이 생겼다.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수 없이 반복되자 이모님은 이제는 도망 다니는 것조차 포기하다시피 했다. ‘도망 다니는 것도 이골이 난다’며 북어처럼 차라리 맞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새벽이면 단 한차례 거르지 않고 ‘꼬끼오’ 우는 수탉처럼 맞아야만 일상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이틀이 멀다하고 얼굴에 계란을 굴리며 멍 자국을 지워야만 했고 부서진 살림을 버리고 새 살림을 수 없이 들여와야만 했다.


겨울철 찬바람이 불어오며 윙윙 소리를 냈다. 몸을 움츠리고 학교 갔다가 오는 길 ‘구석’이는 추워서 자라처럼 목과 손가락을 움츠렸다. 귀와 발이 차가웠다.


기와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머리채를 산발한 이모님이 담장에 기댄 채 울고 있었다. 단번에 오야붕 아저씨한테 쫓겨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 또 아저씨한테 쫓겨났어? 신발도 안 신고?”


이모님은 대문을 급하게 도망 나오느라 신발조차 없는 맨발차림이었다. ‘구석’이는 재빨리 자신 신발을 벗어서 이모님에게 주었다.


“이모! 내 것 신발 신고 있어. 내가 집에 가서 신발 가져 올게.”


이모님은 여덟 살 ‘구석’이를 껴안고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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