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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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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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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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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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두 사람 운세(運勢)

DUMMY

마을 입구 거무죽죽한 당산나무는 몇 백 년이나 됐을까? 강강술래 하듯 서너 명 개구쟁이들이 숨바꼭질하며 양손을 잡아도 닿지가 않았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나무였지만 외로워서 일까? 도토리 개구쟁이처럼 나란히 자웅을 겨루고 서있었다. 지게차, 기중기도 없던 시절! 어디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 사랑채 안방 크기만 한 거대하고 납작한 바윗돌이 농사일에 지친 동네 사람들 발걸음을 잡았다.


밀짚모자, 발목을 걷은 농부가 심심찮게 앞을 지나갔다. 이글이글한 태양에 익은 촌뜨기 얼굴이 삶은 돼지 족, 검붉은 모양을 그대로 닮았다.


‘에라 모르겠다.’


멀찍이 산에서 불어오는 솔솔 바람에 팔 베개 하늘을 이불 삼아 낮잠이라도 자려면 매양매양 암컷을 찾는 수컷 매미가 허리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방아를 찧었다.


이놈 매미는 살아있는 일주일 동안 짝짓기 유충을 낳아 가지나 땅속에 감춘 후 굼벵이로 7년을 기다려야만 다시 매미로 햇빛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일주일 살기 위하여 7년을 기다리는 셈이었다. 생명체란 이렇게 신비한 것이었다.


사방이 나지막한 산 자락 양지 쪽, 크고 작은 초가 지붕이 꽤나 큰 마을이었다. 윗마을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냇가 고즈넉한 편안함이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역사를 짐작케 했다.


한바탕 동네 사람들 발걸음을 혼쭐 나게 했던 소나기가 지난 뒤 파란 하늘에서 내려온 무지개가 활 모양으로 앞 산에 나타나 동네 사람들 마음을 훔치고 있었다.


***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종일 울어 대던 매미 소리가 뜸해지면 바람이 쉬어가는 따스한 양지 쪽 길거리 철거덕, 철거덕 낮은 음 가위 소리를 내는 강냉이 장수가 나타났다.


후줄근한 아저씨는 리어카에서 길쭉한 강냉이 거푸집을 내리고 호리병처럼 둥글게 생긴 시커먼 ‘튀밥’ 기계를 내렸다.


그리곤 어른 머리통만한 깡통에 관솔이나 짧게 자른 장작불을 피웠다. 고양이 세수 하듯 기름 걸레로 튀밥 기계를 대충 닦은 후 한됫박 옥수수를 붓고 뚜껑을 채워 깡통 불을 가까이 넣었다.


그리곤 빙글빙글 손잡이를 돌렸다. 기계와 이어진 고무줄이 풍로 팔랑개비를 돌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대장간 아궁이처럼 쉬-쉬-쉬 소리를 내며 불길이 하늘을 향해서 일어났다.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다가 점점 연기는 사라지고 파란 꽃을 피웠다. 동그란 손잡이가 뜨거워지면 지저분한 장갑을 두 겹으로 껴야만했다.


얼만큼 돌렸을까?

손목시계 닮은 압력계 바늘이 최고 점에 멈추면 아저씨는 돌리던 손잡이를 멈추고 뻥튀기 할 준비를 했다. 길쭉한 거푸집을 끌어다가 열차를 연결하듯 튀밥 기계에 달았다.


“저리 가! 이놈들! 저리 가!!”


이 순간 후줄근한 튀밥 기계 아저씨는 골목에서 ‘왕’이었다. 애들한테 저리 가라고 손짓을 하며 고함을 질러 댔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고함을 신호로 귀를 막고 돌아서거나 멀리 도망을 쳤다.


아저씨가 허리를 구부린 메뚜기 자세로 쇠막대기를 슬며시 앞으로 재치면 바위를 깨뜨리는 천둥소리가 온 마을에 퍼졌다. 그러면 호리병 닮은 기계 속에서 강냉이가 열배쯤 부푼 튀밥으로 변해 거푸집으로 튀어 나왔다. 한됫박 강냉이가 한 자루 튀밥으로 모양을 바꾼 것이었다.


그런 탓일까? 튀밥은 아무리 먹어도 보리밥처럼 배가 불룩하게 차오르지 않았다. 옷차림이나 수염이 후줄근한 아저씨는 튀밥기계 소리에 고막 터진다고 몇 차례나 몰려드는 개구쟁이들을 멀리멀리 쫓았다.


그런데, 여섯 살 정도 됐을까? 콧구멍 아래로 뱀 허물 닮은 콧물 자국이 흐른 꾀죄죄한 꼬마가 거푸집 옆에 꼼짝 않고 쪼그리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단골손님처럼 나타났다. 헛간에서 잠을 잤는지 지저분한 옷에는 지푸라기도 몇 가닥 묻어 있었다.


아저씨는 불현듯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동네, 어느 골목이나 개구쟁이들이 몰려 다니고 30분마다 터지는 튀밥 기계 천둥소리에 호기심을 느낀 애들이 몰려들긴 했었다.


그러나 이 녀석처럼 한자리에 쪼그리고 앉은 모습이 진득하진 않았다. 혹시라도 오갈데 없는 ‘애 거지’는 아닐까 궁금증이 일었다.


“얘, 꼬마야. 너, 집은 어디고 몇 살! 이름은 뭐냐?”

“여섯 살! ‘구석’이요.”


꼬마는 정확한 나이를 말하려는 듯 손가락을 폈다.


“방구석 할 때 그 ‘구석’ 말이냐?”

“아니야, 방구석 말고 ‘이구석’이야.”


개구쟁이는 당돌했다. 방구석이 아니라는 듯 꾀죄죄한 얼굴에 인상을 쓰며 고사리 닮은 손으로 아저씨에게 대들어 무지막지하게 꼬집었다.


“야, 이놈아! 날은 저물고 걱정이 되어 물어 본 것인데. 꼬집긴 왜 꼬집어?”


'참, 이놈은 ‘담’이 큰 놈이야. 튀밥 기계 터지는 천둥소리에 다른 애들은 모두 삼십육계 줄행랑 치는데. 이놈은 꼼짝 않고 있으니'


아저씨는 알 수 없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아저씨는 배가 고픈 꼬마가 튀밥을 얻어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짐작, 한 주먹 줬으나 싫다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여섯 살 개구쟁이지만 행동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꼬마야! 너네 집, 어디냐?”


이번엔 구석이라는 이름자를 부르지 않고 다시 꼬마가 사는 동네를 물었다.


“우리 엄마, 찾아야 해요.”

“너! 이 동네 안 살아?”


‘구석’이는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어졌다. 그리곤 왕방울만한 눈동자에 허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사연이 있는 꼬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걔, 집 나온 거지여요. 남의 집 헛간에서 자고.”


또래 개구쟁이들이 놀리듯 자랑삼아 고자질을 했다. 그러고 보니 세수도 안 한 꼬질꼬질한 얼굴, 지저분한 옷엔 지푸라기 같은 것이 등판에도 묻어있었다.


“너, 참말로 집 없어? 사는 동네도 모르고?”


‘구석’이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만 위 아래로 끄덕였다.


“우리 엄마, 찾아야 해요.”

“이놈아! 사는 동네가 어딘지, 엄마가 누군지? 알아야 찾을 수 있지.”


튀밥기계 아저씨는 잠시 고민을 했다.


“사는 것은 형편없다만, 그럼 너! 우리 집에 갈래?”


‘구석’이는 좋다는 듯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꼬질꼬질한 얼굴, 지저분한 옷차림이었지만 앞 뒤 짱구, 진한 눈썹, 당나귀 나팔 귀 닮은 큰 귀가 아래로 내려 온 것이 범상치 않은 얼굴이었다.


이날부터 여섯 살 ‘구석’이는 튀밥기계 아저씨를 따라 다니며 심부름하는 조수였다. 엄마 역할을 대신해줄 보호자를 만난 것이었다.


***


일이 끝나고 두 시간 가량을 걸어서 아저씨 집에 들어가자 허리가 휜 할머니가 두 자쯤 되는 장죽(長竹)에 잎 담배를 채워 물고 마당에 나와 있었다.


“걔! 풀빵구리는 누구야?”

“어머니, 애도 하나 없이 적적하던 참인데 같이 살자고 길에서 주워 왔어요. 구석아, 할머니한테 인사 해야지.”


‘구석’이는 허리를 숙여 처음 만난 할머니한테 꾸벅 절을 했다. 지붕이 표고버섯 닮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 지붕이었다. 마당 한쪽엔 작두, 시암(샘)도 있었다.


“뭐여? 같이 살자고 길에서 주워 왔다고?”

“네, 어머니!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집도 절도 없는 놈이여요.”

“무슨 소리야? 요즘은 내가 나이 들어 신기(神祇)가 떨어져서 그렇지. 눈썹이 진하고 당나귀 나팔 귀 닮은 큰 귀가 아래로 쳐진 것이 범상치 않은 관상이야. 우리와 같이 살 운세가 아니라고.”

“이 녀석 운세가 범상치 않다고요?

“그래. 어찌 보면 두 사람 운세를 가진 관상(觀相)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 집에 오래 머무를 상(相)은 절대로 아니야. 밥 주고 입혀서 거둬봐야 아무 짝에 쓸모없는,남의 논에 물 대는 격이라고.”


할머니는 처녀 적, 신이 내렸을 때는 귀신을 물리치는 용한 무당이었다고 했다. 나쁜 귀신이 붙어서 황천길을 받아 놓은 사람도 할머니를 찾아와 귀신 쫓는 굿을 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차리고 다음날부터 들에 나가서 일을 했다고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구석’이는 아저씨를 따라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녔다.

며칠 사이 방망이질 빨래로 옷을 빨아 입고 세수도 한 탓인지 딴 사람이 된 듯 깨끗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튀밥기계 일을 나간 동네 계집애들과 손잡고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다. 이 골목 저 골목마다 코흘리개 조무래기들이 많았다. 엄마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


오늘도 아침나절 아저씨를 따라서 일터에 왔다.


“삼촌, 내가 돌려볼게요. 삼촌은 저리 가서 담배 펴.”


‘구석’이는 아저씨와 한 집에서 사는 날부터 아저씨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래, 우리 구석이가 벌써 밥값을 하는구나.”


아저씨는 튀밥기계 돌리는 것을 ‘구석’이한테 맡기고 남의 집 사립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을 회관에 있는 변소에 다녀오기도 했다. 어떤 날은 목이 마른다며 가까운 주막에서 막걸리를 한잔 하고 만족한 얼굴로 오는 날도 있었다.


“아저씨, 들에 가야 하는데 튀밥 튀겨서 우리 집에 갖다 줄 수 있어요?”

“혼자라서 그렇게는 안 되는,”


아저씨의 안 된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여섯 살 구석이가 아주머니 말을 받았다.


“집 가르쳐 주면 지가 갖다 드릴게요.”

“호호호. 어린 꼬마, 네가?”


아주머니는 신통하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튀밥은 가볍고 저 힘세요.”


집을 확인하기 위하여 ‘구석’이는 튀밥을 갖다 달라는 아주머니 뒤를 졸졸 따라 나섰다.


“얘야, 너 몇 살이냐?”

“여섯 살이요.”


대견하다는 듯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넘치도록 밥값을 한 셈이었다.


오른쪽! 왼 쪽! 손가락을 꼽으며 이리저리 구부러지길 몇 차례, 글씨도 모르는 ‘구석’이는 막대기를 주워 땅바닥에 집을 찾아가는 약도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곤 얼마 후에는 커다란 튀밥 자루를 아주머니 집 마루에 정확하게 배달했다. 여섯 살 치고 신통한 일이었다.


할머니와 아저씨 집에서 생활 한지 한 달 만에 ‘구석’이는 뻥튀기 장수가 되었다. 조수를 두게 된 아저씨는 갈 곳이 없는 ‘구석’이를 거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도움을 받았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 인지라 고무신, 장삼차림 어깨엔 느슨한 바랑을 멘 스님이 이 집 저 집 탁발(托鉢)을 다녔다. 대개는 가가호호(家家戶戶) 사립문 앞에서 불경을 외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튀밥 기계가 차려진 거리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정구업진언’으로 시작되는 불경을 시작했다.


“나무관세음 보살! 혹시 꼬마와 아저씨 두 사람은 부자(父子)인가요?”

“왜요? 스님은 가던 길이나 가시지. 누가 물어 보지도 않는데 무슨 상관있는 일이라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모르겠네요.”


삼촌은 귀찮다는 듯 불친절하고 거칠게 대꾸했다.


이 때 ‘구석’이가 망설이지 않고 종지기 속 쌀 튀밥을 스님한테 넙죽 건넸다.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간혹 귀한 쌀로 튀밥을 튀기는 경우가 있었다.

쌀 튀밥은 강냉이 튀밥과 달리 입속에서 침을 만나 사르르 녹았다. 불손하게 말을 건네는 삼촌과는 사뭇 다른 대접이었다.


“허허, 고맙기도 하지. 꼬마야 너는 몇 살이냐? 이름은 뭐고?”

“여섯 살이요. 이름은 구석이고.”


장삼차림 스님은 얼굴이 백옥처럼 희었다. 그래선지 아저씨처럼 ‘방구석’이라는 놀림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 윤기가 도는 젊은 스님이었다.


“내가 부처님을 모시고 절 밥을 먹은 지 십 수 년 됐다만, 이런 관상(觀相)은 처음이라서. 함께 있는 사형(師兄)이라면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허허, 바쁜데 헛수고 마시고 가던 길이나 어서가시라니까요.”


삼촌은 무슨 이유에선지 스님과는 말조차 섞기 귀찮다는 듯 거친 말투로 내 쫒다시피 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다시 시작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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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운명 24.09.12 268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8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1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6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39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4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1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08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5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2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3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6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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